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 행18:5~8
총신대학교 신학과 문현화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다. 말씀에 붙잡혔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라고 창세기12장 5절에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야 순종한다. 우리가 다 예수님을 믿노라고 건성으로 교회만 다니지 말고 말씀에 붙잡혀 살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과 마귀에 붙잡혀 산다. 구약성경에 대선지자 이사야를 불러내실 때 보면 그의 입에 말씀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술을 정결하게 만드시고 그의 입에 말씀을 주셨다. 성결하게 하시고 말씀을 주시는 것이 특징이다. 예레미야는 어떻게 선지자로 불러내셨는가?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라고 말씀하신다. 에스겔에게는 입에 두루마리 책을 먹여주시는 역사를 하신다. 그 책을 먹었으니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라고 하신다. 다니엘은 꿈의 이야기를 해석하게 하고, 손가락으로 쓰여지는 글을 해석하기도 한다. 뒷부분에서는 화상을 보여주신다. 다니엘은 환상을 깨닫게 하기 위해 인자 같은 이가 그의 입술을 만졌다고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에 붙잡힌 사람을 찾고 계신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에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신다고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5장에서 베드로에게 그물을 깊은 곳에 가서 던지라고 명령하신다. 이에 베드로는 말씀에 순종해서 고기를 가득히 잡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때에 베드로는 주의 말씀 앞에 거꾸러진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기적을 체험하지만 그들은 표적을 보지 못한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보지 못한 것이다. 말씀에 붙잡히지 않으면 나중에는 다 떨어져 나간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받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을 떠난다. 이방나라의 아내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많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무리 한다. 이러저러한 것들이 다 필요하지만 말씀에 붙잡히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말씀에 붙잡힌 사람의 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을 붙잡힌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붙잡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가시면 우리가 가다가 넘어져도 아주 넘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다시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내가 주님을 잡고 가려고 하면 가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둘째로는 말씀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성경을 읽지만 무슨 소린지 모르는 것이 많다. 주님의 깊은 세계에 들어가면 깨닫게 하신다. 말씀에 붙잡혀 가면 모든 위험에서 지켜주며 어마어마한 평안과 행복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8장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행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신다. 성령의 은사를 받아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붙잡아 주셔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어주기를 원하는 진실한 소원이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미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미쳐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날마다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말씀을 사모하여야 한다.
느낀점: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날마다 사모하며 어렵더라도 읽어야 한다는 말씀이 깊이 와 닿는다. 학업과 가정과 교회사역에 정말 바쁘게 사느라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22:1~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것을 요구하시는데 자기의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다. 5대제사중에 가장 첫 제사가 번제이다. 노아도 방주에서 나와 첫 제사를 번제로 드렸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외아들 이삭을 번제라고 드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난감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다. 그는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이삭을 드리려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경외심을 시험해 보려고 명령하신 것이다. 드리면 합격이고 안 드리면 불합격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아신다. 옛날 아벨이 하나님 앞에 양을 잡아서 드린 제사는 어떤 제사였을까? 번제였을 것이다. 40년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1년된 숫양을 잡아서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번제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삭을 드리라고 하실 때 하나님은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유월절 어린양으로만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번제로 주셨다.
사사시기 이스라엘은 평화만 계속되다 보니 전쟁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사 입다는 자기가 전쟁에서 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애절하고 간절하게 호소한다. 하나님은 이기게 해주면 무얼 해주겠냐고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가를 꼭 받으신다. 그래야 우리가 감사함을 알고 이 세상에서도 서로 서로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 자녀도 마찬가지이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다른 사람을 사랑 할 수 있다. 입다는 하나님께 전쟁에서 돌아갈 때 집에서 제일 먼저 나온 것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한다. 입다는 제 몸을 불살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라는 마음 이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번제를 받으시는 것이다. 열왕기하3장에 보면 모압은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고 있다가 아합이 죽자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 이에 유다와 이스라엘과 에돔 왕이 힘을 합쳐 모압을 치자 왕은 너무 급해 자기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 이에 세 나라왕은 쫓겨난다. 이방나라왕의 번제도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도 하나님께 나의 몸을 번제로 드려질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 고전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을 충성이니라.”
이 본문은 주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단어에 중심에 맞추어 많이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것도 있겠지만 1절 말씀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가 아니면 그냥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한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야 하는가? 마태복음 13장에 7가지 천국의 비유가 나오는데 제자들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이때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어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깨닫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비밀을 맡지 못한 사람들은 방향을 알지 못할 것이다.
로마서10장에서 저희가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으나 저들이 지식이 없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있었지만 그것으로 선지자들과 예수그리스도를 죽인다. 이렇게 비밀을 맡지 못하면 방향을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비밀을 맡겨주는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놀라운 세계를 열어주신다. 또한 선지자들에게 이 비밀을 열어주신다. 하나님은 무슨 큰일을 행하실 때에는 당신의 종 선지자들에게 보여주신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도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다. 결국 의인10명이 없어서 멸망당하고 롯만 구원을 받는다. 이 것이 비밀인 것이다. 또 요한복은 15장13절부터는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주는데 너희를 친구이기 때문에 알려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내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비밀을 주신다는 것이다. 사도바울과 비밀을 주신 것을 감사한다고 했고, 요한계시록을 쓴 요한에게도 비밀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참된 선지자요 일군이다. 하나님의 비밀을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비밀이다. 헬라어로(무스테리온)이라는 말에서 미스테리가 나왔다. 이 세상은 신비로 가득차 있다. 우리가 보는 이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신명기 24장 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닫아 놓았던 것을 열어주시는 새 시대가 열렸다. 선지자들은 마땅히 이 비밀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비밀을 맡은 사람인지 우리를 살펴봐야 한다.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이다.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설교를 하는 목사들이 많다. 하지만 설교는 이 비밀을 깨닫고 전하는 것이다.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을 전할 수는 없다. 예수님도 성경이 나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찾는 사람은 깨닫는 사람이다. 성경의 최고 비밀은 예수그리스도이며, 골로새서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씀하신다. 부르짖는 사람, 선지자, 예수님의 친구 이런 사람들에게 비밀이 맡겨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신다. 기도하게 하시기 위하여, 어려움이 올 때 얼른 깨닫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느낀점: 최근 들어 나의 부르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통일을 주실 때 제일 먼저 그 땅에 예배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들이기 위함이지만, 이 땅에서 먼저 부르심에 맞게 준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볼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깊이 깨닫고 언제라고 어디서라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자로 준비 되어야 한다는 감동을 주셨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조금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나가야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복음의 빚진 자 롬1:14~16
우리는 부모에게 먼저 많은 빚은 졌다. 고생해서 낳은 것도 그렇지만 키워주는 과정에 많은 수고와 돈이 든다. 나를 가르치는 선생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목사님들에게도 많은 사람의 빚을 지고 있다. 좋은 목사님을 만나서 양육을 받았다면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부모의 은혜와 스승의 은혜를 알아야 하지만 나라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탈북민들은 특별히 자유로운 대한민국에 와서 사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좋은 나라에 와서 살면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산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복을 받으면서 산다는 것에 깊이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자식에게도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자녀들이 부모들에게 주는 인생의 행복과 보람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한 나라가 망할 때 등장하는 것이 왕실에 후손이 끊긴다.
우리는 나도 모르게 나도 빚을 지고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5장에서 살인에 대한 설명에서 형제와의 사랑과 화목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형제에게 빚진 것을 갚기 전에는 결단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빚을 지면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 빚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이면에는 더 중요한 것이다.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영어성경은 죄를 빚이라고 번역했다. 빚이라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죄라는 것이다.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사이 관계이고, 둘째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이다. 사람에게 빚을 진 것은 꼭 갚아야 한다. 빚은 죄이기 때문에 꼭 갚아야 한다. 하나님은 빚을 지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만일 빚진 것이 있으면 7년에 한 번씩 탕감해주라고 하신다. 손해 보더라도 탕감해 주라고 하신다. 희년에는 노예까지도 돌려보내라고 하신다. 우리가 먼저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요구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감해주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 같이 우리도 우리에게 빚진 것이 있으면 용서해주고 갚을 빚이 있으면 갚아야 한다.
느낀점: 북한에 있을 때 빚을 진 적이 있는데, 그때 채무자가 얼마나 무섭게 느껴졌다. 당시 집에서 키우던 돼지며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은 다 팔아서 갚기는 했지만, 마음에 생각해보기를 나는 저 사람처럼 잘 살면서 나에게 빚진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겠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내가 빚지다 보니 빚진 사람의 입장만 더 고려했지만, 빚을 진 사람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빚에 대한 무게감에 대해 좀 더 깊이 인식하게 되고, 그 이면에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서 감사하며 말씀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