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있는글 죽음에 대하여 한 마디 [김동길] /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되도록 죽음에서 아주 먼 거리에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이인지상정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죽기를 싫어합니다. 하기야 모든 동물이 다 죽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그것이 어쩌면 본능의 일부인지도 모릅니다. /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하루하루 조금씩 늙어가는 겁니다. 젊게 보일 수는 있어도 젊어질 수는 없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운명입니다. 사람은 늙으면 병들고, 병들었다 마침내 죽어서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아직도 지구상에 130년을 살아본 사람은 없습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오래 살게 된다고 하여도 인간은 불사조(不死鳥)가 되기는 불가능합니다. / 나는 올해 89세가 되었습니다. “소년 행락(少年行樂)이 어제련가 하노라” 하는 노래처럼 세월이 덧없이 흘렀음을 개탄합니다. “내가 90이 다 되도록 살았다니 믿기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우리 집안에는 80이 넘도록 사신 어른이 한 분도 안 계십니다. 그래서 이것은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잘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또한 문제입니다. / 그야 안중근처럼, 윤봉길처럼 죽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런 영광스러운 죽음을 꿈꾼다는 자체가 주제넘은 희망 사항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가능한 꿈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재목이 못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는 없습니다. / 나는 나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실감합니다. 유가(儒家)의 오복(五福) 중의 다섯 번째가 '고종명(考終命)’입니다. 뜻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목숨이 끝나는 때를 생각해 보는 여유’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여유를 가지고 죽음을 생각할 수 있으면 그것이 복이다” 라는 뜻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 풀이한 것이라면 그렇다고 나에게 일러주세요. / 죽은 뒤에 이어질 삶을 아는 사람도 없고 따라서 일러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 믿음 하나가 죽음에 대한 나의 공포를 제거해 줍니다. 나는 죽음 앞에 비굴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 당당하고 떳떳합니다. 가능하다면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떠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