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귀하다. 그러나 진리(眞理)는 더욱 귀하다. -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99년 봄, 철인(哲人)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감옥에서 독배(毒杯)를 마시고 70년의 생애의 비장한 막(幕을) 내렸다. 28세의 다정다감(多情多感)한 귀족청년 플라톤은 스승의 비극적 죽음을 보고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는 스승의 뒤를 잇기 위해서 철학자의 길을 택했다. 플라톤은 국가의 동량(棟梁)은 인재를 기르고 진리의 등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기원전 387년 아테네 교외(郊外)에 아카데메이아를 세웠다. 영웅(英雄) 아카데모스를 모신 숲에 세웠기 때문에 학교의 이름을 “아카데메이아(Academeia)”라고 했다. 서양의 대학의 기원이나 영어의 아카데미는 여기서 유래한다.
서기 529년 로마의 유스니티아누스 황제(皇帝)가 이교 사상(異敎 思想)의 온상이라고 하여 폐교령을 내릴 때까지 아카데메이아는 약 9백년간 연면한 생명을 이어가면서 서양의 진리의 전당, 학문의 상아탑을 이루었다. 천하의 많은 청년들이 아카데메이아의 문을 두드렸다. 18세의 청년 아리스토텔레스는 불원천리하고 아카데메이아를 찾아가서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20년 동안 플라톤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인격적 영향과 학문적 감화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 철학적 입장을 달리했기 때문에 아카데메이아를 떠나서 아테네에 따로 학교를 세우고 자기 철학을 강의했다.
20년간 존경하고 사숙하던 스승을 떠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스승은 귀하다. 그러나 진리는 더욱 귀하다.”는 그의 말은 학문에 관한 엄숙한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