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6.8.28.금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354-430) 기념일
1코린1,17-25 마태25,1-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진리 추구의 슬기로운 하늘나라의 삶”
“주여, 당신을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에,
우리가 당신을 찬양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게 하시나이다.
당신 안에 쉬게 될 때까지는 우리 마음이 평온치 못하리이다."(즈가르야의 노래 후렴)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이 영원한 감동입니다.
오늘도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네팔서 마른하늘에 ‘빙하붕괴로 홍수-사망270명, 실종1300명 넘겨”, 지구온난화에 기인한 재앙이라 합니다.
참으로 현 인류의 혁명적 <생태적 회개>가 절박한 때입니다.
자연이 병들어 망가지면 인류의 생존은 불가능합니다.
새삼 깨어 진리를 추구하는 슬기로운 하늘나라의 삶이, 절제의 삶이 절박합니다.
한밤중 도착한 메시지 둘입니다.
“꿈꿨어요! 눈뜰 때 이 가사가 귀에 맴돌았어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은 믿고 바라고 참아내며...!!!”
“끝도 없는 투정이 오늘도 이어지네요. 신부님 건강하세요. 늘 그곳에 있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밤낮으로 치매중인 노모를 사랑으로 돌보는 자매와 힘든 일상을 믿음으로 살아내는 자매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뿐이 길이 없습니다. 사랑할 때 저절로 깨어 있게 됩니다.
사랑할 때 늘 거기 그 자리에서 <정주의 삶>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여 깨어 있을 때 깨달음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시입니다.
역시 오래전 두 편의 시를 나눕니다.
“아!
푸른 하늘 있었네
흰구름 있었네 빛나는 별들 있었네
무지의 탐욕 구름 걷히니
푸른 하늘 흰구름 별들 반짝이는
내 마음이네
믿음 희망 사랑 별들 초롱초롱 빛나는
내 마음이네”<내 마음;1997.8.12.>
무욕의 지혜, 무욕의 관상입니다.
무욕의 사랑이 무지의 탐욕으로부터 우리를 초연하게, 자유롭게 합니다. 끝없는, 한계없는 탐욕의 자리,
바로 거기가 지옥입니다.
“기쁨에 들뜨지 말고,
슬픔에 빠지지 말고
평온히 바라보라
기쁨도 슬픔도 구름처럼
흘러가 버리는 것”<바라보라;1997.8.16.>
바라봄의 지혜요 깨어 있음의 관상입니다.
깨어 있을 때 깨끗한 마음에 깨달음의 은총의 선물들이요 하늘나라 꿈의 실현입니다.
영육의 건강 첫째 비결도 깨어 있는 삶입니다.
참으로 기다릴 때 기다림의 기쁨 중에 깨어 준비하는 삶입니다.
오늘은 열 쳐녀의 비유가 주는 가르침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진리 추구의 슬기로운 하늘나라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다.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유비무환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삶도 행복도 슬기로운 삶도 선택입니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슬기로운 처녀들은 입장했지만,
뒤늦게 기름을 채워온 어리석은 처녀들은 입장이 좌절됩니다.
땅을 치고 후회해도 늦었습니다.
문을 두드려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예기치 않는 때에 주님께서 오시듯 죽음도 그러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무딘 마음을 두드립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할 때 깨어 있습니다.
사랑할 때 압니다.
사랑과 앎은 함께 갑니다.
날로 깨어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과의 앎도 깊어집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주님과의 날로 깊어지는 일치의 관계로 그 영혼의 등잔에 <신망애信望愛의 기름>이 가득 채워져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과연 여러분의 영혼 등잔에 신망애의 기름은 잘 채워져 있는지요?
깨어 있는 삶의 빛나는, 치열한 삶의 모범이 바로 성 바오로 사도와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아우구스티노입니다.
성 바오로에 버금가는, 성 바오로를 많이도 닮은 성 아우구스티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의 고백이 심금을 울립니다.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시종여일 치열히 깨어 살았던 불세출의 성 바오로를 그대로 닮은
성 아우구스티노였습니다.
어제 어머니 성녀 모니카에 이어 오늘은 그 아드님, 성 아우구스티노 축일입니다.
이렇게 가톨릭교회에서 모자가 나란히 축일을 지내는 경우는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3부작인 <고백록, 신국론, 삼위일체론>에서 고백록은 제가 영구보존하며
수시로 영적독서중인 책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처럼 시종여일 참으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순수로, “진리의 연인”이 되어
치열하게 진리를 추구하며 뜨겁게 깨어 하늘나라를 살았던 성 아우구스티노였습니다.
고백록에나오는 성인에 대한 감동적안 묘사와 일부 어록도 소개합니다.
“그의 철학함은 영롱한 광휘보다 치열한 화염이었다.
그의 생애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진리를 향한 구원의 불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삶이든 여성이든 학문이든 진리든 그는 치열하게 사랑하였다.”
“오, 진리여, 진리여, 영원한 진리여, 참된 사랑이여, 사랑스러운 영원이여!
당신이 내 하느님이시니 밤낮으로 당신을 향하여 한숨짓습니다.”
마지막 철학적 유언에 해당하는 감동적 고백입니다.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토록 오래고 그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초토화하고 그가 주교로 있는 히포를 포위한지 석 달 만에,
76세로 임종전 바친 평화의 기도입니다.
“주 하느님,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푸셨으니 정묵의 평화, 안식의 평화,
저녁 없는 평화를 주십시오.”
성 바오로와 성 아우구스티노는 물론 모든 성인들이 평생 <고해인생>중에도 불구하고,
깨어 샘솟는 열정의 사랑으로, 희망과 기쁨, 감사와 평화로,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로,
시종여일 참으로 치열히 하늘나라의 <축제인생>을 살았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깨어 진리 추구의 슬기로운 삶을, 축제인생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역시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옛것이나 항상 새로운 주님의 아름다움이여,
늦게서야 당신을 사랑했나이다..
주님은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게 히셨나이다."(성모의 노래 후렴).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