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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파리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건축물 <개선문>을 소개합니다. 이번 글은 조금 색다르게 레마르크의 유명한 소설 <개선문>을 테마로 해서 전개하려고 합니다. 이어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샹송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개선문 위에서 조망하는 샹젤리제 거리
[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 ]
* 에펠탑을 배경으로한 밤의 알마교, 소설 <개선문>에서 주인공 라비크와 조앙 마두의 처음 만나는 곳 입니다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은 주인공 <라비크>가 어두운 밤의 알마 교(橋) 위에서 우연히 가수 조앙 마두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알마 교는 개선문에서 가장 가까운 세느 강의 다리입니다. 지금의 다리는 1974년에 개수된 것이어서 정확히는 소설의 주인공 라비크가 기대던 난간이나 조앙의 유리같이 공허한 표정을 비치던 가로등이 그때 것이 아닙니다.
새로 단 연꽃 모양의 예쁜 가로등은 소설의 다리 분위기보다는 훨씬 밝습니다. 세느 강을 오르내리는 유람선 ‘바토 무슈’의 선착장이 이 알마 교 밑입니다.
라비크와 조앙은 마르소 로(路)를 따라 개선문 쪽으로 걸어 올라갑니다. 소설이 나온 지 60년이 훨씬 넘었지만 파리의 거리는 그제나 이제나입니다. 다리에서 약 1km 걸으면 개선문이 있는 에트왈 광장에 이릅니다.
* 개선문 앞에서
소설에서 개선문은 표정이 있습니다.
첫머리에서 두 남녀가 이 앞에 다다랐을 때 "개선문은 비를 머금은 하늘을 배경으로 둥실 떠서 시꺼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작품 전체의 배경이 되는 어두운 역사적 시야를 전주(前奏)합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두 사람이 상회(相會)하면 개선문은 부드러운 보슬비 속에 다정하고 이들이 불화(不和)하면 개선문은 은색의 달빛 아래 찹니다.
대미(大尾)에서 체포된 라비크를 실은 트럭이 에트왈 광장에 나왔을 때 개선문은 캄캄합니다. "어디에도 불빛이 없었다. 칠흑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너무더 어두워서 개선문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가오는 전쟁의 예징(豫徵)입니다.
그 개선문이 지금은 밤이면 밝은 조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납니다. 평일에는 자정이 되어야 불이 꺼지고 축일에는 환히 불을 밝힌 채 밤을 새웁니다.
* 밤의 개선문
콩코르드 광장에서 일직선으로 2km나 되는 샹젤리제 대로 끝, 완만한 경사와 마루턱에 지금은 샤를 드골 광장이라고 부르는 에트왈 광장이 있고 그 복판에 높이 50m, 폭 40m의 거대한 개선문이 서 있습니다.
1806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에서 개선한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착공하여 한때 중단되었다가 그가 죽은 후인 1836년에 완성된 것입니다. 벽에는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들과 전투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1810년 나폴레옹이 마리 루이즈와 재혼할 때는 개선문이 아직 미완성이어서 나무뼈대에 헝겊을 덮어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서는 그 밑은 신혼의 황제 부처가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어 1840년 유해가 파리로 돌아왔을 때 비로서 완성된 개선문 밑을 지났습니다.
이 장의(葬儀) 행렬은 빅토르 위고가 지켜보고 있었고, 위고 또한 그가 죽자 관이 개선문 밑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1944년 파리가 독일군에 해방되자 드골이 입성하면서 이 문을 지나는 긴 행렬은 흔히 기록사진에서 봅니다. 지금도 국경일이면 삼색의 조명이 이 문을 뚫고 검은 하늘에 국기를 길게 그립니다.
레마르크가 이 소설에서 "인류 최후의 묘지처럼 보였다"고 쓴 문 아래 무명용사의 무덤에는 1923년 이래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로 문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중도의 전시실에서는 문의 역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습니다. 맨 위의 전망대에 서면 문을 중심으로 12갈래의 길이 방사형으로 뻗쳐 있고 파리의 온 시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개선문에서 샹젤리제 대로로 5백m쯤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조르지 생크 로(路)가 갈리고 그 모퉁이 99번지에 F자 마크를 단 빨간 포장에 단 카페 <푸케>가 있습니다. 샹젤리제의 산보객들이 한번씩은 기웃거리는 이름난 고급 카페입니다.
* 카페 푸케
소설 <개선문>에서 라비크는 이 카페에 앉아 있다가 애인을 죽인 게쉬타포 하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는 샹젤리제의 혼잡한 사람들 틈 속에서 하케를 놓쳐 버리지만 수개월 후 다시 여기서 만났을 때는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게 되어 긴박한 장면이 벌어집니다. 이후 라비크는 하케를 쫓아가서 어두운 골목길에서 끝내 그를 죽입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라비크는 친구 모로소프에게 "전쟁이 끝나거든 푸케에서 다시 만나세"한 후 체포되어 갑니다. 푸케는 뜻밖의 해후와 기약 없는 재회의 장소입니다.
1901년 루이 푸케라는 사람이 개점한 이래 80년이 넘은 푸케는 아래 위층에 4백석이 넘는 좌석을 가진 레스토랑을 겸한 카페입니다. 옛날에는 루즈벨트 대통령, 윈저 공 등이 귀한 손님이었고 엘리자베드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자주 스튜요리를 먹으러 왔으며 피아니스트 루빈슈타인의 단골 손님이기도 했습니다.
푸케가 샹젤리제의 명물 카페로 2차대전 후에 더욱 유명해진 것은 레마르크의 <개선문> 덕택이라고 흔히 관광 가이드들은 설명합니다. 레마르크는 2차대전 후 푸케에 자주 왔습니다. 파리에 체재하고 있는 동안은 거의 매일이었습니다.
<개선문>의 라비크와 모로소프는 전쟁이 끝나도 나타나지 않았으나 작자는 계속 나타났던 것입니다. 레마르크는 푸케에 올 때마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샹젤리제 대로와 조르지 생크 로의 모퉁이쪽 테라스, 개선문이 빤히 내다보이는 41번 좌석이 그의 지정석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샴페인을 시켜 마셨습니다. 칼바도스는 가끔 마셨다고 합니다.
칼바도스는 소설 속에서 라비크와 조앙이 무슨 주제음악 틀듯이 되풀이 되풀이 마시는 술 이름입니다. <개선문>을 읽고 나면 이 술의 강한 냄새가 작취(昨醉)처럼 오래도록 남습니다.
* 푸케는 개선문에서 샹젤리제 대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조르주 생크로가 나오는데 바로 꺾어지는 곳에 카페 푸케가 있습니다. 파리에 가시면 꼭 들러서 칼바도스 한 잔을...
* 카페 푸케에서 칼바도스 한잔을 시켜놓고... 저 한잔이 20유로, 우리돈으로 2만6천원 하
더군요. 다른 카페에서는 8유로를 받는데 역시 푸케는 비싼 곳입니다. 맛은 꼬냑하고 거
의 똑같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올리브 맛이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칼바도스는 프랑스의 노르망디 특산주로 사과로 만든 브랜디입니다. 노르께한 빛깔에 소설이 돋우는 맛보다는 조금 쓰고 독합니다.
<개선문>에서 조앙 마두가 노래를 부르고 모로소프가 도어 맨으로 일하던 카바레 <세에라자드>는 지금도 성업 중입니다. 생라자르 역에서 몽마르트르 쪽으로 올라가는 길가의 리에즈 가 3번지. 여기서는 저녁식사를 하며 쇼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 ]
* 레마르크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1898~1970)는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로 일약 인기 작가가 된 후 반전(反戰) 작가로서 나치의 박해를 받자 독일 국적을 빼앗기자 1939년 미국으로 건너가 1947년 미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개선문,1946년>은 그가 두 번째로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종전 직후 미국에서 출판되자 단박에 2백만부가 팔리면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암운(暗雲)이 감도는 2차세계대전 전야, 국적도 여권도 없이 각국 피난민들이 모여드는 파리를 배경으로, 강제수용소를 탈출한 독일인 의사 라비크와 이탈리아계의 고독한 여가수 조앙 마두와의 내일없는 사랑, 자기 애인을 죽인 독일 게슈타포 하케에 대한 복수 등을 기본 골격으로 하면서 국제 피난민들의 불안한 나날을 그린 어두운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 샹송 이야기 >
프랑스라는 나라에 ‘낭만’이란 이미지를 부여한 일등 공신, 샹송. 사실 샹송은 프랑스를 비롯한 불어권의 나라에서 프랑스어로 부르는 노래를 총칭하는 말이지만, 우리에겐 프랑스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인처럼 아름다운 샹송을 가진 국민은 없다’는 볼테르의 말처럼, 샹송은 부드럽고 감상적이며 다른 어떤 것보다도 프랑스적인 느낌을 줍니다.
* 샹송의 역사
샹송의 역사는 순례자와 음유시인들이 등장했던 중세시대부터 시작됐습니다. 유명한 음유시인들은 영주에게 고용되거나 기사급의 대우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후 르네상스 시대가 오면서 샹송의 주도권은 민중들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노래를 업으로 삼는 최초의 샹송 가수들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르네상스 시기였습니다.
18세기 무렵, 샹송은 독립적인 문학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 선비들이 즉석에서 시를 지어 지성을 대결했듯 프랑스 곳곳에 카보(Caveau)라는 일종의 카페가 등장, 그 곳에서 주제를 정해 즉흥적으로 샹송을 만들어 내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카보 외에도 조금 더 정치적인 성향을 띈 고케트, 겡게트 같은 교외의 클럽 들도 샹송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19세기 중엽을 지나면서 서서히 감상적인 샹송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영화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물랭 루즈’ 같은 뮤직홀과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한 카바레의 등장으로 샹송은 다시 한 번 꽃피우게 됩니다. 특히 카바레에서 불리운 샹송은 파리 하층민의 삶을 주로 노래하였으며, 이는 후에 유명한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에 의해 계승됩니다.
*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샹송
프랑스의 수많은 샹송 중에서도 유독 우리에게 친근한 곡들이 있습니다. 비록 가사는 모를 지라도 들으면 누구나 흥얼거리게 되는 멜로디를 가진 곡들입니다. 조 다생의 샹제리제를 비롯, 다니엘 비달의 피노키오, 이브 몽땅의 고엽, 에디트 피아프의 장미빛 인생, 사랑의 찬가 등은 샹송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명곡입니다
이러한 명곡들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 걸쳐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감성적인 샹송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이브 몽땅의 고엽(Les Feuilles Mortes)은 1950년에 미국의 작곡가 자니 머서가 영어 가사를 붙여 ‘Autumn Leaves’라는 제목으로 발표했고, 이후 많은 유명 가수들이 리메이크 하며 유명세를 탔습니다.
* 에디트 피아프가 태어난 집, 하층민들이 주로 사는 파리 19구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 중 가장 최고로 손꼽히는 것은 역시 맨 처음 불렀던 이브 몽땅이지요. 특히 노년에 올림피아 극장 공연(맨위의 동영상)에서 불렀던 고엽은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주며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 되고 있습니다.
*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있는 이브 몽땅, 시몬느 시뇨레 부부 합장 묘지
너무나도 친숙한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같은 팝송도 사실은 샹송이 원곡입니다. 클로드 프랑소아가 부른 원곡 ‘Comme d'habitude,꼼므 다비뛰드’를 영어로 번안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My Way입니다. 미국에서 이 곡을 부른 프랭크 시나트라는 굉장한 인기를 얻게 되어 은퇴 선언까지 번복했다고 하니, 샹송이 주는 감동은 곡을 이루고 있는 언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프랑스가 사랑한 샹송 가수
프랑스에는 앞서 언급했던 이브 몽땅, 다니엘 비달, 클로드 프랑소아 외에 샤를 트레네, 장자크 골드만 등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가수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특징을 가진 매력적인 가수들이지만, 프랑스가 가장 사랑했다고 말 할 수 있는 가수는 바로 ‘에디트 피아프’라 할 수 있습니다.
* 피아프의 연인이었던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 오른쪽은 그녀를 스타로 키워준 루이 루프레
3류 가수였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파리 빈민가를 전전하며 살아온 그녀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유지해 나가던 중 카바레 주인인 루이 루프레의 눈에 띄어 샹송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작은 체구와 상처 받은 영혼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사람들은 서서히 매료되었고, 그녀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샹송 가수로 자리매김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유년기가 그러했듯이, 가수로 데뷔를 한 후에도 순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보다 늦게 데뷔했던 이브 몽땅과 사랑에 빠져 무명이었던 그를 인기 스타로 만드는 데 일조했지만 이내 버림을 받았고, 그 뒤 긴 방황 끝에 다시 찾아온 사랑(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 또한 불행한 사고로 잃게 됩니다.
* 이브 몽땅과 에디트 피아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절망감과 사고에 대한 자책감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마약과 술에 빠져 지내다가 48세의 나이로 그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 두 번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은 그녀 인생의 최대 명곡이라 할 수 있는 ‘장미빛 인생’과 ‘사랑의 찬가’를 남기는데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7년에는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을 담은 영화 ‘라비앙 로즈(원제:La mome)’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비극적이고 불운한 삶 속에서도 노래로 모든 것을 승화시킨 그녀. 그런 그녀를 ‘샹송의 전설’ , ‘프랑스의 목소리’로 칭하는 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 파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의 에디트 피아프 묘
첫댓글 멋지심다. 이거 파리에서 컴으로 작성한검니까? 장편의 서사시를 일고 한숨 돌리는데 영 마력이 딸리네.. 이제 늙어서 그런지 1부와 2부로 짤라서 읽어야되갓네 에휴! 보석같은 여행기! 즐감
그냥 명소의 내력을 설명하는게 단조로운 것 같아 약간 비틀어 보았습네다.앞으로 3편 정도가
남았는데 이 정도는 그런대로 파리의 진면목을 조금 알릴 수 있을 것 같고요. 본인도 파리 체제
일정과 맞출려고 해요. 치아 치료는 다 됐으요? 귀국하면 맛있는 거 대접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