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뚜껑 머리에 이고
이나림
“비나이다 비나이다"
무거운 가마솥 뚜껑을 머리에 이고 허리를 구부리며 동서남북을
보고 절을 했다 한번 구부릴 때마다 내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
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쿡쿡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애를 썼던가.
살구나무 꽃망울이 붉게 물들고 하얀 목련이 미소를 짓는 계절은
분명 봄이었다. 그러나 비는 장마처럼 그칠 줄을 모르고 주룩주룩 쏟
아 부었다 하필이면 그 날이 시아버님 환갑날 아침이 될 줄은 아무
도 예상치 못했다. 집안식구 모두가 밤잠을 설치고 손님 치를 걱정에
수심이 가득 찼다.
맏며느리이면서 힘든 일에 자신이 없던 나는 처음부터 잔치를 뷔
페로 하자고 우겼었다. 식당에서 하면 시골 노인들이 편안하게 드실
수 없다는 것이 아버님 뜻이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아버님 뜻을 따
르기로 했는데 불편한 것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아버님께서 빌려
오신 그릇은 20년 전에 쓰던 골동품이었고 이래저래 뾰루퉁해져 있
는 내게
"그릇이 문제냐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하시던 아버님이 왜 그리도 이해가 안되고 섭섭했는지 모른다.
큰일에는 날씨도 한 몫 한다는데 모든 일이 아버님 뜻을 우기려 했
던 내 탓인양 아버님 뵙기가 민망스러웠다. 아마 그 날 아침 시종조
모께서 솥뚜껑 비방을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면 두고두고 아버님 뵙
기가 송그스러웠을 게다. 의아해하며 비방은 무슨 비방이냐는 내게
가마솥 뚜껑을 머리에 이고 사방 팔방 절을 하면 비가 그친다는 것이
다. 처음엔 터무니없는 미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
인데 이런 비방을 일러 주실까. 비를 내리게 해달라며 기우제를 지내
는 것은 보았지만 비방을 하면 비가 그친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
다.
그러나 근심에 쌓인 어머님은 정성껏 마련한 음식에 빗물이 튀길까
단도리를 하고 다니시고 아버님은 속이 상하신 듯 이불을 쓰고 자
리에 누워 계셨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워 비만 그친다면 가마솥
뚜껑이 아니라 가마솥이라도 이고 절을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
다. 종조모께서 시키는 대로 굴뚝을 보고도 절을 하고 장독대, 외양
간에도 절을 했다. 처음엔 내 모습이 우스워 킥킥거리며 절을 했으나
절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는 날씨마저도 정성이 부족한 내 탓처럼 느
껴졌다. 잘해드리려고 마음먹고 내려가던 시댁이었지만 늘 드린 것
보다 많은 것을 받아들고 돌아오던 죄송한 마음도 이 기회에 용서를
빌고싶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도 어머니 손은 갈라져 피나는 줄
도 모르고 어머니께서 건네 주시던 장갑을 당연한 듯 받아 끼었던 철
없는 며느리였음을 부끄러워하며 그 사랑에 감사의 눈물도 흘렸다.
물에 빠졌을 때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했던가 그처럼 터무
니없음을 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그 독특한
비방이 정성을 다하면 비가 그칠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
이 지났을까? 나의 착각이었는지 솥뚜껑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약해
졌다고 느낄 무렵, 숙모님은 솥뚜껑 비방을 모르시는지 아침부터 왠
가마솥 뚜껑을 이고 다니느냐고 물으셨다. 그 바람에 밥상 앞에서 솥
뚜껑이 화제가 되었다. 조용히 듣고만 계시던 어머님 말씀이
“얘야 말도 마라 한 밤중에 내리는 비가 얼마나 내 속을 태우던지
네 말대로 식당에 예약 못한 것이 후회 스러웠다. 손님 치를 걱정에
잠은 안 오고 솥뚜껑을 이고 절을 하면서 날이 밝도록 집을 돌았다”
하신다.
그 소리에 일가친척은 그 시어머니에 며느리라며 배를 쥐고 와르
르 깔깔대며 웃었다. 한바탕 웃고 난 뒤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
렇게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하늘에는 무지개가 떴다. 그것은 분명 어
머님의 정성이었다. 관절을 앓으시면서도 오죽 걱정이 되셨으면 무
거운 솥뚜껑을 이고 절을 하시며 빗속에서 아침을 맞으셨을까. 하지
만 어머님은 내 정성 때문에 비가 그쳤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이십
여 년이 하루 같은 어머님의 끝없는 사랑, 좋은 일은 내 몫으로 돌리
는 배려, 말씀 없이 실천하시는 정성 모두 닮고 싶다. 다시금 태어나
도 시어머니로 모시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어머님은 알고 계실까.
비 그치기를 기다린 만큼 풍악도 크게 울리고 잔치가 시작되었다.
마당에는 오색 풍선이 일렁이고 외양간의 어미소와 송아지도 큰 눈
을 굴리며 구경에 나섰고 목련꽃도 활짝 웃었다. 과방을 보는 동네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손님 대접에 바빴다. 바쁘신 만큼 과방 문턱에
새끼줄을 매놓고 수고비로 미역 값을 달라는 또 다른 풍습이 즐거움
을 한층 더 했다. 새끼줄에는 우리들이 매달은 만원짜리 지폐가 바람
에 춤을 추고 사다리로 만든 가마에 타신 아버님과 어머님도 어깨춤
이 멈추지 않으셨다.
2001. 9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