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간호사, 이발사가 하얀 가운을 입는 이유
이화의대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수도사에서 유래된 흰 가운 의사의 권위와 신뢰 상징 가운 변형은 외형보다 병원 위생 원칙이 기준 돼야
임상실습을 나온 의대생들에게 의사가 되려는 동기를 물어보면 대개는 비슷한 대답들을 한다. 가족 중 어떤 질환을 앓은 사람이 있어 지원했다거나, 의사들의 진료나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거나, 혹은 집안에 의사가 있어 의사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교과서적인 대답을 하는데,한 번은 매우 독특한 답을 한 학생이 있었다.
“의사의 하얀 가운이 너무나 멋있고, 저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지원했어요.” 이 얘기는 아마도 의학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스타들의 가운 입은 모습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의사 말고도 이발사, 요리사 등 하얀 가운 입는 다른 직업이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더니 예상치 못했던 반문인지 당황해 하며 답을 못하였다.
하얀 가운을 입는 직업군은 다양하다.
이발사, 조리사, 과학자, 실험실 연구원, 미용관리사, 식품 취급 관련 직종도 하얀 가운을 입는다.
병원에서도 의사들과 같은 형태의 하얀 가운을 입는 직종은 많다.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하얀 가운만 입으면 모두 의사일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약사, 방사선사, 병리사, 영양사, 의무기록사, 그리고 진료지원 전문 간호사들도 하얀 가운을 입는다.
이러한 병원 전문직들이 가운을 입는 것은 진료 중에 발생하는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가운의 색이 하얀 이유는 불결해졌을 때 바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의사들이 가운을 입게 된 것은 처음에는 의학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수도사들이 질병의 치료를 맡았었는데 의사 역할로 전문화되고 성직자용 가운이 의사의 가운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들은 진료와 함께 수도사들의 수염과 머리를 깎는 일도 함께 맡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사용되는 이발소 표시인 삼색 등의 빨강, 파랑, 흰색은 동맥, 정맥, 붕대를 의미하고, 의사와 이발사의 가운도 원래는 같은 유래인 것이다.
이후 역할을 분담하면서 세력의 정도에 따라 의사는 긴 가운, 이발사는 짧은 가운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실용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하얀 가운이 오랜 세월 지나면서 의사들의 권위와 신뢰의 상징으로 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의사들의 복장이 바뀌고 있다. 긴 하얀 가운과 넥타이를 착용하는 전통적인 드레스코드 대신 짧은 재킷 가운으로 바뀌는 경향이고,긴 넥타이 대신 나비넥타이를 이용하는 의사들도 많다.
일부 개인의원에서는 색깔 있는 가운을 입거나 개량한복 형태의 가운을 입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는 과거와는 달리 의사들의 하얀 가운이 오히려 환자들에게 불편함과 불안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병원에서 의사가 하얀 가운을 입고 혈압을 재면 평소 정상이던 사람도 혈압이 올라가는‘하얀 가운 증후군’이란 현상도 있다.
재킷 가운과 나비넥타이 착용은 단지 친밀감 때문만이 아니라 병원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병원감염은 병원 환경에서 얻은 감염으로, 입원 당시에는 증상이 없고 잠복상태도 아니었던 감염증이 입원 중에 혹은 퇴원 후에 발생하는 경우로 정의된다.
감염균은 환자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미생물이거나 병원 내에 존재하는 미생물이다. 병원감염을 유발하는 세균들은 항생제 내성을 가진 경우가 많으므로 치료가 어렵고 심각한 상태에 빠지기도 하는 위험한 질환이다.
병원감염균은 환자의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에 의해 전파될 수 있고 가운이나 넥타이가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가운의 밑단과 소매 끝자락, 그리고 일반 넥타이 끄트머리에서 주로 많은 세균이 검출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짧은 재킷 가운과 나비넥타이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재킷 가운은 배가 나오거나 키가 작으면 잘 어울리지가 않고, 나비넥타이는 왠지 콧수염을 길러야 할 것 같은, 아직도 어색한 병원 패션이다.
사실 병원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운의 형태나 길이도 문제가 되겠지만 얼마나 자주 갈아입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보여 주기 위한 외형적인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병원 위생에 대한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