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장점보다도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선 산행거리가 짧아 산행거리를 늘리려고 오도재 임도를 선택하였지만 때이른 더위에 난감하였다.
부용사 임도 또한 같은 이유로 망설일 수밖에 었었는데,수리봉 북릉과 부용산 동릉 루트를 발견하곤 쾌재를 불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생각보다 멋진 산이였다.
그래서 산은 들어가 봐야 제 맛을 안다고 하는가 보다.
장흥 부용산(芙蓉山·611m)은 우리나라 최남단 정남진(正南津) 옆의 그저 평범해 보이는 산이지만 암릉이 힘차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다.
육산과 골산이 적당히 버무러져 전혀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불과 한 달 전 칠리능선을 탈 때 서쪽으로 도드라진 부용산을 바라보았으니 그 날은 눈이 먼저 가고, 오늘에사 발걸음이 따라가는 셈이다.
부용산의 부용(芙蓉)은 불교용어 같지만 사실은 무궁화와 비슷한 관상용 약용식물의 이름이다.
바닷가에 인접해 있어 갖가지 약용식물이 잘 자라 약다산(藥多山)이라 부르기도 하고,전망바위에 올라서면 강진만과 보성만, 다도해 섬이 조망되며
천관산,제암산,수인산, 우두봉,고흥 팔영산, 해남 두륜산까지도 보인다.
날이 맑은 날은 멀리 제주도까지도 볼 수 있다고 하였지만 희끄므레한 일기 탓으로 불가하였다..
날머리의 안전로프가 설치된 능선에 서면 암릉의 조화가 적당한 부용산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다.
산행 드날머리는 쇠똥구리마을로 잘 알려진 운주리다.
쇠똥구리는 청정지역이 아니면 살지 않고, 운주리에서 생산되는 ‘적토미’는 명품 토종쌀.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쇠똥구리가 이곳에서 발견(2004년)되면서 운주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부용사는 고려시대 때 창건된 대찰이였지만 지금은 자그마한 암자로 남았다.
동학혁명 때 전쟁에 패한 동학군이 부용산에 집결하면서 그 화를 고스란히 입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용샘에서 부용사로 하산한 한덤님은 부용사 혜원스님으로부터 차대접을 받고 사찰 내력도 듣고 왔다고 한다.
산행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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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표
사자지맥
두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운주마을 입구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우리는 그 곳에 버스를 댔다.
'장흥고씨세장비' 자역비석이 서 있고..,
그 옆에 '남농처사장흥고공송덕비'도 세워져 있다.
운주마을로 들어가면서 우측에 '운주마을회관' 을 본다. 네비주소: 운주마을회관
운주(雲柱)마을은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머무는 날이 많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란다.
'운곡거사유적비'와 산행안내도를 지나며...
부용산 푯말과...
운주길 마을 골목안으로 들어간다.
운주저수지 제방을 만나면서 좌측 부용사 방향으로 진입하자마자...
30여미터 전방에 이정표와 함께 좌측으로 산길이 열린다. (B팀은 직진방향으로 곧장 부용사로 가야한다.)
돌아본 모습.
이정표에 '오도제1.8km'는 잘못 씌어진 것.
육산의 수더분한 산길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전망이 트이면서 하늘금이 선명히 드러난다.
숲 속 짙은 그늘속이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상당히 덥다.
그러다가 능선에 올라 붙어...
산불감시탑을 지나고...
조망이 트이기 시작하더니 우측으로 수리봉이 우뚝 섰다.
장흥의 진산인 천관산이 길게 마루금을 그리고...
바다가 조망된다.
살짝 당겨본 바다.
수리봉 일원의 암릉길 조망은 오늘 산행의 백미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망이 썩 좋지 않다는 사실.
암릉길 톱니능선은 산꾼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한 사람이 겨우 올라설 수 있는 작은 암봉에도...
가슴 뚫리는 산하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진행방향의 모습.
성수저수지와 벌판 너머 천관산과 구룡봉.
숲속길을 들자마자 다시...
뚫린 조망
가슴 벅찬 조망에 넋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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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 턱하니 가로막은 집채만한 바윗덩어리.
가까이 접근하려다 포기하고 내려온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미옥씨가 바위를 기어오르더니...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른다. 에고~ 이기 무슨~
살짝 당겨봤더니 그들의 표정엔 자신과 환희가 충만해 있다.
그런 와중에도 할 건 다 한다.
넓은 분지를 이룬 부용산의 정상. 부용사로 바로 올라온 B팀들이 식사 중이다.
헬기장 옆 살짝 올라선 곳에...
정상석과 이정표
이정표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칠해놔서 잘 보이지 않고...
삼각점과...
사자지맥 표식도 걸려있다. 사자지맥은 호남정맥 사자산에서 분기하여 도상거리 46.6km의 산줄기.
.정상을 내려서 용샘을 가던 중 장구목재와 괴바위산 방향에 출입통제 푯말이 걸려 있고...
폐사지를 닮은 공터 한켠에 용샘이 있다. 저쪽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지점이 용샘이고 부용사는 계속 진행해야 하지만 우리는 일행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
정상에서 내려서는 발걸음과 이정표의 부용사 방향. 부용사 반대방향 산죽지대가 우리가 진행할 방향. (삼거리 갈림길)
이끼낀 용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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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샘은 치유의 효험이 전해지는 샘물.
조망바위가 있는 하산길로 접어드는 일행들.
이정표 왼쪽은 정상가는 길이고...
폐헬기장을 지나...
연이은 전망바위에 서면 수인산과 제암산이...
운주저수지 뒤로 역시 수인산.
수리봉 능선이 부용산의 최고 전망처였다면 날머리 능선 또한 그에 못지 않다.
우측으로 지나온 수리봉 능선이 도드라져 보인다.
운주저수지 아래로 산행의 드날머리인 운주리.
다시 조망바위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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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능선과 우측으로 우리가 올라온 능선.
가파른 등로엔 굵은 밧줄로 안전을 담보하고...
우측 어깨에 짊어진 수리봉의 모습.
이제 산세는 육산으로 변하더니...
새로 정비된 계단을 타고 안부에 내려선다.
안부에선 임도급 너른 산길을 따라...
내려서면서 올려다보니 잘록한 안부.
작은 내를 건너면서...
돌아본 모습.
이제 부용사로 가는 임도에 내려선다.
임도는 세멘트 포장도로로 크게 S커브를 그린다.
임도에서 돌아본 날머리엔 사각정자가 서있다.
작은 사방댐을 내려서니...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지만 더 내려가서...
수도시설(식수는 아닌 듯)이 있는 곳 작은 다리를 건너...
냇가로 내려간다. 이 다리를 건너서 산길이 있다고 하였지만...
정자가 있는 우측 계단으로 올라가면 부용산 오르는 길이 아니고, 계곡을 따라 가는 산길이 나있지만 풀숲에 길은 거의 묵어있다.
그렇다면 계곡을 따라 아까 우리가 내려온 정자가 있는 날머리에 붙는다는 말인데, 길만 다듬어졌다면 임도를 걷지 않으니 좋겠지.
계단 입구의 안내판은 부용산 산행과는 관련이 없는 안내도.
조금 들어가본 계곡길.
다리에서 올려다본 사방시설.
아래 운주저수지 방향
부용사 방향 다리입구의 좌측에 세워진 이정표는 부용산정상이 2.0km라고 적혀있다. 그러니까 다리를 건너 부용산 가는 길을 안내하는 셈.
결론은 아니올씨다이고, 묵은 계단 위에 세워진 사각정자는 전혀 무용지물이니 산행안내와 시설물들은 지역 산행전문가의 조언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다른 각도.
부용사 자연석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서 운주저수지.
돌아본 부용사 표석과 물탱크와 수도시설물,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다리가 있다.
그리고 좌측으로 운주저수지변 체육공원이 갖춰져 있지만 거의 방치된 상태.
아까 우리 A팀이 올라간 들머리를 지나고...
마늘밭을 지나면...
운주마을회관과 버스종점의 공터.
모내기 준비를 끝낸 느티나무 쉼터엔...
일찍 내려온 일행들이 휴식을 취하고...
5백년이 다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왕성한 생명력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노거수 아래에서 자리를 편 우리들.
요즘 못자리는 아스팔트 포장도로에서 이루어진다. 비닐을 깔고 물을 댄다면 모판에서 모가 자라는 덴 아무 탈이 없다.
자리를 파하고 귀갓길에 접어든다.
노래에 나오는 부용산은 벌교의 나즈막한 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노랫말이 너무 좋아 음미해 본다.
-부용산 -
부용산 오리길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 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박기동 작사. 안성현 작곡>
'부용산'은 박기동씨가 폐결핵으로 일찍 죽은 누이를 묻고 돌아와 쓴 시에 안성현('엄마야,누나야' 작곡자)씨가 곡을 붙인 노래다.
당시 최대 히트곡이 됐지만 안성현이 월북하고 또 빨치산들이 즐겨 부르게 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가 훗날 안치환과 이동원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진보 또는 운동권 인사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첫댓글 대장님~멋진 작품 즐감하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