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골수성 급성 백혈병) 투병 일천여든세(1083) 번째 날 편지,3(사회,경제)-2023년 8월 25일 금요일
사랑하는 큰아들에게
2023년 8월 25일 금요일이란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국내 기업들에 재생에너지만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RE100'을 요구하면서, 이들 기업이 한국 부품사와 맺은 계약이 잇따라 취소되는데, 당장 국내 부품사들은 'RE100'을 실천할 방도가 없어서 전전긍긍 속앓이를 하고, 기업에선 속수무책이라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진작에 'RE100'을 요구하고, 애플 같은 미국 IT기업들도 점점 'RE100' 요구를 더해가는 중이라 그냥 있다가는 삼성이 'RE100' 때문에라도 용인에 팹을 짓기보다는 미국에 팹을 지을 거라는데, 설마 윤 대통령이 그새 잊은 건 아닌지?
하지만, 한국경제신문은 "한국은 원전 추가 건설 등으로 안정적인 무탄소 전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적극적 이슈 파이팅을 통해 국제표준을 RE100이 아니라 CF100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기사를 마무리하는데, 'RE100'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수출이 끊긴다면서 대책이라며 CF100(무탄소 전원 100% 사용)을 들고 나왔다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대통령님이 이거 할 수 있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소니, BMW 등 세계 굴지의 기업 400여 개가 이미 'RE100'을 선언하고, 협력업체에 그 기준을 요구하고, 한국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 대부분 수출기업이 참여를 선언한 'RE100' 대신에 원자력의 안정성 문제 때문에 아직도 논란이 되는 CF100을 윤 대통령이 나서서 국제표준으로 만들 수 있겠냐고 묻는 거라네.
닥쳐올 기후위기를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민간단체가 나서고,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호응하여 'RE100'이라는 기준이 만들어졌고, 그 기준을 따라가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인데, 우리처럼 수출이 국가 경제의 핵심인 나라는 세계 기준을 맞춰야 수출할 수 있는데, 우리가 원자력발전을 하겠다고 세계 기준을 우리의 요구대로 바꾸는 게 가능할까?
윤 대통령과 'RE100' 걱정하면서 원자력을 대안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RE100'에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겠다며, 4월 홍보물을 하나 내놨는데, 거기에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9가지의 오해에 대해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다네.
원자력이 대안이라는 이들 보라네.
재생에너지는 설치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오해에 대해선 유럽은 새로 짓는 태양열 발전소는 장기적으로 가스화력발전소보다 10배 더 저렴하다는데, 발전 가능 시간이 제한적인 건 예측 가능한 변동성이며, 여러 소스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고, 에너지의 저장 문제는 배터리의 가격이 내려가는 추세라 문제가 없다는데, 리튬 이온 배터리의 가격은 1991년 이후 97%나 하락했다네.
이 간단한 홍보물에서 한국을 콕 집어 언급한 것도 있는데, 재생에너지를 설치할 수 있는 충분한 토지/공간이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한국은 먼바다에 부유식 발전설비를 설치하면 624기가와트(GW)의 전력을 추가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인데, 한국은 재생에너지 개발을 안 하는 거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네.
이 외 기존 발전 산업의 일자리 문제나 수소에너지로의 대체 문제, 재생에너지의 발전 용량에 관해서도 설명이 되어 있고, 두 페이지에 그래픽까지 있으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되니, 시간 나는 대로 직접 한번 보라네.
이 홍보물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여덟 번째 항목, 원자력은 재생에너지인가? 라는 질문인데, 'RE100'의 답은 명확합니다. 길지 않으니 그대로 옮겨 본다네.
원자력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이 아니고, 원자력은 제한된 에너지원인 방사성 연료를 사용하는데, 재생 가능 에너지란 소비되는 것보다 더 높은 비율로 보충되는 천연자원에서 나오는 것인데, 혹시나 설명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원자력 발전소 그림 위에 아니라고 X자 표시까지 큼직하게 그려 놨다네.
정리해 볼까?
'RE100' 달성은 이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약속한 것이며, 이걸 우리 기업들이 달성하지 못하면 수출에 큰 영향을 받고 이미 시작이 되었지만, 한국 재생에너지 사용율은 3.36%로 OECD 국가 중 꼴찌라네.
그 와중에 윤 대통령이 집권한 후 한국의 재생에너지 개발 목표는 낮춰졌고, 대신 그 빈자리를 원자력발전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RE100'에서는 원자력은 재생에너지가 아니라고 못 박아 두고 있다네.
"바보짓"은 누가 하고 있나?
그럼 이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뭘까?
대통령은 이 질문에 신한울 3·4호기 제작 착수로 답을 했는데, 2조 원 규모 보조기기 발주도 시작하고, 올해 전체적으로 3조5천억 원 규모 원전 일감 공급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대통령이 우리나라 주가가 내려가야 돈을 버는 이른바 곱버스(인버스 레버리지 상품)에 거액을 투자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네.
독일은 탈원전 선언 후 4월에 마지막 남은 3기의 원자력 발전소의 전원을 내려 독일에 더 가동하는 원전은 없는데, 한국은 독일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어 그 결과 자동차 부품 업계의 잇따른 계약 취소라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애플이나 델 같은 IT 기업들도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협력업체에 이미 통보를 한 상태로, 'RE100'을 먼저 달성한 기업들이 탄소발자국(제품의 전 과정에서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적으로 나타낸 지표) 관리를 위해서 우리 기업들에게 'RE100' 달성을 요구할 거라네.
윤 대통령은 작년 원전업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지난 5년간의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고 9일에 "탈원전, 이념적 환경정책에 매몰돼 새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한다면 과감히 인사 조처해라."고도했구나.
환경정책에 이념이 왜 들어가나?
대통령이 매번 이렇게 걸러지지 않은 발언을 하니, 대통령이 세계적 추세와 거꾸로 원전에 매몰되어 가는 동안 주변에선 인사 조처를 겁내어 그 어떤 조언도 하지 않는 거라네.
예전 정부에선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을 자주 내던 기업단체, 경영자단체에서도 뭐가 두려운지 입을 다무는 대신 대통령 인사 조처에서 자유로운 마이크 피어스 'RE100' 대표는 인터뷰에서 "한국이 재생에너지 목표를 30%에서 2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줄인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네.
윤 대통령의 인사 조처에서 자유로운 신분이니,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되돌리며, 대통령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친 원전 정책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이라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아무튼, 오늘 오후 편지 여기서 마치니,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늘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안녕히…….
2023년 8월 25일 금요일 오후에 혈액암 투병 중인 아빠가
핸드폰에서 들리는 배경음악-[외국곡] Waltzing Matilda-The Seek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