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으면 그만이지/ 김주완/ 피플파워/ 2023
사람을 아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고스톱을 같이 치거나. 함께 술을 마셔 보거나, 홀딱 벗겨 놓고 몸을 더듬어 보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그 사람을 알아 갈 수 있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그 사람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이순신, 안중근, 세종대왕 등은 한국인이 존경하는 분들이다.
나도 이 분들을 존경하지만 동시대에 살아보지 않았기에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중근 선생은 사진이라도 있어서 실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역사 속 인물들은 실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이렇게 보지도 겪지도 않고 존경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천상 믿을 게 기록인데 그 기록이 전부 사실 그대로냐는 거다. 비교적 최근(?) 인물인 안중근 선생만 해도 일본인이 기록한 문서로 그 분의 일생을 가늠한다.
한국인이 쓴 안 의사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심지어 서울 효창공원에 있는 선생의 묘는 가묘다. 실제 안중근 선생이 어디에 묻혔는지조차 모른다.
최근 읽은 이 책에서 존경하고 싶은 한 사람을 발견했다. 한 기자가 지역에 숨어 있는 한 어른을 인터뷰한 취재 후기다. 무협지나 연애소설 읽는 것처럼 술술 읽힌다.
최근 이 책의 주인공 김장하 선생의 삶을 다룬 다큐가 방송되면서 책보다 다큐 프로가 더 많이 알려지게 된다. 소설가 김탁환은 이 다큐를 보고 이런 문구를 남긴다.
<선생이 지킨 침묵의 파문은 넓고도 단단했다>.
누군가는 또 이랬다. <닮고 싶은데 도저히 닮을 수 없다>. 나는 책만 읽고 이 다큐를 보지 못했지만 이런 찬사가 빈 말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
존경하는 사람을 멀리서 찾을 거 없다. 부모를 존경할 수 있고, 옆집 할머니나, 친구나 선배를 존경할 수도, 한 이불 덮고 사는 배우자를 존경할 수도 있다.
저절로 존경심이 드는 김장하 선생과 동시대에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 선한 영향력이란 말이 있다. 김장하 선생의 삶이 바로 그렇다.
내 글은 여기서 마치고 시청자의 찬사를 받았던 그 다큐 방송을 비평한 기사가 있어 옮긴다. 신문 기사가 이렇게 감동적이기도 쉽지 않다. 기사치고는 드물게 명문장이다.
몰입감도 있고 우선 글을 참 잘 쓴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은데 능력이 안 되니 참,, 길면 그냥 넘어가도 된다. 그러나 읽으면 행복해지는 글이다.
*진정한 어른이 없는 시대다. 참 어른이 나오기도 힘들다. 자칫 꼰대가 되기 싶다. 그러니 어른들이 숨어버린다. 당연히 나서야 할 때에도 봉변 당할 것을 우려해 침묵한다.
젊은 사람은 나이든 사람의 진정한 어른의 모습에서 삶의 방향 설정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들의 관계가 이렇게 파편화되면 사람에게 감동받을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수 밖에 없다.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이런 시대에 진짜 어른이 나타났다. 아니, 원래 있었는데 잘 몰랐다. 찐어른 김장하(79).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 헌납하며 사람들을 돕는 어른이 아니다. 그의 행적은 최근 MBC경남이 공개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2부작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장하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30여년전 기자를 시작하면서 김장하가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한 김주완 기자(경남도민일보 전 편집국장)는 퇴직후 본격적으로 인간 김장하를 취재한다. 그 여정을 담은 것이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다.
김 기자는 무작정 김장하를 찾아갔다. 지난해 5월까지 김장하가 일했던 진주시 동성동에 있는 남성당 한약방으로 가 그가 좋아하는 야구 이야기부터 건넨다. 롯데에서 NC로 갈아탔다고 했다. 야구 이야기를 할 때는 환한 얼굴을 하다가 “몇 명에게 장학금을 줬나요”라고 물어보면 선생은 입을 굳게 닫아버린다.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김 기자는 외곽을 파고 들었다. 김장하에게서 장학금을 받은 사람과 이웃 주민, 김장하가 관여했던 극단 등 사회문화단체 관계자들을 만났다.
주변 사람들의 취재가 이렇게 잘 된 적은 처음이라고 김 기자는 회고했다. 다들 김장하라는 어른은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걸 가지고 인터뷰에 응했다. 사천시 용현면에 살때 한 이웃주민은 “김약국에 손벌리면 항상 돈을 빌려줬어. 우리 금고처럼 김약국집에서 돈을 갖다 썼지”라고 했다. 남성당 한약방 옆 자전거 상을 30년 넘게 한 사람은 “김장하 선생님이 30년간 집세를 한번도 안올렸어요. 코로나때는 집세를 내렸지”라고 말했다.
김장하는 1963년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석거리에서 한약방을 개원했다. 그의 나이 19살때다. 그러다 73년 진주시 장대동으로 이전했고, 77년에는 동성동 현 위치로 이전 개원했다.
“내가 약방에서 머슴살이를 했지. 62년 신문에 한약사 시험 공고가 났어. 한약종상에서 3년이상 한약을 취급한 실무 종사자는 자격이 된다고 해서 18살때 접수를 했다.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1년후에 개업하라고 해 이듬해에 개원했다.”
김장하의 한약방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렸다. 다른 한약방보다 싸게 팔았다. 하지만 직원 월급은 다른 약국에 비해 2~3배가 높았다. 하루에 800명이 몰려 800제를 지은 적도 있다고 한다. 오전과 오후 다른 색깔의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했다.
김장하는 이렇게 한약방을 운영해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는 그 많은 돈을 사회에 헌납했다. 수백억원의 돈을 사회에서 필요한 곳에 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다. 웬만해서는 걷고, 먼 곳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진주고, 대아고 등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고, 대학 등록금까지 지원했다. 84년에는 40세의 나이로 명신고교를 세워 91년에 국가에 헌납해 공립학교로 전환시켰다.
학교를 설립하고 나니 교직원 인사청탁이 쇄도했다. 김장하는 교직원 선발의 3대원칙을 세웠다. 친척 한 명도 안쓴다. 돈을 받고 채용 안한다. 권력에 굽히지 않겠다. 이 세가지만 해결되면 옳은 교사들을 뽑을 수 있다. 그는 그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명신고 이사장 시절에는 모의고사를 본날 저녁마다 교사들의 회식이 열렸다. 김장하 이사장은 교사들에게 소갈비를 사주며 “절대 학부모에게 손 벌리지 마세요”라고 했다.
“내가 돈을 번 게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면, 내가 그 돈으로 호의호식할 수 있었고 호화방탕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거다.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어 차곡차곡 모아 사회에 환원했다.”
김장하의 이웃 도우는 방식은 인간적이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하다. 기독교의 자선(charity) 개념과도 유사하다. 주는 사람이 흐뭇해지면서 정신부자가 되고, 받는 사람은 비굴함을 느끼지 않고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다. 불교의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 개념과도 통한다. 내가 내 것을 누구에게 주었다는 생각조차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김장하 장학생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등록금) 얼마 나왔어 하고 물어보시고 돈을 세어 주신다. 우리가 전혀 위축되지 않게 티를 내지 않으셨다.” “말을 많이 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부담 가질까봐. 학교에서 어려운 게 없나 물어보시고, 간섭 안하고 니가 원하는 걸 해라고 하셨다” “무슨 일을 해도 든든하게, 떳떳하게. 이사장님(김장하)이 우리들의 훌륭한 빽이다. 돈이 아니고”
김장하 키드인 ‘예쁜 꼬마 선충 전문가’ 이준호 서울대 자연과학대 교수는 “(김장하 선생님은) 어떤 지침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오신 그 과정 자체가 삶의 지표 같은 분이다. 내가 학생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생각할때 선생님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김장하 장학생중에는 83학번 문형배 헌법재판관(대아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같이 잘 된 사람도 있지만 평범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 한 명이 “장학금을 받고 특별한 사람이 못돼 죄송합니다”라고 하자 김장하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고 했다.
이쯤되면 김장하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우리 시대 어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장학생들이 너무 고마워하면 “혹시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라고 했다.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인 진주 형평운동의 선구자 강상호의 묘에 비석을 세우는데 돈을 댄 사람도 김장하다(비문에는 ‘작은 시민’으로만 돼있다). 김장하는 차별금지, 평등사상을 강조하는 형평운동을 이어받아 새로운 차별을 없애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남녀간, 장애인비장애인간, 빈부간 차별이 없어지지 않아 안타깝다는 그다.
이런 김장하를 두고 일각에서는 “감투 하나 쓰려고 그러냐” “돈지랄 한다” “빨갱이 짓하고 있어” “찌그러져 있어” 등 비난과 마타도어들도 나왔다. 이에 김장하는 “결과는 세월이 증명한다. 화를 낼 필요가 없고, 변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묵묵히 참고 견디는 거죠”라면서 “앞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생을 살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김장하의 초등학교 동창인 70년 지기 최관경 부산교육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이 친구의 삶이 부럽지 않다. 저렇게 살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라면서 “화를 절대 안내는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 장하는 단점 없는 것이 단점이다”고 말했다.
김장하는 “돈이란게 똥하고 같다.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하는데, 밭에 골고루 뿌려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고 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힘이 된 것은 비교적 깨끗하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평가는, 아무도 칭찬하지 말고, 나무라지도 말고. 그대로 봐주기만 했으면 한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흔들리지 않는 거목’ 김장하는 등산을 할때 필요한 덕목인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처럼 계속 그렇게 걸어가시길 바란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
첫댓글 저도 이분 기사 본적이 있습니다.
감동했더랬죠.
다시 언급해 주셔서 감사해요.
돈을 값지고 귀하게 쓰시는 훌륭하신분.
글이 너무 길다 싶어서
올릴까 말까 했는데 올리길 잘 했네요.
다시 언급해 주심에 감사하단 댓글에
망설였던 저의 노파심이 잠잠해졌습니다.
공감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마음으로만 있지 행동은 쉽게 안되는 것을
묵묵히 실천하신 존경스런 분
존경하지 않을수가 없네요
홍실님 말씀처럼 실천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이런 선행을 드러내지 않고 몰래(?) 하기는
더 어려운 법이지요.
저도 존경심이 절로 우러났답니다.
김장하선생님도
이 시대의 애국자 이십니다.
마음이 움직이는글
잘 읽었습니다.
아짐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애국이란 거창할 것 없이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바로 애국자이지요.
주되 받는 사람이 비굴하지않게 하는 법
주면서도 참 고심이 되는 부분이어서
나의 것이 아닌
잠시
맡껴 둔 걸
되돌려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스승같으신 분이라서
여기저기 검색해서 읽었던 터라
유현덕님의 글이
한 눈에 쏙 들어옵니다
잘 생긴 그 청년처럼 ..ㅎㅎㅎ ( 이런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닌데 )
잘 읽었습니다
윤슬님도 이 분 기사를 접하신 모양이군요.
하여, 님은 아주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그 잘 생긴 청년은 오래 전에 하산해서
윤슬님 가슴 한 켠에 추억으로만 남아 있고
조금씩 늙어가는 저는 싼티 내면서 살려고 합니다.ㅎ
잘 읽었습니다 묵묵히 드러내지 않고 세상에 훈훈한 정을 남기신 분 존경스럽습니다
모르게 했던 선행이라
김장하 선생의 삶이 더욱 빛이 납니다.
사는 게 힘들다고 투정부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닮고 싶으나 결코 그래 지지 않은 분이네요.
이런 분들이야 말로 애국자 죠.
좌니.우니,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고~
몸소 실천하시니...
김 장하 선생에 대해 많이 알게 된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김포인 님,
긴 글을 끝까지 다 읽으셨구나.
댓글 보면 알 수 있지요.^^
뭐든 왼쪽 오른쪽 구분지어서 보면 한쪽만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본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게 되지요.
김장하 선생을 알게 되셨다니
글 올린 보람이 있네요.ㅎ
감히 김선생님께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진정한 애국자란 생각에
김장하 선생의 성품을 잘 나타내는 짧은 구절.
"화를 절대 안 내는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
여기서 저는 두손 들었습니다.
김장하 선생님에( 진주 남성당 한약방)대하여 설 특집으로 경남방송에서 방영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사는 지역에서
북콘서트도 있었고요.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훌룽하신 분입니다.
오랜만 유현덕님의 글을 접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둘시네아 님 오랜만이네요.
저도 창원에 사는 친구가 하도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기에
한 달 전에야 이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인생 공부 단단히 헸답니다.
시네아님이 저보다 훨씬 관심이 많은 분이시네요.ㅎ
휼륭한 분 만나게 해주신 유현덕님 감사합니다 ~
국화님 반갑네요.
김장하 선생님을 알게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분 기사를 읽으셨으니
행복 바이러스가 한 10년은 지속될 겁니다.ㅎ
작년에 형평 이라는 주제로 옛날 백정들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한 사진전이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있었어요 그때 저분이 잠시 언급된 자료를 본 기억이 납니다
대단히 훌륭한 분이시네요
어제는 테레비 유퀴즈라는 프로에 여자역도선수 장미란이 나왔는데 힘든 선수시절 오뚜기식품의 작고한 회장님이 물심양면으로 엄청나게 지원해주셨는데 그 지원조건중에 절대로 지원자를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들어있었데요 그야말로 익명의 후원자였던거지요
감동적인 글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긴 댓글에서 몸부림 님의 진정성이 전해집니다.
김장하 선생의 인품이 곳곳에 감동을 주나 보군요.
님께서 알려주신 오뚜기 회장님의 선행도 감동입니다.
김장하 선생의 평소 지론도 주는 사람이 더 행복했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는 사람이 흐믓해지면서 정신부자가 되고
받는 사람은 비굴함을 느끼지 않고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다"
감동입니다.
환자의 돈으로 돈을 모았다는 말
돈은 똥과 같아서 모아 놓으면 냄새 나지만 밭에 뿌리면 거름이 된다는 말
참 의미 깊은 말이네요.
네, 석촌님.
책을 읽으니 더 많은 문구들이 폐부를 찌르더군요.
김장하 선생이 너무 겸손하신 탓에
고개를 자주 숙여서일까요.
허리가 약간 굽어진 것이 안타깝습니다.
건강하셔야 할 텐데,,
절로 머리가 조아려지는 훌륭한 분이십니다
진정한 어른이 부제인 현실에 참 귀하디 귀한 어르신 김장하 어른
"줬어면 그만이지"
정말 더 알고싶은 어른이시네요
감사해요^^~
반가운 석우님을 이제야 다시 만나네요.^^
정말 어떤 찬사도 아깝지 않은 분이십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라구요
석우님과 공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우리 종종 봐요.ㅎ
유현덕님 덕분에 귀한 분 김장하 선생님을 알게되어 고마움 전합니다.
글을 읽어 갈수록 고개가 저절로 숙여 졌습니다.
참어른이신 김장하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인생의 롤모델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
수피아 님의 순수한 공감을 접수합니다.
좋은 일에 함께 공감하는 것처럼
기쁜 일이 또 있을까요.
본 적도 없는 먼 시대의 인물보다
동시대에 사는 분 하나쯤 존경하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요. ㅎ
우! 너무 감동입니다 현덕님께서 옮겨 주신 글에 감동하며 읽었습니다 저도 존경합니다
이 시대에 존경할 인물이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곳곳에 보이지 않으려 애쓰시며 숨어 계신 분들 왜 없겠습니까 글 잘읽었습니다.
운선님, 감동하셨구나.^^
김장하 님 본인이 자서전에 쓴 내용이 아니라
선생을 겪은 분들이 밝힌 숨은 선행이
책 속에 온전히 담겼습니다.
콩알 만한 거 주고 온갖 생색을 다 내는 저와는
차원이 다른 분이더이다.
우아 감동적이고 좋은 일 생각해 봐요
네,
선한 영향력이 자연님의 순박한 마음에도
전해졌나 보네요.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