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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말씀/ 베드로전서 1:13-2:3 요절/ 베드로전서 2:2 | 2024. 11. 10 | |
베드로전서 제 2 강 |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받을 수 없는 놀라운 유업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입니다. 영광스러운 기업을 받은 자들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배우고 새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거듭나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를 산 소망으로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 받고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구원의 완성은 미래적인 것이며,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 놀라운 은혜를 온전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재림의 때에 부어주실 은혜, 그리고 이른 비와 늦은 비와 같이 때마다 내려주시는 은혜를 소망하며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긴 옷을 입었기에 어떤 일을 시작하려면 허리띠를 매야 했습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것은 경주자의 준비자세로서 깨어 있으라는 것이며, 근신하라는 것입니다. 약혼한 부부가 자신들의 모든 계획을 결혼에 맞추어 짜는 것처럼 우리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실 은혜를 바라며 우리의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우리 사욕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사욕은 죄악된 본성으로서 정욕뿐만 아니라 물욕 권력욕 명예욕 쾌락욕 등 욕망들을 가리킵니다. 산 소망을 가진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 따르던 사욕들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그런 사욕들을 따라 살았고 세상 가치관을 따라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라면 옛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사욕에 매여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산다면 참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산 소망을 가진 자들로서 우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새로운 법과 원리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도들은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우리를 부르신 분은 누구입니까? 거룩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거룩을 명하므로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레위기 11장 44,4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우리는 거듭나기 전에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재창조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따라가면 안 되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외모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 기준은 외모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외모에 근거하여 잘못된 판단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대로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야 합니다. 여기 두려움은 무서움이 아니라 경외심입니다. 신자들 가운데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 받지 않으십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질 때 우리는 이 땅에서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거듭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를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우리는 과거에 우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 매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의 유전자를 가진 죄인이었습니다. 또한 부모로부터 좋은 것도 받았지만 나쁜 것도 받았습니다. 우상숭배, 불신, 불순종, 교만, 거짓, 이기심, 욕심, 정욕, 시기, 미움, 비방, 폭언, 폭력 등 헛된 행실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헛된 행실과 죄의 노예였습니다. 이런 죄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죄악의 세력이 너무 강해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1세기 세상은 로마가 지배하는 세상이었고 노예들이 많았습니다. 노예는 자유가 없고 풀려나려면 누군가 은이나 금 같은 속전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죄의 노예 된 우리는 은이나 금으로도 대속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우리 대신 희생하셨습니다. 죄도 없고 결점이 없으신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속전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낼 뿐 아니라 우리를 거룩한 자가 되게 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의 피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금이나 은보다 더 귀한 보배로운 피입니다. 세상 어떤 것으로도 은이나 금이나 어떤 보석으로도 우리의 죄값을 치룰 수 없었습니다. 또한 세상의 어떤 종교나 도덕도 우리를 거룩하게 하지 못하고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우리의 인격과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고 하늘의 부름을 받는 날까지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또한 일상의 삶,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이토록 놀라운 구원은 우연히 임하게 된 것이 아니라 미리 약속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우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대속함을 받아 하나님 나라를 산 소망으로 받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니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을 본받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성화시키고 때마다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놀라운 구원을 받은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소망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썩고 더러워지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허무에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대상이 되시고 우리에게 참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주십니다.
둘째,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22절은 우리 신자의 대인관계에 대해서 말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복음 진리를 순종함으로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한 자들은 거짓 없이 형제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은혜를 경험한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으로’는 ‘마음으로부터’입니다. ‘뜨겁게’는 ‘열정적으로, 적극적으로’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사랑을 많이 많이 강조합니다. 인기 가수들 노래의 주제는 사랑이 가장 많습니다. 아름다운 멜로 드라마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립니다. 형제 사랑하고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 없이 사랑하고,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나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은 데 생각에만 머물고 삶의 현장에서는 가식적이고 냉냉하게 대할 때가 많습니다. 신자들에게도 형제 사랑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계명을 주노라 하시며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끼리 형제들끼리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새계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나의 형제 자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나의 형제 자매입니다. 형제 사랑은 가장 가까이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와 자녀들을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목자들과 양들을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사랑이 형식적이 되고 가식적이 되고 식어져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복음 진리에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이요, 저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형제 사랑은 말만 잘 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사랑에 대한 책을 읽고 감동적인 영화를 본다고 형제 사랑을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진리에 대한 순종이 있어야 하고 나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영적 투쟁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 진리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내 영혼이 맑아지고 정화되어야 내 안에 사랑의 샘이 생기게 됩니다. 아가페 사랑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형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가정사와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교제함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었고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 복음 진리에 대한 순종과 영혼의 정화를 통해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3절은 형제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앞에서 우리가 대속함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번에는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썩어질 씨는 세상에 속한 것, 인본적인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은이나 금과 같은 보석으로 된 것도 아니요 부모 찬스로 된 것도 아니요 나의 열심과 지식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지 아니할 씨 다시 말해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것이요, 항상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40장 6-8절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모든 육체 곧 모든 인간은 풀과 같아 마르게 되고, 그 모든 영광 곧 인간이 이룬 모든 업적은 풀의 꽃과 같아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주의 말씀, 우리가 받은 복음의 말씀은 세세토록 머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요 세세토록 머무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생명과 영원성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에 힘써야 겠습니까?
셋째,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는 이제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자요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성령께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하여는 거룩한 자가 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형제들을 향하여는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형제 자매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형제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악독은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을 포함합니다. 기만은 속이는 것입니다.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이며 과장하여 자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시기는 남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것입니다. 비방은 상대방의 흉을 보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이런 악독이 있을 때 공동체가 하나 될 수 없고 형제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부패한 음식으로 속이 차 있을 때 좋은 음식이 있어도 먹을 수 없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먼저 속을 비워야 합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형제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을 미련두지 말고 과감하게 철저하게 버려야 합니다.
다음으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2장 2절을 보십시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거듭남의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바로 거룩한 삶을 살고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칭의와 성화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현재적으로 구원을 누리고 있지만 구원의 완성은 미래적인 것이기에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합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를 자라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고 했습니다. 순전하다는 것은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이다는 의미입니다. 신령하다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영적이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요 하늘 양식입니다. 우리는 땅의 양식을 먹어야 육체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영적 생명을 유지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갓난 아기는 온 힘을 다하여 엄마의 젖을 빱니다. 젖을 빨고 먹어야 갓난 아기는 살 수 있고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 생명을 유지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갓난 아기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날마다 먹고 소화해야 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보았습니다. 말씀을 갈망하고 묵상하고 순종함으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했습니다. 말씀의 맛을 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우리 학생리더들이 야고보서 말씀을 강독하고 암송하고 소감 쓰고 발표하는 가운데 말씀의 맛을 보았고, 청년의 스피릿과 생명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말씀을 통해 우리 목자들과 양들이 말씀의 맛을 새롭게 보고 영적 부흥의 주역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 산 소망을 가진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삶은 형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형제 자매를 사랑하되 마음으로부터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힘은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갓난 아기처럼 사모하는 삶에 힘써야 합니다. 말씀 사랑은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고, 우리의 가정과 캠퍼스를 변화시키고 이 시대 영적 부흥을 가져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