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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S/S 영국출신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컬렉션에서
존 갈리아노는 미술품 컬렉터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다.
그는 항상 미술에서 많은 상상력을 빌려온다.
그의 2008년 봄/여름 컬렉션의 메인 테마는 클림트의 황금빛 유혹에서
빌려온 아이디어가 주를 이룬다.
장식미술의 대가였고, 수공예 공방을 오랜동안 하면서
화가이기 전에 산업 디자인 작업을 하고,
패션 디자인과 직물 디자인에도 손을 댔던 만능 아티스트였던
클림트의 그림과 작품들은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에게도
동일하게 영감을 주었다고 볼수 있다.
클림트가 연인 에밀리 플레게와 함께 빈에서
유명한 의상실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Gustav Klimt
클림트는 매년 여름이면 잘쯔 캄머 구트란 휴양지에서 여름을 보냈다.
세기말의 빈은 퇴폐와 향락, 산업주의로 도시미관은 더럽고, 매춘이 성행하던 곳이였고
파리도 마찬가지 였다.
이 시절을 복식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라고 부르는지 의문이다.
그는 아침 6시면 배를 타고 나가 너도 밤나무 숲에 들어가 숲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의 무늬를 그렸고
저녁에는 포플러 나무숲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풍경화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정사각형의 형태를 띤다는 것과,
2차원적인 평면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 신인상주의의 쇠라에게서 영향을 받은
점묘법을 이용해 자연과 주변 공간을 잘 녹여낸 화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배에 이젤을 싣고 호수 중심에서 풍경을 보되 오페라 망원경을 이용해서
산의 형새와 무늬, 형태를 자세히 살폈다.
줌효과로 인해 화면이 평평해지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장식미술의 대가답게 그의 풍경화는 패턴과 구조를 추구하여
마치 자수나 편물작품을 연상시키는 일정 길이의 빽빽함이 드러난다.
게다가 그는 4각형 액자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그리고 싶은 풍경을 포착했기에,
항상 4각형의 풍경이 많다.
인간과 절연된 자연을 그려야 했기에 그의 풍경화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우리가 들어설 수 없는 밀폐된 다른 세계를 그리기를 원했다.
쇠라에게서 배운 점묘법으로 그려낸 색색의 모자이크는 침투할 수 없는 내면의 벽처럼
화가의 마음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장식미술학교를 나와 상업미술에 뛰어들었던 그가 지인들과 함께 이전의 미술가 협회에 항거하며
<비엔나 분리파>를 형성한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동떨어져 있던 빈의 미술을 부활시키기 위해,
서유럽의 작품을 들여와서 전시하고 전도유망한 작가들을 발굴,
전시시켜 줄 것을 요구했고, 오스트리아 정부의 후원으로 빈 분리파 전시관도 마련한다.
황금빛 올리브잎으로 덮힌 구체가 건물위에 얹어 있고 입구에 쓰인
독일어는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이란 빈 분리파의 모토이며
앞에 보이는 Ver Sacrum은 라틴어인데 성스러운 봄이란 뜻으로
분리파가 발행했던 회지의 이름이다.
빈 분리파란 말은 원래 그리스에서 정치적 이의를 표명하는 형식
<성스러운 산에서 평민의 분리>라는 표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며
분리파는 건축을 중심에 두고 아래 다른 모든 예술의 평등성을 주장했다.
공예를 회화나 조각에 종속된 것이 아닌 고유의 권리를 가진 장르로 발전시켰으며
토털아트란 표현도 결국은 건물과 각 부분이 동일한 장식적 감수성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는 단어이다.
'흐르는 물'
흐르는 물 속을 부유하는 여인의 형태가 마치 무중력 상태를 떠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시 클림트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유럽의 상징주의 미술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그런 효과들이 그림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베토벤 프리즈는 삼면에 그려진 그의 거대한 벽화작품을 말한다.
프리즈란 것이 바로 석고벽이란 뜻이며 지하 전시실의 삼면을 길게 둘러싸고 있는
이 작품의 총길이 34m에 이르는 벽화이다.
전시회 이후 작품은 철거, 훼손되었고 한동안 어느 수집가에 의해
여덟 조각으로 나누어져 보관되던 것을 1973년에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구입하여
1986년부터 특별히 마련된 이곳 전시실에 안치되어 오늘날까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분이 클림트 하면 항상 떠올리는
황금빛 그림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과 같은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시작하여 작품은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지며
왼쪽 벽면의 ‘행복의 열망’으로 여인들이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부유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번 한가람 미술관의 클림트 전에도 이 베토벤 프리즈를
원형이 보존된 방의 형태 그대로 살려서 전개하고 있다.
클림트는 화가로서의 성장과정에 일종의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어서 꼭 보아야 한다.
전시장에 가서 베토벤 프리즈가 있는 방에 가면 베토벤 교향곡 9번 음악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고,
총 3점의 벽화가 음악의 주요 단위와 맞물려 있다.
이점을 숙지하면 그림을 보는데 도움이 된다.
베토벤 프리즈 1903
아담과 이브, 1917-1918 (미완성)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클림트의 <아기>
Judith 1, 1901 (유디트 1)
이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명한대표작 유디트1 이다 .
황금빛배경의 관능적인 눈빛,부풀려진 머리,속이비치는 얇은 옷을 걸친 그녀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팜프파탈의 모습이다.
유디트의 마린린먼로와 같은 눈빛에 끌려 그녀가 손에든'것'을 못보고 지나가기 쉬운데
그녀가 손에 든 그것은 바로 사람의 머리이다.
유디트는 이스라엘 베툴리아의 과부였다.
총사령관인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자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 귀족출신 과부 유디트는 조국을 위해
홀로 자신의 미모를 미끼로 적진에 들어간다.
홀로페네우스는 애욕에 눈먼욕정으로 경계심을 뒤로하고
낯선여인과의 마지막파티를즐긴다.
술로 골아떨어진 홀로페네우스의 머리를 자른 유디트는 하녀를 통해
그 목을 베틀리아로 옮기고 목을 성문앞에 걸어둔다.
총사령관의 목을보고 혼비백산한 적군이 모두 달아나 조국을 구하게 됐다는 성서이야기이다.
그러나 유디트가 적장의 목을 딴것에 대해서는 두가지 내용이 있는데
첫번째가 성경에 써진대로 나라와 시민을 지키기 위한 애국심.
두번째가 좀 더 극적으로 희곡작가 C.F.헤벨이 설명한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유디트는 적장을 사랑하게 되어 욕망에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운 나머지 미쳐버리게 된다
미쳐버린 유디트는 광기에 져버려 사랑하는 남자의 목을 벤 것이다.
아델레 바우어의 초상
팔렸다고 한다.
Kiss
이 행
다나에, 1907-1908
Judith 2, (유디트 2)
Emill Floge
Mada Primaves
아밀리 주커칸들, 1917
마리아 브로니크의 초상, 1894
요한나 슈타우데부인의 초상, 1917
카머성 공원의 산책로, 1912
구스타프 크림트(gustav Klimt)
1862-1918
오스트리아 바움가르텐에서 출생
유엔트 양식의 대표적 화가
클림트의 예술의 특징은 세밀하고 아름다운 장식성과
여성의 이미지표출이라 하겠다.
그의 작품들은 '퇴폐적인 에로시티즘'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베토벤프리즈'에서 보여준 것 처럼 선의 리듬을 나타내는 솜씨와
멋진 장식적 표현은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문양을 낳게한 재능을 보였다.
클림트는 인간의 정신적 방황과 추상적 패턴을 복합, 왜곡된 양식으로 표현했는데,
"키스"처럼 놀랍고도 화려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클림트는 그가 처한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이기보다는
언제나 개인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항상 여유있고 풍성한 푸른 '수도사'스타일의 스모크를 입고
방랑하는 쪽이 성격에 맞을 정도로 보헤미안다운 기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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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5월 15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홀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황금빛 비밀"전시회가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기분 전환도 하고 한 예술가의 철학과 그의 미술세계를 느껴보시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