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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1996.07.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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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전 대통령의 법률고문인 이기창변호사는 지난 6월28일 밤 기자와 만나 지난 80년 당시 최 대통령이 신군부측에 정권을
내주게 된 경위 등을 자세히 털어 놓았다.
이 변호사는 이날 『최 대통령은 신군부측에 속아 정권을 내줬다고 생각하고 있다』『12·12 및 5·18과정에서 물리적인 강압이나
직접적인협박은 없었다』 『최 대통령이 법정증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신군부에 속아 정권을 내준 사실을 스스로 밝히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라고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날 대화도중 기자에게 일부 내용에 대해 「비보도」를 요청했으나 역사적 사실이 영원히 은폐될 수 없다는 점과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보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 공개키로 했다.
다음은 이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최규하 대통령이 12·12 당시신군부측으로부터 강압을 받지 않았는지.
『(단호한 어조로)최 대통령이 강압을 받지는 않았지. 최 대통령은 절차(국방장관의 결재를 거치는등 정식 결재절차)만을 문제삼은 거야. 만약 전씨(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을 지칭)가 노 장관(노재현장관을 지칭)의 결재를 거쳐 재가를 받으러 왔다면 아마 30분안에 결재가 났을 거야. 전씨가 「7시에 (정승화 육참총장을)연행하러 가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했잖아. 그 때는 대개 보안사령관이 이같은 일에는 장관결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직보했거든. 금방 결재가 날 거라고 생각했겠지』
○국보위행각 실망
―유학성씨등 장성들이 집단으로 최 대통령에게 몰려가 결재를 요구한 것이 강압이 아니고 무엇인지.
『최 대통령은 그들이 온 것을 압력으로 생각하지 않았어. 최대통령은 유씨와 안면이 있었거든. 유씨가 2군단장을 했잖아. 강원도에서 2군단장할 때 (최 대통령과) 알게 된 거지. 그러니까 유씨가 「함께 가서 건의해보자」고 제의해서 (집단재가를 요구하러) 몰려 온거지』
―정승화씨의 혐의(김재규 내란음모사건 연루여부)에대해서는 어떻게 보는지.
『내가 10·26이 일어난 다음날 청와대에 들어온 보고를 보니까 「정승화 육참총장의 행적이 이상하다」고 보고돼 있더라구(이 변호사는 당시 청와대 민원비서관이었음). 그래서 내가당시 청와대경호실에서 근무하던 전경환씨를 통해 전씨에게 「정씨를 조사해보라」고 했지. 그랬더니 전씨쪽에서 「정승화는 우리가 힘이 없어서안된다」고 하더군』
―최 대통령이 80년 4월 당시 보안사령관이던전씨를 왜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했는지.
『당시 중앙정보부는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어. 그래서 중정을 강화할 생각에서 그랬던 거야』
―신군부측에서 민간정보를 장악하기 위해 중정부장자리를 노렸다는 말이있는데….
『아니야. 내가 여쭤보니까 최대통령이 압력을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분께서 보니까 전씨가 중정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적임자라고 생각했다는 거야』
―그러면 최 대통령이 5·17계엄확대를 재가해 준 이유는….
『이곳 저곳에서 계엄을 확대해야 시국이 안정된다고 하니까 해준거지. 그때 나도 시국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시국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게 최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였지. 일단 시국을 안정시킨 뒤 헌법을 개정,정권을 평화적으로 이양한다는 게 최 대통령의 기본구상이었거든』
―계엄확대는 그렇다치고 국보위는 왜 재가해준 건지.
『아 (국보위가)그럴 줄(사실상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식의 기구가 될 줄) 몰랐던거지. 국보위를 설치해야 한다고 이곳저곳에서 얘기하니까 할 수 없이검토해 보라고 했던 거야. 그 사람들(신군부측)이 처음에는 긴급명령으로 해달라고 했어. 그 뒤 국보위가 그렇게 나갈 줄은 최 대통령이처음엔 몰랐어』
―결국 (최 대통령이 신군부측에)속아서 해줬다는 얘긴데…. 최대통령이 속은 줄은 언제 알았는지.
『7월쯤 돼서야 그분께서 속은 줄을 알았지. 국보위가 그분께서 생각한 것처럼 가지 않고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했으니까』
―최 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경위는….
『(80년 8월 당시)국보위가 통치권을 갖고 있어 책임만 있고 할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까. 자신은(신군부측의)「로봇」이라고 생각했겠지. 속았다고 생각한거지. 배신당했다고 생각한거야』
―최 대통령이하야할 때 신군부측의 강압은….
『내가 알기로는 직접적인 강압은 없었던 것 같아』
―김정열 전 총리에게 4시간동안이나 하야압력을 받았다는 설이 있잖아요.
『그 부분은 나도 몰라. 그랬는지 안그랬는지』
―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났다는 얘긴데…. 그래도 뭔가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8월초 속초로 휴가가서 (하야를)결심했던것 같아. 속초에 갔을 때 찾아온 장관이 한명도 없었거든. 평소 대통령이휴가가면 장관들이 보고하러 줄지어 오거든. 그때 최 대통령이 「아,내가 완전히 힘이 없구나」라고 실감했겠지』
○경기관총 설치
―최 대통령이 갑자기 휴가를 간 이유가 있었을텐데….
『갑자기 간 게 아니고 정기휴가야.(왜 물러나게 됐는지 물어봐도)내게 묵묵부답이시니까 (정확히)알 수가 없지』
―왜 하야했는지 (최 대통령에게)물어보지도않았는지.
『왜 그 좋은 자리를 내놨느냐고 여쭤보니까 「그 사람들이그럴 줄 몰랐지」라며 더 이상 언급을 안하시더라는 거야』
―최 대통령이 실제로 언제부터 실권이 없어졌는지.
『아예 처음부터 실권이없었어. 힘이 있으려면 조직이 있어야 하잖아』
―전두환 합수본부장에게 「힘」이 실리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아마 3월부터였던가.처음에는 전씨가 얼굴이 노랬었다고』
―왜 그랬나요.
『전씨는 12·12 이후에도 자신이 제거될 지 모른다고 상당히 불안해했지. 그래서 자기집에서 안자고 오랫동안 동생인 전경환씨 집에 가 있었지. 그집에 경기관총(LMG)을 장치해 놓고서』
―아니, 왜 LMG를….
『여차하면 저항하려고 했겠지. 한판 붙으려고 말이야』
―어쨌든 최대통령이 그 좋은 자리(대통령직)를 내놓은 진짜 이유가 궁금한데….
『공무원들이 문제야. 공무원들이 힘이 어디로 실리는지 아주 잘 알잖아. 아예 12·12직후부터 공무원들은 저 쪽(신군부쪽)으로 붙었다고. 결국 책임만 남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고 하니까 (청와대에서)나온 거지』
―12·12 직후 신군부측이 이희성씨를 계엄사령관으로 밀어 계엄사령관에 임명됐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아니야.내가 신두순 감사(당시 청와대 의전담당 비서관)에게 물어봤더니 그때최 대통령이 노 장관에게 「총장이 유고됐는데 누구를 시켰으면 좋겠습니까」고 물었고 노 장관이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으니까 최 대통령이 「당신이 어제 수고도 많이 했으니까 당신이 하지」라며 옆에 앉아있던 이씨를 시켰다고 들었다더군』
―이희성씨가 (12·12 당시)무슨 수고를 했다는 얘긴지.
『이씨가 12·12 당시 최 대통령에게 상황을 보고하곤 했지. 그러니까 그때 최 대통령이 「당신이 노재현장관을 데려오지」라고 말하니까 이씨가 「스리스타(3성장군)에 불과한데 제가 장관을 모셔올 수 있겠습니까. 총리와 함께 보내주시죠」해서이씨와 총리(당시 신현확 총리)가 함께 노장관을 데리러 간거지. 그날이씨가 양측이 충돌하는 것을 막는데 중요한 일을 했어』
―그런데이같이 중요한 것을 최 대통령이 왜 법정에서 증언하지 않는지. 지금전직대통령이 2명이나 구속돼 있는데 전직대통령이라고 해서 증언할 수없다는 논리는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최 대통령은 지난 88년 국회에서 청문회 할 때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느냐」며 나가서 증언하려고 했어. 그래서 내가 말린 거지. 「지금 대통령께서 나가서 증언하시면 모두 망신당한다」며 말렸지. 최 대통령이 (증언대에 서서) 「내가속아서 정권을 내줬다」고 말할 수 있겠어. 또 전,노씨가 얼마나 비윤리적으로 속였는지 알려지면 서로 좋을 게 없지』
―한마디로 있었던그대로를 사실대로 밝힌다면 망신스럽고 수치스러우니까 증언을 거부한다는 거군요.
『최 대통령도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전,노씨도 마찬가지지』
○전씨돈 안받아
―결국 최 대통령은 신군부측에 속아서 정권을내 준 거군요. 강압이나 협박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러니까 법적으로 잘 안되고 있는 거라구. 이 사건은 20년뒤에는 반드시바뀐다고. 지금 (최 대통령이)법정에서 증언한다고 해도 (신군부측이)무죄를 받는 일은 없을 거야. 우리는 처음부터 이런 재판에 반대했다고』
―전씨측에서 (최 대통령에게)증언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는지.
『요구했지. 그 쪽에서 여러번 찾아와서 우리 좀 도와달라고 했지. 저 쪽은 사실을 알거든』
―최 대통령이 전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말이 나도는데….
『그런 일은 없어. 전씨가 5공시절에도 하나도도와준 게 없어. 도움을 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만약 (최 대통령이) 법정에서 증언을 하지 않으면 검찰이 다시 계좌추적도 하고 그럴텐데….
『까봤자 아무 것도 없어. 그 분이 원래 선비잖아. 아마지금 현직에 있는 공직자들보다도 적을걸』〈하종대·김홍중 기자〉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4&n=19960701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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