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편견
몇년 전부터 우리나라 서점에 강한 일본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여성 독자층을 중심으로 일본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한일 민족 감정 같은 것 때문은 아니다.
수년 전 일본 소설들을 여러편 읽었는데, 한마디로 내취향이 아니었다.
혹시 하고,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일본 소설들을 읽었는데,
읽고 난 후 내가 가진 생각은
'왜 이런 소설들이 베스트셀러이지?' 뿐이었다.
그렇게 몇권의 일본 소설에 실망을 하고
갖지 말아야 할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지 않은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편견이다.
그걸 알면서도 모든 일에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은 소인배인 나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암튼 그로 인해 이후 일본 소설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신문에 소개된 <남쪽으로 튀어!>란 책의 내용을 보게 되었다.
이 책 또한 한때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독특한 표지 그림으로 인해 책 제목은 알고 있었다.
신문기사에서 이 소설의 소개를 보고 나서,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일본 소설과는 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 조사를 쫌 해봤더니 읽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
그래서 벗어지지 않은 편견때문에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일본 소설들과 달리
지나친 묘사가 없었고, 글이 간결하였으며 사건 전개도 빠르고,
위트 넘치는 작가의 글솜씨가 지루하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의 경력을 살펴보았더니,
잡지 기획자, 잡지 편집자, 구성 작가 등을 거쳐 40살이 다 되어 소설가로 데뷔를 하였다.
그의 지난 경력이 그의 소설의 특징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권을 순식간에 읽어내고 2권마저 집어들었는데
2권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단순한 소설의 재미만으로 읽을 수 있지만,
자본주의 국가 시스템에 대항하는 주인공의 아버지의 자신만만함이
간혹 속을 후련하게 해 주기도 하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책 중에 한권이 될 듯 싶다.
그것도 내가 그동안 외면했던 일본 소설이 말이다.
소설의 색깔을 좌우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고, 지은이 그 자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역시 편견은 무서운 것이다.
1. 가족 소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나이로 11살, 초등학교 6학년,
밥은 한끼에 보통 4그릇씩 먹어치우는,
이제 막 성에 관심이 눈을 뜬 전형적인 사춘기 소년 우에하라 지로이다.
소설 초반에 지로의 주변인물이 하나둘 등장하게 되는데,
범상치 않은 가족들이 '왜일까?'라는 의문을 자꾸 만들게 된다.
가족들의 과거지사가 소설 초반부 궁금을 자아내며,
페이지를 넘기는 원동력이 된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도쿄에 살고 있다.
먼저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
그는 프리라이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는 곧 백수이자, 소설 지망생으로 늘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낸다.
한번도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적이 없지만, 그는 늘 당당하다.
그는 국민연금을 받으러 온 공무원과 입씨름을 하며
국민을 포기할 있다고 이야기도 하고, 국가는 국민에게 의무사항을 강요할 수 없다고 일설한다.
그리고 가정방문에 온 선생님한테,
기미가요(일본 국가)를 강제로 부르게 하고, 천황제 등 현체제에 대한 생각을 묻고,
불쑥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과 지로를 당혹케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바는 논리정연하고 이치에 맞는 말들이라
상대방이 반박을 하지 못하였다.
지로의 어머니 사쿠라는 그런 백수 남편을 미워하지 않는다.
조용히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집안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지로는 한번도 어머니의 부모님,
즉 외할머니, 외할아버를 비롯하여 외갓댁 식구들을 만난 적이 없다.
어머니 역시 지난날에 대해 숨기고 있었는데,
호기심이 많은 사춘기에 들어선 지로가 그런 어머니의 과거에도 궁금점을 자아내기 시작하였다.
누나 요코는 지로보다 10살이나 많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요코는 집에서는 늘 인상쓴 모습을 보이고, 일단 집에 잘 붙어있질 않았다.
집은 잠시 잠을 자는 곳이다.
그리고 요코는 지로와 아버지가 달랐다.
그 사연 또한 자세한 내막을 지로는 모른다.
동생 모모코.
지로보다 2살이 어리며 아직 어리광 부리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녀이다.
3. 친구 소개
지로의 친구들 역시 전형적인 사춘기 소년들이다.
지로의 가장 친한 친구로는 준과 무카이가 있다.
그리고 구로키가 있는데, 이 구로키가 인근 중학교의 불량 중학생 가쓰와 가까이하면서
그 불똥이 지로와 준에게 튀이면서 갈등요소를 만들어 낸다.
지로와 준은 가쓰에게 폭행도 당하고, 돈도 빼앗긴다.
지로와 준은 같은 반 친구의 오빠에게 부탁하여 가쓰를 혼내 줄 것을 요구하지만,
그는 알겠다고 하면서 선생님에게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가쓰는 지로와 준에게 보복의 의미로 더욱 몹쓸 것을 요구하에게 되었다.
지로는 가쓰에게 꼼짝못하는 구로키를 불쌍히 여기기도 하였는데,
그런 구로키를 설득하여 가쓰에게 대항하다 얼떨결에 둘은 가쓰를 때려 눕히고
가출까지 하게 되었다.
지로의 가출은 하루만에 끝나고 구로키도 며칠만에 돌아왔는데,
구로키는 다시 가쓰의 똘마니가 되어 있었다.
무카이는 초등학생 답지 않게 해박한 지식으로
지로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답해주고,
어려운 점이 있으면 같이 의논을 하기는 하지만,
그 또한 엉뚱한 곳이 많은 귀여운 녀석이다.
4. 드러나는 과거지사
지로의 좁은 집안에 아버지의 후배 아키라 아저씨가 얹혀 살고,
뜻하지 않은 외할머니의 등장으로 인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옛이야기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 우에하라는 대학시절 과격한 운동가로써,
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 소속의 수뇌로 활동하다가
아나키스트로 전향하면서 사회 운동을 접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뿐만 아니라, 어머니 또한 대학생 때 학생운동에 앞장서서
한때 잔다르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가 도쿄의 전통의상을 운영하는 부잣집의 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인해 가족의 연을 끊고 살아온 것이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지로의 외할머니는 이제 모든 것을 용서하고,
어머니를 찾아온 것이다.
어머니도 그런 외할머니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지로와 모모코는 외할머니 집에 놀러 가기도 하였다.
십수년만에 처음 손자를 보는 외할머니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모든 것을 해줄 자세이다.
...
한편, 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은
계속 내홍을 겪으면서 조직 내에서 세력 다툼이 치열하였다고 한다.
언론에서 그들의 활동을 소개할 때는
철지난 '혁명'을 꿈꾼다고 비난을 하였다.
아키라 아저씨는 지로와 모모코에게 잘해주면서 금방 친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키라 어저씨는 지로를 못살게 구는 가쓰를 손봐주기도 하였다.
그런 아키라 아저씨는 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 소속으로
조직 내 세력 다툼의 한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지로의 아버지는 그를 그저 후배로써 집에 살게 한 것인데,
그런 후배가 반대 세력의 우두머리를 죽일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아키라 아저씨가 반대 세력의 우두머리를 죽이면서 경찰에 연행되었고,
이로 인해 지로의 아버지도 경찰의 조사 대상이 되었다.
가뜩이나 지로의 아버지는 예전의 과격한 활동가가 아니었던가?
그런 경찰을 상대로 지로의 아버지 또한 순순히 있을 사람인가?
아버지와 경찰은 육체적인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결국 아버지는 경찰서까지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나오기도 하였다.
그렇게 아버지가 문제를 일으키자, 집주인은 이사를 가 줄것을 요청하였고,
어머니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이 이야기를 하고,
도쿄를 떠나 남쪽의 오키나와 현 이리오모테섬으로 이사가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아버지의 오랜 꿈 중에 하나였다.
이렇게 이사가기로 결정을 한 후,
지로의 어머니도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무정부주의자 같은 발언을 일삼는 것이었다.
지로와 모모코에게 꼭 학교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라는 발언 등이 그것이다.
이사 준비를 하는데 어머니가 더욱 신이 났다.
집에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팔고, 중요한 물건들과 옷가지들만 챙기고
바로 집을 떠났다.
지로는 친구들과 반친구들과 제대로 인사도 못했지만,
준, 무카이, 그리고 구로키와는 제대로 인사를 하고 떠날 수 있었다.
특히 구로키는 불량 중학생 가쓰와 한판 붙으면서,
가쓰와 시원한 결별 선언을 하여 떠나는 지로의 마음 또한 후련하였다.
...
지로의 가족들 중 요코는 도쿄에 남기로 하였다.
요코는 직업도 있었고,
유부남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요코는 21살이니까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할 수 있을 거라며
요코의 의견을 따랐다.
그리고 지로와 모모코도 15살이 되면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야말로 방목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여주는 것 같다.
...
그렇게 순식간에 1권이 끝나고 말았다.
이제 2권에서는 그들의 이리오모테 섬 생활이 펼쳐진다.
책제목 : 남쪽으로 튀어 1
지은이 : 오쿠다 히데오
펴낸곳 : 은행나무
펴낸날 : 2006년 7월 15일
정가 : 9,400
독서기간: 2008.02.12 - 2008.02.13
페이지: 398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