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의 인문학자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사생아로 태어나 9세경부터 수도원에서 양육되어, 20세경에 정식으로 수도사로서의 서원을 하였다. 1493년부터 캄브레의 주교 베르고프 존의 비서가 되고, 그의 원조를 받아 95년부터 파리대학에서 신학을 연구하였으나, 이 시절부터 경화된 가톨릭 교회 제도에 대하여 서서히 비판적인 경향을 띠었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이라는 책은 1509년 가을 토마스 모어의 런던 집에 머물면서 저술한 책 이다. 이 책은 불과 일주일 만에 썼을 정도로 그의 학식을 자랑하는 작품 이었다.이 책이 쓰여 질 당시의 시대 배경은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범하고 계속되는 전쟁으로 경제적인 부가 잠식하고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알프스산맥을 넘어 북유럽으로 퍼져나가고 북유럽의 상황에 맞게 변합니다. 그 때 당시 북유럽은 봉건제, 장원체제가 오래남아 있었고 상업적 경제활동이 저조하였기 때문에 북유럽의 르네상스는 크리스트교적 인문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책 내용을 소개하면 , 어리석음의 여신 모리아가 이 세상이 얼마나 많은 무지로 채워져 있는지를 지적하면서 자신의 힘(어리석음의 힘)을 뽐내는 내용이다.
그가 우신예찬을 쓴 이유는 당시 성직자들 사이에서 소모적인 논쟁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적 허영을 비판하기 위함이었고 또한 내용도 성직자의 위선, 교회의 부패등을 신랄히 풍자하고 있습니다.
비판의 대상은 가톨릭 교회(천주교)였으며, 그 외에도 신학자나 철학자의 논쟁, 군주나 신하의 공명심, 전쟁 등을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판했다.
"그리스도를 신봉하는 것이 그리스인(人)들의 지혜에 대비(對比)하면 바로 치우를 의미한다"는 말은 쉽게 말해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성에 비추어 볼 때에 기독인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에라스무스가 교황의 이러한 말을 인용한 것 역시, 교황을 꼬집기 위함이었다(기독교의 수장이 신앙을 지성보다 못한 것이라고 시인한 셈이기 때문이다).
우신예찬은 당시 교황권이 난무하므로 교회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의 일을 풍자와 독설로 기록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