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사랑의 땅 / 이기철
하느님이 사랑을 주신 땅이라는 뜻을 가진 예루살렘
50 번 포위되고 36 번 함락된 평화를 기구하는 땅 예루살렘
벽돌에 뚫린 총탄 자국은 바로크풍으로 무늬지고
깊은 뿌리 땅에 묻은 종려나무는 가지들이 부러졌다.
저 단검과 수통을 찬 병사들의 목마른 기다림은 무엇인가
달디단 입을 벌린 엠16의 기다림은 무엇인가
그곳에도 처녀들의 유방은 부풀어 있고 집들의 추녀는
한 가정의 비밀과 가장의 고민을 감추고 있다.
가시 돋힌 선인장은 아름답고 빨리 시드는 꽃을 햇볕 아래 피워두고
강아지들은 길가에 나와 제 키를 재면서 놀고 있다.
돌들은 모여서 성채를 쌓고 잔디는 옮겨져 초소의 지붕을 덮었다.
노래를 잃은 어른들은 총구에 턱을 고이고 잠이 들고
다시는 그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군가를 부르며 지나간다
초록불꽃 터지는 여름밤에 그들은 어떤 빛깔의 꿈을 꿀까
교회가 가난하지 않은 시대에 악이 살찌고
사원이 인내하지 않는 시대에 미움은 자란다.
전쟁이 지나간 길 위엔 탄피가 남아 뒹글고 평화가 오는 길엔
잊혀진 동요가 합창으로 불려진다.
부러진 종려가지에 새순 돋을 때
이슬이 새로 내려와 뜨거운 모래와 아이들의 맨발을 적셔 줄까
선인장 가시에 봄빛 비칠 때
마을을 떠난 비둘기 때까치들이 먼지로 뒤덮인 옛집을 찾아
유순한 날개를 저으며 돌아올까.
- 이기철 시집 <전쟁과 평화>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