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3현조
-1992년 5현조
-2016년 사호변경 하산사=>회주사
-2018년 7현조
7현조 : 시조공(휘 경), 중시조공(휘 창주), 충렬공(휘 계정, 5세), 판사공(휘 충,14세), 통선랑공(휘 덕룡, 15세) 외 첨의정승공(휘 소, 6세), 정랑공(휘 문개, 7세)
도문회는 2016년 시조공을 비롯해 오현조의 위패를 모신 신실인 하산사의 사호를 2016년(丙申) 5월 1일(음 3월 25일) 문중총회에서 회주사(懷州祠)로 변경했다. 하산사는 1910년 이전에 충렬재(忠烈齋)라 했으나 읍내 충렬사(忠烈祠)와 겹쳐 혼동을 불러왔다. 그래서 묘소의 소재지 마을 이름을 따서 하산사(霞山祠)로 고쳤다.
1925년(乙丑)에 시조공과 14세 판사공도 봉향하자는 문의에 따라 재각 동쪽에 설단하고 향사했다. 그러다 제사에 참례하는 후손이 적어 1975년(乙卯)에는 다전등에 신실을 마련, 시조공을 주벽으로 3현조의 위패를 모셨다. 그리고 사호는 하산사를 그대로 이었다. 1992년(壬申)에는 중시조와 15세 통선랑공까지 5현조로 확대했었다.
그러나 하산사는 시조를 주벽으로 모신 사호로는 타당치 않다는 반론이 일었다. 마치 손자의 문패를 걸고 어른들이 얹혀 제사를 받는 모양새다. 더구나 시조공의 봉호(封號)가 회주군(懷州君)이신데 손자 이름의 신실에서 제사를 지낸 것은 어색하다. 당연히 회주사란 사호가 적격임에도 이를 간과해서 비롯된 결과란 것이다.
그래서 도문회는 당일 5현조에 대한 제향을 마치고 진행된 총회에서 사호변경안건을 상정했다. 집행부는 회주사가 타당하다는 이유를 설명하고 가부를 물었다. 그 결과 찬성한다는 동의에 만장일치로 의결됐다. 그 결과 2016년 6월 22일 도문회 임원 등 후손들이 모인 가운데 하산사 사액을 내리고 「회주사」 현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