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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연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에서 1000명대를 넘게 발생하고 있는 절대절명의 순간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 TV방송에서는 코로나 19로 폐기능상실이 찾아와 폐이식수술까지 받은 50대 여성을 인터뷰하고 방송하였습니다. 멕시코 교민이신 이 분은 인터뷰에서 “누구든 코로나19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다. 함께 조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여성분은 “평소 매일 3~4km 이상씩 걷고, 수영도 자주 하고, 기저 질환도 없었다.”며 “코로나19는 남의 일로만 알았는데, 코로나19로 폐 이식을 받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라고 자신의 투병기를 상세히 알려주었습니다. 그가 코로나19의 증세로 폐기능이 상실해서 인공심폐기를 의지하게 된 것은 지난 6월이었고 멕시코에서 서울아산병원으로 긴급이송되어 입원한 것은 지난 8월. 다음 달인 9월 폐기증을 받아 이식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긴급한 순간을 몇 차례 넘기고 호흡훈련, 재활치료를 받고 완쾌되어 지난 12월 8일 퇴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분은 “코로나19는 남녀노소, 연령, 성별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며 자신은 “집안에 신생아가 있어서 외출을 자제했고, 외출하더라도 마스크를 끼고 조심했는데 어떻게 걸렸는지 알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에 걸리는 건 “운”이지만, 걸리게 되면 “너무나 억울해서 ‘정말 내가 왜?’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게 망가지고 짧은 시간 안에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분을 치료했던 서울아산병원은 실제 이 분이 코로나19 확진 3일 만에 폐렴이 악화돼 인공호흡기를 적용하고 패혈성 쇼크도 진단을 받았으며 코로나19 후유증으로 폐섬유증까지 발생해 폐 기능을 거의 잃었었다고 방송에서 알려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작스럽게 황당하고 암담한 현실이 찾아올까요? 지금 우리는 이 일을 들으면서 남 일 같지 않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도 지금 코로나19가 언제 우리에게 찾아올지 몰라 조심하며 대비하며 항상 마스크와 손소독제등을 이용하며 외출을 자제하며 거의 모든 모임을 금지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암담한 현실속에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며 누구의 말을 믿으며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재앙의 시대, 암흑과 같은 절망의 시대가 찾아온 이스라엘에게 미가선지자는 우리가 믿고 의지할 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할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암담한 현실속에서 제대로 의지할 곳을 찾아 참 평안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들은 첫째로, 이웃과 주변의 친구를 찾습니다.
미가 7장 5절입니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우리가 힘든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뭔가 도움을 줄 사람들을 찾아다닙니다. 내 힘으로 뭔가를 해결하기 힘든 상태에서 두 번째로 택하는 방법은 내 주위에 도움을 줄 사람들을 찾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만족할 만한 인생을 위하여 끝없는 수고를 합니다. 그 만족할만한 인생의 기준이 주위에 사람이 많은 것, 환경이 풍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찾고 환경을 찾습니다. 사람을 통해 기쁨을 얻으려하고 환경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인간의 욕구를 다 충족시켜 줄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환경도 인간을 만족하게 해줄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지만 예레미야 9장 4절에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9장 4절입니다.
“너희는 각기 이웃을 조심하며 어떤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완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라”
오늘 말씀속에서 이웃과 친구의 범주안에 마음과 정을 통한 여인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남이었지만 마음이 통하게 되고 함께 서로 생활을 함께 하며 정을 나누게 되면 우리는 이웃이라고 할지라도 가족과 같은 상태가 되고 친구라고 할지라도 가족같은 친구, 형제같은 친구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래는 남이었지만 마음을 함께 하며 정을 통하게 된 여인은 정말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원래는 남이었고 전혀 상관이 없는 상태의 사람들이 바로 이웃이고 친구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배우자, 동거인, 애인등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고 하겠습니까? 정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되지만 어떤 경우는 정말 ‘남’보다도 못한 무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이웃, 친구, 애인, 배우자가 될 수도 있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쩌면 영적인 측면에서 서로 조심해야 합니다. 영적인 죄악이 이들을 통해 들어올 수도 있고 나로 인해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의 죄악도 한 사람의 죄악이 상대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삼손과 들릴라의 기록에서도 보십시오. 삼손은 들릴라를 믿고 자신의 약점을 이야기해줬지만 결국은 들릴라로 인해 개인의 멸망, 민족의 멸망이 찾아오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사사기 16장 17절입니다.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12월 7일 ‘크리스틴 팡’이라는 중국국적의 중국인 여성이 미국에서 연방 하원의원을 포함한 유력 정치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스파이 활동을 했었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었던 2011년부터 5년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지역 유력 정치인들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벌였는데, 팡이라는 여인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대학에 등록해, 대학 중국 유학생협회 회장을 맡아 중국유학생 대표라는 직함으로 미국의 정치거물들에게 접근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은 중국인 집단거주지가 있고 중국인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큰 곳이라 유학생협회 회장이라는 경력은 미국 정치인들에게 대단히 접근하기 좋은 미끼였습니다. 팡이라는 스파이는 캘리포니아 지역 정치인들이었으며, 주로 선거 자금 모금에 도움을 주거나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 혹은 육체관계까지 맺는 방식으로 정치인들에게 접근한 뒤 정보를 빼냈습니다. 이런 인맥으로 미국의 시장 회의에도 참석했는데 어느 시장들의 모임에서 중서부의 한 도시 시장은 팡을 ‘여자 친구’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하이오주의 한 시장과는 자동차에서 성관계를 가진 사실을 FBI가 확인했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팡이 수집한 정보 중에는 정부 관료들의 습관, 기호, 스케줄, 사회관계, 사생활과 관련한 루머까지 각종 내밀한 정보들이 수집했습니다.
팡의 공략 대상이 된 미국 민주당 소속 연방 현직 하원의원은 팡이 적극적으로 선거자금 모금활동을 도왔고 하원의원사무실 인턴 직원을 채용에도 관여했습니다. 그러다 미국 FBI가 혐의를 포착하고 비밀리에 조사중인 상황에서 갑자기 미국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 소식통은 “팡은 수많은 요원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전했습니다.
오늘 말씀 성경본문에서 미가선지자는 주위에 있는 이웃, 친구, 연인등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지만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들 수 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웃을 믿지 말고 친구를 의지하지 말고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너의 입을 다 물으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삼손이 들릴라에게 끝까지 조심해야했던 것이 바로 자신의 약점을 말하지 말아야했는데 미인계에 속아 애교부리며 앙탈부리는 여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엄청난 능력을 소멸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특히 아무리 좋아 보이는 사람, 아무리 친하게 잘 대해주는 이웃, 아무리 예쁘고 아름다워 보이는 여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과의 소통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영적인 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사람, 가치관, 세계관에 있어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다 해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 친구, 연인이라고 할지라도 마음까지 보여주며 속깊은 비밀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해야하는 것입니다.
에스라 10장 10~11절입니다.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사실은 세상에서 우리의 편에서 항상 우리를 위해서만 생각해주며 우리에게 도움을 줄 믿을 사람이 있을거라는 생각은 우리가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웃도, 친구도, 함께 누운 배우자도 우리의 편이 될 것 같지만 자기 입장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어려운 형편에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찾아 다니실텐데 인간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정말 우리에게 이런 도움을 줄 귀한 이웃, 귀한 친구, 귀한 배우자가 있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들은 둘째로, 혈육과 가족을 찾습니다.
미가 7장 6절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의 혈육을 먼저 찾을 듯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일단 친구나 한 단계 떨어져있는 이웃들을 먼저 찾은 다음에 가족을 찾습니다. 왜 그럴까봤더니 가족에게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부끄럽고 손벌리고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업상, 업무상, 일상생활의 관계속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보고 정 안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가족에게 혹시 도와줄 수 있냐는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이웃이나 친구, 배우자보다 피를 통해서 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 집안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가족들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이웃이나 주변에 친한 사람들부터 찾아봤지만 결국은 혈육인 부모와 형제가 나를 더 생각해줄 것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사실 혈육인 부모도 형제도 인생이기에 그들도 자신의 살 길을 보면서 우리를 대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도 보십시오. 요셉을 팔아넘긴 형제들을 보세요. 자신이 부모에게 대접받지 못하고 형제중 한 명에게 애정을 쏟는 부모를 보면서 형제들은 동생을 죽이려고 했다가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최근에 뉴스에 등장하는 영아살인사건과 어린 아이를 유기하는 부모들을 보십시오. 배아프게 낳은 자식, 그래도 10달동안 배속에 품은 엄마라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해서 자기 살 길, 자기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해서 결국은 폐기하게 된 ‘낙태죄’에 대해 정부가 뭐라고 말합니까? 아기의 생명존엄성보다 부모의 의지속에서 부모의 행복추구권을 더 강조하다보니 낙태죄가 없어지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 것 아닙니까?
마가복음 13장 12절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부모이니까 자녀들을 위해 뭐든 다 하겠지? 형제이니까 다른 이웃이나 친구들보다 더 잘 챙겨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일 수 있습니다.
부모이니까 형제이니까 그래도 내편이겠지? 아닙니다. 세상의 인간이란 존재는 인지상정이 있고 천륜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인간같지 않은 인간들이 내 가족중에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가족중이라도 절대 그냥 돈을 주면 줬지.. 돈거래하듯 내가 부모, 형제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돈을 되돌려 받으려는 생각을 했는데 받지 못해서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경우를 우리도 틀림없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혈육도 마음이 멀어지고 관계를 등한히 하면서 서로 좋지 못한 사이가 되면 동네이웃보다도 못하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혈육이 남보다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그런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는 정말 혈육이라고 말하는 것이 싫을 정도로 무서운 가족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미가 7장 6절에서 미가선지자는 재앙의 때, 멸망의 때 우리가 부모님을 찾고 형제를 찾고 자녀들을 찾지만 결국 이 사람들이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심지어는 오히려 대적하며 멸망길로 인도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가족들에게 어떤 존재로 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또한 우리의 가족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로 우리의 어려움속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도와주고 협력하며 함께 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본성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가족도 절대 우리를 구원해주는 일, 어려움속에서 완전히 살려낼 수 있는 존재가 될 수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가족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줄 때 정말 좋은 일만 생기길 바랍니다. 하지만, 영적인 부분속에서 어떤 경우에는 함께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고 결국은 구원의 문제는 개인이 경험할 것이기에 함께 지옥을 향하는 일이 없도록 가족들이라고 할지라도 영적인 대적이 될 때는 과감히 멀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들은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미가 7장 7절입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우리는 어려움이 생길 때 이 사람, 저 사람 나와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고 어떻게든 해결해보려는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우리에게 당면한 이 큰 어려움, 재앙같은 상황... 어떻게 해결하기 힘든 일을 만날 때 우리가 찾아야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모스 5장 4~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구원을 찾아 벧엘도 가지말고 길갈도 가지말고 브엘세바로 가지도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벧엘은 지금은 ‘베이틴’으로 불리는 곳인데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들어온 아브라함은 벧엘 동편 산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았던 곳입니다. 또한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으로 도망가던 야곱이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그곳 이름을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 칭하면서 이름이 생긴 곳입니다. 나중에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이곳에 와서 제단을 쌓고 ‘엘벧엘’이라 불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곳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특별하게 여기며 하나님께 제사하는 영적인 신령한 곳으로 여긴 장소입니다. 마치 한국의 무속신앙을 따르는 사람들이 계룡산에서 도를 닦고 특별한 영험을 맛본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에게 있어 마치 계룡산같은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구심점 역할을 한 곳이었습니다. 성전이 세워지기 전 이곳에 하나님의 법궤가 위치해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가적인 위기에 하나님의 뜻을 묻을 때에 이곳에 올라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던 곳이었기에 이스라엘이 남 유다,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을 때 북쪽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이곳에 금송아지를 세워 섬기게 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게 하였고 북이스라엘의 제일 큰 성소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런 배경으로 인해 우상숭배의 장소로 취급받았고 멸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곳, 영적인 특별한 은혜를 경험했던 곳이라고 생각하며 찾아갔지만 그 곳에 찾아가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벧엘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길갈을 찾아가는 이스라엘도 책망하셨습니다. 길갈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왕국이 세워지던 당시에 매우 중요한 정치, 군사, 종교적인 중심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넌 후 이곳에 진을 쳤고 요단에서 가져온 12개의 돌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길갈은 ‘굴러갔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애굽의 수치를 이스라엘로부터 물러가게 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땅을 지키는 핵심요새이며 가나안 정복의 전초기지가 되었기에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땅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곳에서 할례를 받고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것을 이곳에서 진행하기도 했으며 이스라엘의 지도자중 최초로 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사울이 왕위를 받은 곳이 이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뭔가 역사적인 어려움속에서 과거의 찬란했던 역사를 기념할 때 길갈을 기억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이 생길 때 과거의 위대했던 왕조를 기억하고 특별한 왕을 기억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중국에 넘어가 있는 만주땅 발해지역을 기억하면서 광개토대왕, 장수왕같은 고구려의 역사가 찬란하게 이어져서 고구려가 삼국통일했으면 어떠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대마도를 복속했던 조선초기를 생각하며 대마도는 일본땅이 아니라 원래는 우리 땅이야 등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가 아닌 우리가 경험한 위대한 역사를 생각하며 위대한 왕, 위대한 지도자를 기념하는 것이 바로 길갈로 향하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을 겪을 때 브엘세바을 찾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브엘세바가 어떤 곳일까요? 이곳은 이스라엘 영토의 남방 한계선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스라엘 남쪽 네게브사막지역에 있는 국경 행정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이 곳은 사막대상무역이 발달하고 지중해쪽이 아닌 남쪽 홍해를 통해 아프리카지역과도 무역을 할 수 있는 무역의 최적지였습니다. 반면 외국문물이 쉽게 들어오는 곳이었던 만큼 다른 민족의 종교와 혼합된 신앙생활을 했던 지역 사람들을 많이 보게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모스선지자는 브엘세바를 찾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벧엘, 길갈, 브엘세바 이 세 곳을 특별한 지역으로 보며 민족주의와 번영주의를 바탕으로 역사적 의미를 찾을 때 이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 벧엘은 종교의식, 길갈은 행정과 인사, 브엘세바는 재물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국가적인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지도자들이 이 세 지역을 찾아가 특별한 예식을 거행하는 것이 관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절대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런 행위를 미워하시고 진노하셨습니다.
아모스 5장 8절입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모든 환경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변화시키시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갈 때 우리는 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믿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 우리 민족, 우리 지역과 사회, 우리 한국교회가 당면한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상황속에서 전 세계가 동일하게 겪는 재앙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 대한민국, 우리 민족, 우리 사회, 우리 한국교회는 또 특별한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나라의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을 무슨 해결책을 찾아서 국민들에게 좋은 결과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성도들도 정말 어떻게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될지 고민하며 어떻게 해야할지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분들은 정말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지 사람들을 찾아갈 것입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를 구해야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한 연구소와 제약회사를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할 것입니다. 지금 언론을 보면 한국정부가 4천만회분의 백신을 계약했느니 계약하지 않고 접촉중이라느라고 하며 백신을 확보했는 지 아직 확보하지 못했는 지를 다투며 분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코로나19의 재앙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누구를 찾아야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할 때 찾는 순서를 보면 이웃을 먼저 찾고 그 다음 가족, 혈육을 찾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알아야할 사실은 순서가 반대로 되어야 우리는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을 찾고 환경을 찾고 어떤 인간적 해결책을 찾는 것을 먼저 하지 말고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먼저 찾아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결책을 알려주시기를 기도해야합니다. 내가 아무리 해결하려고 해도 되지 않을 일이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셔야 해결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해결되겠지라고 했던 일도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정말 우리를 이 환란가운데 건져내실 분이 분명히 깨닫고 정말 우리를 건져낼 수 있는 분 이 세상의 창조주, 이 세상의 주관자 여호와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성령님을 찾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