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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봇의 포도원을 탐낸 아합 21:1~7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나봇을 죽인 이세벨 21:8~16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
11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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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왕궁 근처 나봇의 포도원을 탐낸 아합은 나봇에게 그 땅을 팔라고 제안합니다. 나봇이 하나님 말씀대로 조상의 유산을 지킨다며 이를 거절하자 아합은 근심합니다. 이에 이세벨이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 보내고, 나봇에게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누명을 씌워 나봇을 돌로 쳐 죽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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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봇의 포도원을 탐낸 아합 21:1~7
불순종의 사람 아합은 작은 탐심조차 버리지 못합니다. 그는 왕궁 가까운 곳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탐냅니다. 나봇의 포도원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와 갖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는 후하게 돈을 주거나 다른 좋은 땅으로 바꿔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나봇은 기업을 파는 것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일이라며 거절합니다. 나봇은 율법대로 조상의 유산을 지키려 한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해진 아합은 식사까지 거부합니다. ‘답답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싸르’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아합의 상태를 표현합니다(4절; 20:43). 아합의 탐욕을 해결하기 위해 이세벨이 직접 나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방 여인 이세벨로 인해 아합 가문은 더욱 죄의 길로 행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나봇의 포도원을 얻지 못하자 아합은 어떤 행동을 취했나요?
내가 버려야 하는 욕심이나 아집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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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봇을 죽인 이세벨 21:8~16
이세벨은 포도원을 뺏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먼저 아합의 이름으로 장로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들은 나봇을 높은 곳에 앉히고, 두 명의 거짓 증인을 만들어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며 위증하게 합니다. 그리고 무리로 하여금 율법에 따라 나봇을 죽이게 합니다. 장로들은 아합의 도장이 찍힌 이세벨의 편지대로 나봇을 죽이는데, 이는 무고한 살인죄에 동조한 행위로 아합 시대의 불의함을 잘 보여 줍니다. 이세벨은 왕의 권력을 이용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아합은 이런 이세벨의 행동에 만족해하며 나봇의 밭을 차지합니다. 아합의 욕망과 이세벨의 계획과 장로들의 실행으로 하나님의 율법이 철저히 파괴됩니다.
● 더 깊은 묵상
나봇에 대한 아합과 이세벨과 장로들의 죄악은 각각 무엇인가요?
불의한 일에 동조자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어떻게 거절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안에 있는 왜곡된 탐욕이 사랑의 대상인 이웃을 해칠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모든 판단 기준을 제 욕심과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서 찾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소서.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들이 말씀과 규례를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의 말씀과 규례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매순간 주님의 세밀한 음성과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뜻을 구하도록 하자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의식하며 나아가도록 하자
주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이 되도록 하자
주님의 뜻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늘 주의를 기울이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도록 하자
주님 앞에서 늘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주님의 일꾼으로, 주님의 제자로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자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 나봇의 거절로 인해 마음이 상해 화가 난 아합이 자기 침대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을 먹지 않으니, 왕비 이세벨이 그 사연을 물었다는 말입니다.
고대국가에서 군주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왕이 마음먹으면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고. 설령 그것이 외국에 있다면 전쟁을 일으키더라도 갖고 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겐 힘이 곧 신입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이세벨이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할 리 없습니다. 그녀는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궁궐에서 생존한 몸이기에 그런 일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입니다. 남편 아합은 왕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모시는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런 그가 마치 장난감을 받아 들고 좋아하는 아이처럼, 아내가 준 선물을 받고 기뻐합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목숨이 희생되고 마련된 것입니다. 이 모두 아합의 욕심 때문입니다. 눈에 보기 좋은 땅을 탐했던 것이지요.
사실 눈은 아무거나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마음 안에 있는 탐욕이 강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그 증거가 그것을 계속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욕심은 거머리와 같다고 합니다. 딱 달라붙어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욕심의 특징이 있습니다. 곧 합리화입니다. 욕심은 그 동기마저 흐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스스로 정당화하기 때문입니다. 즉, 물 타기를 해서 악한 욕구도 선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욕심은 변장의 달인입니다. 따라서 그 정체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준이 필요합니다. 워낙 포장을 잘 하기 때문에, 한 가지 잣대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단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한 것처럼 얼마든지 욕심은 우리를 속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가? 육적인가? 그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의 시금석이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물질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대 수도사들은 귀한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갖고 있던 재산도 다 팔아 예수님 말씀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청빈한 수도사가 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방법이 있습니다. 이 생각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 세상으로 온 것인가? 그 방법도 효과적일 것입니다. 단순하게 질문하면 단순하게 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욕심의 문제는 미리미리 정리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살아 있는 한 마음속에서 계속 올라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처음 생각이 떠오를 때가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첫 동기를 잘 살피면 그것이 욕심인지 아닌 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끊어 내야 하는 것이지요.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 때가 골든타임입니다. 그 생각을 몰아내지 않으면 곧장 욕심은 자기 정당화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때 버리지 않으면 눈덩이처럼 커지기 마련입니다. 눈사태가 나면 속수무책이듯이, 이미 커져 버리면 제압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지요. 탐욕이라는 자동차는 제어장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에 ‘졸음운전의 종착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졸음운전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의 종착지도 사망, 패망, 절망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 기자가 말한 대로입니다. 어쩌면 아합은 그 말씀대로 그대로 살았는지 모릅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아합처럼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욕심의 현주소는 우리 마음이라는 것과, 욕심을 버리는 골든타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3절 아합은 이스르엘에 있는 별궁에 자신의 채소밭을 두기 위해, 근접해 있는 나봇의 포도밭을 인수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토지 제도는 조상의 유업을 제멋대로 거래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토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시고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레 25:23-28). 게다가 하나님의 보살피심을 상징하는 ‘포도원’을 애굽의 노예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채소밭’(신 11:10)으로 바꾼다는 것 자체가, 욕망에 눈이 멀어 약속의 땅을 ‘애굽화’하는 아합의 습성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3,4절 나봇이 하나님의 법도를 수호하기 위해 왕의 청을 거절하자, 아합은 사마리아 왕궁으로 돌아와 방에 틀어박혀 식음을 전폐합니다. 선지자의 심판 선언에도 다윗처럼 금식하지 않던 그가, 이스르엘 별궁에 채소밭을 꾸미지 못했다고 단식을 합니다. 주님이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내 욕심을 가로막으실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5,6절 벤하닷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실감하고 하나님이 두려워 감히 율법을 어기지 못하는 아합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 이세벨에게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를 하며 은근히 해결을 요청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일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양심에 거리끼지 않을 정도로만 가담하여 이득을 챙기는 일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7-10절 이세벨이 아합을 위해 나섭니다.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이어온 이세벨에게 하나님의 법은 안중에 없습니다. 아이처럼 떼쓰는 아합에게 밭을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이세벨은 이스르엘로 편지를 보내어 나봇을 죽이도록 사주합니다. 하나님을 저주한 죄, 두 증인, 성읍 밖의 처형, 이 모든 것은 이세벨이 거짓 술수에 동원한 율법의 조항들입니다. 율법을 두려워하는 아합을 위해, 율법을 제멋대로 이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탐욕의 신 바알과 아세라 숭배자들의 실체입니다.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욕구만 채우는 일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 이것이 현대판 우상숭배입니다.
기도
공동체-탐심이 인도하는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라 행하게 하소서.
(왕상 21:1~16절)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삶❞
❚ 욕심은 죄를 낳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는 삶이어야 합니다.
✔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 인간의 욕망에 붙잡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1~3절).
나봇은 혼탁한 시대에 여호와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경건한 인물의 전형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왕의 권력 앞에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을 거절할 수 있는 담대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혀 물질을 탐하거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약속만을 순수하게 지키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 풍조와 타협하지 않는 담대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보단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세속적인 욕망에 붙잡혀 하나님의 뜻을 반하는 삶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 인간의 탐심에 얽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4~6절).
하나님은 당신을 경배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내 자신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탐심은 곧 우상숭배’(골 3:5)라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나의 영혼 깊이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해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바울의 선교 사역을 위하여 헌금한 빌립보 교인들처럼 나에게 주신 재능과 가정 그리고 적은 재산이라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개발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귀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세속적인 탐심에 얽매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바라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 인간의 권력이 악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7~10절).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거짓 증거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출 20:16). 거짓 증인은 고소한 자에게 부과하고자 했던 것과 똑같은 형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이처럼 사악한 음모를 서슴없이 꾸미며 행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에 깊이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세벨처럼,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가진 권력과 힘을 악용하여 선량하고 약한 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악한 계획은 잠시 성공하는 것 같을지라도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악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바라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 불의한 계획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11~16절).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옳고 그름을 확실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악하고, 불의한 계획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영적 책임감을 가지고 신앙적인 양심을 따라 불량자의 거짓 증언을 거부해야 합니다. 나봇과 같은 무고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끼치려는 죄악을 당당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세벨과 같은 지도자도 문제이지만,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이세벨의 악한 음모에 순순히 동조하고 악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장로와 귀족들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당장에 손해가 막심하고 고난을 당한다할지라도, 공의와 진실을 생명처럼 여기고 거짓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영적 지도자로서 악인의 꾀를 따르거나 죄인의 길에 서거나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인생이 얼마나 추악해져 가는지를 깨달아 선한 일에 온전히 쓰임 받는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21:1~10절)...
1.탐욕에 빠진 아합(1-9절)
선지자에게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후에도 아합은 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나봇의 포도원을 탐을 냅니다. 나봇의 반대에 봉착한 아합은 탐욕스러운 마음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의 탐욕은 아내 이세벨이 음흉한 계획을 세우도록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아합은 사소한 욕심을 이기지 못함으로 자신의 죄에 또 하나의 죄를 더하게 됩니다.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무서운 죄로 이어지게 됨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것에 만족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감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욕심에 이끌려 죄를 범치 않도록 항상 기도하며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내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2.나봇을 죽인 율법(10-16절)
나봇은 순수한 믿음의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왕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대로 행하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용기가 있는 모습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세벨이 나봇을 죽이기 위하여 사용한 무기가 율법과 경건이었습니다. 이세벨은 나봇을 하나님을 저주한 불경죄를 지은 사람으로 몰아세워 그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한 악한 일을 서슴지 않고 범하였습니다. 그때 사용된 도구가 율법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믿음의 일들을 행할 때 온전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되게 하기를 즐깁니다.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하도록 하고 거짓 경건의 모습만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는 부단히 자신을 말씀 안에서 지키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본질을 잃지 않은 믿음의 삶에 거하고 있는가?
분명히 알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과 은혜를 틈타 돈과 명예라는 자기 정욕을 채우려는 자들은 반드시 아합과 아간처럼 망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형태의 정욕은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6)
그러나 지금도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 교회에 많고, 그들을 옳다고 복 받았다고 말하는 거짓 선지자도 많습니다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유1:18~19)
그러나 정욕이 무엇입니까?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 육신의 정욕을 죽이고,
오직 성령으로 기도하며 자신을 믿음과 사랑 위에 세우며 주를 기다리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1:20~21)
아합과 같은자에게 ~~마음과 눈과 귀를 닫으심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순간도 순결하고 거룩하게 바로 서지 못하고,
교만과 불순종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세상의 권력과 유혹을 좇는 행동은 그토록 쉽게 하면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과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그 권세 앞에 엎드리지 못한
과거의 죄를 회개하며 새로운 결단으로 나갑니다.
아버지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고,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성령의 새 힘과 도움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이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두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선하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의 선한 뜻을 세상 가운데 널리 선포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인생이 얼마나 추악해져 가는지를 깨닫습니다.
제 욕심을 채우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거나 악한 일에 동참하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기업이신 주님만을 소망하고 주님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주일 열방을 향한 기도
국내 -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아동들이 강제 노동은 물론 구타와 징벌을 받는 등 심각한 인권 유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작업 지시를 알아듣는 4세 이상부터 노동이 시작되지만 그들에게는 영양가 있는 식사조차 제공되지 않습니다. 아동들에 대한 북한의 압제가 속히 끊어지길 기도합시다.
국외 - 전 세계에서 박해받는 기독교인이 3억 6,000만 명이 넘고, 한 해 5,000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있는 교회가 공격당하고, 믿음을 지키려다 구금되는 기독교인도 수천 명에 이릅니다. 하나님이 박해와 죽음의 위협에 처한 신자들을 도우시고 구원하시길 간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