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병정 / 이기철
사과가 가지마다 둥글게 달리는 것은 고추잠자리 때문이다
고추잠자리가 둥글게 둥글게 여름을 건너
가을을 끌고 오기 때문이다
누가 비슬산 가문비나무보다 높이 하늘을 받칠 수 있나
여름만큼 햇살을 동글동글 뭉쳐
나무에 매달 수 있나
매미는 어두워질 때까지 호각을 불어
사과 침입자들을 몰아내고
말벌들은 창검을 세워 사과 탐식자들을 무찌른다
높다란 천장으로 올라가 돋보기를 끼고
파수를 서는 버마재미들
벌레들이 낸 사과 속의 흰 길을 따라가며
내가 사과를 먹는 것은
매미의 악기와 말벌의 창검과
버마재미의 번뜩이는 눈초리를 먹는 것이다
칼로 사과를 쪼개면
압침으로 꽂아두었던 펄럭이던 밤들이
음악처럼 쏟아진다
억측이 아니다
내가 사과를 따는 것은 알록달록한 공중의 유혹
내던져도 깨지지 않는 바람의 둥근 우주
사과 병정의 징소리를 따는 것이다
구름이 따가지 않은 여름을
내가 따는 것이다
식욕에 길든 내 이가
사과 한 알을 깨물 때
첫댓글 믿고 읽는 시인이 되버린 이기철 시인입니다.
아휴 ~부러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