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방정
-윤동재
봉화에 들를 때 자주 가는 민박집 만산고택
미수 허목이 나보다 먼저 와 있었지
여름 저녁 별빛을 보며
초면이었지만
미수와 나는 민박집 밤
늦도록 얘기를 나누었지
살았을 때 봉화 닭실마을에 들러
청암정을 꼭 올라가고 싶었다고 했지
죽기 사흘 전
청암정靑巖亭 현판 청암수석靑巖水石을 써주곤
끝내 와 보지 못해
저승에서도 그때 써준 글씨
제대로 쓴 건지
글씨가 청암정에 잘 걸려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미수에게 내일 아침 나도
다시 닭실마을 청암정을 가 보려 한다며
그동안 몇 차례 닭실마을에 가 보았는데
청암정에 걸어놓은 청암수석은
모각模刻을 걸어놓은 것이고
진본은 충재기념관에 보관하고 있더라고 했지
내 말을 듣고
미수는 깜짝 놀라며
내 글씨는 자연 속에 있을 때만
자연과 어울려 살아 숨 쉬는데
소중히 간직한답시고 기념관에 넣어 두다니
아 ―
아 ―
미수는 긴 한숨을 내뱉었지
그러고는 내게 말했지
내가 전서에 특히 힘을 쏟은 건
새 발자국 벌레 발자국
나뭇가지 풀잎의 자연스러움을
글씨로 나타내고 싶었던 거지
그래야 글씨가 살아 숨 쉬지
미수는 말을 마치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지
다음날 일찍 일어나 보니
미수는 벌써 떠나고 없었지
닭실마을 둘러보면서
청암정
충재기념관
모두 가 보았지만
어디서도
미수를 다시 만나지 못했지
청암정의 청암수석
충재기념관의 청암수석
다 제 자리에 놓여 있지 않아 그런지
글씨는 보았어도
미수의 말대로
글씨가 숨 쉬는 것은 듣지 못했지
미수 허목은
죽기 사흘 전
자신이 마지막으로 쓴
절필작絶筆作 청암수석, 그 글씨
그토록 보고 싶어했는데
자연과 주위와 어울려
팔딱팔딱
숨 쉬는 걸 귀를 세우고
들어보려다가
듣지 못할 걸 알고
그냥 돌아가 버린 걸까
하루 더 묵으려고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와
미수가 하룻밤 묵었던
빈방을 보며
아, 참
내가 괜히 미리 말했나?
또 입방정을 떨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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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윤동재 몽유기행시
몽유기행시
<입방정>봉화에 들를 때 자주 가는 민박집 만산고택 미수 허목이 나보다 먼저 와
푸른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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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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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안내를 하지 말고 수수께끼를 내야 하리라
친절하지 않아야 독자가 정신을 차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