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식사
사발에 담긴 둥글고 따뜻한 밥 아니라
비닐 속에 든 각 진 찬밥이다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 아니라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
고수레도 아닌데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며 먹는 밥이다
반찬없이 국물없이 목메게 먹는 밥이다
울컥, 뭄 안 쪽에서 비릿한 설움 치밀어 올라오는 밥이다
피가 도는 밥이 아니라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밥이다 ♧
#1 시를 읽으며 사랑하는 이와 처음 손잡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지금일까, 아닐까’ 수만 번 생각의 뒤척임을 지나 손을 뻗어 그/그녀에게 다가갈 때, 온몸의 세포가 손으로 모여드는 것만 같은 전율이 느껴진다. 눈과 귀와 심장이 손끝으로 전이되고 머릿속 온갖 생각들도 한 곳으로 수렴된다. 이 때 손은 내 몸의 일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된다. 그리고 사랑이란 ‘눈과 코와 입이, 손과
발과 몸이, 얼굴과 머리와 몸통이, 그리고 피부와 심장이 전부 다 당신을 향해 두근대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몸은 그렇게 ‘내’가 되고 ‘사랑’이 된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좇는 듯 보이지만, 사실 실제로 사랑에 빠지게 되면 몸이 하는 말에 대해 귀 기울이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손끝에서 느껴지는, 눈으로 보여지는, 냄새로 느껴지는 각각의 감각들이 흩어졌다 만났다 헤어지면서 감정과 추억을 빚어내는 것. 솔직하게 요동치는 온몸의 설렘과 진동을 느낄 때면 ‘당신’을 소망하는 ‘나’를 느낀다.
#2 사랑을 알아봤을 때의 느낌은 특별하다. 사랑하는 이에게서는 ‘눈이 부셔 마침내 그가 지워지는’ 빛이 발현되어 내 눈을 멀게 한다. 한 곳에 지나치게 집중했을 때처럼 눈이 시려지면서 눈물이 맺히는 경험을,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했었다. 코믹 드라마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그 사람’의 뒤에 후광이 뿜어져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상황도 겪었다. 심지어 눈을 감아도 망막에서 느껴지는 어떤 수런거림이 있다.
때로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 사람처럼 멋지고 착하고 뛰어난 사람은 없다는.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왜 없겠는가. 다만, 사랑할 만한 사람은 있지만, 그것을 알아채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있지 않을 뿐이다.
#3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채우고자 한다. 사람이 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고, 나를 이해시키고 싶고, 나를 알리고 싶고, 포옹 받게 하고 싶고, 누군가가 와서 나를 데려가기를 바란다’는 「사랑의 단상」 중 한 구절처럼 그 지독한 상실감을 채워줄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과정은 ‘기울기 곡선’을 급격하게 만드는 일이다.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서로에게 놓여진 거리를 좁히고 몸을 밀착시키는 즐겁고도 처절한 몸짓이다. 몸을 기울여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이 바로 사랑하는 당신과 만나는 통로가 되어준다. 상대와 팔다리가 엉키고 ‘이리저리 떠다니는 계란 노른자처럼 그 사람 쪽으로 중심이 조금 옮겨 가는 일’인 연애의 순간들을 우리는 겪었고, 겪고 있고, 겪고자 한다.
#4 사랑의 속성은 의지와 이해가 아닌 감각과 밀착에 있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강제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를 띠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매일은 끝도 없는 생각과 두근거림의 연속이다. 무언가를 생각하고자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매 순간 그의 마음에 대해서, 그의 의도에 대해서, 그의 행동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선택에 대해서 생각이 꼬리를 문다.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내고자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평소 내가 옳다고 믿어온 어떤 가치관이나 기준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닥치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난폭한’ 사유가 이어진다. 철학자 들뢰즈는 ‘사랑’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 새로운 개념의 ‘사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의지에 의해 사물을 보고 사건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마주쳐지는 어떤 것, 일종의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사유’라는 것. 기존의 인식으로 해결되기보다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어되지 않는 것이다. 또 이는 ‘사랑’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지금껏 알아왔던 것들을 가뿐하게 뒤집는 이러한 ‘사유’는 혹은 ‘사랑’은 우리를 둘러 싼 틀을 깨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에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 : 목로주점 - 이연실
대청호는 ?
대전광역시와 청주시, 옥천군, 보은군 지역등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이다.
대전과 청주의 첫자를 따서 대청호가 되었다.
당시 수많은 수몰민들이 고향을 떠나 각처로 떠났는데 이들의 기록이 없다.
우리 동그라미사진연구회에서는 옥천 지역의 수몰민들을 찾아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작년에 이 기록들을 모아 전시회를 하였고 올해도 사진과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데,
현실은 지역소멸, 농촌붕괴와 겹치는 현장이었다.
그 들이 떠난 집터에서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장소와 물건들을 발견하게 된다.
되박과 쌀뒤주와 도리깨.
풍구와 여물통과 돌절구통.
변소와 닭장과 외양간.
물지게와 아궁이와 무쇠솥.
지게와 쟁기와 길마.
사진틀과 앉은뱅이 책상과 걸상.
앉은뱅이 책상 설합 속의 주판과 지우개와 콤파스와 20cm 대나무 자.
그리고 대나무자 뒷편에 칼로 파놓은 이름, 김ㅇ수!
30cm 대나무자는 선생님께서 우리들 손바닥을 때리던 교편이었는데.....
그 곳은 우리들 그리움이 잠들어 있는 추억의 저장고였다.
그리고 녹슨 철망의 사각 쥐덫!
아, 덫 없는 세월이여! ☆
첫댓글
대청호의 역사를 역으셨어요
길 위에 밥 한 끼가 어쩌니 해도 얼마나 꿀맛이겠어요
아래 역어내신 농가의 기구들'그 옛날 우리 집에도
그런 기구들이 헛간을 가득 매웠지 싶어요
지금은 이렇게 살기 좋은 세상사
부모님들이 그립지요
이 좋은 세상을 좀 더 함께 하지 못함이요...
@행운
대청호는 우리 아이들의 아빠가
참으로 자주 찾아갔던 곳입니다
그냥 월차를 써 가면서
낚시를 즐겼으니요
늙어가는 이 세월에 가 볼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의 세월을 돌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