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폭격기 --- 선동렬
그가 야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자기 형의 야구모습에 매료되어
송정초등학교 시절 부터 아구인생이
시작된다.
82년 세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보여준
피칭은 세계의 야구 전문가들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의 산이 있었다.
최 동 원
바로 그 이름 석자이다.
항상 그 형 처럼 항상 저 만큼만
그래서 정해진 맞대결이 아닌 우연한
맞대결이었다.
첫번째 시합은 최동원의 패였다.
그것은 최동원이가 잘못 던져 그리 된 건
아니다. 완봉으로 막다가 솔로 홈런으로 그만
패하고 말았다. 두번째 대결에서는 최동원의 승
마지막 사직 구장에서의 그 대결의 초미의 관심사는
누가 누굴 하며 언론에서 떠들어버린 것이었다.
2대 1일 로 선은 지는 경기일 줄 알았으나
9회 롯데에서 이적한 김일환이를 대타로 세운
호랑이 팀은 동점을 이루며, 시합은
원점으로 되돌아 갔다.
15회 연장 --- 피를 말리는 그 순간 순간의
묘미 그것은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도
없는 그야 말로 거인과 호랑이의 혈투였다고
보면 될것이다.
경기가 끝나면서 두 사람이 마운드에서 내려오며
최동원이는 우리 끝까지 한 번 해 볼래 하며
농담을 할 정도이니까 ........
0 점대 방어율 노히트 노런 수많은 대기록들을 갈아 차우며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놀라게 했다는 말을 남기고
이제 해태의 호랑이가 아니고 나고야의 태양이 된다.
어머님이 10여년 간의 투병으로 돌아 가사고 그 여퍄로
슬럼프가 찾아 왔다.
그러나 무등산 폭격기는 다시 일어 섰다.
나고야의 수호신 SUN하면 떠 오르는 그의
놀라운 피칭 154 킬로의 직구 슬라이드 포커볼 등등
왜 폭격기라는 닉네임이 붙었는가 하면 바로
아파트 2층에서 내려 꽂는 그의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속구 --------
이제 우리는 원한다 한 때나마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해 준 무등산의 호랑이의 큰 표효 ---------
아직도 식지 않는 우리의 선동렬
그의 호흡에서 호랑이의 큰 움직임은 토끼를 잡을때도
최선을 다 한다는 자신만의 어떤 철학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의 피칭에서 희노애락을 삼키고
그가 떠나 간 마운드를 보며 다시 그 순간이 온데도
호랑이는 살아 있다는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 줄 수 있기를
자 이제 그는 코치나 감독직에서도 우리에게 시원한
청량의 부릅뚜는 또는 음절의 노래를 듣고 싶다.
무등산 폭격기
선 동 렬
용필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