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발표되고 찬반 양론이 나오고 있다. 환경에도 좋고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를 확보하자는 것이 공통의 목적이고 이를 위해서 장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하자는 데는 아무 이견도 없을 것이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쟁점이 있다. 이슈를 하나하나 이해하기가 어렵다 보니 해외의 사례를 들어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논리로 많이 이용한다. 같은 사례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해외 사례를 확인해 보자.
사례로 가장 많이 꼽히는 나라는 독일
탈원전의 모범사례인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탈원전을 10년 더 앞당겨 2022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독일의 사례를 얘기하면 종종 반박하는 논리로 등장하는 것은 독일이 이웃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전체 전력의 75%를 원자력으로 충당한다. 독일이 사실상 탈원전을 한 것이 아니라 이웃의 원전에 기대는 것이다라는 비판인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왜곡에 가깝다. 독일의 마을 중 프랑스 접경한 지역은 가까운 프랑스의 전기를 쓴다. 거꾸로 독일과 접경한 이웃 나라에서도 독일의 전기를 갖다 쓴다. 전기를 수출하기도 하고 수입하기도 하므로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한다는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독일은 에너지 순수출국가다.
아래에서 보듯 2011년 이후 독일의 에너지 순수출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에너지 생산량은 늘어나고 소비는 티가 잘 안나긴 하지만 줄어들고 있어서, 에너지 순수출량은 2003년 대비 42.9 TW만큼 증가하였다.
독일에 대한 염려는 오히려 화력발전 비중을 크게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 부분은 좀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2016년 석탄의 비중은 40.3% (리그나이트 23.1% + 석탄 17.2%)인데 환경오염에 가장 피해가 큰 석탄 등의 화력발전 비중이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보면 태양광은 5.9%, 풍력이 12.3%로 비중이 크다.
원전을 없애는 것을 더 우선 순위에 두긴 했으나 독일의 녹색당은 얼마전 전당대회에서 가장 유해한 석탄화전 20기의 가동을 즉각 중단하고 2030년까지 석탄을 기반으로 하는 발전시설을 모두 종식한다는 강령을 채택했다. 녹색당이 집권정당은 아니지만 탈원전 달성을 앞둔 마당에 이제 다음 목표는 화력발전을 줄이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독일의 경우 이미 신재생에너지 원가가 석탄 발전 원가보다 낮아졌다고 하니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신재생 에너지가 바람이 불거나 해가 있을 때만 발전 가능한 간헐 에너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탈원전, 탈석탄이 동시에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탈원전을 대비하면서 독일은 신재생에너지와 석탄에너지 설비를 이중으로 갖추고 있다. 에너지 사용량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설비는 거의 두배다. 바람이나 해가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석탄발전을 그리고 이웃국가에서 수입한 전기를 사용하고,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을 때는 이웃 국가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한다.
독일과 대비되는 이웃 프랑스는 어떨까?
프랑스는 전체 에너지의 75%정도를 원자력으로 충당한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석탄 화력 발전의 비중이 4% 정도로 아주 낮다. LNG가 4% 내외, 나머지는 수력과 재생에너지다.
독일과 프랑스의 CO2배출은 어떨까? 2016년 EU 28개 회원국 가운데 CO2 배출이 가장 많은 나라는 독일로 EU 전체 배출량의 22.9%를 차지했고, 영국(11.7%), 이탈리아(10.1%), 프랑스(9.8%) 순이었다.
화력발전을 거의 몰아낸 프랑스는 이제 원자력 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58기 원전을 운영 중인 프랑스는 올해 5월 G7 환경장관회의에서 전력 생산의 원전 비중을 현재 75%에서 2026년까지 50%로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 비중을 2030년까지 40%로 올릴 계획이다. 원자력 발전과 신쟁생에너지를 병행하는 전력 수급이다.
앞으로 두 나라는 모두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독일은 화력발전을, 프랑스는 원전을 통해 기본전력을 수급한다.
아시아는 어떨까?
<세계의 석탄 생산량 1980-2010>
중국과 일본, 한국은 모두 화력 발전의 비중이 아주 높은 나라다. 2013년 기준으로 볼 때, 세계 석탄 수입량의 1위, 2위, 4위, 세계 석탄 전력생산량 1위, 4위, 6위 국가가 바로 동아시아 3국이다. 석탄화력발전은 이산화탄소 배출 뿐 아니라 미세먼지의 주원인으로 파악되면서 중국도 석탄감축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보고는 있으나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등에 진땀이 난다. 중국의 석탄화력의 발전 비중은 설비용량 기준으로 무려 65.7%.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 비중도 늘어났지만 소형 석탄화력발전소 신설 역시 급증, 1990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0.6%나 늘어나면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CO₂ 배출량이 적으면서도 발전 효율이 높은 설비를 의무 설치하도록 하고, 신재생에너지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아래 표에서 보듯 LNG와 석탄 발전,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올해 2017년 원전을 재가동하기로 결정해서 이슈가 되고 있지만 수력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미미한 상태에서 당장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면 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맞고 일본도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3%이상 올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한국의 석탄 화력 발전 비중은 39%로 만만치 않게 높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거의 꼴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녹색 성장 지표 2017’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에너지 공급 중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 비중은 2015년 기준 1.5%로 조사대상 46개국 가운데 45번째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이 적은 국가는 세계 3대 산유국으로 꼽히는 사우디아라비아(0%)뿐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새 정부는 2016년 현재 30.7%인 원자력에너지 비중을 2030년 18%까지 낮추고 신재생에너지(4.7%)비율을 20%까지 높일 계획이다.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20%로 올리는 것은 여전히 부족한 감이 있지만 현실을 고려한 목표라고 본다. 탈원전 얘기가 나오자 그에 반대하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탈원전이라는 방향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폐기비용과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사고 위험성 등을 고려하면 원전의 폐기는 불가피하다.
정부의 재생 에너지 목표치 20%를 높으니 어쩌니 하는 반론은 엉뚱하다. 어떻게든 힘을 합쳐서 달성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다만, 고민스러운 점은 원전을 끄는 것이 먼저인지 석탄 화력 발전을 줄이는 것이 먼저인지인데, 언뜻 사소해 보이는 문제가 사실 좀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탈원전을 하면서 탈석탄도 가능한 것인가?
서울대 성원용 교수는 “탈원전, 탈석탄, 신재생에너지 공급확대는 동시 달성되기 어려운 정책목표이다. 태양광과 풍력에너지는 국토여건상 충분히 늘리기가 쉽지 않으며 또한 간헐전원이기 때문에 원자력이나 석탄 발전을 대치하기 힘들다. 원전폐쇄는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발생이 많은 석탄의존도를 더 높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원자력과 석탄을 동시에 포기할 경우 수입에 의존하는 천연가스의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도가 커지고, 태양광이나 풍력의 경우 대규모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 방지 골든 타임 3년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지구의 위험한 환경 변화를 방지할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3년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하고 있는데, 네이처지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앞으로 3년간 탄소 배출량을 대폭 낮추지 못한다면 2020년 아주 위험환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논문은 60여명의 과학자들의 공동 서명을 받았다.
새로운 정부의 탈원전 선언을 뜯어보면, 원전 수명 연장 10년을 금지하고 추가 건설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실제로 이번 정부 안에서 추가로 닫게 되는 원전은 월성 1호기 한 개 뿐이다. 나머지 고리 2~4호기, 한빛 1~2호기, 한울 1~2호기, 월성 2~4호기는 순차적으로 폐쇄하는데 가장 먼저 도래하는 수명 만료일은 2023년 8월(고리2호기)이다.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2호기 등 3기는 이미 공정률 100%에 가까워서 사실상 중단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임기 내에 원전은 오히려 늘어나는 셈이다. 따라서 임기도중에는 화력발전을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그 이후 원전의 비중이 줄어들 때 발생한다.
전기세 폭등을 경고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당장은 아니지만 다음 정부에서 현실화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이걸 이용해서 정부정책을 비판할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에너지를 적게 쓰는 방향으로 설득해야 한다 . 정부의 정책이 성급하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실제로 원전 신규 건설 중단의 효과가 발생할 때까지 시간이 있다. 재생 에너지 설비를 확장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무리라는 얘기도 나온다. 지자체의 반대로 부지 선정이 어렵다는 점을 들곤 하는데, 정부의 의지와 함께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일도 중요해 보인다.
최근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구가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는 건 시간문제”라며 “화성과 달에 식민지를 세우고 그곳에 노아의 방주처럼 보관 시설을 세워 지구 동식물의 종(種)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를 떠나 어디로 간다 말인가? 화성 식민지 건설은 멋지게 들리긴 하지만 그곳은 지구에서 인간이 살기에 가장 힘든 사막보다 더 인간에게 적대적인 환경이다.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하면서 동시에 환경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이 감수해야 할 비용과 희생이 따를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경고나 신재생 에너지를 위한 부지 확보 등의 문제제기는 모두 일리가 있다. 과장이라고 무시할 문제들은 아니다. 다만 이런 문제들은 우리가 함께 극복해야할 문제다. 탈원전과 동시에 환경을 오염시키는 석탄화학발전을 줄이는 것은 아무 비용이나 대가없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 비용은 예상보다 클 수 있지만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다. 다음 세대가 누릴 모든 것들을 빼앗고 피해는 뒤로 미루는 이기적인 세대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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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1958년 미국 디트로이트 에디슨사(社)의 회장 워커 리 시슬러 박사가 한국을 찾았다. 시슬러 박사는 2차 대전 후 유럽의 전력망 복구에 관여한 인물. 이승만 대통령과 마주 앉은 시슬러 박사는 ‘금속막대기’를 꺼내서 흔들었다. 시슬러 박사가 흔든 막대기는 ‘핵연료봉’ 모형. “이 막대기가 화차 100대분에 맞먹는 힘을 낼 수 있습니다.” 6·25전쟁 이후 전력 부족으로 고심하던 이승만 대통령은 눈이 번쩍 뜨였다. 원자탄 두 방에 일제가 항복하는 것을 지켜본 이 대통령으로서는 새삼 원자력의 힘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시슬러 박사의 방한으로 시작한 한국 원자력의 역사는 한국원자력연구소 설립(1959), 연구용 원자로 건립(1962), 첫 번째 상업용 원자로 가동(1978),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2009)에 이르기까지 성공신화를 써왔다. 2차 대전 후 신생독립국 중 원자력 기술 자립은 물론 해외수출까지 달성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공약과 함께 한국 원자력은 존폐 위기에 몰려 있다. 1959년 이후 축적한 모든 기술과 노하우가 사장될 위기다.
학계에서는 지난 6월 1일, 에너지 전공교수 230명이 단체로 성명을 내는 등 정부의 방침에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하지만 정작 업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못 낸다.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청와대와 정부 눈치를 살펴야 하는 공기업이 원전 산업을 이끌고 있어서다. 그 아래 부품 업체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를 틈 타 문재인 정부는 지난 6월 19일, 국내 1호 상업용 원전인 부산시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정지 선포식을 시작으로 ‘탈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6월 27일에는 울산시 울주군에서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지를 전격 결정하면서 더욱 속도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전광석화 같은 ‘탈핵’ ‘탈원전’ 일방통행에 이미 상당수 원로학자들은 ‘멘붕’ 상태다. 소장학자들이원로학자들을 대신해 간간이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출신으로 옛 과학기술부 원자력국을 거쳐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연구재단 원자력단장을 지낸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최근 목소리를 내는 소장학자 중 한 명이다. 지난 6월 26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만난 정범진 교수는 이를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라고 했다.
ㅡ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을 우려하는 까닭은. “과학기술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반도체, 자동차와 같이 국부를 창출하기 위한 기술이다. 또 하나는 국방·우주·원자력과 같이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기술이다. 후자는 설령 금전적 가치가 없더라도 일정한 기술력을 유지해야 한다. 원전은 돈 있다고 사오면 되는 게 아니다. 핵무기로 전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받기 위해 사찰을 받아야 한다. ‘IAEA(국제원자력기구)’라는 별도의 국제기구를 둘 정도로 국제정치에 민감하다.”
ㅡ1958년 시슬러 박사의 방한을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표현했다. “시슬러 박사의 방한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원자력을 배우기 위해 273명을 유학 보냈다. 당시 1인당 GDP가 70달러일 때다. 한 명당 유학비로 6000달러 이상이 들었다. 나는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생활을 오래해서 미국에만 유학생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료를 찾아보니 미국과 유럽에 반반씩 보냈다. 그만큼 원자력 기술 독립에 신경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ㅡ2차 대전 후 다른 신생독립국은 어땠나. “대다수 나라에서 2차 대전 후 원자력에 관심을 표했다. 대부분 나라에 원자력연구소가 생긴 것도 그즈음이다. 필리핀은 우리보다도 더 빠르다. 북한도 1960년부터 핵 연구에 착수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다른 개도국들은 원자력연구소를 세우고 연구용 원자로를 가동하는 데 그쳤다. 상업용 원자로를 가동하고, 기술 국산화, 원자로 수출에까지 이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ㅡ박정희 대통령 때 ‘고리 1호기’ 가동 등 큰 진전이 있었다. “1968년 고리 1호기 건설 결정을 내린다. 마침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의 성공으로 인하여 가난한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차관을 빌릴 여건이 조성됐다. 박정희 정부 때 1·2차 석유파동도 영향이 있었다. 1973년 1차 석유파동 때는 석유파동으로 자재값이 앙등하면서 불가피하게 공기가 지연됐다. 하지만 1978년 2차 석유파동 때는 고리 1호기가 탈석유화에 상당 부분 기여를 했다.”
ㅡ박정희의 원자력에 대한 관심은 ‘핵무기’를 염두에 둔 것 아닌가.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이 있었다. 1974년 인도가 핵 개발에 성공하고, 1977년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이 ‘핵우산 철거’를 발표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박 대통령은 ‘생존수단을 강구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월성 1호기’를 핵무기 개발에 용이한 ‘중수로’로 설계한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박정희는 상업용 원자로 가동을 병행하면서 일석이조를 노렸다. 북한과 같이 핵무기만 개발하려면 연구용 원자로만으로도 충분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1979년 박정희 사후 한국의 원자력 기술독립은 큰 변화를 맞이한다. 10·26사태 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미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미사일 사거리 제한과 핵개발 포기를 약속하면서다. 이후 원자력 기술 개발은 숨어서 연구하는 시대로 전환된다. 원자력연구소는 1980년 ‘한국에너지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연구비는 정부 예산을 받던 것에서 한전의 용역을 수행해서 자체 조달하는 구조로 바뀐다. 한국에너지연구소는 1989년에야 이름이 환원됐지만 기형적인 연구비 조달 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2007년에는 이름이 ‘한국원자력연구원’으로 바뀌었다.
ㅡ1980년대에 상황이 급변했다. “1979년 3월, 미국 스리마일섬(TMI-2) 원전사고가 터졌다. 1980년대부터 미국 원자력 업체들의 발주가 끊겼다. 당시 미국의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과 같은 회사가 한국과의 기술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왔다.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기술이전을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박사급 인재들을 미국으로 보내 기술이전을 받았다. 대개 석사급들이 가는데, 박사들이 직접 가니 기술 습득이 빨랐다.”
“원자력은 가장 안전한 에너지원이다. 원전 사고가 터진 미국(스리마일), 러시아(체르노빌), 일본(후쿠시마) 중 원전을 포기한 나라가 있나?”
ㅡ오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늘린다는데. “신재생에너지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1㎾당 발전단가는 원전 50원, 석탄 70원, LNG 120원, 풍력 120~130원, 태양광 300~400원이다. 원자력 50원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 처분, 원전해체 비용을 포함한 금액이다. 원자력을 태양광으로 대체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8배가 오른다. 기름값이 8배 올랐다고 쳐봐라. 아무도 안 쓸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
ㅡ다른 나라들은 사정이 어떤가. “독일은 갈탄(褐炭)이 풍부하다. 이탈리아는 수력이 좋다. 미국과 유럽은 각각 전력망이 연결돼 있다. 전력이 모자라면 서로 빌려 오면 된다. 시차를 이용해 전력을 나눠 쓸 수 있다. 한국은 전력망이 고립돼 있는 섬과 같다. 시차가 없어 부하가 한꺼번에 걸린다. 중국·일본과 전력망을 연결한다고 해도 사드(THAAD) 배치, 위안부 사태에서 보듯이 서로 빌려줄 것 같나. 에너지 안보상으로도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ㅡ원전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나. “에너지원별 사망률을 보면 1조W/h를 생산할 때 석탄은 10만명이고 원자력은 90명에 불과하다. 미국만 놓고 보면 원자력 사망률은 0.1명이다. 미국 스리마일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도 한 명도 안 죽었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의 사망률은 각각 440명, 150명에 달한다. 원자력은 가장 안전한 에너지원이다. 원전 사고가 터진 미국(스리마일), 러시아(체르노빌), 일본(후쿠시마) 중 원전을 포기한 나라가 있나?”
입력 : 2011.06.20 15:49
▲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20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일본의 지진피해 현장 슬라이드를 배경으로 프리젠테이션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재일동포 기업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20일 “원자력(발전)의 경우 지진이 많은 일본과 한국은 명백히 다르다”면서 “탈(脫)원전은 일본에 대한 얘기”라고 말했다.
손 회장은 이날 청와대로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한국의 원자력은 안전하게 추구되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respect)”며 이같이 말했다고 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환경비서관이 전했다.
일본의 원전 의존 탈피를 주장해온 손 회장은 “일본이 지진대가 많은 곳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태평양 연안에 원전이 있는 것은 큰 실수(big mistake)”라며 “(원전에) 예상 밖의 위험이 왔을 때 속수무책이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중국이 안전 지대에 원전을 설치하는지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중국, 인도의 에너지 수요가 폭증할 것인 만큼 한국과 일본이 재생에너지 기술과 시장을 같이 키우면 큰 성과를 얻을 것”이라며 “한국은 태양광 분야에서 삼성과 LG가, 풍력은 현대가 치고 나가고 있는데, 한국의 성장세를 보면 세계 최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 회장은 지난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브로드밴드’ 상용화에 집중할 것을 강력히 건의했고 이날은 청와대 방명록에 영어로 ’Renewable(재생가능한)’이란 단어를 세 번 반복해 썼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1997년 당시 브로드밴드 추진을 건의할 때 미국과 일본에 한참 뒤처졌던 한국이 지금 (브로드밴드 분야에서) 세계 최강이 된 것처럼, 강한 지도력과 마음만 먹으면 크게 변화하는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세계 최강이 될 것”이라며 “한국의 핏줄을 지닌 나도 그러한 부분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설립한 ’신재생에너지재단’으로 하여금 이 대통령이 주도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와 협력 관계를 체결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기의 원전 산업]
신고리 5·6호기와 같은 모델 FT "英, 탈원전 표방한 한국과 사업 진행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당장 한국전력이 영국을 상대로 추진하고 있는 원전 수출 계획에 불똥이 튈 전망이다. 자국 내에서도 외면받는 '원전'을 굳이 수입하겠다고 나설 국가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전이 수출하려는 한국형 신형 원전 모델 APR-1400은 신고리 5·6호기에 적용될 모델이다. 한전은 영국 북서부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 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까지 이 지역에 원전 3기를 짓는 사업으로 사업비가 21조원에 달한다. 한전은 일본 도시바로부터 무어사이드 원전 개발사 '뉴젠 컨소시엄' 지분 60%를 인수해 시공까지 맡는다는 계획으로 도시바와 지분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전의 참여가 확정되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이후 8년 만의 해외 원전 사업 진출이다. UAE 원전에 적용된 모델도 APR-1400이다.
최근에는 APR-1400이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 사업의 후보 모델로 포함되면서 영국 진출 성사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최근 몇 년 새 프랑스 아레바와 미 웨스팅하우스 등 세계 원전 시장의 강자들이 재무적 어려움에 빠지면서 원전 수출이 가능한 국가는 한국과 중국·러시아 정도만 남은 상황이다. 미국, 영국 등이 안보적 측면에서 중국·러시아보다는 한국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한국 원전 수출 전략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영국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에 원전을 수출하려던 한전의 계획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어려움에 처했다"며 "영국은 탈원전 정책을 표방한 한국과 원전 사업을 함께 진행하기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 부품은 다품종 소량 생산구조인데 한국에서 원전 산업이 무너져 부품 업체가 사업을 접을 경우 원전 수입국으로서는 부품을 구하는 게 어렵게 된다"며 "한국형 원전 수입을 검토하던 국가들은 이 부분을 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전 수출 경쟁은 국가 대항전 성격을 띤다"며 "청와대 지원이 없다면 그만큼 이길 확률이 낮아진다"고 지적했다.
[뉴스토마토 정기종기자] 원자력 의존도 탈피 움직임에 세계 최대 원자로 전력 수급국으로 꼽히는 프랑스가 동참했다. 우리나라도 새 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이 제시됐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인 만큼 제도와 산업 생태계 구축이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현지시간) 니콜라스 월로 프랑스 에너지환경부 장관은 현지 라디오에 출연해 오는 2025년까지 최소 17기의 원자로를 폐쇄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전체 58기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규모다. 원자력 전력 생산을 현재의 50%까지 줄이는 재생가능 에너지 법률 법안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 각 국의 원자력 의존도 낮추기는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독일은 지난 2011년부터 일찌감치 탈원전 정책을 펼쳐왔고, 일본 역시 이듬해 9월 탈원전을 선언하며 오는 2030년까지 '원전제로'에 도전하고 있다. 이밖에 스위스와 영국 등도 신재성에너지 수급률을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주요 선진국 흐름에 동참한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제도 및 산업 생태계 대안 선결이 필요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건설 백지화 위기에 놓인 신고리원전 5·6호 건설현장. 사진/뉴시스
우리나라는 새 정부가 친환경에 초점을 맞춘 에너지정책의 일환으로 지난달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를 선포하며 탈원전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원자력 전력수급 의존도를 낮추고 오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천연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전세계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30%에 가까운 전력을 담당하는 원자력을 무턱대고 배제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탈원전 정책이 급진적으로 펼치면서 10여년만에 산업용 전기료가 약 2배 오르는 부작용을 낳았고, 일본 역시 경쟁력 있는 대체 에너지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며 최근 슬그머니 원전 재가동으로 입장을 선회한 상태다.
때문에 우리나라도 큰 틀의 에너지정책 방향성만 제시하고, 당장의 전력 수급과 산업 생태계적 요소를 고려해 단계적 추진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서지 골린 세계원자력협회 산업협력국장은 지난 7일 대전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지난 50년간 원자력 발전을 통해 경쟁력을 구축한 한국이 원전을 폐쇄하게 되면 전력가격 상승과 산업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