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과 소문(외 1편)
최옥향
그녀는 재빨리 꼬리를 자르고
풀숲으로 사라졌다
앙증맞고 귀여웠던 그녀의
굳게 봉인되었던 내밀한 속살이
바위 위에 올려놓은 생선처럼 파닥거렸다
풀숲 어딘가에서 몸을 낮추고 응시하던 눈빛이
밤마다 개똥벌레가 되어 개울가로 내려왔다고
사람들의 들끓는 말들로
꼬리는 곧 몸통이 되었다
마법 같은 알 수 없는 힘에 떠밀려
너무 멀리 가버렸던 우리들 한때의 치기같이
몇 번의 가출로 싹둑 잘려나갔던
그녀의 머리카락 같은 꼬리
몇몇 목격자의 손가락 끝에서
바람은 그녀의 흔적을 흔들며
사라져간 길을 지워나갔다
숲 그늘에 몸을 숨기고
소문처럼 자라는 상처를 핥고 있을 그녀
잠깐의 사라짐은 결코 영원한 소멸이 아님을
그녀가 떠나간 길목을 서성이는
205호 남자의 젖은 바짓가랑이에는
도꼬마리 몇 개만
또 다른 소문처럼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붉은 기억의 노래
뱀이 지나간 냉기의 시간들
그 덩어리들을 삼키지 못하고 우물거릴 때
저 밑바닥에서부터 공명하는
빅토르 최의 울음을 노래로 듣기까지
불우한 날의 뺨을 후려치던 큰 손바닥
첫 경험의 생을 도굴당하는 그 끈적한 미친 음향들을
술잔의 수위로도 삭히지 못하고 불협화음으로 끅끅댈 때
범람하는 붉은 토사물을 먹고 표류하는 무서운 침묵들
먼 우주의 은하수 한 자락 끌어내려
오늘 또 하나의 더미를 통과하면서
주술사의 주문 같은 한 소절을 반짝 별 하나로 입안에서 사탕처럼 뱉어낼 때
울음 뒤끝의 웃음처럼
어두울수록 새벽이면 더욱 빛나는 별을 노래할 때까지
무성한 비명이 부딪치는 창에 기대어
침묵을 흔드는 그 빗방울을 노래하기까지
새의 천만 마디 말에 귀 기울여
숲을 지나 바람에 묻어온 새들의 울음이 하나의 화음으로 들리기까지
우리는 새의 길인 숲을, 허공을 아파해야 하리
아득하고 먹먹한 붉은 기억의 상처가
이 지상에서 한 점 떨리는 불빛의 선율로 흔들리고
그 슬픈 발성법으로 가만히 등을 두드리는 노래
먼먼 상류를 거슬러 올라 발원지의 그 속살거림으로 노래하기까지
—시집『도마뱀과 소문』(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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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향/ 부산 기장 출생. 2007년 〈농민신문〉신춘문예에 시 「호두, 그 기억의 방」당선. 시집『도마뱀과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