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일생
장마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후에 반짝 햇빛이 들어서 탄천으로 산책을 나섰다.
비온 뒤의 물 흐름이 시원하고 먼지 씻긴 공기도 오랜만에 청량감을 더해준다.
탄천과 동막천이 합류하는 지점 못미처에 자귀나무에 분홍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혼자보기 아까워서 사진 한 장 찍으려고 나무 밑을
돌아 보다 우연히 꿀벌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상처가 없는 것을 보니 꿀을 따러 자귀나무 꽃을 찾아왔다
힘에 부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죽은 모양이다. 뒷다리에 노란
꽃가루를 뭉쳐 놓은 것을 보니 죽는 순간 까지도 꿀과 꽃가루를 모으려고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가 기진하여 이런 가여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작은 나뭇가지로 자귀나무 밑에다 꿀벌을 묻어주면서 꿀벌에
대해서 다시생각하게 되었다. 누가 저 꿀벌에게 이토록 죽는 순간 까지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게 만들었을까? 여왕벌이 시켜서일까? 아니면 여왕벌 밑에 어떤
지배계급이 있어 이 꿀벌에게 가혹하게 일을 시킨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꿀과 꽃가루를 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태어난 것일까? 아무튼 이런 조그만 곤충에게서 나는 오늘 나 자신을 돌이켜보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나도 젊어서 6,25 전쟁의 폐허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였으며
그렇게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덧 노인이 되고 정년퇴직하여 집에서
빈둥대며 여가를 즐기는(?) 퇴물이 되었다.
꿀벌보다 나은 점은 그래도 나는 노년을 일 안하고 놀면서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더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꿀벌의 세계에서는 늙어도 죽는 순간 까지 일을 해야 하는 모양인데 이렇게 일하다 죽는
것이 행복할까? 또는 인간처럼 놀고먹는 퇴물로 노년을 살아가는 것이 나은 것일까?
이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결국 생자필멸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수명이 다하면
죽게 된다. 인간이외의 다른 생물들은 의사도 없고 종교도 없다보니 자신의 수명을 늘리거나
죽음 후에 내세를 위해 준비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죽음을 자연현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늙어서 병이 들면 의사를 찾아가서 수명연장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또한 죽음 후에 내세에 대한 대비로 자신이 믿는 종교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죽음을 자연현상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의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그 시간이 길던 짧던 그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없어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는 내 시간은 소중한 것이고
그것에 내 정성과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꿀벌이 죽기 직전 까지 꽃가루를 쓸어 모았듯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몰두 할 수 있다면
그 삶은 가치 있고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닐까?
앞으로 나의 남은여생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이제 그만 빈둥거리며 세월만 보내지
말고 내 삶에 좀 더 유용한 가치를 찾아 죽음이 나를 찾아 올 때 까지 저 꿀벌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
<자귀나무 꽃>>
첫댓글 . . . ㅎ ㅎ! '꿀벌의 일생' 잘 읽었습니다. 생각해 볼 주제입니다.
다른 몇 지인들과 같이 골프도 안 치는데, 항상 바빠 이제는 다 놓고 쉴가 하던 참인데
꿀벌의 삶도 생객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