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유비가 촉 지방을 장악하고 한중에서 조조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군을 이끌고 대판 싸움을 벌여 승리해 한중을 장악하고 한중왕이 되죠. 이에 형주를 다스리고 있던 관우가 형주에서부터 북상하여 번성을 공략하던 중 여몽이 이끄는 손권군이 뒷치기를 감행해 형주는 손권에게 넘어가고 관우는 패퇴하다가 붙잡혀 결국 처형당하고 이에 깊은 빡침을 느낀 유비가 손권을 향한 복수전을 벌였다가 이릉 전투에서 대패하게 됩니다.
흔히 이때의 형주 공략에 대해 손권이 짧은 식견으로 유비를 배신해서 일을 그르쳤다는 비판 일색이 많은데 옛날에 댓글에서도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전 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부족하게 나마 글을 좀 써봅니다.
1. 손권이 유비와의 동맹을 통해 얻는 건 뭔가.
1강 2약의 상황에서는 분명 유비와 손권은 순망치한의 관계이죠. 제1의 국적인 조위를 무찌르고 후한 재흥을 목표로 삼은 유비의 입장에서는 손권과의 동맹은 동쪽으로부터의 공격을 막고 국력이 압도적인 조위를 함께 막아내면서 또한 조위의 방어력이 나뉘어지게 되는 효과를 내게 되죠. 물론 손권 입장에서도 익주를 차지하고 있는 유비는 국가의 존망을 위해서라도 친하게 지내야할 상대이고.
문제는 만약 북벌이 성공했다고 한다면 그 이후입니다. 손씨 가문은 본질적으로 강동 지방의 유지 가문에 불과합니다. 황족의 피를 이은 유비와는 명분 면에서 상대가 안되죠. 거기에 애초에 조위를 주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후한의 재흥과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거기에 실질적인 면을 봐도 유비가 이끄는 익주의 군세와 관우가 이끄는 형주의 군세가 뒷통수 안맞고 무사히 북벌에 성공한다면 유비는 중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반면 손권은 합비에서 보여준 각종 졸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주나 제대로 차지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전력이죠.
만약 북벌에 성공하고 조위가 멸망했다면 결국 헌제가 복위되던 유비가 다음 황제에 오르던 차기 중국의 주역은 명분으로 보나 실리로 보나 당연히 유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손권은 죽쒀서 남준 꼴이 되버리는 거죠. 거기에 조위가 무너지고 중국에 통일 정권이 들어설 경우 강동 전체가 형주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손권 세력은 중앙의 입장에서 볼때 폭탄을 안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으며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들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또한 손권 세력 자체가 호족들의 집합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을 때 호족들이 손권 휘하에서 이탈해 자멸할 수도 있죠.
결론적으로 1강 2약의 상황에서 촉한과 손오가 서로를 의지할 때는 저 동맹이 꼭 필요합니다만 북벌이 실행되고 조위가 무너질 경우 손권 입장에서는 잃을 것만 잔뜩 있고 얻을 게 없습니다.
2. 손권 세력이 삼국 통일을 원하기는 했을까
유비와 동맹을 유지하며 재통일을 이루어낼 때의 문제점은 위에서 이미 서술하였고. 결국 손권이 삼국 통일을 이룩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고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는 유비는 그냥 얼굴 마담 정도로만 남고 손권이 주도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주유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그럴 의도가 충분했다고 봅니다. 처음 동맹이 성사된 후 주유는 유비군 장수들에 대한 통솔권을 지속적으로 원했고 적벽대전 역시 주유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죠. 또한 적벽대전 이후 적극적으로 형주를 공략하면서 최종적으로 익주 정벌까지 자신이 이루어내려고 했습니다. 성공 가능성의 여부는 둘째치고 일단 주유의 구상대로 일이 이루어졌으면 손권 세력은 강동, 형주, 익주등 장강 남쪽의 모든 땅을 장악하면서 조위와 대적하는 천하이분지계의 구도가 이루어질 수 있었죠. 유비는 그냥 형주나 익주에 조만한 땅 하나 떼어주면서 얼굴마담으로 삼고 조위와 싸울 때마다 군사나 내게 하는 명분용으로 쓰고.
그러나 유비군의 빠른 행동과 제갈량의 지략으로 저 구도는 다 깨져서 형주의 대부분은 유비에게 넘어가고 익주 공략군 역시 형주에서 유비군에게 포위당해 패퇴합니다. 이 시점에서 천하이분지계의 구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덤으로 주유마저 요절했죠. 애초에 강동의 지방 유지 성격이 강했던 손권 입장에서 굳이 자기 주도하의 통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조위 멸망, 재통일에 대한 의지가 있었는지는 의문스럽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삼국지라는 명칭 특성상 당연히 여기 등장하는 모든 세력은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고정관념 비슷한게 박혀있는데(삼국지 게임의 영향도 크다고 봅니다. 장수제 시리즈를 제외하면 무조건 천하통일을 해야 엔딩이 나오니까요.) 북쪽에서의 조위군의 침공은 강동의 수군이 막아주고 서쪽으로부터 장강을 따라올 우회루트는 촉한이 막아주고 있는데 동맹만 잘 유지하면서 나라 보전하고 굳이 명운을 걸고 싸울 것 없이 영토나 넓히자 라는 게 주유 사후 손권의 기본 마인드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러면 형주 공략 역시 그렇게 설명할 수 있죠. 강동에서의 진출가능한 영토는 북쪽의 서주와 서쪽의 형주인데 서주 공략은 이미 합비 하나도 못뚫고 있는 상황이고 거기에 설사 서주를 공략한다고 해도 이 동네 지키기가 힘든 땅으로 정평이 나있어서 금방 빼앗겼겠죠. 그래서 좀더 공략하기 쉽고 지키기도 용이하고 마침 관우가 주력군을 이끌고 원정까지 나간 형주로 눈을 돌렸다고 봅니다.
3. 동맹이 일시적이나마 깨졌으니 실패 아닌가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만 이건 예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어찌보면 애초에 호족 연합체 성격이 강한 손권 입장에서는 유관장 삼형제의 강한 유대같은게 이해가 안간 걸 수도 있고. 관우가 사망하고 형주가 손권에게 넘어간 이후 촉한 진영을 보시면 주전론자는 황제인 유비와 장비 뿐이었습니다. 제갈량도 그렇고 대다수의 부하들이 우리의 주적은 조위이지 손오가 아니라고 하면서 손오와 전쟁하면 안된다고 만류하였죠. 이것이 촉한의 전체적인 여론이었고 의제인 관우와 장비를 잃은 유비의 분노가 상상 이상이었기에 결국 촉한과 손오의 전쟁으로 이어지기는 했습니다만 손권 입장에서는 어차피 조위가 있는 이상 우리가 형주를 차지한다고 해도 촉한이 우리를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다 라고 충분히 예상할만 한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결론 : 정리하자면 손권의 형주 뒷치기는 단순히 영토에 대한 탐욕으로 인한 짧은 식견으로 이루어진 무리수가 아니라 당시 손권의 입장에서는 대안이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유비에 의한 정벌과 이릉대전으로 인해 양국이 피해를 보기는 했습니다만 당시 상황을 보면 쉽사리 예측가능한 일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촉한과 손오의 동맹은 다시 복구되었으며 이로 인해 손오는 합비에서의 각종 뻘짓과 손권의 말년과 그 이후 후계자들의 각종 뻘짓에도 불구하고 촉한이 멸망하고 서진의 총공세로 인해 멸망하기 전까지 사직을 보전하면서 잘 먹고 살 수 있었죠. 천하 통일이라는 하나의 관점에서만 보면 심각한 뻘짓입니다만 손권이 처한 당시의 상황이나 손오를 보전하면서 적당히 발전시켜 나가는 관점으로 보면 형주 공략은 좀 오버이기는 하지만 신의 한수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첫댓글 하지만 제리는 까야 제맛
사실, 천하통일이라는거 자체가 굳이 안해도 되는건 맞으니깐요. ㅋㅋ.
유비가 그 상태에서 오를 공격해버린건 정말 예상 외의 사태였죠. 여기에 여몽의 급사까지 걸려서 형주 관리가 개판난걸 생각해보면 손권도 좀 불쌍할 지경(...)
하지만 1강 2약의 구도고, 1강이 2약을 모두 처치할 의도가 명확한 상황에서 2약이 서로 상잔하는 건 장기적 관점에서 도움되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결국 그렇게 호되게 뒤통수를 때리고 촉을 약화시켜서 얻은 성과라는 것도... 실질적으로 형주의 대략 3분의 1의 영역만을 위도 아니고 동맹국 촉에게서 뜯어낸 것인데다가 이 탓에 오-위 전선은 대폭 확장대고 촉-위 전선은 진령산맥으로만 축소되어버렸죠. 게다가 동오가 그 영토를 제대로 소화해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구요.
1강 2약이라고는 해도 2약이 단결해서 1강에 대항하면 한쪽을 쉽게 멸망시키기 어렵죠. 우리나라 삼국시대로 치면 나제동맹처럼. 그리고 오-위 전선이 확장되었다고는 해도 촉한이 적극적으로 북벌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위가 형주 루트로 침공하기가 쉽지 않죠. 전선이 대폭 확장되었음에도 오는 촉한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별 문제 없이 자국 영토를 지켜냈습니다. 장기적 관점으로 봐도 오에게 최상은 자기 주도 하의 천하 통일이 아니면 삼국의 구도가 고착되는 거지 촉한이 대폭 성장해서 조위를 집어삼키는 건 손오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죠.
멸망시키지는 쉽지 않지만 결국은 멸망당하는 구도였으니까요. 전력차가 너무 크고 그게 시간이 갈수록 더욱 벌어진다면 결국은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가 삼국의 구도를 고착시키길 바란다면, 장기적으로는 가장 강한 국가의 전력을 나머지 두 국가가 힘을 합쳐 압도하거나 맞먹을 수는 있어야 합니다. 이 가능성을 뒷치기로 없애버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오 입장에서도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거죠. 그리고 촉이 성장한다고 해도 털도 안 뽑고 위를 삼킬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촉이 감당 못할 만큼 팽창한다는 건 무리죠. 만약 촉의 국력이 위와 맞먹게 된다면 괴철이 한신에게 진언한 책략을 써서 캐스팅보트가 되면 그만이구요.
그때 오가 뒤치기 안했으면 촉한이 북벌을 성공시키고 중원을 장악했겠죠. 실제로 조위 측은 천도까지 고려하고 있던 상황이니 어차피 조위 VS 촉한, 손오냐 촉한 VS 조위, 손오냐 밖에 선택지가 없는데 전자는 적어도 형주를 먹을 수 있고 후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 자기가 집어삼킴을 당할 수 있죠. 그리고 실제 손오가 멸망할 때의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손오 땅 자체가 북쪽으로부터의 침공에 대한 방어가 장강으로 인해 편리한 반면 서쪽에서부터 장강을 타고 내려오는 공격에 취약합니다. 손오 입장에서는 촉한이 조위보다 훨씬 무서운 상대가 될 수 있죠.
관우의 북진 시점에서 촉이 북벌을 성공시키고 중원을 장악할 것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네요. 관우는 우금의 군대를 수몰시키고 번성을 포위하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오나라의 뒷치기 이전 시점에 이미 진격이 막힌 상황이었죠. 천도 이야기는 나왔지만 도로 들어가버렸구요. 이후 전개가 가장 이상적으로 촉에게 흘러갔다고 해도, 사주를 경계로 동서로 나뉘는 정도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촉은 익주, 형주, 옹주, 양주의 4개 주를 차지하고, 위는 예주, 서주, 연주, 청주, 기주, 병주, 유주의 6개 주를 차지하게 되서 국력 차는 여전히 위가 앞서죠. 촉이 위보다 무서운 상대가 되는게 아니라는 거죠.
교주는 어차피 동오 세력권 아니었나요? 사섭이 오에 복종하는 대신 자치권을 얻어 통치한 걸로 알고 있는데. 오히려 사섭 사후에 직할 통치하려고 나섰다가 망했고.
그리고 교주와 형주를 비교하면 아무래도 형주 쪽에 손을 들어줄만하지 않은가 싶네요. 교주야 언제라도 노릴 수 있는 땅이지만 형주는 저때 아니면 못먹죠.
교주는 좀 애매하긴 하네요. 칭신은 했지만 사섭이 운남성 일대를 장악하려 한 시도라거나, 이후 오가 직할 통치를 시도했던 점 등을 생각했습니다만. 하지만 교주를 제대로 먹는 게 형주의 남서부 3분의 1(결국 뒷치기로 먹은 건 형주 전체가 아니라 이게 다죠;;)보다 이득이 적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어쨌든 촉이 관우의 북진과 함께 위와 전면전에 들어갈 경우, 오는 외부의 위협 없이 언제나 골칫거리였던 내정을 다질 기회를 얻게 됩니다. 조비가 이릉대전 후 오를 치자 제갈량이 이릉대전 이후 혼란상태였던 촉의 내정과 남만을 정리할 시간을 얻었던 것처럼요. 형주vs서주가 아니라, 형주의 3분의1vs서주vs내실강화의 선택지죠.
그리고 익양대치의 전례를 생각하면, 촉이 지배하는 형주 일대는 촉이 형주 이외의 지역에서 위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을 때 뒷탈없이 먹기가 더 쉽죠. 위의 옹주, 양주 지배가 취약한 상황에서 위와 전선을 형성한 사실상 유일한 촉의 군대였던 형주의 관우군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촉이 오를 칠 수 있었던 거지, 만약 유비가 기산이나 장안, 동관쯤에서 위와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면 이릉전은 일어날 리가 없었겠죠. 그리고 이런 유비의 북진은 거의 시간문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나라는 대충 1~2년쯤만 기다렸다가 뒤통수를 쳤어도 이릉전과 같은 리스크를 부담할 필요도 없이 형주 서남부 일대를 얻을 수 있었을 거라 여겨지는군요.
6:2.5:1.5의 전력을 1.5껄 뺏어서 6:3:1로 만들어도 손해가 아니라는 제리는 까야제맛!
뭐 그 덕에 1의 전력이 되버린 촉한은 손오와의 동맹을 절대로 깰 수 없게 된 것도 있죠.
덕분에 형주를 잃은 촉한의 북벌 난이도는 급상승->후일 무후의 북벌이 성공하지 못했던 주요원인...형주를 쳐묵하고도 비리비리한 육전능력을 보여준 제리는 역시나 까고 또 까야 제맛!
유비가 진짜... 병신짓인 건 알지만 내 동생 뒷통수 친 새끼를 그냥 놔둘 순 없다! ㅠㅠ
이왕 결판내기로 한거 유비가 그냥 이릉대전에서도 이기고 싹 쓸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요 크흑.. 손제리는 나의 원쑤 손제리를 죽입시다
아.. 유비가 이릉에서 이겨버렸다면... ㅜㅜ 오나라 잘 박살내주다가 한방에 훅...
손제리 입장에서는 오나라가 형주를 집어삼켜도 북쪽에 위나라가 있는 한 절대 촉나라가 보복을 하지 못할거라는 계산이 있었겠죠. 쥐새끼.
그렇죠. 실제로 촉한 내에서도 유비하고 장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신료들은 손오하고 전쟁하면 안된다는 여론이었고 말이죠. 손권의 실책이라면 유관장 3인방의 강한 인연을 무시했다가 졸지에 피봤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차라리 관우를 살려서 촉한으로 보냈으면 형주는 형주대로 먹고 촉한과 전쟁까지는 안갔을텐데 말이죠.
옙. 동감입니다. 오나라 입장에서는 형주를 먹긴 먹어야하는데, 그대로 있다간 영영 못 얻을 수도 있으니 일단 먹을 기회가 있으면 재빨리 먹고보자고 나왔을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일단 먹고나면 촉한도 위나라 때문에 보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하에...
만약 관우만 안죽이고 촉한으로 돌려보냈다면 전쟁까지는 안났을 듯 한데... 오나라 보복전도 순전 의형제간의 의리 때문에 일어난 것이니.
아무래도 관우가 살아있으면 복수를 해오지 않을까 후환이 두려워서 아예 죽여버린게 아닌가 싶은데 이 부분은 확실히 손권이 계산 잘못한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