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들인 왜인, 중림이 중국에 조공차 가는 길에 표류한 사람이라고 여겨
조정에서는 최대한 교린정책으로 상황을 풀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에 불만을 품은 부서가 하나 있지요.
지금으로 치면 국방부 격인 병조에서 팔팔 뛰며 그렇게는 안 된다고 고합니다.
'지금보니 황해도 관찰사의 장계에 '저 왜인들은 모두 갑옷을 입었고 칼을 들었으며 사람도 살해했다' 하였습니다.
왜인들이 아무리 미개하다고 해도 사람을 죽인 자는 죽는다는 이치를 모를리가 있겠습니까.
저들을 타이르려는 성상의 뜻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공차 가다가 표류한 자들이라도 사람을 죽였으면 살려 보낼 수 없습니다.
이미 상(왕)의 뜻이 결정 되었으나,
병무를 맡고 있는 저희들은 타일러 용서하려 하지 말고 기회를 잡아 죽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일은 최대한 빨리 조치하여 포획해야하니 빨리 외부 장수들에게 알려 그들을 잡아들이도록 하옵소서.'
역시 국방을 맡고 있는 병조 측에서 나온 의견이라 그 내용이 상당히 과격합니다.
중국으로 조공차 간 왜인들이 정말 조선인을 죽였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중종은 결국 도망간 왜인들을 회유하라는 남곤의 의견과 강제로 추포하여 죽이자는
병조의 의견을 각각 받아들여, 최대한 회유는 하되 만약 그들이 따르지 않으면
추격하다 죽여도 상관 없으니 무조건 잡아들이는 걸 우선으로 하라고 전교합니다.
며칠 뒤 인천 조방장인 박양준으로부터 왜선 1척이 인천 해상에서 조선 상선 하나를 겁탈했는데
배안의 쌀만 훔쳐가고 사람은 해치지 않았다는 보고가 올라옵니다.
중림이 타고 있었던 그 왜선이 분명한데, 사람은 해치지 않았다하고 훔쳐간 것이 쌀이라면
분명 배 안에 먹을 게 떨어져서 약탈을 하는 게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다음 날엔 이미 왜선이 경기도도 지나 충청도나 전라도 쪽으로 간듯 하다 말하니
이대로 가다간 조선 해역을 지나 그대로 본국으로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만 집니다.
설사 그들을 용서해준다 하더라도 잡아들이고 용서를 해야지,
왜선 한척이 조선 땅에 와서 조선인도 죽이고 상선도 약탈한 뒤 아무일도 없이 그냥 돌아가버리면 국가 위신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중종은 경기, 충청, 전라도의 모든 조방장, 병사, 수사 등에게 하유하여
왜선이 나타나길 기다리지 말고 모든 섬을 수색, 토벌해 절대 본토로 그냥 돌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망망 대해에서 어떻게 왜선 1척을 수색해 찾을까 싶은데......
찾았습니다-_-;;
문제는 충청도 수사 윤임이 왜선을 봤다는 보고를 듣고도
직접 군사를 통솔해 잡으려하지 않고 군관 두 명과 병사만 보내 잡으려 했다가
오히려 전투에서 지고 놓쳐버린데다 놈들이 도망가다가 비어있던 조선 측 배 한 척을 패몰시키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조정에선 난리가 나고 관련된 수사와 군관을 모두 추국하려합니다.
망신이 이보다 망신이 없습니다. 왜선 한 척에 서해 수군 전체가 농락당하고 있으니까요.
나중에 알고보니 패몰한 조선측 배는 군선은 아니고
예전에 외부에서 들어오던 개인배라는 게 밝혀지긴 했으나 위안이 될리가 없었지요.
하지만 수군 입장에서도 참으로 갑갑한 게,
적들을 빠르게 추격하려면 소형선에 소수의 군사만 태워 따라잡아야합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추격하면 군대가 소수고 전투에서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반대로 적을 섬멸하기 위해 대형선으로 많은 군사를 한 번에 데리고 가면
도망가는 적을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올라온 보고에도 100명을 인솔해서 출발했는데 출동한 배가 병선과 포작선을 포함해 12척이나 됩니다.
배 한 척당 굉장히 소수의 인원이 타고 있다는 말이죠.
그나마 병선은 느려서 제대로 추격하지 못했을테고,
제대로 추격가능한 건 포작선일텐데 포작선...이게 사실 군선이 아닙니다.
어선이죠. 그런데 가장 빠르다보니 급할 때 군사용으로 종종 이용하는데 이게 추격하는 덴 좋겠지만 전투하는 데는 최악이었겠죠.
그렇게 어설프게 추격에만 신경쓰다가 전투에 패하고 사상자도 2명이나 발생한 것입니다.
이쯤되니 교린정책이고 뭐고 전부 다 없어져 버렸죠.
삼정승은 잡아들인 중림을 당장 고문해 사실대로 불게 만들자고 건의합니다.
사실 조선 수군이 그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다는 것만 빼면,
바뀐 게 하나도 없는데 괜히 그들이 정말 조공선이냐 왜적이냐를 알기 위한 화살이 중림에게로 쏠려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기적적인 소식이 하나 올라옵니다.
전라도 우후 조세간이 왜적과 싸워 머리 13급을 베고 1명을 생포하여 섬멸한 것이지요.
조정에선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한 보고라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거기에 한 명을 생포까지 했으니 그들이 정말 조공선인지 왜적인지 밝힐 수 있는 확률도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고문중인 중림의 형신도 멈추고 생포한 다른 자가 올라오면 비교 심문하도록 합니다.
다음 날 전라도에서 자세한 보고를 위해 군관 나사항이 올라옵니다.
전투에서 어떻게 통쾌하게 이겼는지 전투에 직접 임한 사람에게 들을 수 있는 기분 좋은 순간입니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나사항이 말하기를,
'6월 16일에 병사(兵使: 중2품 무관직)는 안마도로, 우후 조세간은 위도로 향하여 적을 수색했는데,
27일 첩보병이 서쪽에서 배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신이 조세간과 함께 추격하니
현감 신종이 이미 왜선 1척과 싸우다가 후퇴하다 하면서 오는 중이었습니다.
그 날은 접전하지 못하고 밤새도록 포위하고 있다가,
다음날 신종이 화전을 쏘아 그 배의 돛대를 부숴버리고 창을 잡은 자를 쏘아 맞혔는데,
즉시 꼬구라져 죽었습니다. 이로인해 왜놈들은 모두 배 안으로 숨은 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안에서 배를 조종하여 남쪽 바다를 향해 도망가므로 신 등도 그 배를 추격하여 갔으나,
왜선이 크고 높은데다가 방패를 설치하였기에 화살은 물론, 총통으로도 깨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조세간이 영을 내리기를 '아군이 일시에 홰에 불을 붙여 왜선에 던지면,
왜인이 불을 끄기 위하여 나올 것이니, 그 때 돌을 던지고 활를 쏘자.' 하였고
모두들 약속에 따라 일시에 함께 불을 던져 그 배에 불을 질러 그와 같이 포획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남곤이 묻기를,
'왜인의 수는 대개 몇 사람이나 되었는가?'
하니, 나사항이 말하기를
'배 밑바닥에 타서 드러난 뼈가 매우 많았는데, 대략 30여 명쯤 되었습니다.'
하여 남곤이 다시 물으니
'왜인 1명은 무슨 방법으로 생포하였는가?' 하니
'배를 모두 불태운 뒤 혹 숨어 있는 자가 있을까 의심스러워 또 불을 놓아 태웠더니,
왜인 하나가 나와서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면서 살려달라는 식으로 말하므로,
신이 옷을 벗으라는 시늉을 보여주니, 왜인이 즉시 옷을 벗고 와서 항복하였습니다.'
타죽은 자만 30여명이고 참수한 자와 생포한 자가 14명이 되는데다
물에 빠져 죽은 자도 있다고 한다면, 그 수가 정말 적지 않게 많았다는 겁니다.
게다가 배도 총통이 전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크다는 보고를 들으니
충청도에서의 패배가 어느정도 납득이 되는 상황입니다.
질문이 이어집니다.
'너의 배가 10척이고 신종의 배가 10여 척이었으니 추격하여 포위하면
왜선으로 하여금 달아나지 못하게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어찌하여 큰 바다에까지 추적하여 갔었는가?' 하고 물으니
'왜선의 빠르기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 그날 순풍이 있었음으로 접전하였지
그렇지 않았다면 결단코 따라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남곤이 다시 묻기를,
'왜인도 활을 잘 쏘던가?' 하니,
나사항이 '비록 쏘는 자가 있었으나 활이 강하지 못하여, 맞은 자가 다치지 않았습니다.'하고
이번엔 중종이 묻기를,
'각궁을 사용하여 쏘던가?' 하니
'왜인들이 방패 안에서 활을 쏘았으므로 무슨 활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남곤이 의아해하며,
'방패 안에 있었다면 너희들이 어떻게 쏘아 맞혔는가?' 하니,
나사항이 대답하기를
'그 방패 위에 두 귀가 있었는데, 왜인들이 반드시 이를 통하여 엿보았으므로
그 틈을 이용하여 쏘아 맞힐 수 있었습니다.'
-_-;;; 믿어야하나요 이걸....
뭐, 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적을 섬멸하고 수급 13개를 가지고 온 건 정말 엄청난 성과였습니다.
조선 수군의 문제점을 보여주긴 했지만 최소한의 자존심은 살려준 셈이었죠.
기분 좋은 승전보에 조정에선 조세간과 승전한 수군들에 대한 상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제 생포한 왜인을 추문하여 대체 이놈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히고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민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