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적 자주 만났던 청도 정류장 옆의 대화다방. 작년에 청도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청도 서울 도착 열차를 타려고 청도로 갔습니다. 청도 정류장 모습은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대화다방 이름도 그대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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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 어느 봄날의 추억
1982년 대구백화점 옆에 전주 비빔밥 집이 있었습니다. 1982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 날 대구 날씨는 엄청 추웠습니다. 이 날은 우리가 4번째 만난 날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좋아하는 사람 알게되니 엄청 편해지더군요. 첫 만남은 탐색전으로 끝났고, 두번째는 부산시 장전동의 동성창고 영화관에 데리고 가서 허벅지를 만지는 어이없는 실수로 쓰라린 후폭풍을 맞아 종치고 영영 헤어졌다가 6개월 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 다시 연결되었습니다. 만남의 인연이란 이렇게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그런 후 세번째 만나니 완전 부부가 된 기분이더군요. 이제까지는 항상 내가 껄떡거렸고, 쌀쌀하게 바람만 맞고 살아온 세월인데,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우째 이런 일이 저에게 일어날수 있나요. 얘기도 여자가 알아서 해주므로 나는 듣고만 있으면 되고...세번째 단 한번의 데이트였지만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은 기분이었습니다. 흡사 노틀담 곱추 콰지모토가 그레브 광장 형틀에서 째찍을 맞고 신음할 때에, 친절하게 물 주던 에스메랄다를 본 첫 느낌이었을 걸 겁니다.
그런데 이 여자 너무나 순진한 여자였습니다. 하기야 교대 졸업하고 시골로 발령받아 병아리들 가르치는 초임 교사가 발랑까지면 얼마나 까졌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제가 여자에게는 맹꽁이였지만 다른 세상 물정까지 맹꽁이는 아니었습니다. 그 쯤 5공화국 들어서고 심한 불경기에다, 학교는 졸업정원제 실시로 군대 가기전보다 학생은 2배이상 늘어난것같더군요. 그 전만 하더라도 학교가 썰렁한 기분이었는데 이제 학교가 완전히 놀이 동산으로 변했고, 졸업정원제 학생들은 졸정제와 관계없는 복학생에게는 고분하지만 같은 동료들에게는 숙제도 보여주지도 않는 삭막한 분위기로 변해있었습니다. 도서관도 비가오나 눈이 오나 꽉꽉 차고, 교수들도 수업시간에 아예 선언을 하더군요. 졸업정원제 학생들은 무조건 상대평가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이제는 내년이면 졸업인데 이들과 같이 졸업을 해야하는 저는 현재 아무것도 보장된게 없었습니다. 군 입대전에는 공부하는 학생은 극소수의 학생의 경우였고 나머진 그야말로 판판이 놀았는데... 교수들도 성적 잘안주는 것을 권위로 알았고, 그래도 진로 걱정은 문제가 없었는데, 복학후는 오히려 교수들이 걱정하는 판국이었습니다. 그 덕에 복학생 성적은 팍팍 잘 주더군요.
암튼 지금 사정과는 많이 다른 시절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내가 그 여자에게 무엇을 해 줄것인가! 며칠을 고민하다가 다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제까지 세번 만나 이 정도 정이 든 것도 인연이지만 이 인연은 이것으로 끝낸다! 이 여자 괜히 나같은 거지에게 올 필요가 뭐 있나. 한번 밖에 청춘 시절 더 좋은 선택할 수있도록 놓아주자. 어차피 나는 여자복은 없는것이니 상관없지 않는가. 영화비 500원에 허벅지 한번 만져봤으면 원료비는 건졌다. 이것만 해도 손해본 것없다.’
눈물을 머금고 더 정들기 전에 헤어지기로 작정했습니다. 차마 노골적으로 말 못하고 넌지시 이별을 암시하는 편지를 썼지요. 답장이 왔더군요. 내용이 걸작이었습니다. 편지를 완전히 이해를 못했는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겠다' 고 적었더군요. 편지로서는 부족하고 8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날 이브에 만나기로 했지요. 만나서 얘기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청도역 저편에서 반갑게 웃으며 나타났습니다.
박병우: 오늘은 대구로 가지요. 나도 대구에서 고속버스 타고 울산으로가면 되니까...
처녀: 그럼 그렇게 해요. 여기서 대구 얼마 안되거든요. 대구에서 식사하고 울산가는 고속버스 표는 제가 끊어 드릴께요.
버스 안에서 마음이 찹찹한 판인데, 이상하게 여자가 내 손을 먼저 잡습니다. 내 인상보고 뭐 안 좋은 일이 있나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이리하여 들어간데가 대구백화점 옆의 전주 비빔밥 집이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떠뜻한 밥을 먹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박병.; 저 할말이 있는데요. 저 집에서도 지금 여자 사귀는 것도 바라지 않고, 저도 그렇고 우리 여기서 끝내는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사실 이 말하려고 대구까지 왔습니다. 버스 안에서도 계속 그 생각했고요.
처녀: 예? 할 말이 없군요. 어쩐지 저번 편지 내용이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집에서 까지 반대한다니... 남자가 그렇게 용기가 없나요. 그럼 이 자리에서 헤어져요. 이 눈물 슬퍼서 흘리는 눈물 아닙니다. 제 자신이 너무 처량해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저 바로 집에 갈께요. 그럼...
그녀는 뒤도 안돌아 보고 크리스마스 이브날 북적대는 동성로의 인파 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 잘가. 나같은 무능한 놈 만나지 말고, 더 멋있고 능력있는 사람 만나서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정말로 내 속마음이 어떤지 아는가."
몇 년후 직장생활에서 배운 노래 중에서, 우리 노래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노래에 '남자의 순정'이란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 마음을 절묘하게 표현한 노래 같았습니다.
'남자 생명의 순정은 타면서 빛나는 은빛별, 도시의 밤하늘에 구름같이 흩뿌리는 눈물을 그 누가 알겠는가"
또 무작정 세월이 흘렀습니다. 괴롭던 겨울은 지나고 다시 봄이 왔습니다. 다행히 저는 그 해 봄에 일찌감치 취업이 확정되었습니다. 취업을 결정짓고 방황하던 제 진로 문제에 대해 고민을 털어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어디 다른 총각 선생님을 만났거나, 다른 총각 만나서 나를 잊어버렸겠지. 이제 만날수만 있다면... 얼마나 나를 원망하고 있을 것인가.’
어느 봄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다시 청도로 향했습니다. 학교로 전화하니 이미 다른 학교로 전근을 했다고합니다.(나중에 알았지만 그 학교에서 안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만같아 1년만에 전근을 신청했다합니다) 새 학교에 전화를 했습니다.
'전데요.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퇴근하면 청도 정류장 다방으로 나오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말도 없이 한참 있다가 예하고 전화를 끊더군요. 지금이 오전이니 퇴근하려면 한참이 남았는데... 그래서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로 처음으로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청도 읍내와 조금 떨어진 이서면, 버스에서 중간에 내려서 들판을 걸었습니다. 완전히 봄이 되어 보리가 피고 훈풍이 불어 옵니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걸어갑니다.
'XX야! 내, 비록 별 재미는 없지만 그렇게 용기없는 사람이 아니다. 너 하나는 충분히 책임질수있어. 이제는 그런일 없을거야. 열길 물속도 알수있고 한길 사람 속도 알수 없을지는 모르겠다만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단다. 단 네번의 만남으로 사람 속을 몰랐을 뿐이지.'
첫댓글 좋군요.
노곤한 봄날입니다. ^^
ㅋㅋㅋ 소설이군요! 소설! 탐조계의 살아있는 소설가! 박병우 작가님~ ^^ "탐조계의 껄떡이 소설가"가 가장 적합한 별명일것 같습니다. ㅎㅎㅎ
음.. 옛날 옛적 이야기지만.. 나 자신도 뒤돌아 보는 말씀이네요^^ 나두 대전역앞 서울다방 야기 해볼까..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