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부의 새로운 애창가 '저 푸른 길'을 완성해 '세이쿄신문'에 악보와 가사를
게재한 때는 11월 6일이었다.
1절,
봄 안개에 춤추는 벚꽃 / 춤추는 벚꽃을 바라보며 벗도 춤춘다.
화환 같은 행복에 감싸여 / 감싸여 / 저 푸른 길을 걸어가자.
2절,
햇살이 따가운 여름이지만 / 이윽고 / 이윽고 단풍이 드는 가을이 오니
서리가 내리는 겨울도 두렵지 않다 / 두렵지 않다 / 이윽고 봄 노래 부르는
때가 온다.
3절,
이 노래를 부르자 부녀(父女)의 노래 / 이윽고 이 길을 젊은 여성들이
세계의 길로 날개를 달고 / 날개를 달고
날개는 천사가 되어 날아오른다 / 아, 저 하늘에 무지개 뜬다.
'저 푸른 길'을 발표한 지 열흘 뒤인 11월 16일, 남자부의 새로운 애창가
'태양의 노래'가 '세이쿄신문'에 실렸다. 두 노래는 모두 신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감각의 경쾌한 노래였다. '태양의 노래'는 야마모토 신이치(이케다 선
생님)와 시코쿠남자부가 사제불이(師弟不二)의 혼으로 만들어낸 노래였는데,
결과적으로 처음 남자부들이 만든 초안은 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신이치는 작사를 '시코쿠 남자부'라고 발표했다. 그들의 의기와 노력을
상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시코쿠에 머물면서 도쿠시마현의 노래 '사랑하는
도쿠시마'도 탄생했다. 이 노래도 모든 동지의 요청을 받아 신이치가 가필하고
거듭 퇴고했다. 세계의 벗도 어서 오너라 / 도쿠시마 천지의 기쁨은 /
나루토해협처럼 소용돌이친다.
11월 15일 낮, 신이치는 시코쿠 다카마쓰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오사카
로 갔다. 이후 와카야마현과 나라현을 도는 격투가 이어졌다. 22일에는
오사카 도요나카시에 있는 간사이도다기념강당에서 열린 제3회 간사이총회에
참석해 '아, 여명(黎明)이 다가온다'에 맞춰 지휘했다. 또 시가현과 후쿠이현
을 방문한 뒤 주부를 돌고, 시즈오카현에서도 지도와 격려에 온 힘을 다했다.
신이치가 도쿄로 돌아온 때는 12월 2일 저녁이었다. 남자부는 11월 22일,
후쿠시마현 고오리야마시에서 전국남자부간부회를 개최했다. 남자부는
이 간부회를 '태양의 노래 남자부 간부회'라고 이름하고, '태양의 노래'와
함께 21세기를 향해 출발하는 사제공전(師弟共戰)을 서원하는 자리로 했다.
아아, 저 붉고 붉은 태양이 솟아
선봉을 달리는 대장부들은…
참석한 청년들은, 광포의 선구로서 고난의 길을 열겠다고 굳게 결의했다.
'비록 어떠한 시련의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다 해도 동지를 위해, 사회를 위해
험난한 고갯길을 씩씩하게 올라야 창가(創價)의 대장부다! 질 수 없다!
우리는 늙으신 아버지,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구축하신 광포의 성(城)을
기필코 지켜야 한다!' 그 합창은 종문(宗門) 사건이라는 폭풍우를 훌륭히
이겨낸 청년의 개가(凱歌)이자, 미래에 걸쳐 인생승리를 결의하는 승리의
함성이었다. 또한 이 '태양의 노래' 작사자 이름에 관해서는 '야마모토 선생
님이 만들어주신 곡이다. 선생님이 작사하신 노래로 후세에 남기고 싶다'는
시코쿠 남자부의 강한 요청을 받아 나중에 '작사 야마모토 신이치'로 수정했다.
또 신이치는 2005년에 3절 가사 중 '늙으신 어머니의'를 '늙으신 부모님의'로
수정했다. 그리고 2016년 10월, 시코쿠에서 열린 본부간부회 때 2절 '아버지
곁에 모인'을 '스승의 곁에 모인'으로 노래하고 싶다는 시코쿠 청년부의 뜻을
받아들여 이를 수락했다.
'가장 괴로워한 동지 곁으로 달려가자! 한사람 한사람과 굳게 악수한다는
마음으로, 전 혼을 담아 모든 생명을 쏟아 격려하자!' 신이치는 시코쿠를
비롯해 간사이와 주부 등을 도는 격투의 지도행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온 지
6일 뒤인 12월 8일 오후, 규슈 오이타공항에 내렸다. 오이타 방문은 실로
13년 6개월만이었다. 신이치는 광선유포를 위해, 승리의 상승세를 구축하기
위해 '지금'이라는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정신(正信)'이라는 이름 아래 '승려의 권위'를 내세우는 '사신(邪信)'의 승려
들 때문에, 어느 곳보다도 비도한 처사를 당하고 괴로워한 사람이 오이타현의
동지들이다. '어강(御講)'을 들으러 절에 가면, 주지는 '어서'가 아니라
학회를 비방하는 기사가 실린 주간지를 들고 나와 '학회는 잘못되었다.
방법(謗法)이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탈회한 멤버가 학회원에게 잇달아
욕설을 퍼부으면 그때마다 장내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주지는
비웃으면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교활하기 그지없었다. 학회를 그만두고 절에
오지 않으면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회관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또 장례식 자리에서 학회를 공격하는 폭언을 일삼는
악승도 있었다. 슬픔에 빠진 유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용서할 수 없는 짓이다.
신이치는 그런 보고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동지가 딱하고
가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지지 마라! 승리의 아침은 반드시 온다!'
신이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면서 제목을 계속 보냈다. 공항에 나온
규슈방면이나 오이타현 간부들은 신이치를 보자 "선생님!" 하며 달려왔다.
"자, 투쟁합시다! 오이타 결전입니다. 대역전의 영광스러운 드라마가 시작
됩니다!" 사자후가 울려 퍼졌다. 모두 눈을 반짝이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모든 동지의 얼굴에 결의가 넘치고 있었다.
역경 속에서 다진 투혼은, 새로운 건설을 위한 무한한 힘이 된다.
오이타공항에 내린 신이치가 차에 타려고 하자 학회원 이삼십명이 달려왔다.
손에 꽃다발을 든 사람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괴로움을, 슬픔을 맛보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결국 여러분이 이겼습니다." 신이치는 이렇게
말하고, 눈물을 글썽이는 멤버에게 "명랑해지는 겁니다!" 하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는 공항에서 곧바로 공로자 집으로 달려가 가족을 격려했다.
이후 오이타평화회관으로 직행할 예정이었지만, 먼저 벳푸문화회관으로
가자고 부탁했다. 벳푸는 종문 사건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
이다. 국도를 따라가니 곳곳에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신이치가 오이타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반드시 이 길을 지나실 것이다.
한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며 기다렸을 것이다. 가드레일에서 몸을 내밀어
손을 계속 흔드는 부인도 있었다. 신이치는 그 다기진 모습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모두 견디고 또 견뎠다. 정신회의 악승들은, 오로지 광포를
위해 꿋꿋이 살아온 존귀한 이 불자(佛子)들을 심하게 괴롭혔다. 절대
용서받지 못한다. 어본존과 니치렌대성인에게 엄한 꾸중을 들을 것이다.
나는 오늘의 이 광경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 신이치는, 길가에서 기다리는
동지들을 볼 때마다 합장하는 심정이었다. 해질 무렵, 벳푸문화회관에 도착
했다. 회관의 부실마다 전부 불을 밝혀, 많은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신이치가 차에서 내리자 근처에 있던 노부인 세 사람이 소리쳤다.
"아, 선생님!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왔습니다. 제가 왔으니
이제 괜찮습니다!" 회관에는 200명 남짓한 멤버들이 모여 있고, 현관에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모두 신이치가
반드시 벳푸문화회관에 온다고 확신한 것이다. 사악과 계속 싸운
벳푸의 동지들과 신이치는, 공전의 혼으로 강하게 이어져 있었다.
신이치는 벳푸문화회관 현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자, 사진을 찍읍시다! 벳푸의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은 뒤 강당에서 모든 참석자와 함께 근행했다.
"벳푸 동지의 승리를 어본존에게 보고하고, 아울러 여러분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하는 근행입니다!" 모두 가슴에 환희가 약동해 기쁜 마음으로 기원했다.
동지는, 악승들의 처사에 견디면서 이 순간을 계속해서 기다렸을 것이다.
근행을 마치자 신이치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랫동안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어 정말 죄송합니다. 본디 불자(佛子)를 가장 소중히 하는 일이 승려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악승들은, 광선유포를 위해 꿋꿋이 달려온 동지를
계속해서 괴롭혔습니다. 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괴로워하고
끝까지 투쟁한 사람이 가장 행복해진다는 가르침이 불법(佛法)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장마(障魔)를 물리치고 당당히 승리했기에, 틀림없이 공덕
넘치는 인생이 열립니다. 마침내 봄이 왔습니다. 아무쪼록 불행에 우는
사람들을 구제하면서, 최고의 인생을 살아 주십시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이치는 온 마음을 다 쏟아 모든 동지를 격려했다. 그리고 오이타 시내에
있는 오이타평화회관으로 갔다. 오후 6시가 지나 회관에 도착한 신이치는,
현관에서 기다리던 멤버들과 사진을 찍었다. 모두 상쾌한 웃는 얼굴이었다.
회관에는 현(県) 각부 대표 400명이 모여 있었다. 신이치가 강당에 모습을
나타내자 큰 박수와 환성이 일었다. 강당에는 '오이타 가족에게 봄이 왔다!'
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모든 동지의 마음을 표현한 현수막이었다.
신이치는 힘주어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승리했습니다.
오랫동안 신음한 세월을 거쳐, 사자신중(師子身中)의 충(蟲)을 파하고
마침내 정의가 악을 물리쳤습니다!"
신이치는 '어서'를 배독했다.
"악지식(惡知識)이라 함은 달콤하게 말하고 거짓 아양을 부리며 말을 교묘히
해서, 우치(愚癡)한 사람의 마음을 잡아 선심(善心)을 파한다고 하는 것이
니라.' (어서 7쪽) 악지식이란, 그릇된 가르침을 설해 사람들을 미혹에 빠트
리고,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악승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광선유포를 위해
살아가려는 사람을 달콤한 말로 속이고 또 아양을 떨고 말을 교묘히 해서
선을 악이라고 부추겨, 그 사람의 마음을 빼앗고 신심을 파괴한다는 말씀입니
다. 여러분도 악승에게 수많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학회를 방법
이라고 비방하는 한편, 표적으로 삼은 사람을 치켜세워 아첨하고 교묘히
부추겨 퇴전시킵니다. 이것이 악지식의 수법입니다. 이 악지식의 본질은,
만심이자 이기주의입니다. 그것을 따르면 당연히 신심이라는 정도(正道)에
서 벗어나게 됩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살아가려면 청정한 신심을 파괴하는
이 악지식을 예리하게 간파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도 함께 신심에
힘썼는데, 악승들의 꼬임에 넘어가 학회를 떠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학회라는 불의불칙의 단체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고 몇번이나 설득
했겠지요. 그런데 겨우 학회원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해도 또다시 속아,
마음을 바꾸고 학회를 비방하며 떠났을 것입니다. 저는 창자가 끊어질 듯이
마음 아팠을 여러분의 심정을 잘 압니다." 그때의 분한 마음이 떠올랐는지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신이치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불법은 변독위약(變毒爲藥), 즉 '독을 변하여 약으로 한다'고 설합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하는 것이 신심입니다. 바람이 있어야 연이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듯이, 고난과 시련을 겪어야 경애를 크게 열고 행복이라는
드넓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이 전환의 드라마에 불법의 역동성이 있다.
▶2p입니다
이케다 선생님과 함께 신시대를 나아간다 [25]
인재의 대성(大城)을! 격려는 힘
우리 남녀청년부가 일본 전국, 전 세계 어디서나 활기차게 약동하고 있습니다.
전통의 유럽교학연수도, 늠름한 청년부가 중핵을 맡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남자부의 새로운 대학교가 의기양양하게 발족했습니다. 지용의 젊은이에게
는 춤을 추듯이 기꺼이 배우고, 달리고, 말하고, 몰두하고, 정의의 진열을
넓히는 일이 본령(本領)입니다. 나도 스승 슬하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도다대학'입니다. 그야말로 '사제불이의 대학'이었습니다. 이 대학에서
훈도받은 일이, 내 청춘 최고의 영예이자 최대의 행복입니다.
지금 후계를 잇는 대학의 준영들이 잇달아 성장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새 출발에 내가 보내고 싶은 성훈이 있습니다. <사도어서>의
"쇠는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검(劍)으로 되고" (어서 958쪽)라는 한 구절입니
다. 가장 존귀한 '생명존엄의 철리'를 내걸고 법을 위해,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고생하는 일만큼 위대한 단련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생명을
보검(寶劍)으로 만들어줍니다. 용감하게 가슴을 펴고 명랑하게, 당당하게
나아가기 바랍니다. <사도어서>에는 "사자왕(師子王)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者), 반드시 부처가 되느니라." (어서 957쪽) 하고도 씌어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오는 사내대장부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자(師子)가 되어라!'
고 나는 기원하고 싶습니다.
청년 '한 사람'이 일어서는 그 이면에는, 진심 어린 격려가 얼마나 깊이 담겨
있을까요. 65년 전, 남자부 확대에 앞장선 나도, 철저하게 한사람 한사람과
만나고 계속 격려했습니다. 만날 수 없는 벗에게는 편지나 엽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지금 각지에서 인재의 대성(大城)이 빛을 더하고 있는 것도,
존귀한 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선배들이 격려한 덕분이라는 사실을
나는 사무치게 잘 압니다. 내가 마음에 새긴 '인재육성'의 철칙 '네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지도'입니다. 벗의 행복을 기원하고, 확신을 담아 불법의
정의를 끝까지 말합니다. 둘째, '교육'입니다. 솔선해서 모범을 보이고,
함께 행동합니다. 셋째, '훈련'입니다. 상대방의 용기를 끌어내어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넷째, '옹호'입니다. 결과가 어떻든 노력을 칭찬하고
반드시 끝까지 지켜줍니다. 여하튼 '일기당천'의 한 사람을 육성하는 일은,
1000명의 확대에도 통한다는 점을 긍지로 삼기 바랍니다.
간사이에서 불이(不二)의 동지와 함께 오사카사건을 완전 승리로 장식한 지
56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날 1월 25일은 '간사이 부인부의 날'입니다.
간사이를 비롯한 전국, 전 세계 창가가족의 건강과 무사안온
그리고 지용의 환희 찬 전진을 기원하는 나날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