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sh On My Star - Feat. Jennifer Perri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온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봄이 영원하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 같아.
인생의 봄도 한철이야,
여름도 그렇고..
인생의 겨울이 온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게나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된다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게나...
"경청" / 조신영, 박현찬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무척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함부로 그런 말을 하면 안되지만..
건방스럽게도 난 평생동안 단, 한 번도 무엇을 먹고 잘못되거나
소화제조차도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이미 지난 일이었고 속된 말로 옛날(?)일이었다.
내 나이만큼 내 몸 역시도 항상 예전같지는 않았고..
써먹은(?) 시간만큼 마치 자동차처럼 낡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제 때에 엔진오일을 갈아넣고 자동차 회사에서 알려 준 지침대로
정비를 철저하게 했다고 한들 몇 십만 km를 뛰고 출고된지 몇 십 년이 된 자동차가
처음 갓 출고되었을 때나 아니면 몇 개월 또는 몇 년 굴렸을 때와
같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하물며 젊은 날 몸뚱아리를 함부로 하고 되는대로 굴러먹었다면..
당연히 그런 현상은 더욱 더 심할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퇴근 무렵쯤(그 것도 나중에 생각해보고서야 겨우 깨달을 정도였다)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 두 끼(아침은 아에 안 먹고)
직장 구내 식당에서 그저 배안고플정도로만 챙겨먹는 것을 건너뛰기도 뭣해서
7시가 가까워진 시간에야 몇 숟갈 떠먹은 것 밖에는 달리 더 먹은 게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뱃 속이 더부룩하면서 윗 배가 약간 부풀어오른듯한 느낌이 들기는 했었다.
그러나 무엇을 잘못 먹어서 탈이 났거나 가스가 채인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그러려다 말려니 대수롭지않게 넘겼던 참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평소하던대로 간단하게 청소를 마치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한 뒤 방에 들어와 이틀동안 카페에 새로운 게시물을
올리지 못한 것을 염두에 두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으나
그 때부터 차츰 속이 거북해지기 시작해지는 것 같아서 끝내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자리에 일찌감치 눕고 말았었다.
그리고는 조금 뒤부터 배 위쪽 가슴 중간 부분이 아프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그렇게 아파보는 것이어서 어떻게 표현하기가 힘이 들 정도였다)
그냥 위(胃) 속에 거칠고 커다란 돌맹이를 가득 채운 듯한 느낌이 들면서
배꼽 위 전체가 뒤틀리듯 심한 통증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식중독이나.. 체하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집에는 그런 경우를 대비한 아무런 상비약도 없었다.
혼자 생활하는 처지니 가끔 약국에 들러 급작스러운 감기,몸살 따위에 먹는
진통제나 해열제 그리고 쌍화탕이나 그런 것들은 항상 준비해 두었지만
거의 먹고 싸는 일에는 불편(?)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사무실에는 챙겨 두면서도
집에는 하다 못해 까스활명수니 위청수며 소화제 같은 간단한 것조차도 없었다.
처음엔 그냥 그러다 말겠지 싶어서 따스한 물이라도 마시려고
주전자를 가스렌지에 올려두고 약간 한기가 느껴져서 방을 따뜻하게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는데 점점 고통이 심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숨을 몰아쉬기도 힘들만큼 통증이 심해지는 바람에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힌 채
끊여온 물 한 컵도 마실 엄두가 나지를 않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문득 쓸데없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 곳에 사는 것을 아는 사람은 누가 있으며..
더더구나 멀쩡한 모습으로 퇴근한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아픈 사실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혹시 잘못되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보여서는 안 될 험한 꼴을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 밤 10시를 넘기고 있었고..
생각 끝에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성격에.. 내 자존심에.. 가족들 놀라고 걱정할까 봐..
더 큰일을 당하고도 내색을 않았던 내가 아프다고 전화를 다 걸었으니
집사람 역시 몹시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조금 뒤에 다시 전화를 걸어와서는..
그리 멀지않은 곳에 혼자서 사는 처조카(처남의 큰아들)가 곧 올 것이라고 하더니
이내 신탄진에 처남내외와 함께 사는 둘째조카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내가 사는 곳의 위치를 물었는데..
그 땐 이미 극심하게 통증이 심해진 뒤여서 어떻게 자세한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큰조카가 퇴근 후에 다른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대충 둔산여고 앞까지만 와서 다시 전화를 하기로 하고 끊었는데
안되겠든지 다시 큰조카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최대한 빨리 모시러 올 것이니
조금만 더 참고 계시라고 했다.
큰조카는 막내 준혁이가 휴가를 나왔을 때 차를 태워 내가 사는 집 앞까지
한 번 데려다준 적이 있어서 대략 짐작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초라한 몰골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또한 밖에 나가면 갑자기 차가운 밤 바람에 몸이 더 오그라들 것 같아서
내복을 찾아서 꺼내입은 뒤 그 위에 반듯하게 손질해 두었던 츄리닝이랑
커다랗고 두터운 겨울 점퍼를 하나 더 걸치고 현관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이 심해져 자꾸만 몸을 새우처럼 등이 휘어지게 웅크려서 그런지
온 몸 뼈 마디마디와 살가죽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처조카가 쏜살처럼 차를 달려 을지대학의료원 응급실로 나를 부축하고 들어선 시간은
밤 11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응급실에서 마음이 바쁜 건 아픈 사람과 함께 간 보호자들 뿐이었다.
먼저 접수를 하고 한 쪽 구석 침대에 누워서 입고 간 겨울 점퍼를 뒤집어 쓰고도 오한이 심해서
그 위에 담요를 석 장이나 더 덮어쓰고 30분을 기다리고서야 간호원(조무사)이 다가와
혈압과 맥박과 체온을 재고 그리고는 한참을 더 있다가
조금도 바쁠 것이 없어 보이는 젊은 의사(인턴)이 찾아와
이런저런 증세를 물어 차트에 기록을 하고는 돌아가더니 처조카를 불러서
열이 심하니(배가 아파서 갔는데) 신종플루 검사를 할거냐 말거냐 물어보더란다.
난감해서 잠시 고민하다가 직장 문제도 있고 해서 하는 수 없이 해보라고 허락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하지 말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러는동안 혈관에 링거를 연결하고 진통제를 투입했더니..
차츰 통증이 사라지고 온 몸이 따뜻해지며 잔뜩 오그라붙었던 뼈마디와 근육이
훨씬 더 부드럽게 풀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열도 38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심전도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혈액검사를 하고..
기본적으로 의례처럼 검사들을 하는 사이에 위(胃)의 통증을 거의 사라졌고
나무 심하게 움추린 여파로 생겼을.. 마치 심한 몸살을 앓는 것 같던 아픔도 거의 가셨다.
두 시간만 있으면 나온다던 검사 결과를(실은 두시간만에 나와는 있었다)
세시간이 넘도록 알려주지도 않았고 응급실안에는 간호사만 오락가락할 뿐..
의사처럼 보이는 남자는 거의 찾아보기도 힘이 들었다.
참다못한 조카가 간호사에게 닥달을 하자 그제서야 의사가 나타나서
내 차트를 보며 검사 결과와 함께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었는데..
지금까지의 검사로는 뚜렷한 이유를 알 수가 없고 단지 염증수치와 백혈구 수치가
높은 것 같아서(염증수치가 높으면 당연히 아픈 상처와 싸울려고 백혈구 수치가 올라가게 마련이다)
내과전문의에게 연락을 해두었으니 다른 몇가지 검사를 더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는 조카에게 의사를 불러오게 해서..
난 두어 달도 되기 전에 위장내시경 검사를 비롯한 건강검진을 한 적이 있었고
지금 당장은 배도 아프지 않고 몸살기운도 없어지고 열도 내렸으며..
(게다가 신종플루도 아니고)
이런 저런 검사를 더 받기 위해 응급실에서 밤을 세우고
아침에 일반병실로 올라 갈 수는 없으니 지금 그냥 퇴원하고 증세가 심상치 않으면
날이 밝은 뒤 다시 외래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갑자기 배가 아팠으니 위경련이거나..
아니면 내 몸 속에 이미 심장박동기가 들어있음을 알테니
어쩌면 급성심근경색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일이고 그런 저런 이유를 다 든다면
나는 당연히 짧지 않은 기간을 병실에 묶여있어야만 할 것이었다.
의사들 말이 조금도 옳지 않다거나 불신해서가 아니라..
내심 말은 할 수 없지만 내 앞에 널부러진 현실을 나는 묵과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솔직히 별로 걱정도 안되는 신종플루 검사만 해도 그랬고)
조금 뒤 우선 이틀치의 약과 해열제 주사를 맞은 뒤 병원비 계산을 마치고 퇴원을 했다.
지갑 속에 있던 돈이 부족할 것 같아서 처조카에게 현금인출기에 갔다 오라고
카드를 내밀었더니 벌써 계산을 마쳤다고 한다.
아직 그럴만한 여력이 없는 것을 잘 알기에 몇 일 뒤 불러서
저녁식사라도 한 끼 사먹이며 봉투에 돈을 넣어 돌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병원비는 내가 예상한대로였고.. 만약 의사가 하라는대로 했다면..
아침 쯤엔 적어도 7~8십만 원이 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이럴 때면 질병보험이라도 하나쯤 꼭 들어두고 싶어도 들 수가 없는 것이
가장 걱정스럽고 나를 힘들게 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아픈 사람이나 언제건 아플 확율이 높은 사람에겐
절대로 보험 가입을 허락해주지 않아서였다.
허긴 당장은 돈도 돈이지만..
예정된 일이 있어서 더욱 더 병원에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오늘) 대구에서 친구가 아들 장가를 보내는 날이었고..
11일 수요일 서울 마트 본사에서 일 년에 한 번 하는 큰 행사에(CS 경진대회)
내가 우리회사 대표로 나가도록 이미 결정이 되어 있었다.
언제나 처럼.. 내 한 몸 죽는 것이 두렵거나 걱정되지는 않았다.
단지 아직은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고 신(神)이 내게 허락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사람의 도리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절대.. 절대로.. 가족을 비롯한 그누구에게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지를 않아서였다.
예식장에서 평소처럼 친구들과 뒷풀이도 함께 해주지 못하고 헤어져
서둘러 대전으로 올라온 길.. 샤워를 하는데 입술 언저리에 느낌이 이상해서
몸의 물기를 닦으며 거울을 봤더니 몇 군데 물집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심한 열(熱) 때문인 것 같았다.
물론 조금 피곤하기도 했을 터였고...
아무튼 당장에는 더 큰 별다른 일없이 무사히 친구들과 함께 경사스러운 일을
챙겨보고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친구 아들이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항상 변함없이 나를 대해준 다른 친구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