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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내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영적 싸움
설교본문 : 갈라디아서 5:1~26,
예레미야 35:1~19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4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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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어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사람이 평생 살아온 삶을 평가하여 영원한 생명과 멸망을 판결하시는 주께서
어떤 것이 생명의 길인지를 알려주셨는데,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과 다른 신앙을 가지면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신앙의 질서가 어떤 것인지를 바르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께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받아 영생을 누리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잘못된 신앙을 아주 무섭게 경고했습니다.
오늘은 갈라디아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이
왜 잘못된 신앙을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혹시 우리는 그들과 같은 잘못된 신앙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겠습니다.
제 1 부 : 내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영적 싸움
1.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이 할례에 집착한 이유
1)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방문하는 유대주의 기독교인들
갈라디아 지역은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넓은 지역입니다.
그 넓은 지역에 교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그나마 우리가 보는 교회처럼 교회당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성도들 중에서 조금 큰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형편이었고,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 된 상황도 아니니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을 모두 방문한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은 갈라디아에 있는 성도들을 일일이 방문하며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말하여 복음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열정과 열심입니다.
2) 이들이 이렇게 할례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구원을 단번에 끝내려는 것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할례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의를 얻는 표식을 갖고 싶은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과 죄에도 변하지 않는 표식을 갖고 싶은 것입니다.
할례는 일단 한 번 받으면 그 할례의 흔적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으므로,
이렇게 변하지 않는 구원의 표적을 갖기를 원한 것입니다.
➠ 단 1회적 사건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많은 경우에 구원의 문제에 대하여 걱정하는 이유는
육체의 욕망의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언제 이 욕망이 나와 나를 사로잡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과정, 구도자의 과정은
끝없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죄의 독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채우는 것입니다.
때로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이 과정을 우리는 평생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육체의 죄를 마음껏 범한다고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의의 표적이 있다면,
그것도 단 한 번 만에 내가 구원받은 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기가 막힌 증표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유혹이 될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들은 할례를 받으라 했고,
또 갈라디아의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 묵상 :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소위 ‘기독교 복음 침례회’라는 구원파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교주에게 재산을 바치면
구원을 받았다는 확증적인 날자와 시간을 제시하여 줍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았다는 확증을 받은 자들은 이미 영적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육체로 범하는 죄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본문의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의 할례 문제와 같은 이유입니다.
육체적 욕망과 상관없는 의의 표식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교묘히 파고든 거짓된 사술(邪術)인 것입니다.
2. 구원을 얻는 길의 첫째 : 죄사함
1) 구원을 얻기 위한 두 가지 필수적인 조건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두 가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는 잘못한 것을 용서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야 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행하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을 용서받는 것은 죄 사함이고,
해야 할 일을 모두 다 하는 것이 바로 ‘의(義)’입니다.
2) 죄사함과 의, 이 두 가지가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구원을 받는 자가 됩니다.
내가 죄를 전혀 짓지 않은 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단 한 가지라도 하지 못하고 놓친 것이 있다면 역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 죄사함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그가 무슨 죄를 지었든 다 용서를 받게 됩니다.
죄를 하나도 짓지 않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가 받아야 할 벌을 모두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3. 구원을 얻는 길의 둘째 : 의를 이루는 것
그러나 한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의를 이루는 일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1) 의를 이루는 일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5절)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설명 :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얻는 의의 소망을(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이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니]
그런데 남은 한 가지 의를 이루는 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의를 이룬 것으로 여기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예수께서 가지신 의를 선물로 주십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 자격이 없지만,
예수께서 가지신 그 완벽한 의를 선물로 받아 영생을 누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의를 이룰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우십니다(5절)
(5절 성경구절 위에)
믿음이란 내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가 믿음입니다.
주께 예배를 드리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도록 도우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섬길 수 있도록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믿음을 도우십니다.
3) 거듭난 자가 되도록 씻어주시고(딛3:5)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이렇게 죄사함과 의, 두 가지가 바르게 이루어져서 주께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받으면
하나님과 생명이 연결된 사람, 거듭난 사람이 됩니다.
➠ 중생(重生, 거듭남) : 다시 새롭게 창조되는 것
거듭남이란 다시 태어나는 것, 다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제까지 지은 모든 죄는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다시 새롭게 창조된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4. 이 둘이 서로 대적하여 자기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함
그러나 거듭났다고 할지라도 아직 천국에 들어간 완전한 의에 이른 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죄를 범하여 거듭남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1)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대적하나니(갈 5:16~17)
16. 내가 또 말하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혹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라.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게 될 것이라).
17. (왜 그런가하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이 둘이 서로 대적관계에 있으므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데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대적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기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 우리 마음을 부패시켜 육체의 욕망대로 살게 하려하고 있고,
성령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거룩한 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이에 낀 자로, 그 두 세력의 힘이 우리보다 더 크니
자기 힘과 자기 생각으로 사는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2) 이것은 모두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악령이나 성령, 두 영 중의 하나의 지배를 받고 살고 있습니다.
이 두 영은 다 강력하여 사람이 혼자 힘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분명히 악령의 주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틀림없이 멸망의 자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 속에 머물기에 힘쓰는 자가 돼야 합니다.
3) 믿음의 삶은 ➠ 이 땅의 것에 집착하게 하려는 악한 영과의 싸움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으므로
죄의 연약함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육신의 연약함이란 우리도 때때로 죄를 범하는 연약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땅의 것에 집착하려는 유혹을 뜻하기도 합니다.
돈과 권세와 명예, 이런 것들에 대한 유혹을 우리도 끊임없이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이 땅의 것에 집착하게 하는 악한 영과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4) 성령께서 이 치열한 영적 싸움에서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갈 5:5)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설명 :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얻는 의의 소망을(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이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는 평생 이 싸움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 싸움은 참으로 지독한 것이어서
우리가 단 며칠만 주님과 동행하기를 멈추어도 악한 영이 우리 안에 죄의 독을 넣어
하나님 섬기기를 싫어하고 죄를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다시 오셔서
의를 얻는 소망을 이룰 날, 영생을 얻는 그날을 바라보며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고 의로운 자가 되게 하시며(딛 3:5~6)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되도록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십시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나의 영을 씻어 건강하고 신실한 영을 가진 성도가 되십시오.
➠ 복음이 자유가 되는 이유 : 하나님께서 참 기쁨과 참 소망을 주시므로
마귀는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고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것이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우리를 속이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자에게 참 자유가 있습니다.
주께서 주시는 자유는 이 자유는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방종의 자유가 아닙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느끼는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고 경험하고 누릴 때 느끼는 자유입니다.
영생의 복을 소망하는 자가 느끼는 자유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성령께서 내 안에서 자유의 평안을 주십니다.
복음이 자유가 되는 것은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행복 안에서 느끼는 자유,
이것이 바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자유입니다.
주께서 내 안에 기쁨을 주셨으니 빵 한 조각만으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주께서 내게 행복을 주셨으니 시련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 2 부 : 신앙의 명가(名家) 레갑 족속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는 것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레미야 35장의 레갑 족속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 극심한 혼란에 빠진 유다와 예루살렘
예레미야는 이제 곧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 의해 불타고
왕도 포로로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드기야가 결단해야만 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다급해지자 시드기야는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시켜 줍니다.
그러나 잠시 평화의 때가 오자 마음이 변해
풀어 주었던 노예들을 다시 노예로 삼습니다.
시드기야 왕과 유다의 고관들이 송아지를 둘로 쪼개어 지나가며
동족 히브리인들을 풀어 주리라고 하나님 앞에 약속하고는
상황이 달라지자, 그들을 다시 붙잡아 노예로 삼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시며
그들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 처참하게 죽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 오직 하나 남은 신앙의 명가(名家) 레갑 족속
1) 하나님의 명령으로 레갑 족속에게 포도주를 권하는 예레미야(렘 35: 1~5절)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유다의 왕이었을 때에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레갑 족속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성전의 어느 한 방으로 데리고 가서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
3. 이에 내가 하바시냐의 손자요 예레미야의 아들인 야아사냐와
그 형제와 그 모든 아들과 레갑 족속의 사람들을 데리고
4. 여호와의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익다랴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 하난의 아들들의 방에 들어가게 하였는데,
그 방은 방백(고관)들의 방 곁이요 문을 지키는 살룸의 아들 마아세야의 방 위더라.
5. 내가 레갑 족속의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자
시드기야 왕과 유다의 고관들에 대한 두려운 심판의 말씀을 선포한 후
예레미야는 1차 포로사건 이전인 10년 전의 일을 회상합니다.
그때 예레미야는 레갑 족속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불러서 포도주를 마시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레갑 족속에게 포도주를 권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레갑 족속을 예루살렘 성전의 한 방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명령이라 전하며 포도주를 권했습니다.
2) 그들의 선조 요나답의 명에 따라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레갑 족속(6절)
6.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그러나 레갑 족속은 예레미야의 권면을 한마디로 거절하며,
그들의 선조 요나답의 명을 따라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집이나 포도원도 소유하지 않아 왔음을 밝힙니다.
그들은 타락한 사회에서 청렴결백한 모범적인 삶을 고수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레갑 족속에게 포도주를 권하라 하신 이유
본래 유목생활을 하며 장막에서 지내던 레갑 족속이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술을 마시며
극도로 타락한 생활을 한 것을 지적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시험 삼아
예레미야로 하여금 타락한 도성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온 레갑 족속에게
술을 마시도록 권하게 하신 것입니다.
3) 200년이 넘도록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지킨 레갑 족속
레갑 족속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족속으로 미디안 족속(민수가 10:29)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이스라엘 족속에 편입되었고 유다 지파와 가까웠습니다.
요나답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후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는 후손들에게 포도주를 금하며, 집이나 포도원의 소유를 금하고 유목생활을 하고
장막에서 지내게 하는 등 청렴결백하며 신실한 삶을 살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0년이 넘도록
그의 후손들은 요나답의 명령을 성실히 지킨 것입니다.
2. 신실한 믿음의 원칙을 지키는 레갑 족속
1) 모두 타락한 시대에 홀로 신앙의 원칙을 지킨 가문 레갑 족속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육신의 욕망을 따라가는 시대에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집안의 재산을 늘리기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시대에
레갑 족속은 모든 소유를 거부하고 청렴결백하고 신실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2) 하나님께서 그런 레갑 족속의 사람들을 자랑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집안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지를 확인하시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보다는 타락한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신앙을 잘 지키는 가문 레갑 족속을 자랑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늘의 천사들에게 욥의 믿음을 자랑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마지막 침공을 눈앞에 둔 위기의 때에
레갑 족속을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3) 예레미야의 청을 거절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레갑 족속(렘 35:6~11)
6.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7.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서 살아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하였으므로
8.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9. 거처한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소유하지 아니하고
10. 장막에 살면서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한 대로 다 준행하였노라.
11. 그러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 나라에 쳐들어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가 두려운즉
우리가 그들을 피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자’하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
예레미야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명이라 전하게 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의 한 방에서 술을 마시도록 권하게 했으나,
그들은 분명한 태도로 거절하였습니다.
그 집안사람들은 200여 년 전의 선조인 요나답의 명령을 성실히 지켜옴으로써
그들 집안을 신앙의 명가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만일 그 시대의 타락한 예루살렘 백성들 중 일부라도
레갑 족속처럼 살게 해 달라고 기도라도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해서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백성 중 레갑 족속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죄에 빠져 있으니 이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 묵상 : 당신의 집은 어떤 전통을 지켜오고 있습니까?
당신 집은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신앙의 신실함을 지키는 신앙의 명가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신앙의 가치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십시오.
4) 좋은 전통을 지켜가는 사람들
요나답의 집안사람들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신실한 좋은 전통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그 시대의 하나님의 일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됩니다.
좋은 선조를 두었어도 그 좋은 전통을 이어받아야 좋은 가문을 이룹니다.
신앙의 명가는 결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의 신실함을 지키는 것이 몇 대에 걸쳐 이어질 때
신앙의 명가가 탄생합니다.
● 묵상 : 우리는 좋은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순교자를 둔 나라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줄 알았던
좋은 선조들을 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레갑 사람들처럼 좋은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됩시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좋은 전통을 물려주는 사람들이 됩시다.
3.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사는 자들
1) 레갑 족속을 보면서도 교훈을 받지 못한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12~17절)
12.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3.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며 내 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오늘까지 이렇게 엄수되고 있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부지런히 말하여도 너희는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15. 나도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좇아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서 살게 될 것이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나의 말을 듣지도 아니하였느니라.
16.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 선조가 그들에게 명한 그 명령을 준행하였으나,
이 백성은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17.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백성에게
내가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레갑 족속의 사람들이 포도주를 마시라는 예레미야의 권유를 단호히 거절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레갑 족속의 사람들이 그들의 선조 요나답의 신실함을 본받아
지난 200여 년 동안 신실한 삶을 살아온 그들의 성실함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유다 백성들은 그들의 신실한 삶을 보면서도
마음에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내시면서 말씀을 전하셨으나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고 그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유다 백성들에게 이미 선언하신 심판의 내용 그대로
그들에게 재앙이 내려지리라고 선언하십니다.
2) 본받으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속에 있는 가치관을 따라 닮고자 하는 모델을 정합니다.
축구 선수들은 세계적인 선수를 모델로 삼고,
음악가들 역시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자기의 모델로 삼고 그들을 닮고자 애씁니다.
마찬가지로 유다 백성들 역시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레갑 족속의 신실한 삶의 모습을 보고 그들을 닮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삶을 사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을 닮기를 원하는 소원을 가진 자들조차 없었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저주의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라고 말씀하십니다.
● 묵상 :
당신은 무엇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십니까?
당신은 그것을 얻기 위해 누구를 닮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신실한 삶을 사는 사람을 당신의 모델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결 론 : 있는 자는 더 주시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으시는 하나님
“있는 자는 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눅 8:18)
라고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 신실한 레갑 족속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을 섬기려는 신실함이 없는 자들에게는
아예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시고 오히려 재앙을 내리십니다.
● 묵상 :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자에게는 더욱 은혜로 보호하시며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하게 하시고,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는 자는 그 있는 마음까지 빼앗아 가셔서
멸망의 자식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신실한 것을 채우려 힘쓰십시오.
그러면 더욱 풍성한 것을 채우십니다.
주님
성령이여 함께 하셔서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백성 되게 하옵소서.
성령이여 우리의 죄의 습관을 치유하여 주시고
성령의 열매를 채워 주옵소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죄의 소욕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신실한 믿음의 삶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하옵소서.
신앙의 좋은 가치관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으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을
삶의 모델로 삼게 하옵소서.
우리들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