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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본선경연대회 (시제 30편) 6월1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목차
1.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 나태주
2.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 나태주
3.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4. 어머니의 그륵 / 정일근
5. 정동진 / 정호승
6. 혼혈아에게 / 정호승
7. 어느 별에서 왔는지 / 한석산
8. 독도별곡 / 한석산
9.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 도종환
10. 목 백일홍 / 도종환
11.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이기철
12. 생의 노래 / 이기철
13. 내가 바라는 세상 / 이기철
14. 폭포 / 이형기
15. 서한체 / 박두진 송찬호 /이슬 변경
16.가을 / 송찬호
17.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송찬호
18. 곰 메 바위 아리랑!/ 신승희
19. 어머니의 강 / 신승희
20. 시래기 국 / 황송문
21.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22. 모닥불 / 안도현
23.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24. 갈보리의 노래 2 / 박두진
25. 남사당 / 노천명
26. 추풍에 부치는 노래 / 노천명
27. 승무(僧舞) / 조지훈
28. 별리別離 / 조지훈
29. 이슬의 눈 / 마종기
30. 편복蝙蝠 이육사 마종기 /섬: 변경
1.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 나태주
온종일 창가에 서서
네 생각 하나로 날이 저문다.
물오르는 나무들
초록 불 활활 타오르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또한 활활 타오르는 나무
나무라 치자.
가슴속에 눈빛에 팔과 다리에
푸우런 물빛 물드는 한 그루 나무라 치자
라일락 꽃, 시계풀꽃, 꽃내음에 홀려 창문 열면
오월의 부신 햇살, 싱그런 바람,
왠지, 나는 부끄러워라.
내가 너를 생각하는 이 마음을 네가 알 것만 같아
혼자 서 있는 나를 네가 어디선 듯
숨어서 가만히 보며 웃고 있을 것만 같아서.........
만나자 마자 우리는 헤어질 슬픔을 두려워했고
헤어지자마자 우리는
오래 기다려야 할 괴로움을 또한 두려워했다.
너 보고픈 날은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바람에 날린다.
먼지가 바람에 날린다.
너 보고픈 생각 때문에
바람은 불고 산은 푸르고 햇빛은 밝고
하늘 또한 끝없이 높다 해 두자.
먼지 또한 날린다 해 두자.
너 보고픈 날은 창문을 닫고
안으로 고리를 잠그기도 한다.
2.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 나태주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사랑한다는 말
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
사랑한다는 그 말끝까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
모진 마음 내게 있어도
모진 말
차마 못하고 삽니다.
나도 모진 말 남들한테 들으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 때문
외롭고 슬픈 마음 내게 있어도
외롭고 슬프다는 말
차마 하지 못 하고 삽니다.
외롭고 슬픈 말 남들한테 들으면
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지기 때문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 삽니다.
모진 마음을 달래며 삽니다.
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
3.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 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4. 어머니의 그륵 /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5. 정동진 / 정호승
밤을 다하여 우리가 태백을 넘어온 까닭은 무엇인가
밤을 다하여 우리가 새벽에 닿은 까닭은 무엇인가
수평선 너머로 우리가 타고 온 기차를 떠나보내고
우리는 각자 가슴을 맞대고 새벽 바다를 바라본다
해가 떠오른다
해는 바다 위로 막 떠오르는 순간에는 바라볼 수 있어도
성큼 떠오르고 나면 눈부셔 바라볼 수가 없다
그렇다
우리가 누가 누구의 해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서로의 햇살이 될 수 있을 뿐
우리는 다만 서로의 파도가 될 수 있을 뿐
누가 누구의 바다가 될 수 있겠는가
바다에 빠진 기차가 다시 일어나 해안선과 나란히 달린다
우리가 지금 다정하게 철길 옆 해변가로 팔짱을 끼고 걷는다 해도
언제까지 함께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겠는가
동해를 향해 서 있는 저 소나무를 보라
바다에 한쪽 어깨를 지친 듯이 내어준 저 소나무의 마음을 보라
네가 한때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기대었던
내 어깨처럼 편안하지 않은가
또다시 해변을 따라 길게 뻗어 나간 저 철길을 보라
기차가 밤을 다하여 평생을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 평행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 굳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
평행을 이루어 우리의 기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기차를 떠나보내고 정동진은 늘 혼자 남는다
우리를 떠나보내고 정동진은 울지 않는다
수평선 너머로 손수건을 흔드는 정동진의 붉은 새벽 바다
어여뻐라 너는 어느새 파도에 젖은 햇살이 되어 있구나
오늘은 착한 갈매기 한 마리가 너를 사랑하기를
6. 혼혈아에게 / 정호승
너의 고향은 아가야
아메리카가 아니다
네 아버지가 매섭게 총을 겨누고
어머니를 쓰러뜨리든 질겁하든 수수밭이다
찢어진 옷고름만 홀로 남아 흐느끼던 논둑길이다
지뢰들이 숨죽이며 숨어 있던 모래밭
탱크가 지나간 날의 흙구덩이 속이다
울지 마라 아가야 울지 마라 아가야
누가 너더러
우리의 동족이 아니라고 그러더냐?
자유를 위하여 이다지도 이렇게
울지도 피 흘리지도 않은 자들이
아가야 너의 동족이 아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이 아름답다고
고궁을 나오면서 손짓하는 저 사람들이
아가야 너의 동족이 아니다
초승달 움켜쥐고 키 큰 병사들이
병든 네 엄마 방을 찾아올 때마다
너의 손을 이끌고 강가로 나가시던 할머니에게
너는 이제 더 이상
묻지 마라 아가야
그리울 수 없는 네 아버지의 모습을
꼭 돌아온다던 네 아버지의 거짓말을
묻지 마라 아가야
전쟁은 가고
나룻배에 피난민을 실어 나르던
그 늙은 뱃사공은 어디 갔을까
학도병 따라가던 가랑잎같이
떠나려는 아가야 우리들의 아가야
너의 조국은 아프리카가 아니다
적삼 댕기 흔들리던 철조망 너머로
치솟아 오르던 종다리의 품속이다.
7. 어느 별에서 왔는지 / 한석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많이 아픈 일이다
뼈저리게 아픈 기억 있지만
누구나 가슴에 별 하나쯤은 있다
추워야 더 반짝이는 밤하늘에 별처럼
그 아픔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사랑이더라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아름답다
사랑은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운
어느 별에서 왔는지
사랑이란 이름으로 안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느 사랑은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지만
세상 살아가는 일은 모두가 사랑이더라
사랑이 떠난 미움도 사랑이더라
이슬 받아먹으며 향기를 나누는 꽃처럼
사랑도 갈래가 있나
길가에 풀꽃 난 왜 너만 보면 눈물이 나지
너도 이제 꽃 피는 거야
어떤 사랑이든
꽃마다 피는 사연이 참 붉다
시절이 아프다 많이
바람에 피가 섞였나 보다, 가슴에 꽃이 핀다.
8. 독도별곡 / 한석산
백두와 한라의 혼과 피를 물려받아 오랜 잉태 속에서
해 돋는 우리 땅 독도 대한의 영혼
피 말리는 자식 같은 저 뜨거운 화산섬
단 하루도 안부를 궁금하게 여기지 않은 날 있더냐.
밤새 배고픔에 골골거리던 갈매기
흙도 없는 비탈진 바위틈새
땅 채송화 해국 번행초 독도를 이뤄가는 작은 것들
진정한 조선의 어부 안용복
돌섬 지키려고 목숨 내걸고 살고자 했던 홍순칠
독도 맨 처음 주민 최종덕 민초들이 지킨
내 심장과도 같은 내 나라 내 땅
애국 혼이 살아 꿈틀거리며 한민족의 맥을 이어
지난 1500년간 우리 고유 언어로 섞어 불리는 독도
애초에 한국령 삼봉도(三峰島) 우산도(于山島)
가지도(可支島) 요도(蓼島) 독도(獨島) 일제 강점기
40년 한 맺힌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땅
자연 속에 우리 또한 더불어 사는 건데
가슴팍 어느 한 곳 성한 데 없어라
그 멍든 속이 짠하게 보이는 빗금 친 우리의 영해
시커먼 속 알 수 없는 멀고도 가까운 이웃 나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금줄 넘어 노략질하던
야수의 피 묻은 이빨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왜국
좀 더 가까워질 수 없는 이웃이어서 더 가슴 아프다
참 많이 아픈 내 사랑
버짐 핀 어린 날 낯선 만행에 치를 떨던 단발머리 소녀
지금도 분에 겨워 울부짖는 수요 집회 소리 들리지 않느냐
하늘은 스스로 망하고자 하는 자를 벌 한다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너희들 모국어로 독도를 독도라 불러라
천년을 흘러도 독도는 독도다 독도는 독도다
9.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 도종환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자연의 하나처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서둘러 고독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기다림으로 채워간다는 것입니다.
비어 있어야 비로소 가득해지는 사랑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몸 한쪽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아
골짝을 빠지는 산 울음소리로
평생을 떠돌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흙에 묻고
돌아보는 이 땅 위에
그림자 하나 남지 않고 말았을 때
바람 한 줄기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사는 동안 모두 크고 작은 사랑의 아픔으로
절망하고 뉘우치고 원망하고 돌아서지만
사랑은 다시 믿음, 다시 참음, 다시 기다림
다시 비워두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찢긴 가슴은
사랑이 아니고는 아물지 않지만
사랑으로 잃은 것들은
사랑이 아니고는 찾아지지 않지만
사랑으로 떠나간 것들은
사랑이 아니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비우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큰 사랑의 그 속에 들 수 있습니까
한 개의 희고 깨끗한 그릇으로 비어 있지 않고야
어떻게 거듭거듭 가득 채울 수 있습니까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다시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10. 목 백일홍 / 도종환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 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 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 백일홍 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11.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이기철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껴입을수록 추워지는 것은 시간과 세월뿐이다
돌의 냉혹, 바람의 칼날, 그것이 삶의 내용이거니
생의 질량 속에 발을 담그면
몸 전체가 잠기는 이 숨 막힘
설탕 한 숟갈의 회유에도 글썽이는 날은
이미 내가 냉혹 앞에 무릎 꿇은 날이다
슬픔이 언제 신음 소릴 낸 적 있었던가.
목조계단처럼 쿵쿵거리는, 이미 내 친구가 된 고통들
그러나 결코 위기가 우리를 패망시키지는 못한다.
내려칠수록 날카로워지는 대장간의 쇠처럼
매질은 따가울수록 생을 단련시키는 채찍이 된다.
이것은 결코 수식이 아니니
고통이 끼니라고 말하는 나를 욕하지 말라
누군들 근심의 힘으로 밥 먹고
수심의 디딤돌을 딛고 생을 건너간다.
아무도 보료 위에 누워 위기를 말하지 말라
위기의 삶만이 꽃피는 삶이므로
12. 생의 노래 / 이기철
움 돋는 나무들은 나를 황홀하게 한다
흙 속에서 초록이 돋아나는 걸 보면 경건해진다
삭은 처마 아래 시집갈 처녀가 신부의 꿈을 꾸고
녹슨 대문 안에 햇빛처럼 밝은 아이가 잠에서 깨어난다.
사람의 이름과 함께 생애를 살고
풀잎의 이름으로 시를 쓴다.
세상의 것 다 녹슬었다고 핍박하는 것 아직 이르다
어느 산기슭에 샘물이 솟고
들판 가운데 풀꽃이 씨를 익힌다.
절망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지레 절망을 노래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꽃잎 하나씩은 지니고 산다.
근심이 비단이 되는 하루, 상처가 보석이 되는 한 해를
노래할 수 있다면
햇살의 은실 풀어내 아는 사람에게
금박 입혀 보내고 싶다
내 열 줄 시가 아니면 무슨 말로
손수건만 한 생애가 소중함을 노래하리.
초록에서 숨 쉬고 순금의 햇빛에서 일하는
생의 향기를 흰 종이 위에 조용히 쓰며.
13. 내가 바라는 세상 / 이기철
이 세상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입니다.
한 번도 이름 불리지 않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제 마음대로 이름 지어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불리지 않은 꽃이 혼자 눈시울 붉히면
발자국 소리 죽이고 그 꽃에 다가가
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 꽃에 달아주는 일입니다.
부리가 하얀 새가 와서 시의 이름을 단 꽃을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 그 새가 가는 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요.
그러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꽃이 된 사람의 마음을 시로 읽는 일입니다.
마을마다 살구꽃 같은 등불 오르고
식구들이 저녁 상가에 모여앉아
꽃물든 손으로 수저를 들 때
식구들의 이마에 환한 꽃 빛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어둠이 목화송이처럼 내려와 꽃들이 잎을 포개면
그날 밤 갓 시집온 신부는
꽃처럼 아름다운 첫아일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 혼자 베갯모를 베고
그 소문을 화신 花信처럼 듣는 일입니다.
14. 폭포 / 이형기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국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국을 아는가.
15. 書翰體(서한체)
박두진
노래해다오.
다시는 부르지 않을 노래로 노래해다오.
단 한번만 부르고 싶은 노래로 노래해다오.
저 밤하늘 높디높은 별들보다 더 아득하게,
햇덩어리 펄펄 끓는 햇덩어리보다 더 뜨겁게,
일어서고 주저앉고 뒤집히고 기어오르고
밀고 가고 밀고 오는 바다,
파도보다도 더 설레게 노래해다오.
꽃잎보다 바람결보다 빛살보다 더 가볍게,
이슬방울 눈물방울 수정 알 보다 더 맑디맑게 노래해다오.
너와 나의 넋과 넋, 살과 살의 하나 됨보다 더 울렁거리게,
그렇게 보다 더 황홀하게 노래해다오.
환희 절정 오싹하게 노래해다오.
영원 영원의 모두, 끝과 시작의 모두, 절정
거기 절정의 절정을 노래해다오.
바닥의 바닥 심연의 심연을 노래해다오.
16.가을 /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 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 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뜰떠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 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긋이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났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붙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 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 한 가슴을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17.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송찬호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꽃의 향기를 구부려 꿀을 만들고
잎을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물을 구부려 물방울 보석을 만들고
머나먼 비단길을 구부려 낙타 등을 만들어 타고 가고
입 벌린 나팔꽃을 구부려 비비 꼬인 숨통과 식도를 만들고
검게 익어가는 포도의 혀끝을 구부려 죽음의 단맛을 내게 하고
여자가 몸을 구부려 아이를 만들 동안
굳은 약속을 구부려 반지를 만들고
오랜 회유의 시간으로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놓았다
말을 구부려 상징을 만들고
달을 구부려 상징의 감옥을 만들고
이 세계를 둥글게 완성해 놓았다
달이 둥글게 보인다
달이 빛나는 순간 세계는 없어져 버린다
세계는 환한 달빛 속에 감추어져 있다
달이 옆으로 조금씩 움직이듯
정교한 말의 장치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오랫동안 말의 길을 걸어와
처음 만난 것이 인간이다
말은 이 세계를 찾아온 낯선 이방인이다
말을 할 때마다 말은
이 세계를 낯설게 한다
18. 곰 메 바위 / 신승희
아리랑!
어둠 속에 전설은 더욱 선명하다
눈길 닿는 저곳, 한줄기 영롱한 빛을 따라
전설은 서투른 날갯짓으로 초저녁
흘리는 달빛 아래 퍼덕이고 있다
영혼마저, 걸린 달빛으로 서서
그리워 저물지 못한 저 산마루 시루 봉
오백 년 아리랑이 허공에 가슴을 푼다.
웅산 정상에서 흐느끼는 달빛
침묵은 무거워 흐느끼는 볼에 눕고
비련의 아천자, 전설에 감기운채
희끄무레 스치는 작은 바람들
태어난 자리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우뚝 솟은 시루봉이 소리치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밤하늘 곰 메가 부르고 있다
조선이라는 태를 두르고
순종의 무병장수를 빌었다는 명성황후
백일기도, 한 맺힌 역사가 전설 속에
흐느끼고 있다
곰 메여!
한마디 말도 없는 곰 메여!
웅산 정상에 묻힌 전설이여
외세의 말발굽에 짓밟혔던 아리랑이여
단 한번, 흰 바람이라도 붙잡고
곰 메의 가슴을, 풀어놓고 싶지 않은가
명성 황후도, 비련의 아천 자도, 할 배 할 매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강물은 흐르고 있다
강물은 흘러도, 저 시리도록 푸른 별들
억만년 그 자리에 있었으리라
곰 메여! 눈을 뜨고, 말이다.
19. 어머니의 강/ 신승희
어머니!
혹한 바람이 내 창을 두드리는 겨울밤엔
다문다문 잊었던 당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난밤 꿈속에서 당신을 만나
한없이 울었던 기억도 깨어나 보니
이유도 없이 그냥 슬퍼서입디다.
어찌 그리도 서럽던지
아직도 그 설움, 채가시지 않은지라
노인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문풍지 유난히 울던, 그해 겨울을 잊지 못합니다
푸른 별빛 스며드는 시린 문살엔
한지의 설움이 노래하고
새끼 줄 묶은 누런 초가지붕 아래
장작불 지피고도 추울세라
겉치마 하나 훌훌 말아서
문지방 막아 놓으시던 어머니
그 빛바랜 치맛자락
새삼 눈앞에서 흘러내립니다.
어머니, 오늘 같은 추운 밤이면
부르기에도 목이 메여오는 당신
반딧불 같은 기억 저편
바느질로 지새우던 섣달의 긴긴밤
애야 바늘귀 좀 끼워다오
등잔불 밑에 희미한 당신
이토록 가슴 저미게 하십니까.
평소, 인생무상이다
내손이 내 딸이구나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 건지 그땐 몰랐지만
살아 갈수록 되새겨지는 깊은 영혼의 파장
굳이, 그 음성 귀 기울이지 않아도
시시때때로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살 속 깊이 파고든 무심의 강
그 무심한 등살에 밀려 그 소녀 역시도
바늘 귀 좀 끼워 달라 시던 당신처럼
어느새 그 자리를 바라보는 언덕에 섰습니다.
그 무심이란 세월 한 모퉁이를 돌아
이 제사 알 것 같다는 말을 할 무렵
이미 살 속 깊이 전의된 세월 덧없음을
어머니, 어머니 당신은
그때,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20. 시래기 국 / 황송문
고향 생각이 나면
시래깃국을 찾는다.
해묵은 뚝배기에
듬성듬성 떠 있는
붉은 고추 푸른 고추
보기만 해도 눈시울이 뜨겁다.
노을같이 얼큰한
시래기 국물 훌훌 마시면,
뚝배기에 서린 김은 한이 되어
향수 젖은 눈에 방울방울 맺힌다.
시래깃국을 잘 끓여 주시던
할머니는 저승에서도
시래깃국을 끓이고 계실까.
새가 되어 날아간
내 딸아이는
할머니의 시래깃국 맛을 보고 있을까.
고향 생각을 하다가
할머니와 딸아이가 보고 싶으면
시래기 국 집을 찾는다.
내가 마시는 시래기 국물은
실향의 눈물인가.
내 얼근한 눈물이 되어
한 서린 가슴, 빙벽을 타고
뚝배기 언저리에 방울방울 맺힌다.
21.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 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 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22. 모닥불 / 안도현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어두운 청과시장 귀퉁이에서
지하도 공사장 입구에서
잡것들이 몸 푼 세상 쓰레기장에서
철야 농성한 여공들 가슴속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면사무소 앞에서
가난한 양말에 구멍 난 아이 앞에서
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에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 있는 곳에서
모여 있는 곳에서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얼음장이 강물 위에 눕는 섣달에
낮도 밤도 아닌 푸른 새벽에
동트기 십 분 전에
쌀밥에 더운 국 말아먹기 전에
압록강 건너기 전에
배부른 그들 잠들어 있는 시간에
쓸데없는 책들이 다 쌓인 다음에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언 땅바닥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훅훅 입김을 하늘에 불어놓는
죽음도 그리하여 삶으로 돌이키는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는
그날까지 끝까지 울음을 참아내는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한 그루 향나무 같다
23.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 이 오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 向을 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이 어이 소리 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어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희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난, 막 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 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뒹굴어 보자.
24. 갈보리의 노래 2 / 박두진
마지막 내려덮는 바위 같은 어둠을 어떻게 당신은 버틸 수가 있었는가? 뜨물 같은 치욕을, 불붙는 분노를, 에어내는 비애를, 물새 같은 고독을, 어떻게 당신은 견딜 수가 있었는가? 꽝꽝 쳐 못을 박고, 창끝으로 겨누고, 채찍질해 때리고, 입 맞추어 배반하고, 메어달아 죽이려는, 어떻게 그 원수들을 사랑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강할 수가 있었는가? 파도같이 밀려오는 승리에의 욕망을 어떻게 당신은 버릴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패할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약할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이길 수가 있었는가? 방울방울 땅에 젖는 스스로의 혈적血適으로, 어떻게 만민들이 살아날 줄 알았는가? 어떻게 스스로가 신인 줄을 믿었는가? 커다랗게 벌리어진 당신의 두 팔에 누구가 달려들어 안길 줄을 알았는가? 엘 리∙∙∙∙엘 리∙∙∙∙∙∙ 엘 리∙∙∙ 엘 리∙∙∙스스로의 목숨을 스스로가 매어달아, 어떻게 당신은 죽을 수가 있었는가? 신이여! 어떻게 당신은 인간일 수 있었는가? 인간이여! 어떻게 당신은 신일 수가 있었는가? 아! 방울방울 떨구어지는 핏방울은 잦는데, 바람도 죽고 없고 마리아는 우는데, 마리아는 우는데, 인자人子여! 인자여! 마지막 쏟아지는 폭포 같은 빛줄기를 어떻게 당신은
25. 남사당 / 노천명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따 내리는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 불을 돋운 포장 布帳 속에선
내 남성 男聲이 십분 굴욕 되다
산 너머 지나온 저 촌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날이면 떠남을 짖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와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26. 추풍에 부치는 노래 / 노천명
가을바람이 우수수 불어옵니다
신이 몰아오는 비인 마차 소리가 들립니다
웬일입니까
내 가슴이 써-늘 하게 샅샅이 얼어듭니다
"인생은 짧다" 고 실없이 옮겨본 노릇이
오늘 아침, 이 말은 내 가슴에다
화살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나는 아파서 몸을 추설 수가 없습니다
황혼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섭니다
하루하루가 금싸라기 같은 날들입니다
어쩌면 청춘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까
연인들이여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은 듯이 지나버리는 생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그대 만나거든
마음대로 앉아 노니다 가시오
남이야 뭐라든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밤을 도와 하게 하시오
총기는 늘 지니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금싸라기 같은 날들이 하루하루 없어집니다
이것을 잠가둘 상아 궤짝도 아무것도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낙엽이 내 창을 두드립니다.
차 시간을 놓친 손님 모양 당황합니다.
어쩌자고 신은 오늘 이사 내게
청춘을 이렇듯 찬란하게 펴 보이십니까.
27. 승무(僧舞)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 촛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양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28. 별리別離 / 조지훈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
나즉히 흰 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 당 홍치마 자락에
말 없는 슬픔이 쌓여오느니ㅡ
십 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메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 連峰을 바라보나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자주고름에 소리 없이 맺히는 이슬방울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 鴛鴦 枕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꼬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 가지
꺾어서 채찍 삼고 가옵신 님아.......
29. 이슬의 눈 / 마종기
가을이 첩첩 쌓인 산속에 들어가
빈 접시 하나 손에 들고 섰었습니다.
밤새의 추위를 이겨냈더니
접시 안에 맑은 이슬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슬은 너무 적어서
목마름을 달랠 수는 없었습니다.
하룻밤을 더 모으면 이슬이 고일까,
그 이슬의 눈을 며칠이고 보면
맑고 찬 시 한 편 건질 수 있을까,
이유 없는 목마름도 해결할 수 있을까.
다음 날엔 새벽이 오기도 전에
이슬 대신 낙엽 한 장이 어깨에 떨어져
부질없다, 부질없다 소리치는 통에
나까지 어깨 무거워 주저앉았습니다.
이슬은 아침이 되어서야 맑은 눈을 뜨고
간밤의 낙엽을 아껴주었습니다
ㅡ당신은 그러니, 두 눈을 뜨고 사세요.
앞도 보고 뛰어도 보고 위도 보세요.
다 보이지요? 당신이 가고 당신이 옵니다.
당신이 하나씩 다 모일 때까지, 또 그 후에도
눈뜨고 사세요. 바람이나 바다 같이요.
바람이나 산이나 바다같이 사는
나는 이슬의 두 눈을 보았습니다. 그 후에도
바람의 앞이나 바다의 뒤에서
두 눈 뜬 이슬의 눈을 보았습니다.
30. 편복蝙蝠 마종기 /섬: 변경
이육사
광명을 배반한 아득한 동굴에서
다 썩은 들보와 무너진 성채의 너덜로 돌아다니는
가엾은 박쥐여! 어둠의 왕자여!
쥐는 너를 버리고 부잣집 곳간으로 도망했고
대붕도 북해로 날아간 지 이미 오래거늘
검은 세기의 상장이 갈가리 찢어질 긴 동안
비둘기 같은 사랑을 한 번도 속삭여 보지도 못한
가엾은 박쥐여! 고독한 유령이여!
앵무와 함께 종알대어 보지도 못하고
딱따구리처럼 고목을 쪼아 울리도 못하거니
마노보다 노란 눈깔은 유전을 원망한들 무엇하랴
서러운 주교 일사 못 외일 고민의 이빨을 갈며
종족과 홰를 잃어도 갈 곳조차 없는
가엾은 박쥐여! 영원한 보헤미안의 넋이여!
제 정열에 못 이겨 타서 죽는 불사조는 아닐망정
공산 잠긴 달에 울어 새는 두견새 흘리는 피는
그래도 사람의 심금을 흔들어 눈물을 짜내지 않는가!
날카로운 발톱이 암사슴의 연한 간을 노려도 봤을
너의 먼 조선의 영화롭던 한 시절 역사도
이제는 아이누의 가계와도 같이 서러워라
가엾은 박쥐여! 멸망하는 겨레여!
운명의 제단에 가늘게 타는 향불마자 꺼졌거든
그 많은 새짐승에 빌붙일 애교라도 가졌단 말가?
호금조처럼 고운 뺨을 채롱에 팔지도 못하는 너는
한 토막 꿈조차 못 꾸고 다시 동굴로 돌아가거니
가엾은 박쥐여! 검은 화석의 요정이여!
☆안내드립니다.
접수가 힘드신 분들은 055.547.5767로 전화 주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사단법인: 한국명시낭송가협회 소리예술 문화연구원
詩사랑 꽃바람되어
제6회 詩사랑 전국시낭송경연대회 신청서
참가부분 |
성인부
| 성별 | 남/여 | 사진 |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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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시 | 낭송시 제목 ( ) | 시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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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송시제는 반드시 (본 카페 신청서 및 추천 시제 방에서) 선정, 원문 필히 첨부파일로4월 20일까지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 2019년 제6회 詩 사랑 전국 시낭송 경연대회』 사무국 귀중 * 기재사항이 사실과 다른 경우, 참가 및 시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참가자는 신청서 작성 하신 후 위에 메일로 보내 주시면 되겠습니다. -행사당일 - * 2019년 6월 1일 토. 오후 12시 30분까지 입장 하시고 시간 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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