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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일 년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동지의 팥죽에 들어 있던 새알심의 쫄깃한 맛이 입안에서 맴돈다. 설날은 아침 일찍부터 온 집안이 바쁘게 돌아간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빠진다는 풍습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며칠 동안 준비한 음식과 제기를 병풍 앞에 있는 상에 올려놓고 차례를 지내면서 설은 시작된다. 재수가 좋아 퇴주잔의 알딸딸한 맛을 보면 그날은 온종일 천국에서 산 거나 진배없다. 차례가 끝나면 쇠고기 국물의 떡국에 세상에 부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때다. 웃어른에게 세배하고 나면 덕담보다는 세뱃돈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집 저집 다니면서 친척과 동네 어른에게 세배하면 집집이 내놓는 가래떡과 조청, 인절미와 동치미, 맛있는 음식에 배가 남산만큼 불러도 좋았다. 친구들과 제기차기, 자치기, 널뛰기, 논이 웅덩이에서 썰매 타기나 팽이 돌리기에 하루를 신나게 보냈다. 설빔의 옷고름은 왼쪽, 바른쪽을 분간하지 못해 제멋대로 늘어졌고 버선의 대님은 아예 주머니에 넣고 바짓부리를 접고 다녔다. 다 저녁에 진흙으로 얼룩진 설빔으로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의 꾸지람으로 꿀밤을 머리로 받아먹기가 일쑤였다. 저녁나절에는 윷판에 동네가 시끌시끌하고, 저녁상을 물리면 토정비결로 한해의 운수를 알아봤다. 나같이 미국에서 산 세월이 고국에서 산 시간보다 더 길어서 더욱 고향이 그리운 때다. 이제는 추억 속에만 아련하게 남아있는 설날의 풍경일 수밖에 없다.
온 세상이 떠들썩했던 밀레니엄이 지난 지도 벌써 25년이나 된다. 폭죽의 요란한 굉음과 샴페인의 달콤한 맛과 함께 2025년의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어렸을 때 사용했던 단기로는 4358년이다. 올해로 6·25 전쟁이 발발한 지가 어느덧 75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남북은 긴장을 멈추지 못하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몹시 저리다. 일 분이 60초, 한 시간이 3,600초인데 하루가 몇 초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하루 24시간에 3,600초를 곱하면 86,400초가 답이다. 그렇지만 지구가 시속 1,000마일로 자전하는 시간은 정확하게 23시간 56분 4초이기 때문에 하루는 86,164초가 정답이다. 지구가 해의 궤도(67,000마일)를 한 바퀴 도는 기간은 365.25일이다. 일 년 하고 하루의 1/4(6시간)이 더 많아 4년마다 2월에 윤달을 만들었다. 동양에서 주로 사용하는 음력의 한 달은 29.53일이다. 양력과 계절을 맞추기 위해 3년에 한 달, 8년에 석 달을 윤달로 끼워 넣는다. 올해의 음력 윤달은 유월이다. 2025년은 육십 간지의 마흔두 번째 해인 을사년(뱀띠)이다. 우리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을사늑약이 120년 전인 1905년에 체결됐다. 같은 해에 태어난 아버지는 한 나라의 이름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격동의 시대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겪었다. 다 지나간 얘기라서 한가하게 말할지 모르지만, 그 시대를 되돌아보면 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러나저러나 새해가 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올해의 지구 인구가 82억을 훌쩍 넘었다. 엄청난 숫자다. 예수가 탄생했을 무렵에는 세계 인구가 2억이었고, 1800년에야 겨우 10억으로 늘어났다. 1900년에 16억을 넘어 1950년에 25억, 1980년에 44억, 2000년에 61억이었다.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30년에는 90억이 넘을 거라고 한다. 지구의 지름은 12,742km이며 둘레는 40,075km이다. 80억의 사람이 양팔(평균 1.5m)을 벌려서 서로 손을 잡아 지구의 적도를 따라서 서면 세 바퀴를 돌 수 있다고 한다. 육지의 사방 1km 안에 53명이 산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예수가 밀레니엄에 재림하려다가 사람이 하도 많아서 다음 밀레니엄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같다고 사도 베드로가 간청했다고 한다.
연말연시에도 한시도 쉴 사이 없이 정치 분열, 종교분쟁, 자연 재난 등 슬픈 소식뿐이다. 이런 모든 것은 사람이 너무 많아 서로 부딪치며 살다가 보니 마찰이 일어나고 삶의 기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이다.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인구가 가파르게 늘면서 환경 파괴는 가속도가 붙었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지구상의 인구가 야생 연어보다 일곱 배나 많다‘라고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많던 연어가 사라지게 되자 양식으로 수요를 간신히 채우지만, 연어 고기 1kg을 양식하기 위해 사료를 3kg을 먹인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글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놀랐다. 선진국에서는 인구보다 차량이 더 많다. 이 차들이 움직이려면 적지 않은 연료가 소모되며 모두 이산화탄소가 아니면 미세먼지로 변해 공기를 오염시킨다. 석유도 50년 안에 바닥이 난다지만 다른 자원은 그 전에 고갈이 날 거라고 해서 걱정이다. 한 해에 수백 종의 flora*와 fauna*가 멸종한다. 가뭄으로 바닥이 쩍쩍 갈라진 호수, 불더위로 불타는 산림, 온난화로 녹아내리는 빙하, 해수의 온도 상승, 씨가 말라가는 물고기를 보는 우리의 시각을 이젠 더는 숨길 수가 없다. 지구 표면의 70%인 바다에는 플라스틱, 산업 잔재, 퇴적물로 가득해 물고기가 살기에 불편하다고 한다. 언젠가 해변에 죽은 고래를 해부했는데 위장에서 24kg이나 되는 각종 플라스틱이 나왔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또한 청정지역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잡은 물고기를 정밀 검사한 결과 건강에 위험할 정도의 플라스틱 미세 분자가 존재한다고 전했다. 2050년에는 플라스틱이 바다의 물고기보다 더 많게 될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가 해산물을 먹는 게 아니라 이젠 플라스틱으로 변조된 음식을 먹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자초한 공해가 총알보다 훨씬 위협적이라고도 말한다.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지구가 온통 쓰레기로 변해서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면 너무나 슬픈 일이다. 우리가 지키지 않은 한 아무도 도와주질 않는다. 더 늦기 전에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여 손을 볼 일이다. 그게 새해를 맞이하는 나의 간절한 바람이자 내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 Fauna(동물군)
* Flora(식물군)
수필가, 소설가
워싱턴문인회 회원
usaj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