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을 보면, 내년부터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고교생이 교사를 3~5단계로 역평가하는 제도를 전면 도입키로 했다는 보도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교사에 대한 평가 피드백이 교사의 자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보면서도 ‘君師父一體’라는 유교적 관념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좋은 의미를 갖고 있는 평가라 할지라도 그것이 ‘학생’에 의한 것이라면 대부분 일단은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나 생각한다.
교사평가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우려를 제시한다. 곧, ‘미성숙’을 전제로 배우는 학생이 자신을 가르치는 교사를 평가한다는 것은 모순이며, 학생들이 교사 평가에 객관적으로 임하기보다는 인기 투표식으로 치를 우려가 있고, 또 교사들 역시 이에 영합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는 교사 평가가 교수-학습 분야를 벗어나 교사의 인격을 손상시킬 수도 있다는 염려와도 통하는 얘기이다. 또 평가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교사의 인사 과정에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 역시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교사평가제가 교육의 중심을 ‘학생’에 두었을 때 가능한 제도이고, 이러한 점에서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곧, 교육 목표의 달성 정도, 교사와 학생간의 공감대 형성, 의사소통 및 교사와의 문제 등에 관한 정보 근원지를 학생에게 두는 데에서부터 교사평가제는 출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교사평가제는 교사와 학생을 이어주는 채널의 통로로서 의의가 있는 것이며, 교사의 수업력 제고, 부단한 자기 연수의 촉매제로서 작용할 수 있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학생 스스로가 수업에 있어 객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입장에서의 ‘주체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십여 년 전부터 학생들에 의한 교사평가제를 실시해 오고 있다.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당시 학생들의 교사평가제는 그 명칭 자체부터 교사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에서 교사평가제를 ‘감행’했던 것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교육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곧, 도도한 변화의 추세에 맞추어 교사는 교육 수요자인 학생의 최소한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또 교사의 교육 방법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스스로 새로운 교육 방법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데 교사평가제의 필요성을 찾았던 것이다.
물론 교사평가제를 아직도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나 ‘수동적으로’ 임하시는 선생님이 계신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내가 전문가’라는 자부심으로 교육에 임하고 있는데,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개인적 하소연을 들은 적도 있다. 또 무기명으로 평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선생님에 대한 감정을 평가를 통해 드러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평가의 공정성이나 타당성을 문제삼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시행 초기에는 한동안 시행착오를 적지 않게 겪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교사평가제가 하나의 ‘교내 생활’로 자리잡아 나름대로의 긍정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교사평가제를 긍정적으로 보시는 선생님들은 이를 통해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발견하고 이를 계발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는 데 이 제도의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가끔 안일하고 나태하고 싶을 때에도 문득 평가지에 담긴 학생들의 시선들이 떠오르면 그럴 수가 없었노라는 ‘고백’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교사평가제가 우리 교육 현장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밤송이 역시 표면을 싸고 있는 거친 외피만 벗겨내면 그 안에 들어있는 밤톨은 좀전의 수고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한 보람을 주지 않는가? 그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서 교사평가제의 긍정적 효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 교육에 경쟁력을 불러일으켜 공교육의 붕괴를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교사평가제는 사교육을 선호하는 학부모들이 주장하는 교사의 질적 저하를 어느 정도는 해소시킬 수 있는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21세기 교육 패러다임에 발맞추어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 우리는 교사가 비어 있는 학생의 머리를 채워주는 ‘정보 공급자’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종전의 인식을 버리고, ‘코치’로서의 역할을 제고해야 할 시기에 있다.
셋째, 교사들 자신이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안일하고 무기력한 교사들을 혹평할 때 흔히 말하는, ‘교사 따로, 학생 따로 식 수업’은 더 이상 곤란하다. 평가를 인식한 교사들의 노력은 개인적 자기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넷째, 교사들이 학생들의 생각을 전해들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가 될 것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현상을 보고, 이해하고 느끼는 것은 학습 지도에서뿐 아니라 생활 지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평가제가 널리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실질적으로 평가 결과의 활용 또는 상벌(賞罰)에 따른 부작용의 가능성 등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교사들이 평가 주체로서의 학생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평가 자료의 신뢰성 및 타당성 문제와도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교사평가제가 정착되어 그 효용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학생들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은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악의적으로 평가할 만큼 나쁜 학생이 아니며,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줄 필요가 있다.
둘째, 각각의 평가는 수업 변인이나 평가 준거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평가 해석에 임해야 한다.
셋째, 평가 결과를 공식적 인사 결과에 반영하여서는 곤란하다. 평가 결과는 교사들의 자기 계발 자료로만 활용되어야 한다. 또 교사들의 평가 결과를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것 역시 제도의 긍정적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넷째, 평가 결과에 대해 적절한 긍정적 보상을 제공하여 이를 격려하여야 한다. 학교나 교육청 차원이나 연수 등 자기 연찬의 기회를 주는 것을 그 예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특별히 피해야 할 것은 이것이 평가의 전체 점수에 따라 제공되거나 개인별로 차등적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교사들을 서열화하여 위화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총점에 의한 보상보다는 영역별 평가에 따라, 개인적 보상보다는 집단별로 보상(예컨대, 언어부, 수리부 등)을 제공하는 것을 제안해 본다.
우리 학교에서 교사평가제의 의의로 삼았던 바와 같이 교사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존재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자질을 벗어나 생각할 수 없다. 또 교육은 학생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때 그 효과는 배가될 수 있다.
학생을 통한 교사 평가는 교사를 단순히 평가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 가능성의 주체로 보는 ‘생활 기제’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학교 사회에서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고 그 교육적 효용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사가 자신을 반성하고 더욱 개발시키겠다는 의지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