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역

한 점을 중심으로 한 바퀴 회전한 것을 원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원은 모든 삼각법과 관련이 있다.
원형 돔 형태의 하늘에 상상의 삼각형을 그리며 나타난 천문학 문제들과 함께, 삼각형과 원은 천문 기하학의 기초를 이룬다.
서양의 갈릴레오의 포물체 모형은 삼각법에 또 다른 곡선을 가져오고, 삼각함수와 원뿔 곡선의 연결고리를 마련한다.
원뿔 곡선은 원뿔의 단면을 잘랐을 때 생긴다.
실제로, 삼각형과 곡선은 초기 기하학에서부터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삼각함수 표는 애초에 원 안에 그려진 삼각형의 지름과 현의 길이를 사용해서 정의되었다.
각도 또한 원을 정의 내리는 ‘한 바퀴의 회전’에 따라 측정된다.
원은 천부경에서 3의 수로 표현되고 있다.
서양에서는 히파르코스 시대부터 360°로 나누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3의 수는 사실 오늘날 원주율 π 에 해당한다.
아주 옛날부터 원에는 종교적이고 신비로운 의미가 부여됐다. 원은 가로변이 없는(또는 가로변의 길이가 무한대인) 끝나지 않는 선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형태로, 자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지름과 원주의 비율이 항상 일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비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는 그 비율을 그리스 문자인 π로 나타낸다. 이 표기는 스위스 수학자인 레온하르트 오일러에 의해 1737년에 대중화되었지만, 이 표기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1706년 윌리엄 존스였다. π는 무리수이다. 무리수는 소수점 이하의 숫자가 무한대로 길어지는 수이다
원뿔- 구슬체의 피라미드
원만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원과 원호가 최초로 연구되고 사용된 곡선이긴 하지만 초기에 기하학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또 다른 세 가지의 정곡선이 있었다. 이 세 가지 곡선은 포물선, 쌍곡선, 타원이다. 이들은 원뿔을 잘랐을 때 생기는 곡선들로, 원뿔 곡선이라고 부른다.
원뿔 곡선에 관한 영향력 있는 연구는 페르가의 아폴로니오스(262~190BC년 경)에 의해 최초로 이루어졌다. ‘위대한 기하학자’로 알려진 그는 알렉산더-그리스 시대의 기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다. 아폴로니오스의 연구는 현재 원뿔 곡선에 관한 논문만이 남아 있다. 논문의 처음 부분은 기존 글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뒷부분은 완벽하게 아폴로니오스가 알아낸 것이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이 기존의 그리스 기하학을 완전히 바꿔놓았듯 아폴로니오스의 연구는 원뿔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전부 대체했다.
아폴로니오스 이전에는 이 곡선들을 도출해내기 위해 각각 모양이 다른 원뿔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아폴로니오스는 원뿔을 잘랐을 때 생기는 면의 각도를 조절하면 모든 곡선이 같은 원뿔에서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폴로니오스는 자신이 이름 붙인 곡선이 어떻게 생겨났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했으며, 주어진 점이나 곡선 위의 점들에서 그릴 수 있는 가장 짧은 직선과 긴 직선을 검토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데카르트 좌표계(직교 좌표계)의 2차 방정식으로 곡선을 정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실제로, 1800년 이후에 르네 데카르트는 동점, 고정된 선과 이동점의 관계에 관한 아폴로니오스 정리의 일반화에 반대하여 자신만의 해석 기하학을 시험했다.
아랍과 르네상스 시대의 수학자들은 모두 아폴로니오스에게 엄청난 빚을 진 셈이다. 몇 명의 아랍 수학자들이 원뿔 곡선으로 생겨난 도형의 넓이와 부피를 계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원뿔을 연구하긴 했지만 오마르 하이얌에 와서야 연구는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오마르 하이얌은 3차 방정식의 일반적인 증명에서 원뿔을 사용하면서 데카르트가 기하학에 대수학을 끌어오게 될 것을 어느 정도 예측했다(그는 데카르트가 아닌 자신의 후계자들이 근을 찾는 과정에서 대수학적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 유럽 르네상스 시대에 아폴로니오스의 업적이 재발견되면서 광학, 천문학, 제도법, 다른 실용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희역

피라미드는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신비로움, 불가사의 등등의 말이 떠오르죠. 정말 신비한 건축물로 유명한 이런 피라미드 속에도 수학적인 것이 담겨 있을까요? 위의 피라미드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피라미드의 옆면은 삼각형으로 되어 있고 밑면은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사각뿔 모양입니다.
그런데 옛날 이집트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지금부터 약 4500년 전에 지금과 같은 장비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에 만들었다는 것이 정말 믿기 힘든 사실입니다. 특히, 그 규모를 보면 더욱 신비롭죠. 높이가 146.5m 정도(현재는 137m)이고 정사각형 밑면의 한 변의 길이가 230m 정도 되니까 넓이가 약 5.3ha(헥타르)나 되는 거대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피라미드는 돌을 쌓아서 만들었는데, 돌 한 개의 무게가 2.5t(=2500kg)이나 되는 무게가 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돌이 무려 230만 개나 사용되었다고 하니 어떻게 쌓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 무거운 돌을 어떻게 피라미드의 꼭대기인 146.7m까지 올렸는지도 궁금하시지 않나요?
피라미드의 신비에 놀라다
피라미드는 그 규모에 놀라기도 하지만, 숨겨져 있는 수학적 사실을 알면 더욱 신비로울 것입니다. 그 큰 규모로 지으면서 어떻게 밑면을 거의 정사각형으로 만들 수 있었느냐는 것인데요, 현대적 측량술로도 쉽지 않은 것인데, 그 당시 측량술의 발달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있습니다. 또한, 밑변의 각 변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으며 오차는 0.1% 이내라는 것 도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것은 실제 피라미드의 두 변의 길이를 재어보니 230.391m와 230.357m인데 이 두변의 합을 높이로 나누었더니 원주율(3.141592)의 거의 2배가 되는 것이랍니다!
정사각형의 두 변 길이의 합 = 230.391+230.357=460.748
(정사각형의 두 변 길이의 합)÷(높이)=460.748÷146.7=3.14074
피라미드의 담긴 뜻
피라미드를 만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도량형인 미터법을 쓰지 않고 그 당시의 도량형인 큐빗과 피라미드 인치를 썼는데, 길이 단위인 큐빗(cubit)과 1피라미드 인치는 각각 지구 반지름의 1000만분의 1, 지구 지름의 5억분의 1입니다. 나중에 과학자들이 분석을 해보니 지구의 평균 반지름이 6370km의 1000만분의 1인 0.637m를 1 피라미드 인치로 사용하였습니다. 여기서 피라미드의 밑변의 한 변을 1 피라미드 인치로 나누면 (230.391)÷(0.637)=361.68이 나오는데 이것은 1년이 365일인 것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미 4500년 전에 이집트인들은 지구 지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라미드의 높이인 146.7m는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의 10억분의 1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피라미드를 통해 수학을 탐구하다
피라미드를 통해 수학을 탐구한 사람 중에 그리스의 탈레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은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이용해서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었는데, 그 원리는 막대를 세우면 막대의 그림자가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가서는 실제 막대의 길이와 막대의 그림자의 길이가 같아 지는 때가 생길 것입니다. 그 때, 피라미드의 그림자의 길이를 재면 피라미드의 높이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닮음비를 이용한다면 못과 못의 그림자의 길이가 같은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재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로 실제 못의 길이가 10cm이고 그림자의 길이가 5cm라면 피라미드와 피라미드 그림자의 길이도 2:1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림자의 길이를 재서 2배를 하면 피라미드의 높이를 알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아주 옛날에 지어진 피라미드라는 건축물 속에서도 이렇게 많은 수학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답니다 :D!!

이집트의 수학 파피루스
기원전 3000년 부터 기원전 300년 무렵 나일강 유역에서 발달한 고대 이집트 왕조는 실용적인 수학을 사용했습니다. 관개 및 간척을 위한 측량, 과세를 위한 인구조사 생산물의 저장과 분배,달력,피라미드 건설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었습니다. 나일강의 범람에 따른 토지의 경계를 정하기 위해 터보리스트라는 측량가가 존재했고 그외에도 서기 계급을 중심으로 수학을 사용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수학 사용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모스크바 파피루스 : 기원전 1850년 무렵 이집트 중 왕국시대.
● 레이즈너 파피루스:기원전 1800년전
● 라훔 파피루스 : 기원전 1800년전
● 아 메스 파피루스: 기원전 1600년 무렵 이집트 제2중간기 시대. 서기인 아메스에 의해 작성되었다. 린드 파피루스 또는 린드 수학 파피루스라고도 불림.
● 베를린 파피루스 : 기원전 1300년 무렵. 이집트 신 왕국 시대.
● 이집트 수학 가죽 태엽 : 아메스 파피루스와 동시대.

기수법을 알아보면 상형 문자(신성 문자) , 신관 문자, 민중 문자의 세종류의 문자가 존재 했습니다. 상형 문자는 대상물을 그림으로 표현한 문자로 10의7승까지의 수학적 픽토그램이 존재했고 신관 문자는 더 실용적이고 부호화된 기수법의 개념이 보입니다. 신관 문자는 상형문자보다 필요한 문자가 더 적었고, 또한 파피루스의 보급도 있고해서 신관문자가 상형 문자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아메스 파피루스와 모스크바 파피루스에도 신관 문자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산술적으로 보면 현존하는 자료에 단위 분수의 계산이 매우 많습니다. 이것은 경제 활동이 현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분배를 하기 위한 계산이 많았던 것입니다. 음식의 분배, 토지의 분할, 제조를 위한 배합, 보상의 현물 지급등과 같은 경우 입니다. 이집트 수학의 분수의 특징에는 3분의1을 계산 하려면 먼저 3분의2의 값을 내고나서 그값은 반으로 나누는 식으로 계산을 하고, 또한 3분의 2외에는 분자가 2이상인 분수를 나타낼 수 있는 기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단위 분수를 분해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수학은 단독 방정식과 연립방정식도 있었고 등비급수와 관련된 것도 발견됩니다. 기하학쪽으로는 원형 면적의 근사치와 피라미드의 부피를 구하는 공식, 방구의 표면적을 구하는 공식등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집트의 수학은 바빌로니아와 그리스, 아랍 수학에 까지 영향을 준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