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명: 철 따라 들려주는 옛이야기 120가지
저: 서정오
출: 보리
독정: 2022년 8월 1일 월,~ 8월 2일
머리말-옛이야기는 마치 등불처럼, 어둠 속에서 헤매는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줄 겁니다. 마치 소금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썩어가는 세상을 지켜 줄 것입니다.
<흰 똥 묻은 여우 주둥이>
여우 주둥이는 하얗지. 옛날에 까치하고 여우하고 왜가리가 살았어. 까치가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아서 높은 나무 둥지에서 기르니까 여우가 잡아먹고 싶어 수작했어
“까치야, 네 새끼 중에 미운 새끼만 떨어뜨려야.”
”그런 소리 말아라. 다 예쁘다.“
“까치야, 네 새끼 중에 예쁜 새끼만 떨어뜨려야.”
“그런 소리 말아라. 다 밉다.”
왜가리에게 하소연하니 썩은 나무에도 못 올라가는 것이 산 나무에 어찌 올라와?“
해서 여우에게 왜가리가 가르쳐준 대로 말했다. 여우가 가르쳐준 왜가리를 쫓아가다가 사냥꾼을 만나 총을 보고 제 굴로 쏙 들어갔어. 사냥꾼이 왜가리를 보고 겨누니 왜가리도 여우굴로 쏙 들어갔어, 둘 다 굴속에 숨었다가 사냥꾼이 간 뒤에 왜가리가 앞장서 쑥 튀어나오면서 똥을 찍 싸서 뒤따라 나오던 여우 주둥이에 하얗게 똥이 묻었어. 그때부터 여우 주둥이가 하얗대.
<꿀떡꿀떡 혼자 떡 먹기>
정수동 익살꾼은 장난을 좋아해 늘 일을 내고 다녔거든. 남한테 떡 사 주기가 싫어서 꼽꼽쟁이 노릇을 하며 꾀를 냈어
“여보게, 나하고 내기 안 할 텐가?”
“내기라니. 누슨 내기?”
욕심 많은 사람들인지라 내기라면 귀가 번쩍 뜨이지
“저 떡장수 목판을 한 번 보게. 떡이 가득 들어 있지? 저걸 나 혼자 한참에 다 먹어 치운다면 어떻겠나?”
”말도 안 외는 소리”
하며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그러니까 내기하자지. 내가 저걸 다 먹어 치우면 자네들이 떡값을 다 물고, 내가 다 못 먹으면 떡값은 나 혼자 다 내겠네. 어떤가?”
정수동이 목판에 서서 태연하게 떡을 집어 먹는데, 애당초 내기에 이길 맘 없으니 많이나 먹나? 가진 돈만큼 먹지. 딱 네 개를 먹고 나서 슬쩍 물러앉아. 보란 듯이 떡 네 개 값을 치렀지. 제 돈 주고 떡을 사서 혼자 먹었어, 눈치코치 볼 것 없이 느긋하게.
<청개구리 점치기>
청개구리라는 아이가 아무 일도 할 줄 몰라 집에서 쫓겨났어. 웬 사람이 달려오더니 청개구릴 보고
“네가 바로 용하다는 그 점쟁이로구나. 어서 가자.”
마침 그 집에서 큰돈을 잃어버려 점쟁이를 찾으러 가는 길에 만난 거지. 가 보니 멍석을 깔고 음식을 차려 놨어 청개구리가 도무지 알 길 없어. 눈앞에 커다란 떡시루에 금방 져 낸 백설기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걸 보고
“얼기설기 백설기, 무럭무럭 김 무럭.”
그 말만 중얼거렸더니 돈 훔쳐 간 도둑들이 자기들 이름이라 돈 꾸러미 냅다 집어던지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갔어. 청개구리가 점을 잘 친다는 소문에 도적 때가 나타나
“이 주먹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맞혀라.”
청개구리가
“에잇, 이제 청개구리는 죽게 됐구나.”
그 말 듣고 도적 두목이 잘 맞혔다면서 손을 쫙 펴니, 손바닥 안에 청개구리 한 마리가 들어 있지 뭐야. 청개구리를 손에 꼭 쥐었으니 죽게 됐다는 것도 맞는 알이라 ‘참 용하게 맞히네.’하더래. 그래서 점을 잘 치고 무사히 집에 와 잘 살았더란다.
<구렁이가 먹은 신기한 풀>
산골 가난한 집 아이가 동네 아이들과 산에 더덕 캐러 갔는데 동구미((명사, 같은 말-멱둥구미: 짚으로 둥글고 울이 깊게 결어 만든 그릇. 주로 곡식이나 채소 따위를 담는 데에 쓰인다).에다가 칡으로 기다란 끈을 엮어 달아서 내려갔다. 다 캐서 동구미에 실어 올렸는데 위에 있던 아이들이 더덕만 챙겨 가고 그냥 집으로 가서 아이는 벼랑 가운데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됐어. 가만히 보니 비바람 피할 곳이 있어 하룻밤 자고 보니 구렁이가 나타나 반대쪽으로 가서 풀을 뜯어 먹고 사라지더래. 아이도 풀을 뜯어 먹어 봤어. 향긋한 냄새에 기운이 솟더래. 흙을 살살 헤치고 보니 구불구불한 뿌리도 뽑혀 나와. 조금 먹어 봤더니 금세 배가 불러. 밤에는 굴에서 자고 낮에는 벼랑에서 거뜬히 살 수 있었어. 하루는 구렁이가 등은 흔들흔들해서 타고 갔더니 벼랑 위 땅에 아이를 내려놓고 갔어. 집에 와 보니. 아이들이 다 없어져 버렸더래. 밤새 호랑이가 물어 갔다고 하고 귀신이 잡아갔다고도 하는데 뭐가 참말인지.
<집 없는 달팽이>
한 부부가 외동딸을 키우다가 어머니가 병 걸려 죽고 계모가 와 의붓딸을 미워했어. 남편이 길쌈 베를 몇 필 사다 주니 딸에게 시켜 딸이 베를 짰는데, 못 쓰겠다고 던져 버렸어. 딸이 그걸 주워 장롱 속에 넣어 놨다가 길쌈을 하고 옷을 일곱 벌 지었지. 마을에 광대놀음판이 벌어져 계모에게 그 옷을 주었더니 갈기갈기 찢으며 ‘이것도 옷이라고 지었냐’?하며 내던졌어, 남편이 마지못해 항아리를 지게에 얹어 짊어지고 갔더니 광대 하나가 펄쩍 다가와 대통으로 항아리를 팍삭 깨었어. 항아리 안에서 발가벗은 계모가 툭 튀어나오는 거야. 그 꼴을 보고 왁자하게 웃으니까 계모는 부끄러워 네발로 기어갔어. 가다가 점점 조그맣게 오그라들었지. 장독만 해지고, 항아리만 해지고, 대접만 해지고. 종지만 해지고. 그러다 집 없는 달팽이가 돼 버렸어. 집도 없이 발가벗고 기어 다니는 민달팽이가 돼 버린 거야. 의붓딸은 갈 갈기 찢어 놓은 것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누더기 옷을 입고 놀음판에 갔더니 하늘에서 쌍무지개가 뜨더니, 일곱 선녀가 내려와 비단옷을 입혀 하늘로 데려가 딸은 여덟 선녀가 됐대.
<둔갑 내기>
머슴이 집 나가 머슴 살 집을 구하러 다니는데 글 읽을 줄 아느냐 물어 안다고 했더니 돌려보내는 거야. 돌아와 얼굴에 검댕을 묻혀 다시 갔어. 글 모른다고 하며 그 집에 살았어. 책 곳간에 도술 부리는 책을 보며 둔갑술을 읽어 익혔어. 한 달 뒤 도둑 두목이 와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다 보니
“책 곳간 지키는 아이가 글 읽을 줄 아는 것 같더라. 당장 죽여 버리자.”
해서 독수리로 둔갑해 하늘로 날았어. 도둑 두목은 거인이 돼서 삼천 근 활에 삼천 근 화살을 먹여 가지고 쏘려고 했어. 아이가 얼른 노루로 변해 산속으로 도망가니 두목이 호랑이로 변해 따라와. 쫓기다가 웬 처녀가 나물 바구니를 이고 가기에 얼른 가락지가 돼 길바닥에 누었어. 처녀가 가락지를 주워 손가락에 꼈어. 두목은 방물장수가 되어 처녀한테 가락지 팔라고 하며 가락지를 잡아채네. 아이는 얼른 좁쌀로 변해 모래 속에 숨었지. 두목은 닭으로 변해 좁쌀을 찾아서 쪼아 먹으려 했어. 아이는 이때다 하고 얼른 독수리가 돼서 닭을 덮쳤지. 아이는 두목을 곳간에 가두고, 재물을 다 풀어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누어 줬어.
<하늘 찌른 왕대>
형은 욕심 많고 아우는 착해 죽어가는 꿩을 보고 팥죽 한 숟갈 떠서 먹였더니
“내가 죽거든 나를 앞마당에 묻어 무덤 위에 모래 석 짐, 물 두 짐, 거름 한 짐 부어 주세요.”
하며 죽었어. 사흘이 지나니까 지붕 위로 솟고 뒷간과 키를 다투고, 보름이 지나 구름을 뚫더니 한 달이 지나 하늘을 찔렀어. 왕대 끝이 하늘을 푹 찔렀는데 하늘나라 곳간을 찔러 뚫린 구멍으로 쌀이 콸콸 쏟아져. 소나기 오듯이. 아우네 앞마당에는 금세 쌀이 산더미만큼 쌓였어. 부자 된 소문 듣고 형도 따라 했어. 왕대 끝이 하늘 찔렀는데 하늘나라 뒷간을 찔러 똥이 콸콸 쏟아져 똥 바다가 됐지.
<구슬 구슬 내 금구슬>
수탁이 흙을 콕콕 쪼며 ‘구구구구’ 우는 까닭
“하느님, 제 모습 좀 멋지게 만들어 주세요.”
하느님이 수탁에게 선물로 우선 머리에는 멋진 붉은 볏. 깃털에는 울긋불긋 근사하게, 턱 밑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금구슬까지 달아 줬어. 이 꼴을 보고 지렁이가 수탉 턱 밑에 달린 금구슬을 떼어 도로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어. 수탉은
“구슬구슬 내 금구슬‘”
하고 울다 나중에 귀찮아 그냥 “구구구구” 하며 울었대..
<개구리가 준 뭐든 불어나는 밥그릇>
“개구리 사려”
하는 사람에게 왜 개구리를 팔려고 하는가 부부가 물으니
“하도 논에서 바글거려 못자리도 못 하게 생겨 하도 미워 모조리 잡아다 팔러 왔지요.”
했다. 부부는 망태기 속의 개구리가 불쌍해 두 냥에 사서 집 근처 웅덩이에다 넣어 줬어. 개구리들이 논에 모여들어 꼬물꼬물 움직여 어디를 가서 따라갔더니 바위 밑이야. 바위 밑에 밥그릇이 하나 있어 그걸 집에 가져왔어. 그날 밤에 제삿밥 한 그릇으로 부부가 둘이 나눠먹고 조금 남겨 뒀더니 아침에 밥이 가득 담겨 있어. 이상한 그릇인가 싶어, 이웃에 쌀 한 줌 얻어 넣었더니 금방 가득 찼어. 돈 한 닢 꾸어 넣었더니 엽전이 가득 차. 부부는 개구리가 준 밥그릇 덕에 부자가 돼서 호강하며 잘 살았더란다.
<장승한테 비단 팔기>
비단 장사를 하러 나가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말 많은 사람에게는 팔지 마라.”
일렀어.
“그 빛깔도 곱다 한 필에 얼마요.”
“ 말 많은 이들한테는 비단 안 팔래요.”
이러다가 사흘을 못 팔았어. 터덜터덜 집에 오다 고개 넘으니 길가에 사람 같은 것이 딱 버티고 있어. 장승이지.
“여보, 이 비단 안 사려요?”
“살 거요. 안 살 거요?”
“옳아, 이제야 임자를 만났구나.”
하고 팔려고 비단짐을 다 풀어놓고 흥정을 시작했어
“한 필에 닷 냥 주면 팔 테요?”
“…….”
“비싸다고? 그럼 한 필에 넉 냥은 어떻소?”
“…….”
“정 그렇다면 한 필에 석 냥만 받을래요. 그 대신 이것 다 사기요.”
“…….”
이렇게 말이 없으니 딱 입맛에 맞아 여기 꼭 팔아야겠거든. 그러고 보니까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 같기도 해.
“좋다고? 그럼 흥정이 된 거요. 자 이제 돈을 주시오.”
“…….”
“지금 돈이 없다고? 그럼 내일 돈 받으러 올 테니 꼭 주시오.”
그러고 보니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 같거든.
집에 가니 빈손으로 돌아온 아들이라 돈을 받았냐 물으니 내일 가서 받기로 했데. 아들이 이튿날 가서 보니 비단은 그새 누가 주워 가고 장승은 쓰다 달다 말이 없거든. 화가 나서 장승을 쑥 뽑았지. 그 자리에 누런 금덩어리가 가득 들어 있네.“
“그럼 그렇지. 이게 비단값이로군.“
<병 속 세상 구경>
할아버지가 장터에서 짚신을 팔고 있는데, 스님이
“노인장, 소승이 지금 목이 몹시 마르니 물 한 그릇만 떠다 주시오.”
했어. 노인이 멀리 떨어진 우물로 가 물 한 바가지 떠와 줬어. 스님이 물을 벌컥벌컥 먹고 나서 품속을 뒤져 조그마한 병 하나를 주며
“내 가진 것 이것밖에 없어 그러니 우습다 말고 받아 두시오. 쓸모가 있을 테니.”
받아보니 뭐 아무것도 안 든 빈 병이야. 그래도 스님 정성이라 여기고 병을 품안에 고이 넣어뒀지. 머리맡에 두고 잠자는데 노랫소리가 들려 눈을 뜨니 병 속에서 들려. 병 속을 들여다보니 이런 변이 다 있나. 조그만 병 속에 온갖 게 다 들어 있구나. 집도 있고 사람도 있고 마을도 있고 장터도 있고. 산도 있고 논밭도 있어. 개미 세상 같은데 농사꾼은 들에서 농사짓고 어부들은 물에서 고기 잡고 남자들은 씨름하고 아낙네들은 그네 뛰고. 하도 신기해서 보고 있으니 병 속에서 푸른 옷 입은 사내아이가 쑥 나오네. 병에서 나올 때는 개미만 하더니 나오자마자 스르르 커져서 금세 보통 사람 몸집만 해졌어. 아이가 절을 하더니 할아버지를 우리 마을에 모시러 왔다 하며 옷소매를 잡아끌어.
“내 이 큰 몸집으로 저렇게 조그마한 병 속에?”
그래도 따라갔더니 바람 산들 불고 음식이 그득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뿐이야. 병 속에서 며칠 쉬고 경치 구경하고 맛난 것 먹고 춤추고 노래하고 이제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니 사내아이가 병 밖으로 이끌어 주더래. 그런데 나와 보니 집이고 방이고 아무것도 없어. 풀만 무성한 쑥대밭이야. 허허벌판이더란 말이지. 동네방네 사람들한테 물어봤어.
“이곳이 아무 마을이 아니오?”
맞다네.
“그러면 아무개를 모르시오?”
은근슬쩍 자기 이름을 대 봤지.
“아, 그 이름이라면 우리 고조할아버지 적 사람이지요.”
병 속에서 며칠 지낸 사이에 바깥세상은 세월이 백 년도 더 흘렀나 봐. 할아버지는 그 뒤에도 오래오래 살아서, 아흔아홉하고도 아흔아홉 살을 더 살았더래. 그 병은 어찌 됐냐고? 그러고 보니 병도 온대간데없어졌네.
<지성이와 감천이>
지성이는 눈이 안 보이는 장님이고, 감천이는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야.. 지성이가 감천이를 업고 길 가다
“지성아, 여기 금덩이 하나 있다.”
하고 줍고 보니 한 개뿐이니 나눌 수 없어. 서로 양보하다가 그냥 두고 갔어. 도둑을 만나 가진 것 다 내놓으라 해서
“가진 것은 없지만 아래 옹달샘에 가면 금덩이가 있다.”
고 했어. 도둑이 두 아이를 나무에 묶어 두고 옹달샘에 가니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어. 화가 나서 칼로 구렁이를 내리치니 구렁이 몸뚱이가 두 동강 났어. 도둑이 아이들한테 돌아와 거짓말했다고 두 아이를 실컷 두들겨 패고 갔어. 두 아이가 이상해 와보니 금덩이가 둘이 있어.
“야, 금덩이가 두 개다!“
하고 막 걸어가려고 하다가 감천이가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쭉 펴졌어. 지성이도 그 소리 듣고
“어디 어디?”
하다가 눈이 번쩍 떠졌어.
<호랑이와 무서운 소나기>
“여보게, 인제 그만 놀고 집에 가세. 이러다가 호랑이라도 나오면 큰일 아닌가.”
호랑이가 숨어 들으니 아무도 그 말 듣는 사람이 없어
“여보게 그만 집에 가세. 이러다가 소나기라도 오면 큰일 아닌가.”
다른 사람 하나가 그런 말을 하니 모두 벌떡 일어나 부리나케 집으로 간단 말이야. 호랑이가 가만 보니까 소나기란 놈이 자기보다 더 사나운 놈이 틀림없어. 그래서 겁을 집어먹고, 날이 어두워지자 김 서방네 외양간으로 들어갔어. 소 잡아먹으려고. 마침 김 서방네 망나니 큰아들이 거기 왔어. 이놈이 노름판에서 돈을 다 잃고 나서 소를 끌고 가려고 온 거야. 시커먼 소가 두 마리나 있어 ‘새끼 낳았나?’ 하며 큼지막한 놈의 귀를 딱 움켜잡고 끌고 나왔어.
“이랴, 이놈의 소야, 어서 가자.”
“어이쿠, 이놈이 말로만 듣던 소나기로구나.”
큰아들은 호랑이 등에 훌쩍 올라타고 호랑이 배까지 한바탕 쥐어질렀네. 호랑이 걸음이 좀 빨라? 댓 걸음 뛰고 나면 십오 리를 가 버리거든. 새벽까지 달려서. 백두산 너머 만주 땅까지 갔어. 큰아들은 호랑이가 발길질을 해도 기운이 빠져 꿈쩍 안 하자 자기도 지쳐 한숨 잤어. 날 밝아 보니 소가 온데간데없어. 김 서방네 큰아들 아직도 만주 땅에서 소 찾아다닌다나.
<호랑이가 된 효자>
스님이 동냥 와서
“이 집에 틀림없이 병든 사람이 있을 텐데 이 병에는 산짐승 백 마리를 고아 먹어야 낫겠오.”
하거든. 아들이 산짐승을 잡기 시작했으나 한 마리도 안 잡혀.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네 정성이 지극하니 방도를 일러 주겠노라. 산에 가거든 동쪽 골짜기 큰 바위 밑을 파 보아라.”
그 말에 아들이 가서 바위 밑을 파봤더니 책 한 권이 나와.
‘이 책으로 어떻게 산짐승을 잡아?“
궁리 끝에 혹시나 하고 책을 펴서. 앞쪽에 씌ㅈ 워진 글자를 읽어 봤지. 갑자기 자기 몸이 스르르 커지더니 호랑이로 변하네. 그래서 산 짐승을 여러 마리 잡아, 어머니께 고아 드렸어. 아내가 보니 남편이 새벽에 나가 산짐승을 많이 잡아 와서 이상해서 문 뒤에 숨어 보니. 남편이 책을 펴 들고 중얼중얼 읽더니 금세 호랑이가 돼서 달려 나가지 뭐야.
“남편이 저 책 읽다가 흉측한 호랑이가 되는구나.”
하고 책을 집어다가 아궁이 속에 던져 넣어 버렸어. 그날 밤에 아들이 산짐승을 잡아 와 보니 책이 없거든.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어 ‘어흥 어흥’ 울면서 밤새 몸부림치다 새벽녘에 산에 가서 호랑이가 되어 평생 살았대.
<이야기허릿값 물어주기>
사랑방에 문을 펄쩍 열고 들어가니
“자네 오기 전에 참 중한 이야기 하던 참일세. 자네 바람에 이야기가 끊어졌네. 자네가 이야기 허리를 뚝 분질러 놨으니. 그 값 물어줘야겠네.”
“이야기허릿값이라니 그런 값도 있는가. 그 값이 얼마요?”
“백 냥이지.”
집에 돌아와 이불 뒤집어쓰고 드러누워 끙끙 앓는 아버지를 보고 아들이 대신 동네 사랑방에 갔어.
“네 아버지가 안 오고 왜 네가 와?”
“아버지는 산에 칡뿌리 캐러 갔어요. 마당에 금이 가 그것 꿰매려고요.”
“나 참, 칡뿌리로 마당 꿰맨단 소리, 털 나고 처음 듣네.”
“나도 이야기허릿값 물어준단 소린 머리에 털 나고 처음 듣네요.”
하며 망신을 줬지.
<염소 사또>
사또 하면 멋 부리느라고 “오호호 오냐” 해서 백성들이 재미있어하고 우스워했어. 어느 날, 뜰에 매어 놓은 염소가 고삐를 풀고 돌아다니다가 사또 방 안으로 들어갔어. 이때 한 백성이 송사를 적어 가지고 와 사또를 불렀지
“사도, 사또 안에 계십니까?”
염소란 놈이 사람 소리만 나면 소리를 내는 법이라
“오호오”
하자 사람이 아뢰었어.
“저는 백성 아무개이온데 억울한 일 송사 하러 왔습니다.”
“오호오.“
“종이에 사연 적어 왔는데 문틈으로 넣을 테니 거두어 주십시오,”
“오호호.”
종이를 문틈으로 들이미니까 염소가 웬 떡이냐 냉큼 주워 먹느라 부스럭 소리를 내어. 백성은 그게 종이를 펴서 읽어보느라고 내는 소린 줄만 알지.
“이제 다 읽어 보셨습니까?”
“오호오.”
“그럼 제가 얼마나 억울한지 아실 테지요. 판결 내려주십시오.”
“오호호.”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호호.”
“옳거니, 잘 처리해 주시겠다고요?”
“오호오.”
“그럼 저는 마음 놓고 가 보겠습니다.“
“오호호.”
이렇게 해서 백성은 마음 턱 놓고 집에 갔어. 우리 고을 사또 송사 참 잘보더라고 소문 내니까 소문이 짜하게 멀리멀리 퍼졌지.
<과거에 급제한 바보>
아이 옷에 벌레가 붙여 기어 다녀서 아버지가 가르쳐 줬지
“애야, 벌레가 옷에 붙으면 손으로 탁 때려서 잡아라,”
며칠 뒤 낮잠 자는 아버지 등짝에 파리가 붙어서 아들은 손바닥으로 누워 있는 아버지 등짝을 탁 때려서 잡았어.
“애야, 그럴 때는 부채로 살랑살랑 바람을 내어 쫓는 법이다.”
며칠 뒤 이웃집에 불이 났어. 동네 사람들이 불을 끌 때 불 속에 검은 불티가 많이 날아다니거든. 그게 마치 파리 날아다니는 것 같단 말이야. 아들은 당장 부채를 가져와 설렁설렁 부쳤어. 말 그대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다 몰매를 맞았지.
“얘야, 그럴 때는 물을 끼얹는 법이다.”
며칠 뒤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는 걸 보고 불 난 줄 알고 물을 한 동이 길어와 부엌 아궁이에 대고 끼얹었어.
아버지가
“너처럼 하기도 쉽지 않으니, 그것도 남이 따르지 못할 재주로구나.”
하고서 그날부터 글을 가르쳤어. 그래서 과거 봤는데 급재 했어. 바보짓을 해도 야단치지 않고 그걸 다 재주로 봐주었으니까.
※두름성(일을 주선하거나 변통하는 솜씨)- 없다고 나무라며 고치려고만 들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못했겠지.
<시어머니와 며느리>
홀시어머니가 외동 며느리 데리고 사 는데 사이가 참 나빠. 스님이 꾀를 내었어
시어머니한테
“소승이 보아하니 늙은 보살님은 못된 며느리 만나 고생이 많소. 이제부터 며느리 만나면 반드시 앞니를 보여 천 번만 보이면 며느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져 버릴 겁니다. 며느리한테는
“못된 시어머니 만나 고생이 많소. 이제부터 시어머니 볼 때마다 두 손을 맞잡고 고개 숙여 정수리를 보이시오. 정수리를 천 번만 보이면 시어머니는 잠자다가 저세상으로 가 버릴 겁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만나면 입을 벌려 웃어 앞니를 보이자니 입을 안 벌릴 수 있나.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시어머니한테 방자질([명사-남이 못되거나 재앙을 받도록 귀신에게 빌어 저주하거나 그런 방술(方術)을 쓰는 일.]하느라고, 시어머니를 만나면 까딱하고 고개를 숙여 절을 하는 거지. 정수리를 보이자니 절을 까딱 안 할 수 있나. 시어머니가 그런 며느리를 가만히 보니 고마운 기분이 들어 며느리도 웃는 시어머니를 보니 서로 정이 들어 오순도순 시근시근 잘도 지내게 됐다네.
<재주 좋은 신랑감 구하기>
처녀한테 한 신랑감이 찾아와 나는 비 피하는 재주가 있다고 했어. 그때 다른 총각도 와서
“나는 벼룩 잡아서 머리카락으로 오라를 짓는 재주 있다 .”
했어.
“그게 무슨 재주여?”
옥신각신하다가 총각 둘 가운데 처녀가 끼어들어 말리다가 처녀 몸이 공중에 붕 떠서 바깥마당으로 휙 날아가 척 떨어졌지. 그런데 딱 떨어지고 보니 폭신해. 자기가 광주리에 들어가 있어. 광주리를 웬 총각이 두 팔로 안고 있어. 총각 왈
“신랑감 구한다고 해서 왔더니 마침 당신이 공중에 붕 떠서 날아와 받긴 받아야 할 텐데 그냥 받으면 다칠 테고, 내가 뒷산 대나무밭에 가서 대나무를 베어다가 쪼개서 광주리를 엮어 당신을 받은 거요.”
그 말에 그 총각과 결혼해서 잘 살았다나.
<토란 캐러 온 꿩>
뀡이 겁이 많아서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풀숲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벌벌 떨거든. 울기는 ‘캐록 캐록’하고 울지. 옥황상제 딸이 병에 걸려 용하다는 의원을 다 찾아봤으나 소용이 없어, 동해바다 청거북이가 와서 보더니
“이 병에는 인간 세상에 나는 토란을 캐어다 먹이면 낫겠습니다.”
하자 옥황상제가 둘러보니 뀡이 오색 깃털로 단장하고 잔뜩 뽐내며 서 있어. 꿩 보고 세상에 가서 토란을 캐어오라 했어. 뀡이 세상에 나가보니 구경거리가 많아 마음을 쏙 빼앗겼어. 토란 생각은 잊고 그새 옥황상제 딸은 병들어 죽었어. 옥황상제 볼 낯이 없어진 꿩은 내처 땅에 눌러앉아 살면서 하늘을 못 쳐다보고, 납작 엎드려 나무 사이를 설설 기어 다니기만 하는 거지. 꿩이 산속에 숨어 잔솔밭을 설설 기어 다니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래.
“캡니다. 캡니다.” 하는데 토란을 캐고 있으니 벌주지 말라는 말이지. 그 소리가 ‘캐륵 캐륵’하는 것처럼 들리는 거래.
<도토리 신랑>
색시가 시집가서 신랑을 보니 밤 껍데기를 배 삼아 타고 성냥개비로 노를 저으며 뱃노래를 부르는 거야. 신랑을 젓가락으로 꺼내어 샷 자리 위에 올려놨어. 잠자는데 ‘영차‘ 소리가 나서 보니 벼룩하고 씨름을 하는 거야. 젓가락으로 집어내어 이부자리에 곱게 뉘어 줬어. 일어나보니 신랑이 없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보니 ’에취 에취!‘ 재채기 소리가 나 보니 신랑이 색시가 흘린 눈물에 옷이 젖어 감기가 든 게지. 젓가락으로 들어내어 옷 갈아입히고 조각 이불을 덮어줬어. 그 뒤로 색시는 신랑한테서 한시도 눈을 안 떼고 보살폈데. 장 보러 갈 때도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고 빨래하러 갈 때도 바구니 안에 넣어 가지고 가고.
<세상에 없는 꽃 구월 꽃>
임금이 백두산 금강산 경치를 생생하게 그려 오라 하자 신하가 그림 잘 그리는 이를 찾아 나섰다가 수 잘 놓은 두 아낙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산골 사는 올케와 시누이를 찾아갔어. 그 둘은 수놓으면 산짐승이 뛰어다니는 것 같고, 물을 수놓으면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 같아.
“백두산 금강산으로 가서 그 모습을 생생하게 수놓아 오시오.“
부탁해서 수놓기 시작했는데 가운데 꼭대기에 천지를 수놓고, 사방으로 돌아가며 숲과 바위를 수놓고, 사이사이 날짐승 길짐승을 수놓고, 마지막으로 한쪽 귀에 두만강을 수 놓았어. 색실 삼천 타래로 구천 번 바늘땀을 내어 한 달 만에 수를 다 놨어. 두 사람이 수 놓은 것을 가져와 보
니 꽃이 없어 아쉬웠어. 그림 가장자리에 돌아가며 일 년 열두 달 피는 꽃을 수놓았어. 그런데 구월 꽃이 없어 마음속으로 생각해서 꾸며 낸 꽃을 수놓아 보냈더니
”여봐라. 이 구월 꽃은 무슨 꽃인지 두 아낙에게 물어 꽃 한 송이 따 달라 하여 가져오너라.“
하는 전갈을 받은 아낙은 산신령님께 빌었어. 금강산 백두산 신령이 이 소리를 듣고 둘이 의논했지.
“여보게 금강산 신령, 수 잘 놓는 올케 사정이 딱하니 세상에 없는 꽃을 세상에 있게 해주면 되지 않겠나?”
그래서 수 놓은 모양대로 꽃을 만든 다음 생기를 불어넣었더니 꽃들이 살아나 온 산에 퍼졌지. 그때부터 온 나라에 구월 꽃이 피게 됐고 사람들은 그 이름을 국화꽃이라 지었단다.
<천 냥짜리 수수께끼>
어떤 사람이 형제 중에 큰아들만 귀여워하고 작은아들은 천덕꾸러기로 키우네. 건넛마을 정승이 천 냥짜리 수수께끼 내기를 하는데 알아맞히면 돈 천 냥을 주고, 못 알아 맞히면 천 냥을 받는다는 거지. 아버지가 큰아들을 데리고 정승 집에 갔더니
“오다가 우리 집 문 앞에 큰 느티나무를 봤으면 잎이 모두 몇 개나 되느냐?”
물어 잘 모르겠다 하자 천 냥을 내어놓아라 했지. 돈이 없다하자 삼 년 동안 머슴을 살라 했지. 아버지가 끙끙 앓고 있자 작은아들이 갔어.
정승은 또 같은 수수께끼를 냈어.
“우리 집 문 앞에 있는 큰 느티나무 잎이 모두 몇 개나 되느냐?”
“그러면 대감 머리카락은 모두 몇 올이나 되겠습니까?”
정승이 화를 버럭 내며
“내가 그 많은 머리카락이 몇 올이나 되는지 어찌 알겠느냐?”
“대감 댁 문 앞에 느티나무는 제가 오늘 처음 본 것이지마는 대감 머리카락은 대감께서 한평생 머리에 얹고 다니는 것 아닙니까? 한평생 머리에 얹고 다니는 머리카락 수도 모르는데 오늘 처음 본 나뭇잎 수를 어찌 알겠습니까?”
“아이구 내가 졌어. 돈 천 냥을 내주마.”
“돈 천 냥은 그만두고 형이나 돌려주십시오.”
동생은 머슴 살던 형을 구해 집에 돌아왔데. 천덕꾸러기 동생이 똑똑한 형을 구한 거지.
<쌀 한 말로 석 달 나기>
아들 삼 형제가 있었어. 영감이 재산을 물려줄 요량으로 야무진 며느리한테 살림을 물려주고 싶어 쌀 한 말씩 주고 석 달을 버티라고 했어. 큰 며느리는 아껴 먹을 궁리로 쌀을 한 홉씩 봉지에 넣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아 놨어. 하루에 한 봉지씩만 밥해 먹었어. 둘째 며느리는 쌀 아닌 다른 걸 먹고 산에 들에 가서 먹을 것을 구하고 풀뿌리, 나무 열매. 물고기도 잡고 해 먹었어. 막내며느리는 첫날 쌀을 퍼내 떡을 해서 장에 가 팔아 돈을 좀 남겼어. 그렇게 돈이 모이자 또 쌀 한 말 사고 고기 사고 국도 끓여 먹었어. 석 달이 지나 시아버지가 와보고
“옳거니, 이제 보니 막내며느리 궁량(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함.)이 제일이로군”하고 재산을 모두 막내며느리한테 물려줬어. 막내며느리는 재산을 늘려 큰집, 둘쨋집에도 나눠 주고 우애 있게 살았다네.
<나도밤나무다>
어느 날 시주 받으러 온 스님이 아이를 보고 열다섯 살을 못 넘기고 호랑이한테 잡아먹힐 팔자라네. 그래서 방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니
“뒷산에 밤나무 천 그루를 심어라. 한 그루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딱 천 그루를 심어라. 정성으로 잘 키우면 그 공덕으로 아이를 살릴 게야.”
그래서 아들이 열다섯 살 되는 날 천둥소리가 나고 호랑이가 집 앞에 턱 나타났어.
‘아이고, 올 것이 왔구나’ 하는데 호랑이가 재주를 펄쩍펄쩍 세 번 넘더니 늙은 중으로 변하는 거야
“순순히 아들을 내놓아라.”
하는 거야.
“뒷산에 밤나무 천 그루 심어 놓았으니 아들 목숨 대신 그 공덕을 가져가거라.”
했더니 호랑이가 그 말끝에 흠칫 놀라더니 같이 가서 세어보자 하네.
“세고 세어도 구백아흔아홉 그루야.”
하며 호랑이가 아들을 잡아가려는데 어디서
“나도밤나무다.”
하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목을 빼고 요렇게 들여다보니, 아 글쎄 아직 키가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밤나무가 고기에 서 있네. 하도 작아서 언뜻 보면 눈에 띄지도 않아. 그래서 셀 때 놓쳤던 모양이야. 그래서 천 그루가 되자 호랑이도 펄쩍펄쩍 재주를 세 번 넘고 짐승 모습이 돼서 순순히 물러가더래. 그래서 아들 목숨을 살렸지.
<이 박 딸까요. 저 박 딸까요?>
신랑이 꼬마 신랑이라 일곱 살짜리 어린애인데 열아홉 살 색시가 밥을 푸면 누룽지 긁어 달라 조르고, 빨래하러 가면 물고기 잡아 달라고 조르고, 다리 아프다고 업어 달라 조르고. 심심하면 놀아달라고 조르고, 졸리면 재워 달라고 졸라. 점심때가 돼서 밥 소쿠리를 들고 가는데
“색시야. 잠자리 잡아 줘.”
색시가 화가 나서 신랑을 도랑에 떠밀어 버렸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됐어. 어머니가 물으니 신랑이
“붕어 잡으려다 도랑에 빠졌어요.”
하는 거야.
“색시야 땅따먹기하자.”
색시가 바빠 정신없는데 지분([동사] :짓궂은 말이나 행동 따위로 자꾸 남을 귀찮게 하다.)되어 신랑을 외양간에 집어넣어 버렸어. 아버지가 밖에서 들어와 보니 아들이 외양간에 들어가 있어. 왜 거기 있냐 물었더니
“외양간 치려고 들어왔어요.”
하는 거야.
“너는 어려서 못 친다 나중에 더 크면 쳐라.”
했어 넘어갔어. 그다음에도 꼬마 산랑은
“색시야. 나 좀 업어 줘. 나 좀 재워줘.”
하는 거야. 이번에 색시가 화가 나서 신랑을 달랑 들어 지붕 위에 올려놨어. 아버지, 어머니가 들일 갔다 오다 보고 놀랐지
“박 따려고 올라왔어요. 이 박 딸까요. 저 박 딸까요?”
“그래. 잘 익은 걸로 따라.”
세 번이나 그러니 색시가 탄복하고 감동해서 혼내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고 사이좋게 잘 살았더래.
<아버지를 살린 불효자식>
아버지가 돌배를 따려고 아들을 밑에 두고 올라가서 배를 다 따고 내려오려는데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네.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손에는 진땀이 바작바작. 다리는 후들후들. 등에는 식은땀이 줄줄. 나무둥치를 부둥켜안고 벌벌 떨고 있는데 밑에서 쳐다보던 아들이 성을 버럭 내며 소리 지르네.
“에잇 바보 같은 영감탱이. 내가 올라가겠다고 해도 부득부득 제가 올라가더니 이게 무슨 꼴이람. 죽든지 살든지 난 모르겠으니 맘대로 해요!”
험한 말에 아버지가 분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조심조심 나무에서 내려왔지.
“아버지 고생하셨지요? 용서하십시오,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기에 아무래도 정신을 잃으실 것 같아 일부러 분을 돋우어 드리려고 그랬습니다.“
<가난한 선비와 벼 이삭>-1인 2역 목소리 변사 선비-
가난해서 아궁이엔 풀이 나고 굴뚝엔 거미줄을 칠 지경. 아내가
“여보, 이러다가 우리 식구 다 굶어 죽겠소. 어린 아들딸 굶는 것 둘째 치고. 늙으신 어머니 굶는 것 차마 못 보겠소. 오늘 밤엔 들에 나가 남의 논에 서 있는 벼 이삭이라도 두어 송이 잘라 오오.”
밤에 선비가 낫을 들고 나가 들판에서 아주 실하게 고개 처진 벼 이삭을 보고 하늘 보고 하소연해
“하느님,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우리 집에 다섯 식구가 있는데, 며칠째 밥 한술 못 먹고 온 식구가 쫄쫄 굶어요. 젊은 우리 내외 굶는 것 셋째치고, 어린 아들딸 굶는 것 둘째치고, 늙으신 어머니 굶는 것은 차마 못 봐요. 그래서 남의 논에 익은 벼 이삭이나 두어 송이 잘라 가려고 왔습니다.”
하더니, 또 하늘에 대고 물어봐
“그러니 이 벼 이삭을 잘라 갈까요. 말까요?”
혼자 한숨 쉬더니 목소리를 싹 바꾸어 큰 소리로 호령해
“네 이놈 안 되느니라. 남이 애써 가꾼 곡식을 한 송인들 축내서 되겠느냐?”
혼자 묻고 답하다가 빈손으로 털레털레 왔어. 이튿날 밤에도 그러다가 갔어. 사흘째 되는 밤에도 하늘을 보고 혼잣소리하는 거야.
“하느님, 오늘도 나왔습니다. 잘라 갈까요. 말까요?”
“네 이놈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서 돌아가거라.”
이때 논 임자가 논에 나왔다가 그 모습을 봤어.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묻고 대답하며 빈손으로 돌아가. 대강 눈치챘지
“거참 마음이 곧은 사람이로구나. 온 식구가 굶어 죽게 됐는데도 남의 것이라고 손을 못 대다니. 저런 사람을 안 도와줄 수 없다.‘
하고 그날 밤에 몰래 쌀 한 가마니를 져다가 선비네 마당에 갖다 놨어. 선비는 하늘 보고
“하느님 참 고맙습니다. 우리 식구 굶어 죽지 않게 곡식을 내려주셨군요. 내 이다음에 이자까지 붙여 꼭 갚겠습니다.”
이러고 나서 목소리를 바꾸어 호령하는 거야.
“그것으로 우선 식구들 허기나 면케 하여라. 그리고 다음부터는 선비네 뭐네 하면서 방에 죽치고 앉아 글만 읽을 게 아니라 일해야 하느니라. 궂은일 힘든 일 가리지 말고 부지런히 일해서 식구들 굶기지 말렸다.”
또 목소리를 바꾸어 대답하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쌀로 밥해서 온 식구 배불리 먹고, 그다음부터 참말로 궂은일, 험한 일 안 가리고 부지런히 일했다네. 남의 땅 빌려 농사도 짓고 밑천 장만해서 장사도 하고 그래서 이듬해에 쌀 한 가마니에 아자까지 붙여 두 가마니를 논 임자네 집에 갖다 줬데. 아무렴. 밤에 몰래 그 집 마당에 갖다 놨지. 차차 살림이 불어서 나중에 큰 부자가 돼서 잘 살았더란다.
<피리 부는 눈먼 아이>
어머니가 죽어 계모가 들어왔는데 아버지는 나라에 죄를 짓고 감옥에 간 사이 계모가 의붓 아들을 미워해서 쫓아냈지. 쫓아내어도 빙빙 돌다 집으로 들어가고 하니 화가 나서
“애야, 너희 아버지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귀양살이가 힘들어서 큰 병이 났으니 너만한 아이 눈을 먹어야 낫는다니 이를 어쩌면 좋으냐?”
아들은 그 말을 곧이듣고, 제 왼쪽 눈을 빼 아버지에게 보내라며 계모에게 줬어. 계모는 어디론가 보내는 척하고 슬그머니 상자 안에 넣어 놨어. 며칠 있다가 또
“눈 하나를 먹고 병이 많이 나았단다. 하나를 더 먹으면 말끔히 낫겠다네.”
이번에도 아들이 당장 오른쪽 눈마저 빼서 아버지한테 보내라고 줬어. 계모는 그 눈도 받아 무명 헝겊에 사 슬그머니 상자 안에 넣어 놨지. 그러고는 의붓아들을 강가에 데리고 가 물속에 밀어 넣었어 아들은 눈이 안 보여 흘러가다가 용을 써서 땅으로 기어 올라갔어. 대나무 숲이라 대나무 대롱으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지.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오르거든. 그 소리가 얼마나 구슬프겠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듣고 다 눈물을 흘릴 만큼이었지. 이게 소문이 났어. 눈먼 아이가 피리 잘 분다는 소문. 날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대나무 숲으로 모여들었어. 저마다 밥도 주고 옷도 주고. 아이는 굶어 죽지도 않고 얼어 죽지도 않고 용케 살아남았어. 마침 아이 아버지가 귀양살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 소문을 들었어. 대체 어떤 아이가 얼마나 피리를 잘 불기에 그러나 하고 대숲을 찾아가 보니 자기 아들이야. 얼싸안고 이야기 해 보니 다 계모가 꾸며 낸 거짓말이야. 당장 집에 가 아이는 문밖에 서 있고 아버지 혼자 안에 들어갔어
“아이는 왜 집에 없소?”
“아이고, 말 마시오. 나 보기 싫다고 집을 나갔소. 찾아서 데려다 놓으면 또 나가고 이러지 뭐요. 이제는 힘이 빠져 더 찾지도 못하겠소.”
아버지가 어이가 없어 한숨만 쉬다가 방구석을 보니 못 보던 상자가 보여.
“저 상자에 뭐가 들었소?”
“아이가 들어오면 달여 먹이려고 산삼 녹용 넣어 놨지요.“
달려들어 덜컥 열어 보니 눈 두 개가 무명 헝겊에 싸여 있어. 그런데 눈이 하나도 상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그대로 있더래. 아들을 불러 하나씩 눈 있던 자리에 넣었더니, 두 눈이 다 제자리에 들어가 옛날처럼 환하게 잘 보이더래. 아버지는 계모를 멀리 남해 바다 섬에 보냈어. 그 섬에는 사람은 아무도 안 살고 구렁이만 산대.
<돌미륵과 장기 두고 장가간 노총각>
돌미륵에 이끼가 잔뜩 끼고, 풀이 여기저기 나고, 떨어진 나뭇잎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본 총각이 청소하고 장기판을 들고 왔어.
“미륵님, 심심하실 텐데 저하고 장기나 한 판 두시지요.”
하고 저 혼다 둘이 두는 것처럼 한 번은 제 것을, 한 번은 미륵님 것을 두고 보면 제가 이길 때도 있고, 미륵님이 이길 때도 있고 이랬어.
하루는 총각이 미륵님 앞에 장기를 벌여 놓고
“미륵님 오늘은 내기 합시다. 만약 미륵님이 이기면 제가 떡을 한 말 해다가 제를 올려 드릴 터이니, 만약 제가 이기거든 장가 좀 보내주십시오.”
하고는 장기를 뒀어. 뭐 자기 차례라고 더 잘 두는 법도 없이 정직하고 공평하게 뒀는데 끝에 가서 자기가 덜컥 이겨버렸어.
“미륵님, 이 판은 제가 이겼으니 저를 장가보내 주시는 걸로 알고 그만 가겠습니다.”
하고 집에 와 자는데 꿈속에 미륵님이 나타나네
“내기 장기를 둬서 약속대로 너를 장가보내 주겠다. 지금 당장 일어나서 동쪽 길로 가거라. 가다보면 너를 가다리는 색시가 있을 테니 장가들도록 해라.”
총각이 동쪽 길로 갔더니 나무 밑에 웬 색시가 보따리를 안고 서 있어
“꿈속에 미륵님이 나타나서 이리로 가 보라 해서 왔습니다.”
“나도 꿈속에 미륵님이 나타나서 이리로 가 보라 해 왔소이다.”
그 자리에서 그냥 찬물 한 그릇 떠다 놓고 혼인했지. 그래서 참 재미나게 살았어. 그 뒤 장가 못 간 노총각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돌미륵하고 장기 두자고 줄을 섰으니 난리는 난리지. 다 장가갔느냐고? 못 갔어. 제 차례엔 잘 두고 미륵님 차례에는 대강 두고. 이러니까 미륵님이 괘씸해서 장가를 안 보내 줬대.
<흰소리 잘하는 젖머슴>
머슴이라야 나이 여남은 살 먹은 아인데 그런 머슴을 젖머슴. 일 잘하고 힘 잘 쓰고 나이깨 먹은 머슴은 큰 머슴. 땔나무나 꼴이나 배는 머슴은 꼴머슴. 바쁠 때 한 달 두 달 잠깐 와서 일 거드는 머슴은 달머슴. 일은 잘하면서 설레발([명사: 몹시 서두르며 부산하게 구는 행동]만 치고 도는 머슴은 선머슴.
이 머슴아이가 나이는 어려도 주변 좋고 넉살 좋아 의뭉스럽다.[형용사] 보기에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한 데가 있다. [유의어] 능청스럽다, 엉큼하다, 음침하다) 어른 빰칠 만했어. 하루는 영감이 머슴아이에게 장난을 걸었어
“너 거짓말 한마디 해 보아라.”
“아니. 나 거짓말할 줄 몰라요. 나 지금 바쁜데 뒷산에 꿀 뜨러 가야 한단 말이에요.”
“나하고 가면 안 되겠나?”
“그러세요. 나 마당 쓸 동안에 꿀 담을 항아리나 찾아 두세요.”
“오냐, 그러마.”
머슴이 앞서고 주인이 뒤따라가는데 멀쩡한 길을 두고 험한 데로만 가네. 벼랑도 타고 바위도 기어오르고. 이러니 따라갈 수가 있나. 기를 쓰고 산꼭대기에 올라 보니 그새 머슴이 온데간데없어. 아, 이놈이 저 혼자 꿀 뜨러 갔나 하고 이리저리 찾아다녔지. 그새 머슴은 잽싸게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갔어. 방아 찧는 주인 할멈을 보고 다짜고짜 고함을 질러댔지
“안방마님, 큰일 났어요. 아, 글쎄 영감마님이 뒷산에 꿀 뜨러 갔다가 벌에 쏘여서 지금 숨이 오락가락하고 있어요.”
“뭐라고? 큰일이구나. 어서 가 보자.”
온 식구를 불러 뒷산으로 줄레줄레 올라가는데 머슴은 지름길로 올라가 주인 영감을 찾았지
“영감님, 큰일 났어요. 아까 꿀 뜨러 가다가 보니 마을에서 ‘불이야!’ 하지 뭐예요. 얼른 내려가 봤더니 영감마님 댁에 불이 나서 지금 기둥만 남고 다 타 버렸어요.”
영감은 허겁지겁 내려가고 주인 할멈과 식구들은 허둥지둥 올라오다 중간에 딱 마주쳤지
“아, 영감 벌에 쏘여 숨이 오락가락한다더니 이게 어찌 된 일이요?”
“아, 할멈, 집에 불이 나서 기둥만 남고 다 타버렸다니 그게 참말이오?”
가만히 보니 이게 다 머슴아이 장난이지 뭐야. 그런데 이걸 뭐 야단치려니 야단칠 수 있나?. 혼내려니 혼 내 줄 수 있어? 자기 입으로 거짓말 한 번 해보라 그렇게 성화를 대놓고 인제 와서 무슨 말을 해? 그냥 허허 웃고 말았지.
<도깨비 임금이 된 나무꾼>
도깨비라고 하는 것이 본디 저더러 누구냐고 물으면 김 서방이라 하고, 사람을 만나면 씨름하자고 그런다 거든. 그때 씨름을 안 하고 도망가면 끝까지 쫓아와서 귀찮게 한다지. 사람이 도깨바랑 씨름하니 금방 졌어. 내리 세 판을 지고 보니 오기가 생겨
“딱 한 판만 더 하자.”
하며 왼쪽 다리를 탁 걸었더니 도깨비가 썩은 나뭇등걸 쓰러지듯이 털썩 쓰러져. 본디 도깨비하고 씨름할 때는 왼쪽 다리를 걸면 이긴다는 말이 있거든. 도깨비가 넙죽 절을 하며 품속에서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내 바쳐. 첫 장을 넘기니까
“예. 예. 왔습니다.“
하면서 도깨비 한 놈이 썩 나타나서 넙죽 절을 하네. 둘째 장을 턱 넘기니까 또 그러는 거야. 끝에 나타난 놈이 금 모자를 씌어주더니
“임금님, 오늘은 서울 구경 갑시다.”
하고는 여럿이 둘러메고 나무꾼을 그냥 떠메고 가는 거야. 공중으로 올라가서 둥둥 떠 날아가 서울까지 갔지. 구경 다 하고 도로 떠메고 와서 처음 자리에 데려다주더라네. 다음 날에도 나무꾼이 장에 나무를 팔러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또 도깨비를 만났어.
“오늘은 평양 구경 갑시다.”
그다음 날은
“오늘은 금강산 구경 갑시다.”
나무꾼은 팔자에 없는 도깨비 임금이 돼서 날마다 도깨비한테 떼매여 이곳저곳 구경 다니면서 지냈단다. 조선 팔도 장 구경까지 안 해본 구경이 없었더래. 죽을 때까지 그렇게 구경 다니면서 지냈다네.
<세 가지 보물>
집에서 쫓겨난 아우가 스님을 만나
“스님, 그 바랑을 제가 메고 가겠습니다.”
하며 따라가 절에 눌러살면서 스님 뒷바라지를 했어. 한 삼 년 지나니까 스님이 아우를 불러 세 가지 선물 줬어
“그동안 애 많이 썼다.”
보니 선물이 방석, 보자기, 잣가락이야. 걸어 다니다가 다리가 아파 좀 쉬려고 방석을 길가에 턱 폈어. 그랬더니 방석이 스르르 변하더니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되지 뭐야. 이번에는 보자기를 펴서 슬슬 흔들어 봤어. 그랬더니 보자기에서 갑자기 고운 옷이 꾸역꾸역 나와. 이번에는 젓가락을 쥐고 탁탁 두드려 봤더니 온갖 맛있는 음식이 줄줄이 나와. 떡 하니 상이 차려지더래. 덕분에 부자가 되어 잘 살게 됐어. 형이 이걸 보고 샘이 났어. 저도 재산을 모두 팔고 집을 나섰어. 재산 판 돈을 불쌍한 사람들한테 안 주고 그걸 항아리에 넣어 땅속에 묻어 놓고 나갔지. 스님을 찾아갔더니 스님은 없고 쑥대밭이 되어 있더래. 고향에 돌아와 보니 그새 땅에 묻어 놓은 돈을 도둑이 몽땅 훔쳐 가 버렸더라나. 다행히 아우네가 잘사는 덕분에 거기에 얹혀서 밥은 안 굶고 살았다지.
<근심 걱정 없는 노인>
아들딸 여럿 낳아 모두 병 없고 탈 없이 잘 키웠어. 임금이 이 소문 듣고 걱정 없는 노인을 시험해보려고 노인을 찾아와 구슬을 주고
“이 구슬은 세상에 둘도 없는 진귀한 구슬일세. 이걸 줄 터이니 간수 잘하게. 언제든 내가 부르면 도로 가져와야 하니 잃어버리면 큰 벌을 받을 거야.”
하고 가서 신하더러 노인을 배에 태워 강을 건너기 전에 노인 몰래 구슬을 훔쳐 강물 속에 던져 버려라고 했어. 사흘 뒤에 임금이 구슬을 가지고 대궐로 오라 했어. 아버지가 끙끙 앓자 아들이 궁리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어.
‘옳지. 잉어를 잡아다가 고아 드리면 아버지가 드시고 기운을 차릴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하고 잉어를 잡으러 강에 갔어. 낚시질해서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잡았지. 집에 가져가서 배를 갈랐더니 아버지가 잃어버린 바로 그 구슬이 하나 나오지 뭐야. 노인은 잠깐의 근심걱정에 싸였지만, 하루가 못 가서 다 풀어진 셈이잖아. 사흘 뒤에 임금 앞에 불려가 구슬을 턱 내어놓거든,
“과연 그대는 근심 걱정 없는 복 많은 사람이야.”
그 뒤로도 이 노인은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오래오래 편안하게 잘 살았더란다.
<가짜 웃음으로 도둑 잡은 농사꾼>
한 사람이 도둑에게 잡혔어. 험상궂은 도둑들이 돈을 빼앗고 종으로 부려 먹으려고 데려가네. 가면서 곰곰이 생각하니 참 원통한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더라고. 번개같이 좋은 생각이 딱 떠올라. 큰 소리로 웃었어
“아니, 이놈이 갑자기 실성 했나. 웃기는 왜 웃어?”
“내가 달리 웃는 게 아니라. 이제는 살았다 싶어 웃소이다. 들어보시오. 내가 나라에 큰 죄를 짓고 쫒겨 다닌 지 오래요. 누구든지 나를 잡아, 관가에 바치면 큰 상을 받게 되지요. 그동안 쫓겨 다니느라고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는데, 이제야 댁들을 만나 살길이 열렸으니 어찌 마음이 안 놓이겠소?”
도둑들이 들어 보니, 이 사람을 데려가 종 부리기보다 관가에 데려가 바치는 게 더 나을 것 같거든 그래서 관가로 데려갔어. 관가에 가자마자 이 사람이 다 말했어. 도둑 잡으려고 꾀를 썼노라고 말이야. 도둑들은 꼼짝없이 잡히고 이 사람은 풀려났지. 빼앗겼던 돈도 고스란히 되찾고
<흰소리로 돈 천 냥 번 총각>
부잣집 영감한테 딸이 하나 있어서 사윗감을 고르는데 거짓말 잘하는 사람을 찾는다나. 가난한 총각이 나서 부잣집 영감을 찾아갔어.
“예전에 우리 집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입니다. 울안이 엄청 넓었습니다. 처녀가 앞문으로 들어가서 집 안을 가로질러 뒷문으로 나오면 할머니가 돼 있었지요.”
“예끼. 이놈아. 삼남에서 제일간다는 우리 집도 앞문 뒷문 사이가 두 장이 못 되는데 네놈 집이 그리 넓었다고 그게 말이 되느냐?”
“예, 그럼 제가 거짓말 한마디 했습니다.”
영감이 제 입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으니 할 말이 없어 끙하는데 두 번째 거짓말을 했어
“또 그때 우리 집에는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소가 있었는데 한족 뿔 위에 앉아서 피리를 불면 다른 쪽 뿔 위에 있는 사람이 춤을 췄는데 서로 자리를 바꾸려면 한나절이 걸렸지요.”
“에끼 이놈아, 우리 마을 끝에서 끝까지 가도 반나절이 안 걸리는데, 네 놈의 소가 그래. 우리 마을보다 더 컸단 말이냐. 그따위 새빨간 거짓말이 어디 있어?“
“예. 그럼 제가 거짓말 두 마디 했습니다.”
부자 영감이 그제야 ‘이크 뜨거라!’ 정신 번쩍 들었어. 한마디만 더 들어주면 가난뱅이 총각을 사위 삼아야 할 판이라 총각은 세 번째 거짓말을 했어.
“우리 집이 그렇게 큰 부자였으니 사람들이 돈을 많이 꾸어 갔지요. 그때 영감님께서도 형편이 어렵다며 우리 돈 천 냥을 꾸어 가졌지요? 이제 그 돈 돌려주십시오.”
안 꾸었다고 하면 거짓말 세 마디를 다 들어준 셈이니 꼼짝없이 가난뱅이를 사위 삼아야 할 판이라 돈 천 냥 내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그때 틀림없이 돈 천 냥을 꾼 적 있었지. 이제 돌려주겠네.”
하고 돈을 내줬다는 거야. 이렇게 해서 가난뱅이 총각이 거짓말 세 마디로 돈 천 냥을 벌어서 잘 살았다는 얘기.
<가짜 사주팔자>
아들이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점쟁이한테 가서 점을 쳤더니 아들이 평생 빌어먹을 팔자라고 해서 걱정하니 아들이 팔자땜을 하고 오겠다며 집을 나갔어. 아들은 집을 나가자마자 점쟁이를 찾아가서 부탁했지
“지금 팔자땜 하러 가는 길이니 제게 가짜 사주팔자 하나 써 주십시오. 반드시 벼슬하고 부자 되어 잘 살 팔자라고요.”
그걸 받아 옷섶에 넣고 길을 떠났지. 떠돌다 마을 글방에 가서 마당 쓸고 부엌일 하며 동냥글을 얻어 배웠지. 워낙 부지런하고 곰살궂게(태도나 성질이 부드럽고 다정하고 친절하다. 꼼꼼하고 자세하다) 구니까 글방 훈장도 내쫒지 않고 그냥 눌러살게 놔뒀어. 어깨 너머로 글을 배우게 해줬는데 애가 만날 옷섶을 꼭 쥐고 애지중지하는 게 궁금해 아이가 잘 때 보니 큰 벼슬하고 부자 되는 사주팔자가 씌어 있어, 그 후 글공부도 제대로 가르쳐 주고 밤에는 남몰래 한 더 가르쳐 주고 해서 노자까지 두둑하게 줘 가지고 서울에 과거 보러 보냈어. 과거에 급제 하니까 글방에서 경사가 났어. 그제야 훈장이 아이한테 실토를 했어.
“옷섶에 든 사주팔자를 봤어. 그때 이미 네가 크게 될 줄 알았다.”
아이도 훈장한테 가짜 사주팔자를 품고 집 떠난 일을 세세하게 말해줬지. 어쨌거나 과거에 급제까지 했으니 탓 할 리 있나. 도리어 용기 있다고 칭찬을 해 주지. 풍악을 울리며 집에 돌아가니 집에서는 더 큰 경사가 났어. 몸 성히 돌아온 것만 해도 고마운데 과거에 급제해 벼슬까지 얻어왔으니. 이걸 보면 사주팔자라고 타고난다고 하지만 사람 힘으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나 보네.
<두 벌 나락을 거둔 농사꾼>
가을에 벼를 베고 나면 베고 난 그루터기에서 또 싹이 올라오는 것을 두벌 나락이라 해. 선녀가 내려와 논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물어봤어.
“무슨 일로 가을에 벼를 베고 나서 또 새로 농사를 시작하세요?”
“벼 베고 나니 그 자리에 두벌 나락이 올라옵디다. 옥황상제님이 나더러 벼를 한 번 더 가꾸라고 싹을 틔워 주시는 걸 어찌 그냥 보고만 있겠습니까? 되든 안 되든 가꾸어야지요.”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아뢰니
“오늘부터 그 논에 볕을 한여름처럼 많이 내려주어라.”
해서 며칠 사이에 벼가 쑥쑥 자라서 겨울 오기 전에 다 익었어. 그걸 보고 동네 사람들이 따라 하며 지낸 해에 보니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어서 했다했어. 옥황상제 왈
“농사꾼이 남의 흉내만 내면 안 되지. 농사꾼이 철을 몰라서는 안 되니 오늘 당장 추위를 내리고 서리를 잔뜩 뿌려줘라.”
<아직도 굴러가네 아직도 굴러가>
몽당비처럼 짧은 것 말고, 바지랑대처럼 기다란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은 오늘 아주 수가 났네. 이제부터 끝없이 긴 이야기가 나올 테니.
어떤 사람이 호박 사러 먼 데로 갔지. 산 넘고 물 건너 또 산 넘고 물 건너 남의 집 머슴도 살고 날품도 팔고 등짐장사도 하고, 큰돈을 벌어 그 돈으로 또 호박을 사러 갔지. 구름보다 더 높이 올라가니까 호박 파는 곳이 있더래. 거기에는 이 세상 호박을 다 모아 놓은 것처럼 호박이 많더라나. 가진 돈을 다 주고 그중에서 제일 큰 호박을 샀지. 어찌나 큰지 이고 갈 수도 없고 지고 갈 수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굴려서 가기로 했대.
그런데 호박이 어찌나 큰지 혼서는 안 되어 지나가던 사람이 도와, 둘이 힘을 합쳐 굴렸지. 그런데 옴짝달싹하지 않네.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그걸 보고 자기도 도와주겠다고 해서 셋이 힘을 합쳐 굴렀지.
그런데 호박이 어찌나 큰지 셋이서 굴려도 옴짝달싹하지 않네.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그걸 보고 자가도 도와주겠다고 해서 넷이서 힘을 합쳐 굴렸지.
그런데 호박이 어찌나 큰지 넷이서 굴려도 옴짝달싹하지 않네.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그걸 보고 자가도 도와주겠다고 해서 다섯이서 힘을 합쳐 굴렸지.
그런데 호박이 어찌나 큰지 다섯이서 굴려도 옴짝달싹하지 않네.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그걸 보고 자가도 도와주겠다고 해서 여섯이서 힘을 합쳐 굴렸지.
그런데 호박이 어찌나 큰지 여섯이서 굴려도 옴짝달싹하지 않네. 열 사람이 달라붙어 밀고 개미처럼 사람이 달라붙어서 힘껏 미니까 그제야 호박이 슬슬 굴러가더래.
한번 굴러가기 시작하니까 잘도 굴러가네. 데굴데굴 구르고 데굴데굴 구르고. 또 데굴데굴 구르고 데굴데굴 구르고, 또 데굴데굴 구르고 데굴데굴 구르고, 또 데굴데굴 구르고 데굴데굴 구르고…… .
산이 어찌나 높은지 데굴데굴데굴데굴 데굴데굴데굴데굴 자꾸자꾸 굴러가네. 데굴데굴데굴데굴 데굴데굴데굴데굴 아직도 굴러가네. 그때 굴러가던 호박이 아직도 굴러가네, 이직도 굴러가. 아직도 굴러가.
<황소와 호랑이>
곰이고 멧돼지고 늑대고 살쾡이고, 제 딴엔 힘깨나 쓴다는 짐승들도 이 호랑이를 만나면 끽소리 못 하고 그냥 슬금슬금 도망가기 바빠. 호랑이는 저보다 힘센 짐승은 없다고 잔뜩 뻐기게 됐지. 하루는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갔어 추운 겨울날인에 황소 한 마리가 나무 실은 발구([명사] 마소에 메워 물건을 실어 나르는 큰 썰매. 주로 산간 지방 따위의 길이 험한 지역에서 사용한다.)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오거든. 옆에는 농부가 고삐를 잡고 걸어오고, 발구에 나무를 어찌나 많이 실었던지 그걸 보고 호랑이가 깜짝 놀랐어. 저 황소는 보통 힘센 놈이 아니로구나.
“짐이 너무 무거워서 소가 힘들겠다. 발구를 여기 세워 놨다가 내일 가져가야지.”
하더니 농부가 황소만 끌고 가는 거야.
“옳지 어두워지면 내가 저걸 한번 끌어 봐야지.”
호랑이는 밤에 혼자 발구 세워 놓은 데로 가 발구를 힘껏 끌어당겨 봤지. 옴짝달짝을 안 하네. 날씨가 추워 발구가 땅에 얼어붙었으니까 그렇지. 그것도 모르고 밤새도록 낑낑 헛고생만 했지. 다음날 황소가 걸어와 농부가 발구를 턱 지워주자 바로 끌고 가는 걸 보고 호랑이가 기가 팍 죽었어. 산속으로 도망가 끽소리 안 하고 아주 얌전하게 살더래.
<하늘 나는 조끼>
토끼들이 조끼 하나 주워 서로 자기가 가지려고 싸우다가 머슴을 보고 주며 말했어.
“이게 있으면 또 싸움 날 테니 우리는 이것 안 가질래요.”
하더래.
“그걸 입고 단추를 채우면 몸이 하늘로 올라가고 단추를 풀면 다시 내려와요.”
토끼들 말에 머슴은 얼른 조끼를 입고 단추를 채워봤어. 몸이 하늘로 둥둥 떠오르네. 둥둥 떠서 집으로 왔어. 주인집 식구들이 그걸 보고 다 깜작 놀랐어. 주인 집 영감이 덜컥 욕심이 나서
“야 이놈아. 그런 건 너 같은 바보가 입으면 동티 [명사] 땅, 돌, 나무 따위를 잘못 건드려 지신(地神)을 화나게 하여 재앙을 받는 일.) 난다. 이리 다오,”
하고 조끼를 빼앗아 입고 단추를 채우니 몸이 하늘로 둥둥 떠올랐지. 높이 떠올라서 까만 점이 됐어. 아뿔싸, 내려오는 법을 모르네. 용을 써도 못 내려와 단추를 풀어야 내려올 텐데 그걸 모르니. 땅에 못 내려오고 하늘만 날아다니게 됐어. 그러다가 그만 솔개가 됐데. 솔개가 돼서 아직도 날아다닌데.
<딸랑새>
소금 장수가 소금을 팔러 다니다가 날이 저물었어. 마침 불빛 빤하게 보이는 외딴집이 있어 가니 머리 허연 노인이 혼자 사는데 입을 벌리면 입 속이 뻘겋고, 말을 하면 천둥이 치는 것 같고, 웃으면 눈꼬리가 쑥 올라가는 거야. 바짓가랑이 사이로 얼룩얼룩한 꼬리가 삐죽 나와 있거든.
‘아이코, 내가 호랑이 굴에 들어왔구나.‘ 속으로는 겁이 났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당나귀 목에 걸린 방울을 떼어 방 안으로 들어갔어. 방울이 딸랑딸랑하니까 호랑이가 이상해서 묻는 거야.
“그 소리 나는 것은 뭐요?”
“아 이거요? 이놈은 딸랑새인데 호랑이고기만 먹고 살지요, 배만 고프면 이놈이 나와서 호랑이 창자를 뽑아 먹는다오.”
호랑이가 들어보니 겁나거든. 오늘 밤에 자칫하다간 딸랑새한테 죽게 생겼거든. 호랑이는 호랑이대로 소금장수 잠 들기만 기다리고, 소금 장수는 소금 장수대로 호랑이 장 들기를 기다렸어. 이러다가 호랑이가 먼저 깜빡 잠이 들었어. 소금 장수가 얼른 방울을 호랑이 허리에 몪었지. 그래 놓고 호랑이를 흔들어 깨웠어
“큰일 났어요. 딸랑새가 나왔어요.”
호랑이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보니 제 허리께에서 딸랑딸랑하는 소리가 나거든
‘이크 딸랑새가 나한테 붙었구나.‘ 호랑이가 기겁하고 그만 내빼기 시작했어. 딸랑새가 허리에 붙어서 창자를 뽑아 먹으려니 어쩔 거야. 그런데 아무리 달려도 이놈의 딸랑새는 떨어질 줄 모르네. 허리를 잽싸게 흔들어 가면서 더 빨리 달렸지. 밤새도록 달리다가 새벽녘이 돼서야 방울이 가시덤불에 걸려 떨어졌어.
“휴. 이제 살았다. 참 끈질긴 딸랑새로구나.”
호랑이가 한숨 돌리는데, 마침 토끼가 지나다가 호랑이 꼴을 봤어.
“호랑이 아저씨 왜 그러세요?”
“말도 마라. 딸랑새란 놈이 허리에 붙어서 내 창자를 뽑아 먹으려고 하는 통에 밤새 도망 다니느라 이 꼴이야.”
“세상에 딸랑새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어디 나하고 같이 한번 가봐요.”
호랑이가 토끼한테 이끌려 오던 길을 되짚어갔어. 가시덤불을 자니다 보니 아까 떨어뜨렸던 방울이 발길에 채여 딸랑딸랑하거든. 그 소리를 듣고 호랑이가 그만 기겁을 해서 걸음아 날 살려라고 하고 또 내빼기 시작했어 그 바람에 토끼도 덩달아 달리다가 그만 나뭇등걸에 걸려 넘어지면서 이마를 ‘쿵’ 박고 기절 해 버렸지. 호랑이가 그걸 보고
“아이고 불쌍한 토끼. 기어이 딸랑새한테 당했구나.”
하고 아주 잔뜩 겁이 나서 멀리멀리 도망가더라는 이야기야.
<호랑이가 준 귀이개>
옛날 옛적에 한 총각이 살았는데 너무 가난해서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갔어. 그래서 색시를 얻으려고 집을 나섰지. 정처 없이 자꾸 가다가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나 ‘어흥’ 하며 등을 돌려 꼬리를 설레설레 흔들지 뭐야. 등에 올라타라는 소린가 싶어 슬며시 올라타 봤어. 그랬더니 호랑이가 번개같이 달려가 동굴 안 새끼 호랑이 앞에 내려놓얐어. 어미호랑이가 새끼 호랑이 입을 딱 벌려 보이는데 목구멍에 커다란 뼈가 하나 있어. 손을 넣어 쑥 빼내 줬어. 그랬더니 어미 호랑이가 꾸벅하며 총각 앞에 귀이개 하나 던져 주었어. 가다가 심심해서 귀이개를 꺼내 귀를 한번 후벼 봤더니 시원하게 뻥 뜷리면서 온갖 새 말하는 소리가 짹재글 들리는 게 아나라 말소리로 들리는 거야. ‘
“얘들아, 웬 총각이 호랑이를 타고 가더라.”
“나도 봤어 그 총각이 새끼 호랑이 목에 걸린 뼈를 빼 주는 것.”
“그 총각이 호랑이한테 귀이개 얻는 것도 봤는걸.”
귀이개를 주머니에 넣고 길을 갔어. 날이 저물어 하룻밤 재워 달라고 하니 식구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물어보니
“우리 외동딸이 숨이 오락가락하고 있소.”
총각이 귀이개를 꺼내 귀를 한 번 후비니 나무 위에서 까치들이 말하는 소리가 다 들려.
“아이고 저 집 외동딸은 천년 묵은 지네 독에 쏘여서 다 죽게 되었어.”
“그러게 말이야. 지붕 용마루 기와를 들어내고 쇠젓가락으로 자네를 잡아 항아리에 넣은 다음 담배 연기를 쐬면 지네는 죽고 딸은 살 텐데. 그걸 모르니 더 딱하지.”
총각이 그 말을 듣고 당장 주인에게 쇠젖가락, 항아리와 담배를 얻었어. 먼저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서 용마루 기와를 들어냈지. 들어다 보니 홍두깨만 한 지네가 척 들어앉아 있는 거야. 얼른 쇠젖가락으로 집어내어 항아리에 넣고 담배 연기를 쐬었어. 그랬더니 지네는 금방 죽더래. 지네가 죽고 나니 외동딸은 언제 아퍘냐는 듯이 깨끗하게 나아서 일어나지. 주인집에서는 딸 목숨 살려 준 은인이라고 총각을 사위 삼자고 해. 이렇게 해서 총각은 소원대로 색시를 얻어 장가를 갔어.
<슬기로운 아이>
우리나라가 이웃 큰 나라에 쥐여살 때 이야기야. 기다란 바람막이 병풍하고 커다란 항아리를 만들어 가지고 오라네. 병풍은 저희나라 땅을 뺑 돌아가며 다 둘러치면 딱 맞을 만큼 기다랗게 만들고, 항아리는 두만강 물을 다 퍼 담으면 꽉 찰 만큼 커다랗게 만들어 가지고 오래. 이때 성 밖에서 부모 없이 사는 머슴이 임금을 찾아가서 저한테 맡기라 했지..
“자 한 개 하고 사발 한 개만 주십시오.”
그걸 들고 이웃 나라로 갔어. 조그만 아이가 꾀죄죄하게 차려입고 왔는데 손에 들고 온 것이 기껏 자 한 개, 사발 하나 들고 왔어.
“우리나라 땅을 둘러칠 바람막이 병풍하고 두만강 물을 퍼 담을 항아리를 만들어 가지고 오랬더니 겁도 없이 그따위 것을 들고 왔느냐?”
“병풍이랑 항아리를 만들려면 먼저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자로 이 나라 땅 둘레가 몇 자나 되는지 재어 주십시오. 그래야 그만한 병풍을 만들 것 아닙니까? 또 이 사발로 두만강 물을 퍼서 몇 사발이나 되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그래야 그만한 항아리를 만들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치에 딱 맞는 말인데 어찌 자로 다 재고 그 많은 물을 어찌 다 사발로 푸겠어?
“아이고 댔다. 병풍이고 항아리고 다 필요 없으니 그냥 돌아가거라.”
이렇게 해서 이 아이가 그 어려운 일을 보기 좋게 풀어내고 무사히 돌아왔어.
<도깨비 수수게끼>
“여봐라, 여기서 내 도끼 못 봤느냐?”
본래 도깨비들한테는 말을 탁 낮추는 법이거든. 그래야 도깨비들이 사람을 옳게 대접해 준다니.
“아, 그 도끼 말씀입니까? 그건 우리가 주워 잘 간수해 놨지요. 수수께끼 내기해서 우리를 이기면 드리지요”
도깨비들이 워낙 장난을 좋아하거든. 그중에서도 씨름이나 수수께끼 같은 걸 좋아해서 아무나 보면 그렇게 장난을 건다는 거야.
“하늘이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몇 리나 되겠습니까?”
“그거야 딱 한 뼘이지. 너희들도 눈 위에 손을 펴서 재 봐 그럼 알 거야.”
도깨비들이 눈 위에 손을 펴서 재보니까 딱 한 뼘이거든. 도깨비들이 수수께끼 하나 더 내는데
“남해 물을 다 푸면 몇 동이 되겠습니까?”
“그거야 딱 한 동이지. 꼭 남해만 한 동이로 푸면 딱 한 동이지 뭐 더 될 게 있어?”
딱 이치에 맞는 말이지. 이제 나무꾼이 수수께끼를 낼 차례야. 들고 있던 지겟작대기를 똑바로 세워 놓고
“이 지겟작대기가 왼쪽으로 자빠지겠니, 오른쪽으로 자빠지겠니?”
왼 쪽하면 오른쪽으로. 오른쪽 하면 왼쪽으로 자빠뜨릴 테니 알아맞히긴 틀렸지.
“아이고 우리가 졌습니다. 도끼 가져가십시오.”
이렇게 해서 도끼 찾아서 가지고 왔다네.
<이상한 뼈다귀>
소금 장수가 소금 지게를 지고 소금을 팔러 갔는데 무덤 앞을 보니까 사람 정강이뼈처럼 생긴 뼈다귀 하나 있더라나. 만져보기도 하고, 던졌다가 받기도 하고, 가지고 놀다가 제자리에 갖다 놨어. 지게를 지고 가는데 보니 자꾸 따라오는 거야. 며칠을 달고 다니다가 하루는 잔칫집에 소금 지게를 받쳐 놓고 뼈다귀 보고
“이 소금 짐을 지키고 있어라.”
하고는 잔칫집으로 가니 안 따라오더래. 소금 장수는 뒷문으로 뺘져나가 도망을 쳤어. 몇 해가 지나 그 뼈댜귀가 궁금해서 그 자리에 가 봤어. 뼈다귀는 온데간데없고 폭삭 썩은 소금 지게만 남아 있더래. 그 옆에 오막살이 집 한 채가 있어 하룻밤 자고 가자 하니 늙은 할머니가 나와서 자고 가라 하더래. 저녁 먹고 할머니가 자꾸 옛날이야기 해보라네. 아는 것 없다하니 옛날에 겪은 이야기라도 해 보라 그래. 그래서 몇 해 전에 뼈다귀 만난 이야기를 했지.
“옛날에 뼈다귀가 나를 졸졸 따라다닌 적이 있었지요, 무섭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해서 떼어 버리려고 이쯤에서 소금 지개를 지키라고 하고 도망을 쳤어요. 그런데 오늘 와 보니 그 뼈다귀가 없네요. 어디를 갔는지.”
그랬더니 할머니가 뭐랬는지 알아?
“그게 궁금하니? 내가 바로 그 뼈다귀다!”
하면서 막 달려들더래.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그다음은 나도 몰라.
<범 아이>
게으른 나무꾼이 나무하러 가서 빈 지게로 오다가
“아이코 오늘도 빈 지게로 집에 가게 생겼구나.”
푸념 하는데 호랑이가 나타나서
“나 사위 삼으면 나무 한 짐 해 주지,”
하는 거야.
“아, 그럼 좋지.”
하고 말았네. 그랬더니 호랑이가 부스럭하더니 눈 깜짝할 새에 나무 한 짐 턱 해주어 좋아라 짊어지고 왔어. 그날 밤에 호랑이가 왔어. 딸을 냉큼 업어 가네, 사위 삼자 약속해 놨으니 어떻게 당할 수 있나. 딸은 호랑이한테 업혀 가서 거기서 아들을 낳았는데 얼굴은 사람인데 몸뚱이는 호랑이야. 이름을 범아이라 했지. 아무리 친정엘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자 눈물이나 짓고 살았어. 그걸 보고 범아이가 호랑이가 사냥하러 집 나가자 가만히 일러 줘.
“엄마, 외갓집 가고 싶거든 나 하라는 데로만 해. 엄마 손가락 깨물어 피를 내. 피를 내서 방에 한 방울, 부엌에 한 방울, 뒷간에 한 방울, 우물가에 한 방울 떨어뜨려.”
그러고
“엄마. 이제 내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냅다 달리는 거야. 이때 호랑이 남편이 집에 와 보니 아내. 아들이 없어.
“범아이야!”
부르니까 방에서
“나 방에 있어.”
한단 말이야. 방에 들어가 보니까 없어
“범아이야!”
부르니까 부엌에서
“나 부엌에서 밥해.”
한단 말이야. 부엌에 가 보니까 없어. 뒷간에서 똥 뉘. 우물에서 물길어 해서 보니 속은 것이야. 막 따라와 힘이 세니까 걸음도 빠르지 곧 잡히게 생겼어. 개울이 있어 저걸 건너야 사람 사는 마을이 나올 판이야. 그대 아들이 엄마를 내려놓으며 말했어.
“이제 엄마 혼자 건너가?”
“왜? 너도 같이 가자.”
“안 돼, 난 아버지 가죽을 입어서 못 가.”
“그럼 너 보고 싶으면 어떡해?”
“이 개울 건너 북쪽으로 세 고개 넘어 큰 바위 밑으로 오면 나 만나지.”
“알았다. 꼭 너 찾아가마.”
하릴없이 혼자서 개울을 건너갔지. 이때 호랑이 남편이 따라왔어. 막 개울 건너려고 하자 범아이가 막아서
“아버지 거긴 제일 깊은 곳이야.”
얕은 델 보고 그러는 거야.
“여기가 제일 얕아.”
깊은 델 가리키며 그러는 거지. 호랑이가 그 말을 듣고 펄쩍 건너뛰다가 풍덩 빠졌어. 꼬로를꼬로록하다가 빠져 죽었어. 딸은 무사히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죽고 어미는 꼬부랑 할머니가 됏더래. 아들이 보고 싶어 개울 건너 북쪽 바위 밑으로 갔어. 글쎄 범아아가 거기서 빼빼 말라 죽어 있더래. 어머니 주려고 도토리랑 산밤이랑 잔뜩 주워다 놓고 그냥 거기서 굶어 죽었더래.
※ 남편인 호랑이는 아내를 꼼짝 못 하게 가두어 부려 먹기만 하니 폭력에 찌든 남자들 모습인지. 아버지 가죽을 입어 못 간다는 아들은 가부장 사회에서 가문과 핏줄로 상징되는 굴레처럼 뿌리 깊었다. 요즘도 이 굴레를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겠다.
<봉항구이와 천년 묵은 해골 탕>
꿩고기가 봉황구이요. 해골바가지 안에 담긴 물이 천 년 묵은 해골탕 이었나 봐. 그걸 먹고 엄마가 다리가 낫고 아우랑 집으로 돌아갔어.
<할아버지 무덤을 지킨 아이>
농사꾼 아버지 무덤 바로 위에다가 서울 정승이 무덤 자리를 잡은 거야. 아버지가 걱정하자 농사꾼 아들이 슬그머니 갔어. 어른들 다리 사이로 요리조리 비집고 들어가서 다짜고짜 구덩이 앞에 턱 버티고 서서 소리 질렀어.
“아, 여기가 바로 세상에 둘도 없는 명당이로구나. 여기에 무덤 쓰면 새 임금이 난다 하더니, 오늘에야 명당이 주인을 만났구나.”
그 말에 온 산이 조용해졌어. 새 임금이 난다면 그게 바로 역적이라는 말이지. 그 자리에 무덤을 썼다가는 제아무리 정승이라도 모가지가 남아나지 않겠거든.
“얘들아, 어서 관을 상여에 실어라. 딴 데로 모시자.”
<제 발 저린 도둑>
소를 장에 팔았는데 소 판 돈이 제법 많아 엽전 꾸러미 묵직하니 한 보따리나 되지 그걸 어깨에 둘러메고 집으로 오다 국수 한 그릇 얻어먹고 보니 돈 보따리가 없어졌어. 사또한테 이르니
“간수를 못 해 잃어버린 돈이면 네가 찾아야지. 당장 나가거라.“
쫓겨났지. 예닐곱 살 먹은 이방 아들이 동헌 마당 한구석에 놀다가 이걸 보고 사또 앞에 쪼르르 달려가 그 돈 찾을 방도가 있으니 자리 잠깐 빌려 달라했어. 보았더니 호령하네.
“여봐라. 어서 가서 그 잔칫집에 있는 사람들을 다 데려오너라.”
사령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잔칫집 사람들을 다 데려왔어. 동헌 뜰에 그득하게 앉혀 놓고는 아무 말이 없어. 해가 뉘엿뉘엿할 때까지 마냥 그러고 있으니 좀이 쑤실 거 아니야. 웅성웅성하고 구경하던 백성들도 수군수군하고 이쯤 되자
“이제 모두 돌아가거라.”
이러니 싱겁기 짝이 없지. 모두 앞다투어 빠져나가가기 바쁘거든. 이때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발로 마루청을 한 번 ‘쾅’ 구르더니 집이 떠나갈 듯이 소리쳤어.
“돈 훔쳐 간 놈은 당장 그 자리에 앉아라!”
그러니까 정말 한 사람이 그 자리에 탁 주저앉더래. 도둑놈 제 발 저리다고 마음 놓고 가는데갑자기 뒤에서 ‘돈 훔쳐 간 놈은 앉아라.’ 하니까 엉겁결에 주저앉은 거야. 그렇게 해 도둑을 잡고 돈을 찾더라는 이야기.
<은혜 갚은 강아지>
길가에 쓰러진 불쌍한 강아지를 데려와 키우는데 밥솥을 열고 밥을 푸니 강아지가 갑자기 밥솥 위를 펄쩍 뛰어넘는 거야. 밥을 푸는 내내 이쪽저쪽으로 솥 위를 펄쩍 뛰어 넘는 거야
“이놈의 개가 밥 푸는 걸 훼방 놓는구나.”
끈으로 묶어 부엌 시렁에다 딱 매달아 놨어
“이놈의 개를 내일 밝는 대로 개백정에게 팔아먹어야겠다.”
그러는데 그날 저녁에 스님이 시주를 하러 왔다가 식구들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라는 거야
“허허, 이 댁 식구들 얼굴이 모두 죽을상이니 웬일이오?”
스님이 집 안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부엌 시렁에 묶여 있는 강아지를 보고 혼잣말로 중얼중얼해. 강아지도 혼자서 조그맣게 짓는 것처럼 으르렁 멍멍하고 그러다. 스님이 말하기를
“소승이 짐승 말을 좀 알아듣는데. 이 강아지 말을 들어 보니 부엌 천장 들보 위에 오래 묵은 지네가 숨어 있어 밥을 풀 때마다 그 독기가 밥에 떨어지기에 자기가 밥솥을 뛰어넘어 독기를 막아 줬답니다. 그런 개를 개백정에게 팔아먹으려고 저렇게 묶어 놨으니 온 식구가 죽을상이 된 거요.”
식구들이 놀라서 강아지를 풀어 주고 천장 들보를 뜯어 봤지. 커다란 지네가 독기를 뿜고 있더래. 지네를 잡아내고 그다음부터 강아지를 한 식구처럼 여기고 더 사랑해 줬다는 이야기야.“
<돈 도깨비 이야기>
도깨비들이랑 놀다가 어머니가 바늘에다 긴 실을 꿰어 뭘 찾는 척하고 한 도깨비 옷자락에다 실 꿴 바늘을 슬쩍 꽂았어. 날이 밝자 실타래에 실이 풀려 밖으로 죽 이어져 간 쪽으로 가니 집 뒤를 돌아 사당 안으로 쑥 들어가 있어. 문이 잠겨 있어 조심조심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 봤더니 커다란 궤짝이 있고 안에는 녹슨 엽전들이 푸지게 들어 있어. 쪽지도 한 장 있는데
“내 평생 구두쇠가 되어 돈을 모으기만 했지. 쓸 줄 모르고 살다가 죽는다. 누구든지 이 돈을 먼저 보는 사람이 다 가져라.”
써 놨어. 옛날부터 돈을 모으기만 하고 오래 묵혀 두면 도깨비가 된다더니. 돈 도깨비가 그래서 생긴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