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와 연천군에 있는 스토리 미군 사격장안에 조선시대 문화재가 무더기로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관련 정부부처들이 그동안 제대로 된 문화재 조사를 하지않아 귀중한 문화유산이 미군 사격장안에서 심각한 훼손 위기에 놓여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스토리 사격장안에는 김알지(신라시대 경순왕 직계후손)의 37대손인 원주 김씨 시조 김거공 묘를 비롯해 조선 초기 때 유행했던 김을신 등 육각묘 형태의 고분(오래된 분묘)이 무더기로 있는 것으로 현지 주민들과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들에 의해 확인됐다.
또 파주시 진동면 초리 일대에는 이런 고분 30여개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이곳은 조선시대 초기때 원주 김씨와 풍양 조씨 등의 집성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곳은 민통선(민간인통제선)에 있는 것으로 미군에게 공여된 땅이다.
이 때문에 관련 정부부처 또한 그동안 제대로 된 문화재 조사를 하지 못했다.
스토리사격장 안에서 발견된 이 육각묘는 조선시대 초에 잠깐 유행했던 무덤양식으로 호석은 가로 3.3m×높이 7cm 크기다. 가로 한 변이 340cm인 육각형 형태로 돼 있다.
고분 가운데는 고려말과 조선초기 문인이자 형조판서까지 지냈던 유용생의 묘도 자리잡고 있다.
이는 경기도청이 유형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는 월룽 심씨의 육각묘보다 더욱 분명하게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문화재 보전가치가 뛰어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우림 서울역사박물관 관장은 “원형 호석의 하반석 묘표, 삼단에 개체석 및 문인석을 봐서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무덤 형식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며 “이런 형태는 희귀한 것은 아니지만 원형을 그대로 갖추고 있어 문화재적인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김성한(세종대 고고학과 석사과정)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간사는 “경기도에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월룽 심씨의 육각 묘보다 보전상태가 훨씬 좋다”며 “이 지역(스토리사격장)은 풍수지리로 유명한 땅이고 조선시대 때 고급관직에 있었던 사람들의 집성촌이었던 점을 보면 정밀한 문화재 조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파주시 진동면 초리 김거공 분묘 일대를 다녀온 역학과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김남원씨는 “풍수에서는 산 앞에 있는 것을 명당이라고 부르는데, 김거공의 묘는 안산이 적당히 잘 감싸주고 있어 명당자리로 고려시대 정승들이 많이 뭍혀 있는 지역”이라면서 “그런 명당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관철 파주녹색환경모임 대표는 “어렸을 때 큰 묘가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며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문화재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국방부 쪽은 스토리사격장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이 곳을 묘지 이장대상에 잡아놨다.
국방부가 묘지 이장 관련 안내문을 보면, 묘지 이장비용도 단장은 180만원, 합장은 230만원으로 책정해 놓았다.
별도감정을 해 이장비용을 잡을 수 있다는 단서도 달아놓았다.
특히 국방부는 이 안내문에서 이장 대상 묘지와 관련해 “신고가 없는 분묘에 대해서는 이장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장신청 분묘에 한하여 관련 절차에 의거해 이행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고분을 관리하고 있는 원주 김씨 종친회 부회장 김장성(68·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씨는 “조상들의 산소가 사격장이 안되기를 바라지만 국가에서 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막을 수 있냐”면서 “30년 동안 군대에서 사용한다고 해서 팔지 않고 지상권 설정만 해놨다”고 말했다.
현재 스토리 사격장 안에는 원주 김씨, 풍양 조씨, 청주 한씨종친회 등 오래된 묘가 많지만, 대부분 지상권 설정만 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경기도 파주시와 연천군에 있는 스토리 미군 사격장안에 주요 문화재가 무더기로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정작 한국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있다. 한미행정협정(SOFA) 때문이다.
통상 3만㎡ 이상이 되는 곳을 개발할 때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한 뒤, 해당 자치단체와 문화재청에 보고해야 한다.
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제출된 문화재 지표조사 결과를 보고서를 보고, 심의를 통해 공사중지와 원상복구 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스토리사격장은 미군에게 공여된 땅이기 때문에 부지안의 환경과 문화재를 훼손하더라도 현행 한미행정협정(SOFA) 때문에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스토리사격장은 국내법의 적용을 받는 ‘한국 땅’이 아니라 미국에게 공여된 ‘미국 땅’이기 때문이다.
실제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가 국방부와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스토리사격장 지표조사 결과보고서 제출 요구하자, 이들 정부부처는 한미행정협정 제3조를 근거로 주한미군에게 국내법 준수를 요구는 무리라고 답변했다.
국방부는 문화연대에 보낸 답변서에서 “문화재 지표조사의 검증자료는 문화재 보호법 제74조 2항의 이행과 관련한 사항으로 주한미군에게 국내법을 준수토록 요구하는 것은 SOFA 환경관련 조항에 비추어 곤란하다고 사료된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도 “SOFA 제3조 1항은 미국이 시설과 구역의 설정, 운영, 경호 및 관리에 관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포괄적인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므로, 문화재지표조사 및 환경영향평가에 관한 국내법을 직접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보냈다.
파주시청 문화진흥과 담당자는 “스토리사격장 부지를 보면 문화재보호법의 적용대상이 되지만, 문화재보호법이 생기기 전에 미군에게 공여된 땅이고, SOFA규정 때문에 법적용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장희 외국어대 교수는 “지난 2002년 한미행정협정이 개정돼 넓게 보면 환경부분은 국내법을 적용해야하지만 강제조항은 없는 선언적인 규정일 뿐”이라면서 “한미행정협정에는 문화재와 관련된 조항이 없어 문화재보호법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번 미군에게 공여된 땅은 중요한 문화재가 자리잡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군에게 보호책임이 없다.
물론 지난 2002년 한미행정협정 개정당시 제24조 제2항에 “기동연습 및 기타 훈련으로 훈련부지 또는 이동로로 사용되는 토지의 변형·오염으로 경제성이 근본적으로 손상된 경우, 재발방지 및 복구대책 수립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합중군 군 당국의 토지사용을 중단하도록 한다. 군사훈련에 이용되는 시설과 구역 사용이 종료된 후 단시일 내에 토지를 원상복구하거나 비용을 부담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지만, 이 조항 또한 땅 위에 있는 문화재 등과 같은 부분은 해당되지 않는다.
김성한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간사는 “문화재는 한 번 훼손되면 복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SOFA 규정에 문화재보호의 내용이 추가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