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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시란 (Pass it on)
어느 한 선배의 이야기입니다.
70대 중반인 선배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영문학과를 나와 비교적 영어에 능통했던 선배는 미국회사에 있으면서 주한미군들이 한국에서 현행법을 어겼을 경우 재판소의 법정 통역의 일을 하면서 미국 젊은 군인들의 좋지 않은 점을 많이 보았습니다.
따라서 미국사람들에 대한 매우 좋지 않은 선입감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던중 선배는 결혼을 하고 197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그는 시카고에 있는 한 회사에 취직이 되어 열심히 일하며 삼남매를 정성껏 양육했습니다.
그 사이 동생네 식구도 미국으로 초청이민을 와서 인디애나주의 작은 도시에서 생활하며 형제는 서로 오가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해 성탄절을 맞아 12월 24일 오후 그 선배는 식구들과 함께 동생네 집에 가서 성탄 연휴를 함께 보내고자 길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옆에 타고 뒤에 앉은 삼남매가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즐거운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떠날 때부터 흩날리던 눈이 점점 더 큰 눈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앞이 잘 안 보이게 쏟아져 내리는 미국 중서부지역 특유의 폭설에 아빠 마음은 염려가 되었지만 그러나 아빠의 염려와는 달리 아이들은 그 눈송이를 바라보며 더 즐겁게 웃고 떠들었습니다.
이제 한 시간 정도만 더 달리면 될 거리에서 자동차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샛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길 양 쪽으로는 밭이 있고 길도 구불구불 하였습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세찬 바람이 쌓여있는 눈을 옮겨 길과 밭을 구분하기 힘들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선배는 나름대로 길과 밭을 구분하려 애를 쓰면서
조심스럽게 달렸습니다.
그런데 아쁠사! 차가 기웃둥 하더니 눈에 덮여 있던 도랑으로 쑥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길이라 생각하고 달린 곳이 길이 아니라 밭이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자동차를 전진 후진 시키며 빼 내려 했으나 그럴수록 자동차는 점점 더 밭 쪽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모두 나와 자동차를 밀어 보았지만 자동차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배는 트렁크 안에 있던 이런 저런 물건들을 빼 내 바퀴에 깔고 헌 옷가지들도 바퀴에 깔고 자동차를 빼 내 보려 했지만 전혀 가망이 없었습니다.
선배는 혹시 어디에서 자동차라도 오지 않나 해서 사방을 둘러 보았지만 밤 12시가 넘은 그 시간에, 그 샛길에 더군다나 모두가 제각기 가족모임을 갖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동차가 나타날 리가 없었습니다.
휴대폰도 없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밤은 깊어지고 차는 빼 낼 수 없고 중서부 지역의 무섭게 차가운 바람은 온 몸으로 스며들어 식구들은 자동차 안에 들어가 서로 부둥켜 안고 체온을 유지시키려 애를 썼지만 점점 얼어오는 추위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빠 엄마는 아이들을 가운데에 놓고 계속 몸을 맛사지 해 주었지만 이제는 힘이 다하고 몸도 굳어져 팔을 움직일 수 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점점 얼어들어오는 몸을 느끼며 선배 부부는 “하나님! 우리 식구 여기에서 이렇게 죽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라고만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추위 속에 의식까지 몽롱해 질 무렵 선배는 저 멀리에서 불빛이 반짝 비추어지고 없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혹시 헛것을 보았나 싶어 계속 그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역시 불빛이었습니다.
자그마한 불 빛 두 개가 점점 가까워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배는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사이 눈은 그쳤지만 매서운 바람에 몸을 가누기 조차 힘이 들었습니다.
선배는 있는 힘을 다 해 “Help me! Help me!"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행히 그 불빛이 선배 쪽으로 점점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손에는 제각기 손전등과 눈삽이 들리워져 있었습니다.
선배는 지금도 그들이 그 시간에 어떻게 눈삽을 들고 자기에게로 왔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하나님이 자기를 내려다 보고 지켜 주신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선배를 보고 지금 혹한 주의보가 내렸으니 당신도 차 안에 들어가 있으라 하고는 거의 한 시간동안 눈을 치우고 각진 언덕을 깍아내리고 하더니 모두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이 차안으로 들어가 엔진을 켜고 아주 힘겹게 자동차를 그 눈 속에서 끄집어 내 주더랍니다.
그러더니 이제 당신 갈 곳으로 가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선배는 너무나 고마워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름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하니까 “패시란”이라 하더라는거죠.
그래서 어느 동네에 사느냐 물어보니까 그냥 이 근처에 산다고만 하고는 훌쩍 떠나 가더랍니다.
선배와 가족은 그들의 도움으로 얼어 죽음을 면하고 무사히 동생네 집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날 성탄일 아침, 선배는 식구들과 함께 동생을 따라 교회에 가서 온 식구가 죽음을 면하고 다시 살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예수님 이 땅에 오심을 감사하는 정말 뜻 깊은 성탄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배 후에 선배는 그 교회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혹시 이 근처에 “ 미스터 패시란”이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하니까 목사님은 그런 이름은 없다고 하면서 왜 그 사람을 찾느냐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선배는 지난 밤에 있었던 그 감격스러웠던 일을 이야기 해 주니까 그 이야기를 다 들으신 목사님은 껄껄! 웃으시면서 “아! 그 패시란 이란 사람을 내가 알겠다” 하더랍니다.
선배는 너무나 반가워 그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 하니까 그 목사님 말씀이 그 “패시란”이란 말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Pass it on"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더라는 거죠.
이 말을 우리 식대로 읽으면 “패스 잇 온” 이 되지만
미국사람들 식으로는 “패시란”으로 발음하게 됩니다.
그 목사님은 그 "Pass it on" 이란 말은 우리의 신앙용어로 “네가 받은 그대로 전해주라” 란 말이라 하면서 그들이 Pass it on 이라 한 것은 “우리가 당신에게 해 준 그대로 당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랑을 나누어 주십시오.” 란 의미로 말한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선배는 여기에서 또 한가지 자기의 교만을 고백합니다.
자기딴에는 한국에서부터 영어를 잘 한다고 큰 소리를 쳤었지만 도대체 그 "Pass It On"이란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무슨 영어 잘 한다고 큰 소리를 쳤었는지 생각할수록 부끄러웠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선배는 목사님이 들려주신 그 "Pass It On"의 의미 설명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 때 까지도 미국사람들은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강한 불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때 그 경험을 통해서 미국사람들 속에 있는 아름다운 품성, 특히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좋은 점을 깊이 깨달아 알고는 미국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관계로 살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자칫 “기복신앙”으로 빠져들 수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목적이 “복을 받아 행복하게 사는 것”에만 둘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고 복 받아 잘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패시란, Pass It On”입니다.
예수님께 이미 받은 사랑과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큰 사랑과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패시란, Pass It On” 즉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그 사랑을 우리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본다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나 만을 위한, 내 가족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이웃을 배려하고 약한 자들을 도우며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그 사랑과 은혜를 나누며 살아야겠습니다.
"Pass it on!"
-지인이 보내 준 톡에서-
"Pass it on!" 사랑을 전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5k3mq1B78QA&list=RD5k3mq1B78QA&start_radio=1
꽃샘 추위속
산수유 벙긋벙긋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나 보다
일어나니 여섯시가 훌쩍
새벽 0시에 눈을 떠 이닦고 물마신 뒤 다시 잠을 청하려니 오른쪽 갈비뼈 아래가 욱씬거려
잠을 설치다가 잠들어 이제야 일어났다
와 무슨 잠을 이리 잤을까?
잠이 참으로 대중 없다
스트레칭 생략하고 일기 마무리해 톡을 보내고 나니 여덟시가 다 되간다
오늘은 나주 시장배 바둑 대회
같이 참가하는 분들과 아홉시 삼십분까지 읍내바둑회관에서 만나기로
동생 전화
내일 형제들 나들이 하는데 큰형님을 모시고 가잔다
구십이 다 되신 분이지만 아직 걸을 수 있으니 함께 하자고
뭐 그도 좋은 일이겠지
큰형수님이 수술 받으시고 병원에 계셔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우리가 큰형님을 모시고 가면 그런대로 위안이 되지 않을까?
그러는게 형제의 정이라 생각한다
동생에게 큰형님께 말씀드려 같이 하면 어떻겠냐고 여쭈어 보라고
잠시후 전화와 그렇게 하시자 했단다
모처럼 큰누님만 빠지고 우리 칠남매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팔남매가 함께 했던 적이 오년전 함평국화꽃 대전에 나들이 한 일
그 뒤로 큰누님이 구십이 훌쩍 넘으셔 외출하기 어렵고 큰형님네도 함께 하지 못했으며 서울형님과 세종누님은 넘 멀리 계셔 모두 모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 형님께서 큰맘 먹고 내려오시고 세종 작은 누님께서 광주로 이사 오셔 큰누님만 참석치 못하고 칠남매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생전 어머님이 바라시던 형제가 화목한 그 모습을 우리가 보여준다는게 얼마나 좋은가
내일 형제들 나들이는 넘 재미있을 것같다
동생 전화
서울형님네가 갑자기 일이 생겨 급히 귀경하셨다고
저런
부푼 기대가 무너져 버렸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좋겠는데...
작은형님네도 내일 모임에 참석하기 어렵다며 모임을 다음으로 미루면 어떠냐고 해서 그럼 어쩔 수 있냐며 너와 인경엄마 작은 누님 모시고 나들이 나가자고
모처럼 시간 맞추어 계획했는데 그냥 말기가 그렇다
일단 알았단다
아침을 따끈한 차와 과일로 대용했는데 오늘은 한술 먹자고
어제 저녁을 막걸리로 때워 차만 마시면 바둑 대회 나가 시달릴 것같다
누룽지 넣어 식은밥을 끓여 한술
갑자기 뱃속이 뒤틀려 줄줄
왜 이러지
결국 몇술 뜨다 말았다
집사람이 읍내 바둑회관까지 태워다 주었다
김회장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김작가와 오사범이 와서 김회장 차로 바로 출발
나주시 실내체육관에 가니 이미 많은 분들이 도착해 있다
오늘은 나주시 바둑협회에서 주최하는 제 1회 나주 시장배 전남 바둑대회
각 시군 바둑 동호인 100여명이 모여 4조로 나누어 스위스 리그
이화 금성 영산 혁신 4조로 나누어 한 조가 25명씩으로 팀을 짰다
난 금성 8장으로 출전
자기가 써 낸 급에 맞추어 상대를 배치해 모두다 호선
나주시는 처음 바둑대회를 개최해 보아서인지 진행이 엉성
뭐 그래도 바둑 한판 두어 보는거지
정식 개회식은 오후에 한다며 나주시 바둑 회장과 전남 바둑 협회장의 인사말을 듣고 10시 50분에 첫판 시작
난 이화 8장과 두었다
내가 백
초반 포석이 끝나기 전에 내돌을 공격해 들어 와 난 전을 펼친다
중앙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만 백이 갇혀 버렸다
백이 위험을 감지하고 빨리 두집을 내버렸음 괜찮았을 건데 손을 빼 버린 통에 생사의 기로
이게 죽어 버리면 바로 투석해야한다
그 자리에서 몇 번이고 수를 읽었다
결국 후수로 한집 내고 패로 한집을 낼 수 있다는 걸 찾아 냈다
그 수순대로 두어가니 패가 벌어졌지만 백은 살고자 하는 팻감이 많아 패를 이겨 대마를 살려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시간을 물쓰듯 써버려 다른팀들은 모두 끝나고 우리만 남았다
그 분과 함께 온 분들이 뭘 이렇게 늦게 두냐니 상대가 장고를 하도 해서 바둑이 늦는단다
나 때문에 바둑이 늦게 끝난다니 좀 그렇다
난 바둑을 빨리 두는 편인데 이번엔 대마의 생사가 걸려 좀 시간을 들였다
어쩜 그게 당연한 것 아닐까?
그걸 상대 탓으로 돌리면 안되지
내 대마가 살아난 후부터 반격 시작
여기저기 흑의 약점을 찔러가니 흑이 절로 무너진다
끝내기에 들어갔는데 20여집 차이가 벌어졌다
보통 그정도면 투석하는데 투석을 않는다
어허 그러면서 나에게 장고한다고 하다니
이제 끝난 것 아니냐며 공배를 메꾸어 가는데 대답이 없다
이럼 공배를 메꾸다 수를 내버릴 수 있어 한수한수 신중하게 공배를 메꾸었다
계가해보니 내가 30여집을 이겼다
이렇게 형세판단을 할줄 모르면서 나에게 장고해 바둑두기 어렵다고 말하다니 참
점심은 시내 송리산 식당에서 백반
100여명이 한꺼번에 몰리니 서비스 엉망
아이구 분산했음 더 좋을 건데...
작은형님께서 서울 형님 안계시니 내일 나들이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떠냐고 전화
어차피 마음 먹었으니 동생들만이라도 다녀 오겠다고
이제는 형제들 연세 많으셔 함께할 시간들이 많지 않다
언제 어느 순간에 인생 기차역에서 내릴지 모른다
좀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을 때 만나는 거지
알겠다고
문사장 전화
월척 붕어를 잡았다기에 달라고 했더니 언제 오냐고
여섯시경에나 갈거라며 그때보자고
붕어가 월척이면 고아 먹어야겠다
오후 두시에 시장과 의장 의원들이 와서 개회식을 했다
모두들 즐기고 가란다
동호인끼리 수담 나눌 수 있다는 걸 즐기면 좋겠지
오후에 두판을 두었는데 상대들이 나보다 한 수 아래
장고할 필요 없이 20여분 만에 한판을 끝내버렸다
마지막에 둔 분은 장흥에서 오셨다고
내 처가가 강진 군동이라니 자긴 칠량이란다
아는 분들을 물어 보았더니 떠난 지 오래라 잘 모른다고
이 분은 앞에 둔 분보다 급이 낮은 것같다
초반 포석에서 백을 잡아 여유있게 두었다
결국 중후반엔 백 대마가 잡혀 투석
20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이미 승부는 끝났으니 돌을 바꾸어 두어 보잔다
이번엔 내가 백으로
큰곳을 먼저 선점해 버리니 흑이 뛰어 들어와 잡혀 버린다
이럼 승부 끝
나에게 자기보다 한 수 위라고
두판을 가볍게 이겼으니 그리 볼 수도 있겠지
옆사람은 우리가 두판 둘 때 아직도 중반전
다섯시 넘어 모두 끝났다
우리 금성조가 1위 했다
모두들 잘 둔 것같다
상금은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올해 첫 출전해 내가 세판을 전승하고 팀이 우승 했다는게 즐겁다
장성에 오니 다섯시반이 넘었다
김회장이 저녁 먹고가자는데 난 일이 있어 먼저 가겠다니 같이 간 김작가가 데려다 주겠다고
김작가 덕분에 편히 올 수 있어 고맙다
집사람은 오늘 종일 집에서 일을 했단다
나무에 있는 호박덩굴 다 걷어 내고 꽃들을 옮겨 심었다고
집사람이 저리 가꾸니 이 터를 휘고 살 수 있는 거지
오늘 성적이 어땠냐고 하길래 전승 했다며 받아 온 상품권이 작지만 기념으로 집사람에게 주었더니 잘했단다
집사람이 내일 나들이가는데 작은 형님댁에서 만나기로 했단다어? 동생이 우리 집으로 오기로 하지 않았냐니 작은형님네도 함께 가기로 했다고
우리가 큰형님 모시고 광주로 나가 정서방이 휴가 내었다며 동생 차와 정서방 차 두 대로
마량으로 가잔다고
강진 서울 처형집에서 점심 해먹자며 보일러 가동해 두라 했단다
작은형님께서 가시지 못한다고 했는데 마음을 바꾸셨나보다
그럼 잘 되었다
우린 기회있으면 자주 만나야한다
문사장이 붕어를 가져 왔다
다섯 마리인데 세 마리가 월척
붕어가 어찌 크던지 고무통이 꽉 찬 느낌
와 고아 먹으면 넘 좋겠다
문사장과 술한잔 나누었다
집사람이 얼른 잡채와 짜장을 데워 준다
달걀 후라이도 해서 안주로
짜장과 잡채 넣어 밥을 비벼 먹으니 맛있다
술한잔 맛있게 나누었다
집사람이 내일 나들이가니까 저녁 미사 다녀 오자는데
아이구 오늘은 힘들다고
바둑을 즐겼지만 그래도 머린 띵
내일 미사에 참여치 못하니 미사책 읽는 것으로 대신해야겠다
달빛에 마당이 훤해보인다
님이여!
꽃샘추위가 극성
감기 조심하시면서
추위에도 향기 뿜으며 피어나는 매화 산수유 관상하심도 힐링이리라
오늘도 님의 아름다운 마음의 향기가 주변에 가득 전해 지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