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올해도 어김없이 정월 대보름이 찾아왔다.
우수 절기가 지나고 닷새 만에 맞은 대보름이다.
다른 일 때문에 왔지만 시골에 오기를 잘 한 것 같다. 복잡한 도심 속에 있으면 보기 힘들 대보름 달맞이를 할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해질 무렵 집 뒤 동산으로 올라갔다.
오랫동안 계속된 궂은 날씨 탓에 오늘도 구름이 낀 서쪽 하늘이 보인다.
구름 사이로 가끔 보름달이 얼굴을 내밀다 사라지곤 한다. 신통치 못한 달맞이를 마치고 산을 내려왔다.
옛날에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날 까지 명절 분위기가 이어졌었다.
어린 시절 손꼽아 기다리던 설날이 되면 온 세상이 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설 전날인 작은 설날부터 새로 사온 신발과 설빔 입을 생각에 어쩔 줄 몰랐다.
설빔이 자랑하고 싶어 동네 고샅을 뛰놀던 어린 시절 추억은 영원하다.
설날이 지나도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잊지 않았다.여늬 때와는 달리 아이들에게도 찾아온 어린 손님들을 융숭하게 대접하셨다.
설날이 지나고 이튿날도 다음날도 ...
설 명절 즐거움은 대보름날까지 그치지 않았다.
건넛마을 사랑방에서 신명나게 윷놀이하며 밤이 이슥하도록 함성을 치던 어른들은 모두 안 계시다. 생각할수록 너무 허탈하고 무상한 기분이다.
동네 널찍한 공터에는 동네 아낙네들이 웃고 떠들어 대며 널뛰기가 한창이었다.
서녘해가 질 무렵 뒷동산에서 연날리기를 하다가 연줄이 끊어져 멀리 도망가는 연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울던 어린 시절 추억이 지금은 쓴웃음이 되었다. 축제의 날은 매일매일 계속되어 정월 대보름날 절정에 이른다.
대보름날은 먹거리가 너무도 풍족했다.
대보름날 빠지지 않는 오곡밥은 찹쌀, 조, 수수, 팥 콩 등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서 지은 밥이다. 오곡밥과 함께 먹던 ‘묵나물’은 묵은 나물이라고도 하여 맛과 향기가 구미를 돋우었다.
고사리, 도라지, 시래기, 취나물, 호박고지, 가지고지 등을 원료로 했던 그 나물들은 현대인들 건강식품에도 좋은 것으로 보아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대보름날 먹는 음식 중에는 오곡밥 말고도 다양했다.
더위를 피하게 한다는 ‘묵나물’, 부스럼 생기지 못하게 한다는 ‘부(스)럼깨기’ 좋은 소식 듣기만 바란다는 ‘귀밝이술’ 도 있었다.
정월 대보름날 세시 풍속은 다양하고 풍요로웠다. 우리 전통 문화에서 즐기는세시 풍습의 4분의 1이 정월 대보름에 몰려 있다.
대보름날 빼놓을 수 없는 풍속은 달맞이 행사다.
만월(滿月)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농사의 풍년을 점치기도 하였다.
대보름달에 달무리가 지면 그해는 더 많은 복과 행운이 있다고 했다.
할머께서도 그러셨고 어머니께서도 대보름날 밤에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집 뒤 장독대로 가신다. 장독대에 정화수 떠 올리시고 보름달 향해 기도하셨다.
가정의 화목과 건강, 자식들 잘 되라고 달빛 아래서 정성스럽게 빌던 아련한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뭉클하다,
달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위성으로 우주 생명의 전형이다.
달의 차고 기욺에 따라 조석 간만의 차가 큰 지형상 우리는 달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한국인의 우주관, 세계관, 인생관, 생활 풍속에 미치는 영향은 태양보다 달이 더 크다고 한다.
설날, 대보름, 추석도 달 중심의 명절이고, 문학을 비롯한 각종 예술에서도 정서적 심미적 상징의 중심이다.
정서적으로 정월 대보름은 설날보다 더 큰 명절이었다.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다.’는 속담도 있다.
객지에 나간 사람도 정월 대보름에는 꼭 고향에 돌아 와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인간이 놀이를 즐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놀이는 재미와 즐거움을 제공하며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고,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을 촉진한다. 세시 풍속과 전통문화를 유지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다.
기독교 문화권의 성탄절 축제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설과 대보름’이라는 전통문화가 있다.
아름다운 세시 풍속과 우리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는 세태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