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 상주 백화도량 귀의
중생도 본래 깨끗한 ‘부처님마음’
업을 원으로, 업력을 원력 ‘변화’
대자대비행을 새해 큰 발원으로
동국대 정각원장 해주스님이 지난 9일 새해 첫 토요법회에서 의상대사의 백화도량발원문을 주제로 법문을 했다. |
새해가 밝았다. 세상은 무상(無常)하니 그 어느 것에도 집착 말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헌해’가 가고, ‘새해’가 올 때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이는 드물다. 지난 9일 열린 동국대 정각원 새해 첫 토요법회에서 해주스님은 의상대사의 ‘백화도량발원문’을 주제로 법문을 했다. 동국대 정각원장 해주스님은 신년을 맞아 각자 발원(發願)을 세워 불법(佛法)에 더 가까워지는 불자가 되기를 당부했다. 법문 내용을 요약했다. 이날 법회 영상은 동국대 정각원 홈페이지에서 시청할 수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읍시다.”(대중 박수) 새해가 되면 많이 듣는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이 기분 좋다. 가장 많이 주고받는 덕담이고 인사이다. 출재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벽두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하는데, 받지 않는다는 사람은 없다. 복(福)을 좋아하고 복이 뭔지 알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받으라고 하면 받겠는가.
그렇다면 복이란 무엇인가. (지금) 복이 많은 것은 (앞서) 복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복을 많이 지으라는 것과 같다. 그런데 “지으라”면 부담스럽고, “받으라”면 좋아한다. 작년에 지은 복은 지난해에도 받고, 금년에도 받고, 내년에도 받는다.
금생에 지은 복은 다음 생에 어디로 가느냐로 총결산되어 나타난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시험 결과가 좋듯이 다음 생에도 (복을) 다 못 받으면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복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받지 못하면) 다음 생에 받고, 그 다음 생에도 다 받지 못하면 내생 후에 자손에게라도 간다. 복은 지어 놓으면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하고 부처님하고 누가 복이 더 많겠는가. 당연히 부처님이 더 많다. 그런데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출가동기를 얻고, 길에서 출가해 수행하고, 길에서 깨닫고, 길에서 교화하고, 길에서 열반에 들었다. (평생 길에서 보냈는데) 복이 제일 많다고 한다. 왜 그럴까?
삼귀의에서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하는데, 한문으로는 ‘귀의불(歸依佛) 양족존(兩足尊)’이라고 쓴다. 부처님을 ‘양족(兩足)’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를 원만구족(圓滿具足)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복덕(福德)과 지혜(智慧)이다. 부처님 복은 우리 중생이 많이 받으려고 하는 복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유루복(有漏福)이나 무루복(無漏福)이냐다. 유루복은 번뇌가 사라지지는 아니했지만, 자기 업(業)에 의해 받는 복이다. 유루복 받은 분 중에 제일 좋은데 가면 도솔천 내원궁이라고 한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도솔천에 머물다 사바세계에 왔고, 앞으로 올 미륵불도 지금은 도솔천에 머물고 있다.
그러기에 불보살이 누리는 복은 유루복의 세계는 아니다. 그럼 무슨 복인가. 그것은 무루복, 곧 해탈복(解脫福)이다. 일체중생을 해탈로 이르게 해주는 한량없는 복, 그것을 누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우리가 땅에 발 딛고 살기에 유로복을 수용해야 하지만, 결국에는 해탈업을 지어 해탈복으로 가야하지 않겠나. (새해를 맞아) 업(業)을 원(願)으로, 업력(業力)을 원력(願力)으로 바꾸어 해탈복을 지어가는 힘을 키워야 하겠다.
부처님이 복과 지혜, 즉 복지(福智)를 원만구족하다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말한 분이 의상대사(義湘大師)이다. 스님은 <대방광불화엄경> 전체를 210자의 법성게(法性偈)로 엮어 우리도 본래 부처임을 설했다. 의상스님이 지은 두 개의 발원문 가운데 하나가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이다. 우리나라 발원문의 효시이다. 복을 많이 받으라고 기원하고 원을 세우는데, 의상스님은 어떤 원력을 세웠을까? 고려시대 체원(體元)스님이 백화도량발원문 약해(略解)를 지었는데, 백화도량은 귀의하는 대상이고, 발원문은 귀의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백화도량에 귀의한다는 의미이다. 큰스님들도 어디에 주석했는지에 따라 법호를 쓰기도 한다.
관세음보살이 계신 백화도량은 정토(淨土)일까, 예토(穢土)일까. 그 도량에 함께하는 사람은 번뇌가 많은 사람이겠는가, 번뇌가 없는 사람이겠는가. 전부 없다 했으니 주처도 청정한 땅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관자재보살은 중생들 앞에 나타난다. 중생은 아직 깨닫지 못한 입장이니, 중생이 있는 곳은 예토(穢土)이다.
그러니 그 땅은 예토인가 정토인가. 관자재보살이 출연하기 전까지는 예토일 수 있다. 그런데 관자재보살이 오시면 정토이다. 내가 부처님을 만나면 정토이다. 그러한 세계를 백화도량이라고 한다.
화엄에서 대원경은 해인경이다. 해인(海印) 바다는 일체 모두 비쳐지는 지혜를 상징한다. 중생은 부처님처럼 지혜가 있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해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망상집착 때문이다. 해인삼매(海印三昧)는 부처님의 지혜 마음이라 온갖 중생의 번뇌가 나타나도 바다는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다. 비춰진 만상이 그 자체이듯, 본래 중생 마음도 깨끗한 부처님 마음 그대로다.
해주스님의 설법을 진지하게 청취하는 불자들. |
진실한 발원의 말씀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설명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허망함’이 없는 것이다. 꿈속의 온갖 것이 진실인 줄 알면 안 된다. 새해 일출을 보고 발원한 분들이 있다. 해는 항상 뜨는데 우리가 시간을 잘라 새해라고 한다. 그것은 새롭게 잘 살아보자는 마음 때문이다. 의상스님은 무슨 발원했을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원동본사(願同本師), 본사인 관세음보살과 똑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원생정토(願生淨土), 관세음보살이 계시는 정토에 왕생하고자 한다는 원이다.
의상스님은 ‘우리 제자’가 관세음보살과 같아지길 발원했는데, 십원육향(十願六向), 천수천안(千手千眼), 대자대비(大慈大悲)이다. 열여섯가지 원과 여섯가지 향은 <천수경>에도 나온다. 관자재보살의 원이 담겨 있는 지금의 <천수경>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지만, 핵심적인 내용의 발원은 의상스님 당시부터 있었다고 한다. 백성들이 백화도량발원문을 통해 마음의 힐링도 하고, 해탈도 기원했다. 십원육향을 통해 중생을 제도해주는 원은 자리행(自利行)이다. 남을 위해 하는 줄 알지만, 자기가 해탈하는 것이다. 이타행도 되지만, 자비행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이 왕생하도록 돕는다. (우리도 다른 사람까지) 대자대비행을 하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새해의 큰 발원으로 삼으면 좋겠다. 그래야 유루무루 복이 다 들어온다. 비록 힘 없이 도와도 관세음보살은 좋아할 것이다.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엄마를 돕겠다고 나서면 얼마나 좋아하는가?
(의상스님은 발원문에서) 또 원하옵건대 본사(本師)와 같아지기를 발원했다. 초등학교 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쓰게 했을 때 누구를 택했나? 어머니나 아버지라고 쓴 분이 많을 것이다. 그것은 ‘닮고 싶다’는 것이다. 존경하는 분을 닮게 된다. 성인을 보면 닮고 싶다는 선근(善根)이 있어야 한다. 선근이 있는 분은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을 칭찬해 줄 수 있다. 잘해야 닮고 싶은 것이니, 부러워하지 말고 찬탄해야 한다. 부러워하면 (자칫) 시기 질투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며, 악업을 지을 수 있다. 도(道)가 아니고 도심(盜心이 생길 우려가 있다. 닮고 싶어야 닮아진다. 그러면 결국에는 부처님처럼 된다.
사대육신(四大六身)은 다할 때가 있다. 더 좋은 몸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바세계가 정토로 바뀌어 만족한다 해도 생주이멸(生住異滅),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따라야 한다. 그러면 어디로 가는가.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부처님의 증험(證驗)을 얻어 극락왕생을 했어도 (그것이) 깨달은 것은 아니다. 그곳에 가면 무생인을 깨닫는데 도움은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깨달아야 한다. 깨달으면 (염라대왕에게) 안 끌려간다. 자기가 깨달으면 안 끌려간다는 것이다. 매 순간 깨달음 통해, 찰라간에 왕생도량하는 곳이 백화도량이다.
새해를 맞아 이보다 더 좋은 원을 세웠으면 그대로 하고, 원을 세우지 않았으면 백화도량 발원문을 하면 어떨까. 성불하십시오.
백화도량 발원문의상대사(해주스님 번역) |
머리 숙여 귀의하옵고, 저 본사 관음대성의 대원경지를 관하며, 또한 제자의 성정본각을 관하옵니다. (한가지로 체가 같아서 청정하며 밝고 깨끗하여, 시방에 두루하나 확연히 공적하여, 중생과 부처의 모습도 없고 능소의 이름도 없습니다. 이미 그렇게 밝고 깨끗하며, 비춤에 이그러짐이 없어, 만상삼라가 그 가운데 몰록 나타납니다)
본사에게 있는 바 수월장엄 무진 상호와, 제자가 가진 공화신상 유루형해는, 의보와 정보의 정예와 고락이 같지 아니하나, (그러나 모두 하나의 대원경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제 관음경 속의 제자 몸이, 제자경 속의 관음대성에게 귀명정례하오며, 진실한 발원말씀 사뢰오니 가피를 입기 바라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제자는 생생세세토록 관세음을 칭송하며 본사로 삼고자, 보살이 아미타불을 정대하듯이, 제자 또한 관음대성을 정대하겠사옵니다. 십원육향과 천수천안과 대자대비가 모두 같아지며, 몸을 버리고 몸을 받는 차계 타방의 머무는 곳마다,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 항상 법 설하심을 듣고, 참된 교화를 돕겠습니다. 널리 법계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대비주를 외우고 보살 명호를 염하여, 한 가지 원통삼매성행에 들게 하겠습니다.
또 원하옵건대 제자는, 이 보가 다할 때에 친히 대성의 방광접인함을 입어서, 모든 두려움을 여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기쁘며, 한 찰나간에 곧 백화도량에 왕생하셔서, 여러 보살과 더불어 함께 정법을 듣고, 법류수에 들어가서 생각생각 더욱 밝아져, 여래의 대무생인을 현발하겠습니다.
발원해 마치고, 관자재보살마하살께 귀명정례하옵니다.
* 고려시대 널리 유통된 백화도량발원문이 전해 오는데, 결락(缺落) 부분이 최근 발견됐다. 결락 부분의 번역은 괄호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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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주스님은…
1972년 출가. 석암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월하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지관스님에게 전강. 동학사 강원, 동국대 승가학과·대학원 불교학과 석사·박사. 중앙종회의원, 승가학원 이사, 불교학연구회장, 동학사승가대학장 역임. 현재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동국대 정각원장
[불교신문3170호/2016년1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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