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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속의 열쇠 하나
조선조 중엽에 훌륭한 선비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이씨 성을 가졌고 다른 한 사람은 김씨 성을 가졌는데 문벌도 같고 덕망도 같으며 정승·판서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자들이었다. 수십 년 동안 함께 공부하여 다정함은 마치 사이 좋기로 유명한 제(齊)나라의 관 중(管仲)·포 숙(鮑叔)과 같았고, 글솜씨는 문장으로 이름난 한(漢)나라의 반 고(班固)나 사마 천(司馬遷)과 같았다.
그러나 앞날의 빈궁(貧窮)과 영달(榮達)은 기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과거 급제를 누가 먼저 하고 뒤에 하고를 막론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되 죽을 때까지 변하지 말자. '고 약속하였다. 약속한 지 얼마 안 되어 이생은 제주도에서 진상하는 귤을 성균관 유생들에게 내리고 기념으로 거행하는 과거인 황감제(黃柑製)에 뽑혀 청현직(淸顯職)으로 진출하였다. 그런데 김생은 마치 가시덤불이 앞을 가로막은 듯이 불우한 환경에 빠져 있었다.
이생은 괴원(槐院 : 承文院)에서 받은 봉급에서부터 수령으로 있으면서 받은 선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받는 즉시 반으로 분배하였고 관청에서 먹는 모든 음식 하나라도 혼자 먹은 적이 없었다. 저울로 달아서 공평하게 나누어 먹었으므로 그 빈부(貧富) 상태는 이생과 김생이 일반이었으나, 다만 김생은 분배를 기다려서 생활을 하고 이생은 벼슬을 나누어 주지 못하는 것을 늘 고민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하루는 김생이 이생이 평안감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갑게 달려가서 축하하였는데, 이생이 갑자기 으시대고 거드름을 피우며 코방귀만 뀌고 눈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조금도 성의로 대하는 태도가 없고 눈에 띄게 냉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김생은 크게 실망하고 물러났다. 그 전에는 쌀 한 되나 땔나무 한 묶음도 계속 보내오던 사람이 한번 평안감사에 임명된 뒤로는, 문인들의 선물과 부임에 따르는 예물만 해도 반드시 백 배나 될 터인데 털끝만큼도 나누어 주지 않았다. 괴이하게도 이생의 부귀가 도리어 김생의 낭패를 초래한 것이었다. 김생은 의심과 괴이함을 참지 못하고 배고픔과 추위를 견딜 수 없어 부득이 몇 차례 더 가서 구걸하였으나 태도가 조금도 바뀌지 않고 걸인을 대하듯 괄시하는 것이었다.
“감영에 가기 전에는 도와줄 것이 없네. 내려간 뒤에 도와줄 생각이니, 염려 말고 조금만 기다리게나…….”
존귀한 손님들이 몰려오고 길을 서두르는 군졸들이 출발을 재촉하였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돌아보니 그 자리에 있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부득이 고별하였으나 털끝만큼도 이별을 아쉬워하는 말은 하지 않고 여전히 못마땅하고 괴로와하는 기색만 보이는 것이었다. 굳이 앉아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벌떡 일어나서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환장한 것이 분명하니, 교제를 끊는 것이 옳겠구나.”
돌아와 썰렁한 구둘에 누웠으나 분통이 터지는 것도 견딜 수 없거니와 춥고 배고픔이 뼈에 사무치므로 오히려 평양감영을 단념할 수가 없었다. 날마다 서찰을 기다렸으나 전연 소식이 없었다. 이렇게 대여섯 달이 지나니, 참을래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보로 길을 떠나 10여 일 만에 간신히 당도하여 지방 관아의 아전 밑에서 잡무에 종사하는 승발(承發)을 찾아 명함을 내미니, 한 식경이 지나고서야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울분을 참고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마루로 올라가 방에 들어가서 이생을 보았으나 이생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다. 조금도 반가와하는 기색은 없고 도리어 `자발없이 내려왔다. '고 책망하며 이내 예절을 맡은 관원인 예막(禮幕)을 불렀다.
“이 손님의 거처를 정해드려라.”
그렇게 명하고 나서 생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묻지 않고 짧은 말로 권하기만 했다.
“몇 달간 가서 쉬게.”
사처에 이르니 이부자리나 음식이 사또와 똑같고 대면할 때 괄시하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진수성찬을 이루 다 먹을 수가 없었다. 김생은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옛정은 변치 않았는데 어찌 그리도 수작하는 예절은 상반될까? 아무튼 하회를 기다려보자. '
머물러 한 달을 지냈는데, 가족들의 동뇌(凍餒)는 반드시 여지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틈을 타서 동정을 구하였다.
“이 몸의 포난(飽煖)은 진(晋)나라 때의 부자 석 숭(石崇)을 부러워할 것이 없네만 처자는 필시 굶어 죽게 되었을 것인데, 어찌 불쌍하지 않겠는가? 이제 돌아가겠으니 다소간 도와주어 굶주리고 배부름에 있어서 고르지 못함이 없게 해 줌이 어떻겠는가?”
그러나 이생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네. 조금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네…….”
이와 같이 하기를 서너 차례 하였다. 머문 지 대여섯 달이 되니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였다.
하루는 염치를 무릅쓰고 간청하였더니, 이생은 발끈하며 낯빛을 바꾸었다.
“자네의 조급함이 너무 심하구먼. 70세의 생원이 끝내 궁상을 면치 못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구먼…….”
그리고 감영의 고지기에게 분부하여 `이 손님에게 노자로 돈 세 냥을 지급하라. '고 할 뿐이었다.
김생의 소망은 적어도 돈 백 냥과 타고 갈 마필 정도였는데, 이처럼 박절하므로 눈에 쌍불이 켜졌다. 곧 그 돈으로 이생의 얼굴을 후려쳐주고 싶었으나 돌이켜 생각하니 반천리를 도보로 가자면 노자가 전혀 없어서는 아니 되었다.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한숨을 지었다. 울고 싶으나 소리를 삼키고 머리를 떨군 채 힘을 다해 걸었다. 대동강을 건너 영제교(永濟橋)에 이르니 날도 어둡고 힘도 없어 더 갈 수가 없었다. 여관에 투숙하고 나서도 분을 참을 수가 없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때 갑자기 창 밖에서 신을 끄는 소리가 들리고 등불이 어른거리더니 소복 입은 미인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또 어린 여종이 뒤이어 정결한 술상을 들이고 물러가며 약속을 하였다.
“내일 이른 새벽에 와서 대기하겠습니다.”
미인은 김생이 누워 있는 속으로 다가오면서 속삭였다.
“생원님! 어찌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겠나이까?”
김생원은 몹시 의아해하였다.
“나는 감영에서 푸대접을 받았으니, 감히 여자를 가까이할 수 없는데 이 어떤 사람인고?”
그녀의 모양을 흘겨보니 관기(官妓) 같지도 않고 얼굴도 절색이었다.
“일찍이 친분도 없는데 무슨 일로 와서 보는고?”
“소첩은 본시 죽은 감영의 아전인 김형철(金炯哲)의 아내입니다. 지아비가 생시에 천역(賤役)으로 들어가서 10여 년 동안 열심히 봉사하며 죄를 지은 일도 없고 포흠을 낸 일도 없었으므로 평소 감영 아전 중에 사부(士夫)라고 칭해지고 게다가 지금 사또댁과는 선대의 친의가 있기에 반드시 특별한 은혜를 입어 계속 좋은 자리에 임명되리라 은근히 기대하고 온 집안이 크게 축원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또가 도임해서는 한 번도 좋은 낯으로 대한 적이 없고, 별도로 온갖 구속을 가하므로 많은 애로가 다른 아전보다 백 배나 되었습니다. 결국은 청지기의 참소로 혹형을 가해 때려 죽였으니 소첩의 집 수십 명 식구의 목숨이 끊어지게 된 것은 고사하고 무고한 원혼이 지하에서라도 보복이 없을 줄 어찌 알겠습니까? 또 사또의 성미는 지위가 높을수록 행실이 더욱 괴퍅하고 친의가 두터울수록 보복이 더욱 혹독합니다. 진실로 하늘의 살핌이 있다면 어찌 멸망하는 화가 없겠습니까? 소첩 같은 것들은 상하의 신분이 엄격하니 원통함을 말하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하거니와 호소할 곳조차 없습니다.
듣건대, 생원님은 사또와 특별한 사이라 비록 온 식구를 감영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이상한 일이 아니거늘 이처럼 내쫓기까지 하니, 온 감영이 그 소식을 듣고 분노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소첩이 어리석은 소견으로 가만히 생각하니 생원님이 당하신 피해는 소첩과 흡사합니다. 이른바 `과부의 아픔은 과부가 안다. '는 것이지요. 화를 벗어난 것만도 다행이라 축하드리며 감히 이렇게 와서 뵈오니 의심치 마시고 이 박주 한 잔 드시옵소서. 이 소첩의 지극한 원통함을 살피시고 평안히 돌아가셔서 특별히 보복하여 소첩으로 하여금 만분의 일이나마 하늘에 사무친 원통을 씻게 해주소서…….”
말하면서 그녀는 오열하는데 흐르는 눈물이 옷을 다 적시었다. 김생은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자신의 격분은 돌볼 겨를이 없이 미인이 원통함을 호소하는 것이 더욱 가엾게 여겨져 구슬 같은 눈물을 씻으며 다짐했다.
“내 비록 늙고 궁하나 서울에 가서 현달하면 결단코 그놈과 함께 살지 않을 것이고 기어이 네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보복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녀와 더불어 술을 폭음하고 잔뜩 취하여 꿈나라로 가서 새벽닭이 시끄럽게 우는 줄도 몰랐다.
깜짝 놀라 일어나서 보니 미인과 술상은 간 곳이 없고 벽에 걸린 의관과 망건이 하나도 남은 것이 없으며, 세 냥의 여비도 5전만 남아 있었다. 김생은 당황하여 몸둘 바를 몰랐다. 이 무슨 변괴인가? 지난밤 그 미인이 요망한 여우가 아니라면 필시 도깨비였을 것이고 아니면 혹시 강도가 아니었겠는가? 아무튼 여관주인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어젯밤에 와서 잔 여인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여관 주인이 대답하였다.
“당초 어떤 여인이 와서 잔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간 곳을 알겠소?”
물어볼 길이 없으니 이 일을 장차 어이할 것인가? 가장 난감한 것은 벌거벗은 알몸인지라 머리를 내밀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시 감영으로 들어가자니 모욕이 배나 될 것이고 그대로 경성으로 향한다면 더없이 창피할 것이니, 어떻게 집에 돌아갈 수 있겠는가?
주인에게 애걸하여 닳아서 버리게 된 삿갓을 얻어 푹 덮어쓰고 얼굴을 가린 다음 눈을 감고 머리를 쳐박고는 문을 빠져 나왔지만 반 걸음도 못 가서 불알이 당기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굽어보니 자그마한 자물쇠가 불알에 굳게 채워져 마치 저울추처럼 매달리고 차꼬처럼 끼워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붙들지 않으면 입이 벌어지고 머리털이 쭈뼛하여 도저히 행보를 할 수가 없었다.
`이 웬 전고에 없는 기괴하고 흉측한 일인가? 필시 그 여자의 소행일 것이다. 나의 의관을 슬쩍 빼돌려 가고 나의 여비까지 훔쳐 갔으면 화대는 충분했을 터인데 내가 다른 여자와 잘까 염려하여 투서법(套書法)을 본받아 사용한 것인가? 정표로 말하면 사랑할 만한 일이나 하룻밤 즐겁게 지낸 데 따르는 가혹한 벌이 이처럼 심하단 말인가? '
김생은 중얼거리며 부득이 손으로 불알을 받치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으나 종일 걸은 것은 10여 리에 불과하였다. 50닢 노자도 이미 평양지경에서 다 떨어졌다. 부득이 빌어먹으면서 올라와 장단(長湍)의 판문리(板門里)에 당도하니 패랭이를 쓴 놈 하나가 달려와서 부르는 것이었다.
“남산골 김생원이 한 바리 얻으려고 평양감영에 내려가셨다가 혹시 돌아오시는 길입니까?”
김생이 가만히 들어보니 분명히 자기에 대한 말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의심스럽고 괴이하여 불러서 물어보았더니, 그자는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양반이 이처럼 망측스러울 리는 만무하므로 냉소하고 대꾸하지 아니하였다.
“내가 과연 네가 말하는 양반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며 나를 찾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김생이 부득이 묻자 그자는 억지로 절을 하고 서찰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바삐 뜯어보니 자기 부인이 사망했다는 부고였다. 금실이 각별한 터에 이런 비보를 접하게 되자 간담이 찢어지고 천지가 무너졌다. 목을 놓아 몹시 섧게 울다 몇 시간 동안 졸도하게 되었다. 그자는 김생을 업어다가 주막집에 뉘어 놓고 하직을 고하였다.
“소인은 삯군으로 생활하는 놈입니다. 부고를 전하려고 내려왔는데 와서 생원님의 걸음걸이를 보니 모시고 돌아가려고 했다가는 어느 세월에 경성에 들어갈지 모르겠군요. 부득이 먼저 가겠습니다…….”
그리고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빼는 것이었다. 김생은 신세를 점검하고 겪은 곤액을 손꼽으며 곧 죽어버려 아무 것도 모르고 싶었으나 여러 자식들이 한꺼번에 두 초상을 당할 것이 마음에 걸려서 억지로 참고 걸음을 옮기었다.
이런 모양으로는 차마 낮에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남대문 문루에서 어둡기를 기다려서 봉화(烽火)가 켜질 때 집에 당도하였는데, 다른 사람이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김생은 또 한바탕 모욕을 당하고 나서 얼빠진 채로 물었다.
“이 집이 김생원댁이 아닌지요?”
그러자 그 집 주인이 대답했다.
“그 댁은 몇 달 전에 명동에 있는 큰 집으로 이사갔습니다.”
뜻밖의 일이라 그 집을 자세히 물어 찾아갔는데 집이 거대하여 값이 수천 냥은 나갈 만하였다. 중문에 당도하자 저녁 곡소리가 들렸다. 부인의 상사가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곧장 사랑으로 올라가니 세 아들 상주는 울음을 그치고 흘겨보며 당황하였다. 그들은 서로 돌아보며 허둥댔다.
“형님도 보이십니까?”
“너도 보이느냐? 이 무슨 변고인고? 저 웬 귀신인고?”
모두들 상장(喪杖)을 내던지고 각각 흩어지고 한 명도 와서 절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김생은 속으로 `나의 흉하고 괴이한 형상을 보고 자식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 생각하면서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촛불이 환한데 세 며느리들도 모두 돌아보고는 허겁지겁 피하는데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죽었다는 부인이 마루에 있다가 영접하는 것이었다. 이 또한 무슨 변고인고? 아들과 며느리 여섯 사람은 놀라 피하지 않는 자가 없는데 부인은 바삐 옷깃을 잡으며 물었다.
“죽은 어른이 어디에서 오셨소? 어디에서 나타나셨소?”
그러면서 끝내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알고도 믿지 않으니 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죽고 사는 것의 변환은 피차가 일반일 것이다. 그래서 부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내가 죽은 줄로 알았소?”
부인이 대답했다.
“행상(行喪)이 와서 널이 방에 있는데 죽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피차 의혹을 없애게 널을 열어보는 것이 좋겠다.”
김생이 하인들을 불러들여 못을 빼고 뚜껑을 열어보니 시체 같은 것은 전연 없고 널 속에 가득한 것이 모두 비단인데 몇천 겹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맨 밑바닥에 자그마한 궤 하나가 있는데 자물쇠가 굳게 잠기고 열쇠 한 개가 매달려 가는 글씨로 `김생원의 부인이 열어보라. '고 적혀 있었다. 열어 보았더니 그 속에는 또 바늘만한 가는 열쇠가 있었다. 김생은 얼른 깨닫고 부인을 시켜 급히 불알의 자물쇠를 열게 하고는 훌쩍 뛰어 일어서서 외쳤다.
“상쾌하구나! 내 살았으나 거의 죽은 목숨이었는데 이제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구나.”
그리고는 이내 여러 아들들을 모아 상복을 모두 불태우게 하니 온 집안에 기쁨이 넘쳤다.
“어떻게 이처럼 갑자기 부자가 되었느냐?”
김생이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5, 6개월 전에 비장(裨將)이 올라와서 집과 하인들을 최대한으로 골라서 마련하였고, 전장(田庄)은 가을에 수확하니 천 섬을 충분히 넘었습니다…….”
이생이 자신은 한 푼도 갖지 않고 모두 김생의 집에 실어보낸 것이었다. 이생이 조정으로 돌아왔을 때 김생이 찾아가서 백배사례하고 물었다.
“주신 물건이 너무도 많구려. 당면할 때 구박하고 코가 상하게끔 기롱하신 것이 어쩌면 그렇게도 박절하여 거의 미쳐 죽게 하였는가?”
이생이 말했다.
“자네는 운명이 비할 데 없이 기구한 사람일세. 갑자기 부자가 되면 반드시 불상사가 있겠기에 액땜을 하고 편히 복을 누리게 한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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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잘 읽었소 용학선비 껄껄~~!
넘 길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