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바야흐로 대학 입학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고 있다. 이 나라 곳곳에서 똑같은 풍경이 벌어지고 있으리라. 우리 사회만이 가지고 있는 이 독특한 풍속. 올해부터는 달라지겠지만 비행기 이착륙까지 제한되면서 입시가 치뤄지는 나라.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은 좀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게다.
교육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조선조 이래 교육은 신분 상승 또는 유지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고 수단이었다. 지금도 가진 것 없고 아무 배경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머리 좋은 것이 유일한 자기 발전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갈수록 느껴지는 것은 이제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통용되기가 더 힘들어져 간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자기 재생산의 단계로 접어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역시 넉넉한 품성을 갖고 공부도 잘 하고 또 일류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적 신분과 직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반면에 가난한 집 아이들은 이제 상당히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한다. 조기 유학이다 어학 연수다 원어민 과외 교사다라는 물량 공세 앞에서 좌절하고 말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쩌면 아이들이 그런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아이들은 쉽게 몸으로 승부할 수 있는 그러나 사실은 밀림과도 같은 연예계를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사로서 가장 가슴이 저릴 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모습으로 일그러저 가는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보아야 할 그런 순간이다. 내가 말하는 것이 허공으로 흩어져 갈 때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감이 있다. 사실 아직도 희망은 있다. 우리 아이들 조금만 더듬어 내려가면 많은 상처 만큼이나 많은 희망의 근거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씩 그렇게 진주같이 빛나는 보석들을 발견할 때 살아 있다는 것이 축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세상은 점점 아수라장이 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야수가 되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마키아벨리적인 처세술을 갖추라고 할 것인가.
이제 대입 원서를 쓰면서 또 속상해 하면서 때로는 서글퍼 하면서 현실을 바라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