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교수,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당신도 좀 당해봐."
1969년 10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45세
남덕우(南悳祐) 서강대 교수에게 재무부 장관 임명장을 주면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농담 섞어 건넨 말이다. 박 대통령과 남덕우 전 총리의 경제개발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남 전 총리는 서강대 교수 시절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년)의 평가 교수단에 참여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다가, 박 대통령의 눈에 띄었다. 박 대통령은 미 스탠퍼드 대학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집을 짓고 있던 남 전 총리를 불러, 흙 묻은 구두를 신고 온 그에게 재무장관 임명장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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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남, 이별, 재회… 그리고 이별 - ▲196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재무장관 임명장을 받는 남덕우 전 총리(왼쪽사진) ▲1979년 11월 남덕우(왼쪽에서 둘째) 당시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마치고 청와대를 떠나는 박근혜 대통령을 배웅하는 모습(오른쪽 위 사진) ▲작년 2월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개관식에서 남 전 총리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얘기하는 모습.(오른쪽 아래 사진) /조선일보DB
교수 출신이라 공직사회에서 오래 못 버틸 것이란 주변 예상과 달리, 남 전 총리는 4년 11개월간 재무장관, 4년 3개월간 경제부총리라는 역대 최장수 재무장관과 경제부총리를 역임했다. 그의 정책 리더십은 뚝심과 원칙이었다. 남 전 총리는 재무장관 시절 은행장을 모두 교체하겠다는 뜻을 박 대통령에게 밝혔다. 이유를 묻는 박 대통령에게 남 전 총리는 "지금처럼 금융이 정치와 유착된 상태에서 금융 부정과 부패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고, 박 전 대통령은 "그럼 소신대로 해보시오"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금융계의 거물로 알려진 한 은행장을 교체할 순서가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김정렴 당시 비서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청와대로 달려간 남 전 총리에게 박 대통령은 "공화당 당의장이 찾아와 A은행장의 유임을 요청하고 돌아갔으니, 청을 들어주는 게 어떠냐"고 했다. 하지만 남 전 총리는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의 정책이 수포로 돌아가고, 금융계가 나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박 대통령은 "알았어. 대신 당의장이 다른 부탁을 하거든 하나쯤 들어줘"라고 양보하며 남 전 총리를 존중했다.
박 대통령은 강직한 남 전 총리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다. 남 전 총리는 부가가치세 도입이 1978년 여당 총선 참패의 빌미가 되자 총대를 메고 부총리직에서 물러났는데, 박 대통령은 그에게 여비를 주며 전국을 돌아보라고 말한 뒤 20일 뒤에 다시 경제 특별보좌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그게 박 대통령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부름이었다.
그는 전두환 정권에서 국무총리로 기용됐지만, 1981년 말 예산안을 통과시킨 뒤 사임했다. 이유는 "야당 의원들이 나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남 전 총리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도 남달랐다. 그가 88올림픽 직전에 완공한 무역협회 건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위한 공간이 하나 있다. 남 전 총리는 "무역협회 엘리베이터를 타는 서쪽 끝 벽에 오목하게 들어간 곡선 공간이 있는데, 내가 박정희 대통령의 흉상이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든 곳"이라며 "언젠가는 무역협회가 나의 소원을 실현해주기 바란다"라고 자신의 회고록(경제개발의 길목에서)에서 밝히고 있다. 남 전 총리는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안가로 불러 "대통령 후보로 나서달라"고 권유했을 때엔, 간곡히 사양한 뒤 미리 준비해둔 무역센터 계획안을 보여주며 대선 후보직을 고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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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국무총리로 재직할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신병현 당시 부총리, 김경원 비서실장과 함께 특별사면해줄 것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남 전 총리는 아래로는 경청 리더십을 보였다. 똑같은 내용을 보고하러 온 부하 직원들을 물리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재무장관 시절 이재국장(현 금융정책국장)을 맡았던 이용만 전 재무장관은 "남 전 총리는 같은 내용을 보고받는데도 마치 처음 듣는 자세였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내 입장에선 앞선 보고자가 빠뜨린 내용을 챙길 수 있어 좋고, 보고자는 신이 나서 보고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남 전 총리와 함께 일했던 공무원 가운데 경제부총리 또는 재무장관에 오른 사람이 20명 가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