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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양현주 시집 [구름왕조실록]

양현주 시인
존재를 부르는 기의와 사랑의 개안(開眼)
유종인(시인)
1.
붙박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지상과 천상을 포함하여 처음부터 붙박이가 있을까 싶을 때, 존재는 모두 흐름 속에 있다는 에피그람을 떠올린다. 붙박이를 자청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흔들림과 인위적인 유전의 시공간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붙박이라는 말의 뉘앙스(nuance)를 존재가 가닿을 곳의 궁극적인 지표를 포함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영육(靈肉)은 아직도 떠돎과 매순간의 헤맴이 원적(原籍)이 아닐까 싶다.
그 가혹하나 그윽한 방황이 지향하는 선처는 지난한 여정을 떠올리게 하고 그런 실존의 유목(nomadism)은 늘 흔들림 속에서도 새로운 끌림에 마중물을 붓는다. 이렇듯 끌림이 있음으로 체념적인 존재의 안착이나 상투적인 붙박이는 늘 지연된다. 이 지연된 상태 속에서 우리는 기꺼운 방황(wandering)을 이어간다. 이 방황의 성격은 일시적인 혼란의 부정성이 아니라 삶의 보편적인 양태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하다.
양현주 시인의 시적 응시는 존재의 적소가 될 만한 인상적인 사물과 숨탄것들을 소요(逍遙)하며 기꺼이 너나들이하는 감각적인 인식이 도드라진다.
훤칠한 역무원이 주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흑석리역에 붙박인 나무가 되고 싶어요” 바짝 마른 속이 커피 잔에 매달려 부풀고 있다 속앓이 하던 마음이 황토색으로 풀어지고 있다 나는 당신을 덮어주는 흙이 되겠어요 햇빛이 그녀의 발아래서 급제동을 한다 흑석리역이 한순간 무성하다
오늘은 말이 붉고 간이역 창밖엔 감나무 이파리가 흔들리며 익어간다 홍시로 영글지 못한 말의 씨앗, 흙이 되거나 나무가 되지 않아도 좋다 환한 거짓말은 무죄다 소멸해야 가벼워지는 가슴속 뜨거운 고백, 낯선 땅에 심어두면 시시때때로 불러내어 가슴 미어지겠다
- 「흑석리역 나무가 되고 싶다」 부분
‘그녀’로 지칭되는 화자는 “붙박인 나무”를 꿈꾼다. 일종의 감성적인 간원(懇願)에 가깝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른 데도 아니고 ‘흑석리역’일까에 가만한 의구심이 돋는다. 수많은 역(station)들 중에 그녀가 흑석리역의 나무로 붙박이고자 하는 것은 역사(驛舍)라는 공간이 다른 여느 역사나 특정 공간과는 다른 존재에의 끌림을 줬기 때문이 아닐까 범박하게 추정할 수 있다. 내적 방황이나 심미적 방황을 일순 멈추게 하는 듯한 이런 끌림은 가을이 온 역사라는 시공간의 미적 풍취와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의 행태에 대한 심미적 반응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그녀는 떠돎의 행려를 멈추고 흑석리역에 존재의 처소를 마련하고 싶은 “급제동”의 감성적인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것은 그런 인상적인 장소와 사람에 대한 끌림이 일상적인 언어를 시정(poetic sentiment)어린 감성의 언어로 환치시켰다는 점이다. 하여 “오늘은 말이 붉고” 역사 창밖엔 “홍시로 영글지 못한 말의 씨앗”을 보며 더불어 “소멸해야 가벼워지는 가슴속 뜨거운 고백”을 간취(看取)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끌림이 있는 역사(station building)공간에서 받은 인상적인 말들은 “낯선 땅에 심어두면” 그것을 부지불식간에 불러낼 때 “가슴 미어지겠다” 라고 그 절절한 상상을 보태기에 이른다.
이런 붙박임에 대한 갑작스런 그리움은 특정 시공간이 얼러내는 나름의 분위기와 그걸 마주하고 교감하는 화자의 감성적 접점의 폭이 넓고 깊기 때문이다. 그러한 화자의 사물에 대한 늡늡한 연민과 동행의 정서는 붙박인 사물을 활물화시키는 것을 넘어서 긴 인생의 반려 수준으로 풀어놓는다.
휴일 아침 이웃집에 모여 반상회를 한다
싱싱한 과일이 가득한 앞가슴
앞날이 창창하게 뚫렸다고
양문형 복근이 탐난다고 아낙들의 말잔치가 한창이다
눈으로 즐기는 불량한 식탐을 물리고
물끄러미 혼수품을 바라본다
어깨 결리고 무릎 쑤시는 잔병치레다
함께 덜덜거리기 십여 년, 풀가동에 지쳤는지
늦잠 삼매에 빠져 드렁-윙-윙
칸칸마다 채워놓은 사연이 눈물겹다
소음을 끼고 앉아 먼지를 털어내고 긁힌 자국에 꽃 자석 붙인다
창으로 빗살무늬 햇살이 뛰어온다
김칫국물을 씻어내고 그의 옆구리에 가만히 기댄다
문지방을 뛰어넘는 아이들 뒷모습을 쫓아 달음질하는 눈빛
문턱에 걸려 햇빛이 난산이다
야무진 생각이 가득 넣어진 편안한 그는
내 즐거운 전유물
- 「백년지기」 전문
가전제품인 냉장고를 시적 상관물로 보는 화자의 시각에는 그것이 붙박이 물건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있어 함께한 내력을 지닌 인격적인 대상으로 슬그머니 바뀐다. 이런 사물의 존재로의 전환이 바로 붙박이 대상을 행려(行旅)와 자행(自行)의 대상으로 즐거이 변형하는 늡늡한 변신의 마련이 있다. 화자가 이런 냉장고라는 사물을 시적인 ‘전유물(專有物)’로 환기시킨다는 것 자체가 붙박이 대상에게 실존적인 활로를 열어주는 남다른 인연(karma)의 마음을 두기 때문이다. 범속한 일상 속에서도 사물이 지닌 인간적인 속성과 기능을 폄하하지 않고 그것을 실존적 사물로 의인화하는 맥락은 낙락하다. “칸칸마다 채워놓은 사연의 눈물”겨움을 꺼내 먹고 재차 집어넣고 또 파먹으며 동숙의 관계를 합작한 사물은 어느새 존재의 반열로 오롯하다. 그러나 이런 사물에의 동정어린 시선은 늘 명쾌하고 확정적인 것만은 아니라서 시인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물에의 인식과 감각은 “햇빛이 난산”하듯이 고통의 경로를 탐색하고 경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집 밖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새댁으로 불리다가/ 아무개 엄마로 불리다가/ 마흔 넘어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내 이름을 동네방네 부르는 그녀는 누굴까
창밖을 보았다/ 연분홍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길거리에 서있다/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한다/ 눈이 마주치자 가슴이 출렁거려/ 서로 바라만 보다, 무안하게 배시시 웃다가/ 하얀 박동이/ 뛴다
쏙 들어간 허리를 안자/ 바람이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탱고 춤추는....(중략).....// 엉덩이를 비비 꼬니 행인의 눈이 붉어 가을이다/ 그녀, 황토 빛 마을 코스모스 간판을 걸고/ 호객행위 중이다
- 「가을 풍경」 부분
부름이 있다, 이 부름은 무명의 존재를 유명의 실존으로 환승(transfer)시킨다. 화자는 그런 환청 같은 부름을 어느 날 문득 듣게 되는데 그 화자에의 부름은 단성적(single voice)적인 것이 아니라 다성적(多聲的)이고 다향적(多響的)인 것으로 환기됨으로써 묘미를 자아낸다. 그 목소리에는 “새댁으로 불리”기도 하고 “누구 엄마로” 호명되기도 하며, “마흔 넘어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이 새삼스럽게 호출됨으로써 화자를 일깨운다. 그 다양한 호명은 혼돈이나 착각이 아니라 잊혀졌던 존재에의 부름으로 확장되는 계기를 갖는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일상에 파묻혀 있던 존재의 내력을 일깨우는 것이 바로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이름이 실존을 대체하기도 하지만 그 범박한 일상의 호칭이 존재를 잠식하기도 한다는 놀라는 인식이 이 시편에 숨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런 일상에 매몰돼 있는 화자의 실존을 일깨우는 것이 바로 다름 아닌 ‘가을’이라는 무형의 계절적 현상에 매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모스 간판을 걸고/ 호객행위를 하는” 가을은 유쾌하면서도 웅숭깊은 코스모스(cosmos)의 가을, 즉 ‘우주의 가을’ 인 것이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후천개벽(後天開闢)의 깨달음을 뜸들이다 드러내는 가을이다.
그러한 부름은 단순히 우연만으로 오지 않으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인연으로 양현주 시인 옆에 또아리를 틀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풍경이 목소리를 내는 이런 놀라운 공감각(synesthesia)적 징후의 발견은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부름이 있다는 것, 이것은 설사 우연의 일상 속 그 무심하고 무정한 세태 속에서 존재를 유의미한 상태로 견인하는 종요로운 시적 행위인 것이다.
평행하지 않은 수평선, 갈기를 접은 돛은
불안이 먼저 읽는다
무언가에 닿지 않아도 닿은 꽃살문
쉬이 물길이 열리고
닫혀도
선착장에 들어온 저인망은
여전히 중심이 무겁다
저문 모래알의 입을 읽고 있는 트롤선의 응시
해를 향해 어떤 묵시를 보냈을까
눈으로 잴 수 없는
수심
어깨를 이울고 있는 바다가
불면을 뒤척이며 왼쪽 등대를 켠다
달의 페이지를 넘기며 흐릿한 운무 사이로
뱃머리 중심 갸우뚱 떠있다
- 「감응」 전문
시적 교감이든 일상적 인간관계이든 대상과의 인연이 이뤄지는 것은 그 마음의 응시에 있다는 전제를 낳는다. 자신을 비롯해 주변의 상대를 똑바로 비교적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 여기에 관계라는 망이 쳐질 수 있는 기초가 된다. 되도록 편견과 선입견 없이 바라볼 때 “평행하지 않은 수평선”의 새삼스러움을 볼 수 있고 “무언가에 닿지 않아도 닻은 꽃살문” 이라는 끌밋한 이미지에 도달할 수 있다. 또 “저문 모래알의 입을 읽고 있는 트롤선의 응시”가 얼마나 적막한 가운데 사물들 간에 이뤄지는가를 간취(看取)하게 된다. 이렇듯 소통과 인연을 부르는 ‘응시’는 “달의 페이지를 넘기며 흐릿한 운무 사이로” 사물과 숨탄것들을 흐뭇하게 볼 요량이 생긴다. 비록 “눈으로 잴 수 없는/ 수심”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 속내를 열어가는 마음의 응시는 돌올(突兀)하다.
...묘연했어요 서랍 속 그늘을 베고 잠들었을까? 빈터에 꽃으로 피어났을까? 폭염은 제 몸에 새겨진 스키테일 암호를 풀면서 시작되었지요 십여 년이 흘러도 닳지 않던 위험한 돌기突起,남몰래 몽돌을 닮고 싶은 저는 둥글지 못한 심석心石을 버리지도 취하지도 못해 끝내 무명이 되었지요
천 년을 구르려면 마음의 윤기가 중요하다고요
환장할, 우리는 그들과 다르잖아요
누군가와 다르기 위해 몸에 새긴 파도의 꽃말 따윈 버려야겠지요 제 몸으로 시를 쓰는 일의 처음은 구김살 없이 자란 햇살이 스미던 그 시절, 서늘한 달이 해를 품는 일처럼 제 몸에 푸른 상처를 긋고 암석暗石이 되곤 했지요 저는 태고의 각진 마음을 갖고 이름 없는 바닷가에서 태어났어요 오랜 경력의 바다를 멘토로 모셨어요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모두 죄뿐이라서 밀물이 가르칠 때 한 발자국 물러나 침묵을 배웠던,
당신을 통독하며 반질한 제가 되어가요 당신은 때론 자신도 해독 못 하는 그리움, 저를 지상으로 꺼내놓았던 물의 암호를 주었어요
- 「몽돌의 작시법」 부분
양현주 시인의 이런 시적 응시(scrutiny)의 눈길은 그의 시작법이 다름 아닌 “남몰래 몽돌을 담고 싶은” 자아(ego)에 대한 바람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해변가의 닳고 닳아 둥글어진 돌, 이 몽돌은 무엇에 대한 원천적인 이미지인가. 바로 다름 아닌 원융(圓融)의 심성을 지닌 아가페(agape)적 사랑이 그것이다. 그가 자기 자신을 진단하듯 “푸른 상처”를 지닌 “암석(暗石)”인 자신을 “오랜 경력의 바다를 멘토로 모”신 상태에서 수양이 이뤄지게 일깨워나간 끝에 도달한 돌의 이미지(image)의 한 형태다. 그런 몽돌처럼 닮은 “심석(心石)”으로 거듭나도록 치유하고 전환시킨 자아상(self-portrait)을 구현하는 것이 그의 작시(作詩)의 한 심정적 바탕이다. 그의 이런 마음의 돌을 사랑홉게 얼러내는 바탕은 무엇인가. 그것은 절대 자연이자 아가페적 사랑의 원천인 “당신을 통독하며 반질한” 스스로를 부단한 자기 응시 끝에 구경(究竟)의 사랑에 가닿는 일이다. 그의 모난 마음이나 옥생각이 편협한 심성을 닳리고 닳려 원만해진 사랑의 여줄가리로 걸러지는 경로, 그 과정에 그의 시편의 작동심리가 걸쳐져 있다. 곧 생각과 감각의 절차탁마를 통해 본래 자신이 추구했던 “심석(心石)”에 가닿는 일, 그녀가 시를 바라보는 눈길 또한 여기서 멀지 않다. 원만해지고 원숙해진 사랑의 몽돌을 그 마음에서 토해내고 가만히 누군가에게 낳아놓는 일, 그의 시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2.
미적 응시와 존재의 상처가 서로 바라본다는 생각, 그러할 때 시인은 줄곧 하나의 실존적 지향을 갖는다. 그것은 시집 도처에 서 있는 ‘나무’들이며 그런 ‘나무 생각’이다. 화자는 부러 상처를 입히는 강퍅한 사람이 전혀 아니라서 오히려 세상에 미만(彌滿)한 상처의 현황들을 안타까이 바라볼 줄 안다. 즉 상처가 상처를 바라보듯 인연을 감득한 존재들을 향해 “접붙일 수 없는 마음 사이 가냘픈/ 이파리는 헤프게 흔들려서 슬프” (「나와 바람과 나무」)다는 시선을 갖는다. 이런 습습한 연민의 정서는 존재를 둘러싼 주변 자연물들을 비유의 관계를 떠나 화자가 즉자적(卽自的)으로 상대를 오롯이 보아내는 각성을 연다.
오래전 내가 잊은 게 당신이 아닐 거라는 생각,
길은 저 좁은 골목으로 돌진하다/ 동그랗게 떴다
나뭇가지와 찬 허공의 입술이 부딪혀 스러지는 한밤
달그림자가 발목을 적신다
한기에 맺힌 둥근 섬, 오래된 별빛이 손 내민다/ 별이 어리고
오작교 난간, 별들은 다리가 저리다
동그란 것들은 눈 속에 기다림을 얹다가, 얹다가,
먼 생을 지운다
- 「골목은 그늘을 물고 있다」 부분
누군가의 상처를 자신의 상처로 복기(復碁)하고 감응한다는 것은, 사랑의 심안을 또록또록 눈뜨고 있다는 실증이다. 즉 관계적 발견을 통해 “나뭇가지와 찬 허공의 입술이 부딪혀 스러지는” 그 한밤의 아리아를 알고 “달그림자가 발목을 적”시는 그 서슬의 소슬함을 아는 것이다. 내 안에 갇혀있던 자아(ego)를 풀고 넓히면 “한기에 맺힌 둥근 섬”의 고립을 알게 되고 그러나 그런 섬에게 “오래된 별빛이 손 내”미는 절절하나 은근한 사랑의 내연(內緣)을 알게 된다.
인연(destiny)은 무수한 우연(fortuity)의 집적(集積)이 만들어낸 교집합 같은 것이다. 그 교집합을 구성하는 심적 바탕은 바로 따스한 너나들이의 이해인 것이다. 냉철한 이지적인 이해만이 아니라 늡늡하게 상대를 포용하는 은근한 마음바탕을 드리우는 것이다. 이런 낙락한 속종은 어떤 대상을 대하더라도 그 대상을 몬존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훤칠하게 키우는 양생의 윤리(morals)를 가만히 자처하게 된다. 그 자처(自處)함은 기껍고 가만히 즐거울 수 있다. 상처는 다스려지며 그간의 아픔은 다독여질 여지를 지닌다.
꽃이 열매를 은혜 하여
천 리 밖 땅 끝까지 하얀 잔별을 켜 두었다
화살나무 아래, 꽃 피거든 밭에 들어
별을 뚝, 따 주세요
두근, 두근
방에 숨어있는 비타민 씨, 당신
호미에 긁힌 상처 따윈 얇게 썰어 바짝 말려요
햇살 사다리 타고 세상으로 나올 시간이에요
- 「감자꽃이 피면」 부분
무심하고 소원한 관계들을 새뜻한 의미의 존재로 재구성(reconstitution)하는 심정은 “꽃이 열매를 은혜” 하듯 그 대상을 유의미한 존재로 확장하는 계기를 지닌다. 그러할 때 대상을 향한 스스럼없는 행위들이 꽃 핀다. 그것은 그런 아득하고 서먹한 상대마저도 “천 리 밖 땅 끝까지 하얀 잔별을 켜 두”는 자발성에 물들게 한다. 이런 무상의 행위야말로 양현주 시인이 지향하는 시적 포즈(pose)의 다소곳한 인상인 것이다. 그 마음과 몸짓은 그러할 때 끌밋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 심정은 어떤 몬존하고 추레한 대상마저도 “두근, 두근”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힐 설렘을 진작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그리하여 스스로 자책과 자기비하에 물들어 있는 대상을 기꺼이 호출한다. 바로 “방에 숨어있는 비타민 씨, 당신”을 향한 서슴없는 다가섬의 심정을 돋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주체와 객체가 하나 된 지향으로 “햇살 사다리 타고 세상으로 나올 시간”을 마련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실존적 부각(浮刻)은 대상과 자아가 하나 되는 일체감과 존재감을 동시적으로 성취한다. 심정적인 자세, 혹은 그런 일관된 지향으로서의 태도는 부정적인 현실을 타개하는 모종의 아우라(aura)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런 덕성과 늡늡한 마음바탕의 실존들에게도 바깥세상은 강퍅하고 엄혹한 역사적 비극을 구성했다. 잔혹한 모반과 반동의 세월을 얼러내는 악취미의 연대기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겼다. 그리고 그런 상흔들은 존재를 새롭게 각성시키는 시적 에스프리(esprit)를 낳았다. 역사적 실제를 재구성함으로써 고통의 사실(史實)들을 시적 열망의 뉘앙스에 녹여내는 재탄생의 계기를 갖는다.
안개가 철조망에 툭, 걸려있어요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 갇힌 머리꼭지를 따며 불볕을 훔치는 손아귀가 서늘해요 한 줄로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풀 죽은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요 한여름 피땀을 뒤집어쓴 엄마 이마를 쓱 만져주고 싶어요 수용소 밖으로 삐져나온 목쉰 소리가 아우성쳐요 안개를 먹어 웃자란 꿈, 머리채가 뽑혀요 뜨거운 빛깔로 키를 늘이는 시간, 운동장을 나란히 걸으며 그들은 천천히 죽는 공부를 해요 안녕, 학교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요 군인은 빗소리같이 털털한 친구들을 몰고 막사에 검은 구름을 초대했어요 곧 시뮬레이션 게임의 시간이에요 우리는 욕실에서 샤워하듯 청춘을 벗어요 푸른 옷을 벗자 붉게 더 붉게 느린 걸음으로 저린 시간들이 쏟아져요 소싯적 친구들이 지워지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있는 건조기가 우리들의 지혜를 쪼글쪼글 말려요
중략
화장실에 숨어 변기시트가 엉덩이를 다 파먹도록 탈무드를 읽어요 왈칵, 변기물이 넘쳐요 내 몸의 물을 빼앗긴 나는 미치도록 허기져요 부스러진 나치의 문양 같은 검붉은 쇳가루가 수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