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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1-7)
사도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을 마치려는 무렵 에베소에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고 바울로 하여금 거기 오래 머물러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 작별하면서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는 말을 남기고 에베소를 떠났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가이사랴를 거쳐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 선교본부인 수리아 안디옥에 이르러 선교보고를 함으로 이로서 3년간에 걸친 약 3,000km에 이르는 제2차 전도여행은 마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제3차 전도여행이 시작되는데, 제3차 전도여행은 사도바울의 마지막 전도여행입니다. 선교본부인 안디옥교회에 돌아와 선교보고를 한 사도바울은 고된 여독도 풀지 못하고 곧장 제3차 전도여행에 떠나게 됩니다.
아마 2차전도여행을 통해서 새롭게 세워진 교회와 성도들이 생각나서 다시 저들을 찾아가 복음을 굳게 하는 이른바 심방 차원의 전도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사도바울은 안디옥에서 오래 쉬지도 못하고 그의 고향 다소를 거쳐 갈라디아와 부루기아의 고원지대를 거쳐서 에베소에 다시 찾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3년여 기간동안 말씀을 강론하고 교회를 세우는 집중사역을 하게되었습니다.그 가운데 본문은 소위 에베소의 오순절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에서 귀환할 당시 잠시 에베소에 들려 복음을 증거했다고는 하나 지극히 짧은 시간으로 어떤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사람들 가운데에는 바울이 떠난 후 도착한 아볼로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복음의 진수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비롯하여 성령 세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요한의 세례, 즉 물세례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습니다(2.3절).
왜냐하면 아볼로가 비록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가르침에 의해 복음의 진수를 깨달았지만 그 직후 곧 바로 고린도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로마의 통치하에 있던 아시아주의 수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정치 경제 문화 무역 교통의 중심지였으며 흔히 말하기를 "아시아 보고"로 불리었습니다. 에베소는 로마로 가는 대로가 있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교통의 요충지였고, 또한 항구도시로서 번창한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에베소 역시 유명한 아데미 신전이 세우져 있는데, 이 신전은 길이가 130m, 넓이가 67m로, 20m나 되는 둥근 기둥이 127개나 세워져 있는 거창한 대리석 건물로 고대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사람들이 얼마나 우상숭배에 극성이었나를 단적으로 보게 해 줍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를 만났다고 했는데 여기서 '어떤 제자'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질문합니다.
1.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1-2절)
1-2절,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라고 물었을 때 에베소에 있던 성도들이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습니다" '성령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른다. 처음 듣는 말이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먼저 성령에 대해서는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에베소교회 성도들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아볼로라는 사람이 세운 교회입니다.사도행전 18: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는 말도 잘하고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고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워 예수에 관한 것을 잘 알아서 자세히 가르쳐서 교회를 세웠지만 저는 예수님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몸으로 체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단한 종교인입니다. 예수님에 관해서 자세하게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성도들은 교회생활은 잘 하고 있었지만 아직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관해서 지식적으로는 아는 것이 많았지만 아직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통해 회개하고 도덕 재무장 운동을 펼치는 수준에 머물렀던 사람들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유대사회의 영적지도자였던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폭탄선언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그가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고 어려서부터 종교적인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아무리 인품이 훌륭하고, 존경받는 유명인사라 할지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독교는 보다 착하고, 보다 나은 사람을 만드는 도덕중심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새 사람을 만드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종교입니다.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체험을 해야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진정으로 주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말로는 얼마든지 그렇게 말할수 있지만 실질적인 신앙고백적으로 예수님은 주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게 많은 경험을 하고 예수님으로부터 3년동안 가르침을 받고 체험하였지만 십자가앞에서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결코 현장에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실천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체험입니다. 그 체험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세족식을 하신 후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성령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그분은 보혜사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을 정리하면 대표적으로 세 가지사역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깨닫게 하는 역사, 2)변화시키는 역사, 3)능력을 주시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에 저들은 무력했습니다. 아는 것은 많았지만 그것을 행할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늘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성령을 받은 이후에 달라졌습니다. 세상이 두렵지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신앙의 근본인 것입니다.
교회에 아무리 오래다녀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으로 성장했어도 성령체험을 하지 않으면 무력합니다. 종교인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이길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실패하고 넘어지고 감정에 휘둘립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거듭남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가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단순한 도덕적 종교가 아닙니다. 도덕만 가지고는 사람의 근본이 달라질 수 없습니다. 공자의 논어가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그 속 사람이 본질적으로 달라집니다. 성령님만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십니다. 성령님만이 우리를 새 존재로 만들어주십니다. 성령님만이 내 마음에 예수님을 진정한 구주로 영접하고 모시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 받아야 진정으로 살아있는 믿음이 됩니다. 믿음이란 단순히 우리 의지로 결심했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자유의지 위에 성령께서 임하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 보다가, 말씀 듣다가 성령체험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하다가 성령체험하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바울의 질문은 단순히 에베소 교인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 나를 향한 질문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믿을 때에 성령받으셨습니까?" 성령받아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조그만 미풍에도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은 아직도 믿음이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성령받아야 주의 일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성령을 체험할수 있습니까? 그것은 사도행전 2장에서 살펴 본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할 때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행 5:3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바울의 질문에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에 대해 듣지 못한 사람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인은 에베소의 믿는 사람들보다는 모두 나은 분들입니다. 그러자 바울이 다시 그들에게 질문합니다.
2.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3-4)
3-4절,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는 바울의 질문에 에베소의 믿는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라고 대답합니다. 요한의 세례와 상대적으로 생각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도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의 차이점이나 혹은 연관성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봅니다. 마태복음 3:7-12을 보면, 요한의 설교가 있는데 이 성경을 잘 읽어보면 몇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설교의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상당히 위협적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 '열매를 맺지않으면 찍어 불에 던지겠다' 살벌합니다. 세례 요한이 위협적으로 설교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8절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면 도끼로 찍어 불에 던지겠다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의 분명한 목적은 '회개의 선포'입니다.
11절에 또 분명하게 말하지요?‘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여기서 세례 요한의 세례의 목적과 범위가 무엇입니까? 회개입니다. 회개케 하기 위해 세례를 주었습니다. 11절에 '내 뒤에 오시는 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요한의 세례가 예수님의 세례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무슨 세례입니까? 성령세례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회개의 세례였다면 예수님의 세례는 구원의 세례, 성령 세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 요한의 말을 인용하며 예수님의 세례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가 구세주임을 믿으면 되는 것이지 꼭 세례를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세례받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고백하는 사람은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예수님이 명령하신 구원의 통로요,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표인 것입니다.
구원은 내가 선한 행위를 많이 했기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이 거저주시는 선물을 받아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받아들이는 우리의 믿음의 증표인 것입니다. 세례는 죄를 씻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의미는 예수님과 연합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도 죽고 예수님의 부활에서 나도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을 내안에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요한의 세례는 듣기도 하고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을 몰랐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과 불세례를 받는 준비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3. 세례 주고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5-7)
(5-7절)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저희가 듣고 예수님의 성령세례를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이 됩니까? 안됩니까? 됩니다.
한참 있다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네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그 순간에 예수님이 네 안에 들어와서 네 죄를 사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내안에 들어와서 내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죄가 무엇입니까? 내가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다 열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고 내가 주인의 자리에 앉아있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내가 죄인됨을 인정하고 자백할 때 내 죄가 십자가의 보혈로 덮혀짐을 받고 성령세례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도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예루살렘 거리에 나아가 에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이 땅에 찾아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사흘만에 부활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자 저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그 때 사도행전 2:38,39“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이처럼 회개할 때 성령세례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내 생각과 내 욕심으로 가득차서 우리 자신이 죄인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큰 은혜만 사모한다고 성령세례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격이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고 우리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성령을 사모할 때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이 시간에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은 사모하는 자에게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앞에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세 번째는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임합니다.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저들가운데 임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을 때 성령이 임재하심읋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안수할 때 임합니다. 안수할 때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성령을 사모하고 간절히 말씀을 받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속에서 안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거운데 성령이 역사하심을 체험할 때 비로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설 수 있고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바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 깨달음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될 때 그 말씀대로 행할 수 있도록 우리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엡 4:23-24)“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성령이 임하면 영혼에 대해서 눈을 떴습니다. 옛날에는 못보았는데 성령이 임하면 사람들의 영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영혼의 실체가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보여야 그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했습니다. 바울이 그 사람들에게 안수를 했습니다. 그 때 저들가운데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 결과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이상한 말이 막 나와요. 성령이 임하니까 미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결과가 보입니다.
이것이 성령받은 증거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만 성령받은 증거냐고 묻는다면 아닙니다. 성경에는 다양한 은사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함, 영분별, 방언, 방언통역, 사도, 교사, 선지자,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그리고 고전13장에 나오는 사랑까지 포함해서 모두 15가지입니다. 로마서 12장 3-8절에는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위, 구제, 다스림, 긍휼 등 7 가지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보면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 등 5가지로 모두가 27가지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은사가 나타납니다. 뿐 만 아니라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도 있습니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렇게 성령은 다양한 은사와 열매를 맺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의 변화, 심령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생각의 변화입니다. 전에 좋았던 것이 이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고 전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꼈던 것이 이제는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은 우리 가운데 오신 보혜사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모르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고 그 말씀대로 살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의 그릇인 우리의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낫낫히 회개하고 특별히 우리가 주인되었음을 회개하고 주인의 자리에 내려와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내가 생각나는 모든 죄를 자백함으로 죄사함과 성령세례를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엇보다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주님, 이 시간 성령님을 사모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간 내게도 성령세례를 부어주옵소서, 나를 깨닫게 하소서 나를 변화시켜주소서. 내게 능력주셔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호소서.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주시옵소서.” 손을 다 드십시오. 주여 한번 힘차게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