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이 뜻은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라는 뜻이다.
심(深), 즉 깊다라는 것은 반야바라밀다가 깊다는 뜻이다.
왜 깊을까?
공하며, 모양이 없고, 작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계도 없고, 끝도 없고, 시작도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깊다라고 한 것이다.
행(行)은 곧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을 말한다.
수행하여 닦는 행을 말한다.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방법은 뭘까?
바로 空이다.
그래서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이라는 단어가 뒤에 나온다.
空을 관하는 것이 바로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방법이다.
반야경에는 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엄청나게 자세히 나와 있다.
반야심경에서는 짧게 나와 있지만, 반야경은 엄청나게 세밀하게 많은 분량으로 자세히 나와 있다.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 방법을 제대로 모르면, 성불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반야경에서는 보살들이 이 반야바라밀을 두 종류로 행한다고 나와 있다.
하나는 유사 반야바라밀이고 또하나는 정통 반야바라밀이다.
유사 반야바라밀이란 비슷하지만 아니라는 것이다.
즉, 제대로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말의 의미는 반야바라밀에도 뭔 실체가 있는 줄 알고 집착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반야바라밀에도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역시 공한 것이다.
이 空하다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하면 아무것도 없다는 無로 착각한다.
사실 대다수가 空을 無로 여기는 단멸론에 빠져든다.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방법은, 보통 세속 중생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 반대다.
또 세속적인 그런 방법으로는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연기법과 空을 깨닫거나 또는 어느정도 이해한 상태에서만이 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있다 없다라는 이 두가지 양변에 치우칠 수 밖에 없다.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방법이 바로 空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공관(空觀)이다.
어디에서 공을 관할까?
일단 우선은 바로 내 몸과 마음이다. 내 몸과 마음이 바로 오온이다.
이것이 반야바라밀다와 空의 관계다.
그러므로 空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다이다.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