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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한 폐렴의 정식 명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다.
2. 코로나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코로나(광환, 원 둘레에 방사형으로 둘러쌓인 생김새) 모양이라서 생긴 명칭이다. 보통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가벼운 감기 증상을 일으키고, 병원성이 약하며 사망률이 매우 낮다. 대신 변이가 빠르고 다양하며 낯선 환경에도 잘 적응해서 살아남는다.
3.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번에 새로 발견된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형이다. 사람에게 적응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명적인 변이형이 발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죽일 경우 자신도 사멸한다. 때문에 바이러스는 숙주에게 적응하면서 약화를 거칠 수밖에 없다. 치사율이 높은 신종 바이러스는 다른 종에 있던 바이러스가 그대로, 혹은 변이를 거쳐 옮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새로운 숙주에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치사율이 높은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4. 인류와 오래도록 친숙한 개, 고양이, 양, 말, 소, 돼지 등등은 이미 많은 생물학적 교류가 이루어져 치명적인 변이형이 옮아올 가능성이 적다. 게다가 동물에게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옮아오려면 일반적인 접촉으로는 부족하다. 에이즈는 원숭이로부터 기원했는데, 성교로 옮아왔다는 설이 강력하다.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인 사스는 사향고양이나 박쥐, 메르스는 낙타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모두 일반적인 가축은 아니며, 산 채로 인간과 밀접한 접촉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5.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는 우한 시장의 박쥐가 지목되고 있다. 사실 박쥐를 솥에 넣어 삶거나 구웠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기전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박쥐를 사 와서 살아있는 채로 무엇인가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때 인류에게 처음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옮겨 왔다.
6. 이렇게 야생 동물과 무분별하게 접촉하면 인류에게 해가 될 수 있다. 보편적으로 이런 행위를 금기시하는 이유다. 먹을 것이 정말로 부족하거나 전통적 관습이라면 국제 사회가 조금 이해할 여지가 있었겠지만, 단순히 식문화 때문이면 부끄러운 일이다.
7. 우한이라는 도시의 단 한 사람에게서 인류 처음으로 발병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에게로 퍼지기 시작했다. 하필 전염력이 강한 변형이었다. 이런 경우 첫 번째 사람은 잘 안 죽는데, 일찍 죽었다면 이처럼 확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 초기 감염군에서 전염력이 매우 높은 사람이 나와 병의 확산에 일조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초기에 진압될 확률이 높다.
8. 하필 그 사람은 우한이라는 대도시에 살았다. 시골에서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면, 인구 밀도가 낮아 잘 퍼지지 않았을 것이며 대처 시간이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한은 중국의 대도시를 잇는 교통의 요지이며 인구가 1000만이나 된다. 하루에도 수많은 기차, 비행기가 다니고 거리에는 사람이 넘친다. 또 중국은 위생 관념에 있어서 아직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하다. 그래서 신종 감염병은 대체로 중화권 대도시와 연관이 있다.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9.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처음 보고된 것이며, 전염력과 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밝혀진 바가 없어 대처가 어렵기도 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초기에 폐렴으로 이행하며 악화가 빠르고 환자들이 초반에 사망한다. 기본적으로 다방면에서 강도 높은 대처가 필요하다.
10. 보통 바이러스는 몸에 들어가면 잠복기를 거친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지만, 대체로 잠복해서 조용하게 머문다. 2~3일에서 최장 2주 정도다. 이때는 대체로 전염 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다가 증식기가 찾아온다. 바이러스는 개체 수를 늘리면서 숙주의 몸을 공격한다. 이 때 바이러스 역가가 높아져 인체의 분비물은 감염성을 띠고 증상이 발현한다. 이 증상이 발열, 인후통, 무기력이다. 특히 발열은 이번에도 거의 모든 환자에게서 관찰되었다. 그래서 전염성을 발열로 체크하는 방법은 완벽하지 않지만 가장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11. 하지만 중국 당국에서는 잠복기에도 전염성이 있다고 밝혔다. 병원성이 높았던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인 사스(SARS)와 메르스(MERS) 때에도 잠복기에 전염성이 없었다. 그렇다면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라 방역에서는 매우 곤혹스럽다. 중국의 강도 높은 방역 대책에도 병이 번져가는 것을 보면 실제 어느 정도는 잠복기 전염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방역 단계를 높일 필요가 있고, 얼마나 감염성이 높을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이는 매우 주목해야 할 문제다.
12. 이 밖에도 사람들을 두렵게, 방역 당국을 골치 아프게 하는 존재는 무증상 감염자와 슈퍼전파자다. 무증상 감염자는 바이러스가 증식기에 있어 병원성이 충분하지만 증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슈퍼전파자는 병원성이 강해 많은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사람이다.
13. 무증상 감염자는 사실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 바이러스가 증식해 인체를 공격하지만 전혀 증상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슈퍼전파자일 확률도 높지 않은게, 대체로 슈퍼전파자의 증상은 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유행에서 ‘전염성이 있는 잠복기 환자’와 ‘슈퍼 전파자’는 출연했고, ‘무증상 감염자’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전염성이 있는 잠복기 환자’나 ‘무증상 감염자’는 흔하게 발견되는 경우는 아니다.
14. 진료실에 찾아온 환자가 어떠한 특이 접촉도 없었지만 자신은 안전하냐고 물을 경우, 이들의 존재 때문에 100%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존재는 늘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며, 입증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소문이 나돌기 딱 좋다. 그럼에도 다시 말하지만, 이들은 ‘아직까지’는 흔하게 발견되지 않는다. 보편적인 보건 수칙을 지킨다면, 이들 때문에 감염될 확률은 ‘아직까지’ 낮다.
15. 감염이 확인된 사람과 접촉한 사람은, ‘무증상 감염자’이거나 ‘전염성이 있는 잠복기 환자’일 수 있으므로 일단 격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증상이 있기 전까지는 병원보다 자가 격리가 여러모로 나으므로, 집에서 능동 감시를 하게 된다. 접촉이 확실하지 않지만 불안하다면, 집에서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이 주 정도 자가 격리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서는 증상이 없을 경우 병원에 찾아가도 의사가 해줄 것이 없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증상이 없거나 감염자와 접촉이 없는 경우 병원에 무조건 찾아가는 일은 여러모로 역효과일 수 있다.
16. 감염 경로는 일반적인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감염자의 분비물이 타인에게 들어가는 기전이다. 여기서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 넣는 것이 공기 전염인데, 아무 죄 없이 길을 걷다가 걸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인체에게서 나온 분비물 속의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떠서 감염에 충분할 정도의 역가를 잃지 않고 살아남다가 행인의 호흡기로 들어갈 정도로 강력해야 하는데, 어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도 이 정도로 질기기는 어렵다.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공기 전염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17. 일반적으로 감염자와 충분한 거리를 둔다면 전염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비말 속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살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는 음압(Negative pressure) 격리실을 사용한다. 방에서 바깥의 공기를 빨아들이므로 안쪽의 공기가 바깥으로 확산되지 않는다. 이 격리실에 들어가서 의료진의 치료를 받으면 더 이상 퍼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는 현재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조금 두고 봐야 한다.
18. 일반적인 예방법은 늘 똑같다. 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감기 증상이 있는 사람과는 밀접한 접촉을 피하고(너무 당연하다), 사람 많이 모인 곳에 가지 않고, 손을 잘 씻으며, 마스크를 쓰고, 기침을 소매에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만연하고 있다면 사람이 많은 곳의 감염 확률은 수학적으로 수백 배가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손 씻기다. 손은 대부분 전염병의 매개다. 보통 사람의 비말이 직접 얼굴에 튀는 일보다는, 그 비말이 어딘가에 묻었는데 손으로 만져서 몸으로 들어올 확률이 더 높다. 비누로 흐르는 물에 손을 씻으면 균은 거의 다 날아간다. 적어도 감염을 일으키기에 균의 역가가 부족해진다. 마스크는 감염자의 비말이 날아가지 않거나, 공기 중의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기침을 소매에 하는 이유는, 분비물을 공기 중이나 손, 벽에 뿌리는 것보다는 소매가 타인에게 감염될 확률이 가장 적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들만 엄격히 지킨다면 바이러스는 사멸의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19. 우리는 항상 많은 세균과 바이러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은 몸의 면역계가 알아서 물리친다. 면역력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의사도 있고 싫어하는 의사도 있는데 나는 후자다. 어떤 수치로 계량화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상 컨디션이 나쁘고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감기에 잘 걸린다. 잡균이나 바이러스를 초반에 못 물리쳐서 그들이 증식기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개념이 면역력이라고 한다면 일종의 면역력일 수 있다. 그래서 바이러스가 유행할수록 컨디션 관리가 중요하다. 본인이 ‘컨디션이 좋다’라고 느끼면 그만큼 더 좋은 지표가 없다.
20. 건조한 환경에는 바이러스가 증식을 잘 한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하고 건조한 환경을 피해야 한다.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물은 몸이 덥히거나 식히지 않아도 되어 몸에 무리가 안 간다. 게다가 구강과 인후를 씻어낼 수 있다. 수분이 많아지면 균의 역가가 낮아지는 효과도 있다. 병원 수액의 99% 이상은 그냥 물이다. 배가 조금 부르다 싶을 정도로 미지근한 물을 많이 마시자. 육안으로 깔끔한 곳에는 실제로도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덜 산다. 청결한 환경은 언제나 중요하다. 18, 19, 20번만 지키면 건강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무탈하다.
21. ‘치료제가 없다’는 말은 거의 모든 바이러스성 감기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를 굳이 공포의 의미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플루엔자는 그나마 변이가 적어 예방주사라도 만들 수 있지만, 코로나는 변이가 빠르고 많아 백신을 만들기 어렵다. 현재 치료로 각종 항바이러스 제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고 역가를 낮춰 증상을 경감시킨다는 결과가 보고되어 보편적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바이러스를 적극적으로 사멸시킨다는 증거는 아직 없어, 일반적인 ‘치료제’로 부르기는 조금 어렵다. 어쨌든 치료제가 없다는 말은 이번 경우가 특수하다는 뜻이 아니다. 원래 그렇다.
22. 중국인의 입국 금지는 정말 최후의 수단일 수밖에 없다. 국제법, 정치, 외교, 경제적 문제도 있지만, WHO에서도 감염 방지로 권고하는 방법이 아니다. 밀입국시 경로를 파악할 수 없어 전염병이 번질 경우 더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최악을 대비하는 일은 필요할 수 있다.
23. 북한은 외국인의 입국 금지를 선언했다. 세계 유일이다. 이번 기회에 북한의 국제법에 대한 시선, 전염병이 돌면 연쇄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낙후된 의료 환경, 경제 규모가 어차피 너무 작아서 무역을 일시적으로 닫아도 큰 타격이 없다는 판단, 등이 담긴 북한 당국의 결정을 볼 수 있다.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24. 국내에서 감염자가 생긴 지역이나 병원을 기피하는 일은 현재 과학적으로 굳이 필요하지 않다. 감염자는 증상이 없었고 그가 균을 전파했을 확률은 사실상 낮다. 그리고 그동안 국내 전염병 체계는 진일보했다. 담당자에게는 가혹할 정도였다. 특정 감염병이 의심되는 사람은 병원에 자유롭게 들어가지도 못한다. 응급실 정문에서 다른 경로로 격리실로 이동해서, 병실까지의 모든 동선이 철저히 격리되어 치료받는다. 몇 번의 감염병 이후 의료계에서 중점적으로 준비해둔 사업이다. 그 사이에 엄격한 기준을 맞추느라 전국 응급실이 구조를 뜯어고쳤다. 그래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의료인으로 약간 서운하다.
25. 나는 공포가 사람들을 얼마나 격렬하게 비이성적으로 변화시키는지 너무 많이 보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공포심은 이미 너무 많은 인류의 목숨을 살렸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말한다. 한국에서는 교통사고로도 매일 열 명이 죽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한국에서 지금까지 세 명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한 명이 중국인이고, 두 명은 한국인인데, 모두 우한에 직접 있었고, 아직은 다들 괜찮다. 이성적으로 최대한의 예방 조치를 취했다면 더 이상의 공포심을 갖는 것은 본인과 주변인을 괴롭게 할 뿐이다. 대신 사태를 잘 지켜보자.
26.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고비는 많은 학자들이 이번 주까지로 보고 있다. 그전 비슷한 변종 바이러스의 생애 주기가 그랬다. 이후 방역과 바이러스 자체의 한계로 감염자가 줄어든다면, 다른 바이러스처럼 사멸 과정을 밟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감염자와 사망자가 계속 늘어난다면 이 바이러스는 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고, 또,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27. 중국은 이번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적당히 무마하려는 특유의 자세를 취했지만, 지금은 국제사회에 알리고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논문도 공유하고 있다. 사실 중국의 입장에서 그냥 넘어갈 문제도 아니고, 이제 그 정도 수준의 국가도 아니다. 노파심에 덧붙이지만, 이번 일로 인한 제노포비아는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28. 사실 이 긴 글은 중국 당국의 대처를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나는 지금 병원 휴가를 내고 중국 신장 위구르에 세계테마기행 촬영을 와 있다. (하필 지금이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이곳은 발원지인 우한과 3000킬로미터 떨어져 있고(서울보다도 훨씬 멀다) 남한보다 열여섯 배 넓은 땅에 인구 2500만 명이 산다. 그런데 며칠 전 우한에서 친구를 만나고 온 감염자 한 명이 들어온 이후 지금은 4명의 감염자가 확인되었다. (실시간으로 중국 전역에 발표된다) 덕분에 1급 위험 지역 발동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외국인 이동도 어려운데, 전신 방역복을 입고 체온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득시글거린다. 체온이 높으면 도시 간 이동도 불가능하고 건물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가능한 다 폐쇄했고, 주요 호텔도 당국이 그냥 문을 닫아버렸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은 길에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대처다. 어제 한 도시에 가서 외국인 등록을 했는데, 공안이 호텔에 출동해서 괜히 돌아다니지 말라고 권고하고 갔다. 덕분에 나는 오늘 하루 종일 호텔방에 갇혀 글이나 썼다. 일행은 일찍 파키스탄으로 이동해서 남은 촬영을 마치고 돌아갈 예정이다. 그러면 모두가 건강하기를 바란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xinsiders&logNo=221786061682
한국에서는 교통사고로도 매일 열 명이 죽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한국에서 지금까지 세 명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한 명이 중국인이고, 두 명은 한국인인데, 모두 우한에 직접 있었고, 아직은 다들 괜찮다
1.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다. 함께 일을 하는 모든 직원들은 중국인들이고 이 중에는 우한 부근 후베이성 출신도 있다. 상하이 인근 도시 쑤조우가 공식적으로 가장 먼저 2월 8일까지 휴무연장을 결정했다. 우리 회사도 공식적으로는 쑤조우 휴무 일정에 따라갈 것이고 상황에 따라 휴무 기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2. 중국 교육당국에서는 방학기간을 늘렸다. 원래는 춘절 연휴가 끝난 2월 2일부터 정상적인 학기가 시작되는데 2월 18일날 시작한다고 연락이 왔다. 상하이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유민이 뿐만 아니라 홍콩에서 대학을 다니는 유정이까지 여기 해당된다. 유정이는 춘절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내려 상하이에 들어왔다가 당분간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큰 딸 유정이는 쓰촨 대지진에 이어 홍콩 시위를 겪고, 이번에 우한 바이러스까지 트리플 크라운의 고난을 겪는 중이다. 지난 학기에는 홍콩 시위로 2개월 먼저 방학을 했는데, 개강하고 일주일 수업하고 다시 장기 방학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3. 우한 소식은 사실이든 과장이건 가짜이건 한국에 더 많이 퍼지고 있으니 난 상하이 소식만 전할 생각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하이 외곽을 오고 가는 시내버스의 운행이 그제부터 전면 중단되었다. 언제부터 운행이 된다는 정확한 소식은 없다. 지하철 2호선의 운행은 24일부터 중단되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의미하는 바는 직접적인 도로통제까지는 아직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이곳도 고립에 가까운 상황이 된 것이다. 디즈니랜드 영업도 중단되었고,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각종 장소들도 대부분 영업이 중단되었다. 극장들도 영업이 중단된 곳이 제법 있을 것이다. 완다에서 춘절을 맞이한 대작 개봉을 앞두고 “마스크를 쓰고 영화를 보면 된다”는 멍청한 소리를 했다가 폭풍까임을 당하고 주가는 박살났으며 영화개봉도 취소가 된 일도 있었다. 한 마디로 지금 상하이의 모습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타의와 자의가 반반 섞인 상황이다.
4. 이런 상황은 사실상 춘절 연휴가 시작된 지난주부터의 상황인데 내가 그 동안 집에 갖혀 있으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호들갑을 떨기 싫어서였다. (재수없다고 여길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제는 내 글이 제법 많은 구독자가 있고, 파급력이 있어 이런 내용들을 쓰면 언론이 ‘중국 우한폐렴으로 인한 상황의 심각성’을 미리부터 과장해 가면서 '트레픽 장사'를 하는 빌미를 만들어 주기 싫어서 이런 내용들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와서 굳이 이런 내용들을 쓰는 이유는 역시 언론과 자유한국당 그리고 관심종자들의 공포와 혐오의 마케팅을 하는 꼴이 보기 싫고, 또 일정 부분 반박을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 안에 있으니 밖에서 신이 나서 떠드는 사람들보다 '좀 더 말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5. 일단 재수없는 민경욱 이야기부터 하자. 박근혜 청와대의 대변인 시절 세월호 브리핑을 하면서 처 웃던 인면수심의 민경욱은 우한에 있는 한국 교민 500명을 빼 오기 위한 정부의 ‘전세기 파견’ 추진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 500명의 우한 교민이 바이러스를 전이한다는 이유에서이다.
과연 세월호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인데 구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처 웃던 인간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우한에 있는 500명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모든 주권과 인권을 포기하고 삶과 죽음을 그저 운에 맡기라는 것인가?
6. 정상적인 판단력을 갖춘 정치인이라면 정부에서 위험지역에 500명을 수송할 전세기를 파견한다고 하면 수송할 조종사, 승무원들, 의료진들에 대한 안전과 방역 대책 그리고 감염위험이 있는 해당 교민들이 한국에 와서 어떤 과정을 통해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파악하고 전이를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대책을 물어보는 것이 정상 아닌가? 다짜고짜 안된다고 하는 것이 정상적인 머리를 가진 인간일까?
설마, 그 500명을 그냥 일반 여객용 항공기처럼 운송해 와서 그냥 열 체크 한번 하고 집으로 보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 박근혜 정부라면 그럴 수 있겠다. 메르스 때 대응한 모습이 딱 그 정도 레벨이었으니 말이다. 자국민에 대한 보호나 정치인으로서의 말의 무게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하려니 그런 멍청한 말을 생각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디 4월 15일 이후에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7. 지금 야당 정치인들이나 언론들에게 있어 우한 폐렴 바이러스는 일종의 정치적 호재이자 뉴스팔이의 소재로만 인식되는 것 같다. 아, 최대집의 의협도 있구나. (의사님들 제발 그 인간 좀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연일 ‘방역의 구멍이 뚫렸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고,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고 있다. 그런데 걱정이 되어 호들갑을 떨고 질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나서 그러는 것 같다'는 것이 나에게는 짜증을 유발한다. 그들은 일종의 공포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공포스러운 상황이 되면 그런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겨를이 없다. 쓰촨에서 지진을 겪어봐서 안다. 두려움에 떨거나 최대한 냉정하게 안심을 시키지 한국의 야당 정치인들이나 언론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질타하지 않는다.
8. 그런데 진짜 그들의 주장처럼 대한민국 방역시스템에 구멍이 뚫렸고 정부는 무능한 것일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정치적 목적의 호들갑이나 질타도 어느정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진짜 팩트'라는 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두 개의 사건을 비교해 보자. 2015년 메르스가 발병했을 때 5월 20일에 대한민국 첫번째 환자가 발생했다. 이후 6월 20일까지 한달 동안 169명이 감염되었고, 25명이 사망했다. 최종적으로 186명 감염에 39명이 사망했다. 당시 한국의 메르스 감염율은 3위였다.
2019년 12월 30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첫 환자가 한국에 입국했고, 거의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확인된 환자는 오늘 한 명이 확진 추가되어 4명이다. 그 4명 확진자의 동선과 접촉한 주변인들도 현재 보건당국에서는 면밀하게 추적 및 조사중에 있다.
9. 메르스는 중동 사막의 낙타가 숙주라고 알려졌고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큰 발병국가이다. 우한 코로나는 박쥐가 숙주라고 알려졌다. 비행기로 10시간 걸리는 중동에서 발병한 메르스와 바로 이웃 국가 중국에서 발병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중에서 어떤 것이 전이 속도가 빠르겠는가? 또한 사우디와 중국을 비교할 때 인구 수, 영토의 넓이, 한국과의 교역량과 양국을 오가는 유동인구까지 감안하면 방역의 난이도는 비교불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동안의 두 바이러스에 대한 결과를 보면 지금 정부는 대단히 훌륭하게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박수를 보내야 마땅한 것이다. 농담이 아니고 지금 정부를 욕하는 자유한국당이 만약 현재 집권여당이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대재앙에 쌓였을 것이다. 그런 무능한 인간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정부를 욕하고 있다는 것이 뒷골 댕기는 현실이지만 덕분에 무사한 것이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0. 이 공포 마케팅에 이어 또 하나 실망스러운 것은 혐오 마케팅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중국인의 입국을 아예 막아 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현재 41만명이 넘게 동의를 했다. 이는 우리 사회에 혐오마케팅이 잘 통한다는 보여주는 현실이다.
언론에서는 해열제를 먹고 입국심사대를 통과해서 프랑스에 간 중국여성을 보도하면서 혐오와 분노를 조장하고 있고, 일부러 한국에 와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을 가지고 들어온다는 식의 혐오를 유발하는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이 혐오 마케팅이 이렇게 효과적으로 잘 통한다는 것이 청와대 청원을 통해 볼 수 있으니 씁쓸한 일이다.
11. 국제보건규칙(IHR, 2005)에서는 권고조치이기는 하지만 의심환자, 감영자에 대한 입국거부가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입국금지’의 효과가 증명된 사례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입국금지의 조치를 취하면 비정상적인 입국이 많아진다. 이 경우 검역과 추적 등의 보건 관리가 불가능해 지고 오히려 감염이 확산된다는 것이 지난 '에볼라 바이러스' 관련해서 나온 결과이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중국인 입국'을 막으면 더 방역이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중국인 입국금지 같은 극단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국가는 북한 밖에 없다. 이는 북한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또 방역시스템이 워낙 낙후된 북한은 한번 바이러스가 퍼지면 막을 방법이 없으니 그런 극단적인 조치도 고육지책으로 쓸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국가들은 있는가? 최소한 국제법과 국제규약을 준수하고,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국가들을 대상으로 그런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만큼 심각한 상황인지 확인하고 우리도 거기에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합리적 판단 아닐까?
다행히 중국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단체 해외관광을 중지 시켰다. 중국인 개인이 한국비자를 받는 것은 매우 까다로우니 당분간 중국인 관광객은 보기 힘들 것이다.
12. 만약 지난 메르스 사태 때 대한민국 국민들의 해외 입국을 막는다고 하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특히 일본이나 중국에서 우리에게 그랬다면 말이다. 아마 더 큰 혐오가 불 붙었을 것이고 국가간의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중국인 입국금지’ 청원같은 여론이 확산되는 것은 일종의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중국인에 대한 제노포비아가 큰 편이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오늘은 설명을 생략한다.
이러한 중국인에 대한 혐오는 지금은 언론에서 마케팅용으로 자주 써 먹고 있지만 나중에는 정치인들도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베와 같은 일본 극우가 정치적 위기에 몰리면 한국과 북한을 혐오정치의 형태로 이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중에 별도로 한번 이 주제로 포스팅 할 생각이다. 이 부분은 할 말이 많다)
13. 정리하면 지금 우한 폐렴 관련해서 상황은 심각하지만 정부는 잘 대응하고 있다. 낙관론은 금물이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공포와 혐오의 마케팅에 부화뇌동 할 필요도 없다. 국가적 재난을 공포와 혐오의 마케팅으로 이용하는 모든 정치인들과 언론에 대해 강력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
한국에서는 지금 밖으로 외출도 하고,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지 않는가? 이곳 상하이만 하더라도 아예 현관 밖을 나서지도 못하고 있고, 이게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있다. 자유한국당 뿐만 아니라 안철수, 심상정까지도 이 문제로 한 마디씩 하는 것을 보면 정치인들의 욕망의 진원은 어디까지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14.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우울한 현 상황에서 유일한 장점이라면 가족 모두가 한 집안에서 24시간 내내 함께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밥도 같이 먹고, 청소도 같이 하고, 영화도 함께 보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있는 중이다. 다 큰 자식들과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은 분명하니 소중한 가족의 시간으로 받아 들이고 이 시간들을 즐기려고 한다. 누구는 공포와 혐오의 마케팅을 이 재난을 이용하지만 나는 소중한 가족의 시간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이 글을 마무리 하겠다.
https://www.facebook.com/1313887573/posts/10216393746938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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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군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