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해를 보내며
오원성
나는 용을 좋아한다.
그것은 내가 용띠 해에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용띠 해
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던 날은, 신선한 새벽바람이 얼굴에 스며들기
도 했다 다사다난했던 토끼해를 보내고 신령스런 용의 해를 맞이하
던 새해 첫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새삼
스레 용의 해를 되뇌어 보며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본다.
열두 가지의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상상 속
의 동물인 용은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인간에게 친숙하면서도 상
祥)스러운 이미지로 전해오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용을 설화의 전설과 민속의 대상으로 우러러보
기도 하면서 고귀하고 신비로운 동물로 비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서 옛날부터 임금의 얼굴을 '용안 이라 칭했고 자리를 ‘용상’, 의복
을 용포'라 했으며 호랑이와 더불어 절대권력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명당을 뜻하는 좌청룡 우백호의 표현에서 보듯이 민간과 풍수
사상에서는 입신양면(立身揚名)과 부귀(富貴)에 비유하기도 하고,
조선시대에는 문과의 장원급제를 나타내는 상서로운 상징으로 쓰여
지기도 했다.
반면에 서양 사람들은 용(dragon)에 대하여 동양인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는 듯 하다. 그들이 상상하는 용은 사악하고 무
서운 존재로 커다란 구렁이와 같은 몸을 하여 날개를 달고 불을 토하
며 날아다니는 괴물과 같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띠 풀이에서 '용띠생' 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
다 대체적으로 건강한 편이며 정직하고 용감하다고 한다. 또한 물욕
이나 아첨하는 것도 싫어하는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라 한다. 반면에
가끔은 화를 내거나 흥분을 절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어쩌다 의
견이 다르면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하려는 경향으로 인해 고집
이 있다거나 좋고 싫음이 분명하기에 때로는 오만하다는 오해를 받
기도 한다.
스케일이 큰 몽상가로 모험심과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의욕이
강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감수성이 예민하여 낭만을 동경하고, 정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신뢰감이 두터워 인간관계를 잘함은 물론 사물에
구애받지 않은 대범한 면도 지녀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도 가지고 있
다한다.
난세(亂世)의 영웅이 된다하여 혼란 속에서 출세하는 운을 타고났
기에 안정된 환경 속에서는 재능을 발휘하기 어렵고 직업은 창조적
이고 역동적인 일이 적성에 맞다고 한다.
궁합으로 보면 용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천생배필은 애교 만점인
원숭이띠인데, 원숭이띠는 용띠의 숭엄함에 이끌려 서로 싸우지 않
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용띠는 강한 반면 쥐띠는 기술이 좋아
용띠와 쥐띠는 성공적인 짝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다. 그러나 용과 돼
지는 서로 싫어하는 것으로 풀이되어 이 띠를 가진 선남선녀들은 결
혼하는데 애를 먹기도 한단다.
용과 관련된 고사(古事)도 많다.
그 중에 '등용문(登龍門) 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입신출세에 연결
되는 어려운 관문을 일컫는 말이다 용문은 중국 제2의 대하(大河)
인 황하(黃河) 상류에 있는 협곡의 이름인데 이곳을 흐르는 여울은
어찌나 세차고 빠른지 큰물고기도 여간해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고 한다 그러나 일단 잉어가 여기까지 오르면 용이 된다는 전설로
'극한의 난관을 돌파하고 약진의 기회를 얻는다' 고 할 때 쓰인다.
반대되는 말로는 ‘점액(點額)’으로 점(點)’은 상처를 입는다는
말이고 액(額)'은 이마를 가리키는데 용 문에 오르려고 급류를 타
고 도전하다가 이마를 바위에 부딪쳐 상처를 입고 하류로 떠내려가
는 물고기를 뜻한다 즉 출세경쟁의 패배자 중요 시험에서 낙방한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용의 해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나고 파란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 기록할 만한 사건으로는 신라가
삼국통일 (668)을 이뤘으며 양정모가 올림픽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
로 금메달(1976)을 따냈고 역사적인 서울 올림픽 (1988)이 개최되
기도 했다 올해(2000)는 한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을 김
대중대통령이 수상하는 영광을 얻은 해가 아니던가! 반면에 파란이
있었던 것을 보면 임진왜란(1592)과 러일전쟁 (1904)이 일어났고
한일굴욕 외교 반대파동(1964)이 용의 해에 일어났다.
또한 6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경진(庚辰) 년의 역사를 돌아보
면, 일제가 강제로 한국인의 성명을 일본식 씨명(氏名)으로 창씨개
명(創氏改名)을 실시했고(1904)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방원이
제2차 왕자의 난(王子亂)을 통해 조선 3대 왕위에 오르기도 했다.
작은 목표가 큰 일을 이룬다는 말을 명심하면서 사실은 용의 해를
시작했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행하
여야만 되는 덕목으로 생각했고 또한 내가 꾸던 꿈이 어느 정도 완성
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나의 삶을 훌륭히 이루어낸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으로 가득 찾던 나,
작은 시냇물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루고 넓은 바다를 만들 듯, 나의
작은 꿈이 모여 커다란 소망을 얻을 수 있도록 용의 해에는 작은 일
부터 실천하는 사람이 되려 했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많아 아
쉬움이 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띠인 용의 해를 보내면서 돌아오는 뱀띠 새해
에는 좀 더 성숙된 삶을 살자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해 본다. 마음을
넓히고 생각을 키워 다시 한번 태어나 이젠 좀 더 여유로운 당당함으
로 또한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자리 매김 하는 진정한 내 삶의 주
인공이 되고 싶다.
이제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하며 나는 물론 주위의 모든 분들이 건강
하고 소원 성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1. 9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