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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菩薩十種淸淨忍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淸淨忍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安受呰辱淸淨忍이니 護諸衆生故며 安受刀杖淸淨忍이니善護自他故며 不生恚害淸淨忍이니 其心不動故며 不責卑賤淸淨忍이니 爲上能寬故며 有歸咸救淸淨忍이니 捨自身命故며 遠離我慢淸淨忍이니 不輕末學故며 殘毁不瞋淸淨忍이니 觀察如幻故며 有犯無報淸淨忍이니 不見自他故며 不隨煩惱淸淨忍이니 離諸境界故며 隨順菩薩眞實智하야 知一切法無生淸淨忍이니 不由他敎하고入一切智境界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安住其中하면 則得一切諸佛이不由他悟無上法忍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청정한 참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헐뜯고 욕되게 하는 것을 잘 받아들이는 청정한 참음이니, 모든 중생을 보호하는 연고이니라. 칼과 몽둥이를 잘 받아들이는 청정한 참음이니 나와 남을 잘 보호하는 연고이니라. 성을 내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연고이니라. 비천(卑賤)한 이를 책망하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윗사람이 되어 능히 너그러운 연고이니라.
귀의하는 이를 다 구제해주는 청정한 참음이니, 자기의 신명을 버리는 연고이니라. 아만(我慢)을 멀리 여의는 청정한 참음이니, 늦게 배우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는 연고이니라.
해치고 훼방해도 성내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환영과 같은 줄로 관찰하는 연고이니라. 침범함이 있어도 갚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나와 남을 보지 않는 연고이니라. 번뇌를 따르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모든 경계를 여의는 연고이니라. 보살의 진실한 지혜를 따라 모든 법이 생멸이 없음을 아는 청정한 참음이니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일체 지혜의 경계에 들어가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고 깨닫는 위없는 법의 참음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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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십종청정인(菩薩十種淸淨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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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열 가지 청정한 인욕이 있다. 보시 지계에 이어서 인욕이다. 다음에는 정진이 나오겠다.
인욕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칼날 인(刃)자가 마음 심(心)에 있다. 내 심장에 화살이 꽂히고 칼이 꽂혀도, 내 심장에 못질을 당했는데도 잘 참는다.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은
유십종청정인(有十種淸淨忍)하니: 열 가지 참음이 있으니
하등(何等)이: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인가?
손톱 밑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아픈데 심장에 박히면 또 얼마나 아프겠는가.
소위안수자욕청정인(所謂安受呰辱淸淨忍)이니: 이른바 편안하게 잘 받아들인다. 남이 나를 비방해도 비방을 잘 소화하는 청정한 참음이니, 자(呰)는 막 물어뜯고 쫓는다는 것이다.
호제중생고(護諸衆生故)며: 여러 중생을 보호하는 연고이고
안수도장청정인(安受刀杖淸淨忍)이니: 도장, 칼과 막대기를 잘 받는 청정한 참음이니, 남이 해코지하고 원망하고 이런 것들을 잘 참아낸다.
선호자타고(善護自他故)며:나와 남을 잘 두호하는 까닭이고
불생에해청정인(不生恚害淸淨忍)이니: 성을 내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성질을 내서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레이저를 쏘고 이런 것 있잖은가.
기심부동고(其心不動故)며 :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연고라. 화엄경을 공부하는 사람의 제1번은 기심부동이다. 심정부동, 입정부동심이라. 마음이 부동심에 들어가야 된다. 그래서 부동심에 들어간 것을 무생법인이라고 한다. 제8지를 부동지라고 하고 부동심이 된 상태에서 선용기심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된다.
마음을 선용기심한다. 안쪽으로 마음은 큰 원력을 세우고 그것을 보현행원으로 행한다. 이걸 화엄경을 공부하는 사람의 사요관(四要觀)이라고 한다.
불책비천청정인(不責卑賤淸淨忍)이니: 비열하고 천박한 사람을 책하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제가 괜히 꾸짖었다.
위상능관고(爲上能寬故)며: 윗사람이 되어 능히 너그러운 연고이니. 오늘 괜히 다 뽀록 났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잘 대해야 한다.
이제 특히 명절 무렵인데, 위의 사람한테도 잘해야 되지만 밑의 사람한테도 잘하는 게 어진 사람들이다.
유귀함구청정인(有歸咸救淸淨忍)이니:귀의하는 사람을 싹 다 모두 구해주는 청정한 참음이니
사자신명고(捨自身命故)며: 자기의 신명을 버리는 연고다.
목숨을 바쳐서 남을 구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내 목숨을 바쳐버리면 다시는 못 구하잖는가.
몸의 고통을 참아내면서, 내가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구해내겠다, 이것이 사자신명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내 목숨을 대신해 버리면 그런 일들을 할 수 없다. 오래오래 가늘게 길게 살아야지 많이 구한다.
원리아만청정인(遠離我慢淸淨忍)이니: 아만심,교만, 나라고 하는 아만심과 교만을 여의는 청정한 참음이니
불경미학고(不輕末學故)며: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머리에 삭도(削刀)물도 안 마른 게 건방시럽다’라고 한다든지 이렇게 안 하는 것이다.
잔훼부진청정인(殘毁不瞋淸淨忍)이니: 훼방함을 성내지 않는 청정함이니, 남이 해코지하든지, 잔인하게 와서 훼방한다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관찰여환고(觀察如幻故)며: 그것이 다 꿈과 같은 줄 관찰하는 까닭이다.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우리말로 해석하면 환생이라고 하잖는가. 환생(幻生) 부처님도 환으로 생겨졌다.
또 미륵보살을 만나기 직전에 덕생동자 유덕동녀가 들어가는 삼매의 문을 환주(幻住)라고 하고, 그리고 나서 환생법문, 이렇게 쭉 나온다.
환주법문은 일체유위법이 여몽환포영으로 머문다는 것이다.
마야부인 환생으로부터 저 끝에 덕생동자에 이르면 환주로 들어와서 미륵보살을 선재동자가 만났을 때 그때 법문을 몽환법문이라고 한다.
몽환(夢幻)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이라는 것이 바로 비로장누각에서 벌어지는 몽환법문이다. 사사무애 상즉상입의 법문이 전부 몽환법문이다.
그래서 만선동귀집의 중도송이나 이런 데 보면 영향여래께 공양하라고 하고, 화엄경에도 나온다.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은 부처님께 환화공양이라. 허깨비와 같은 공양물을 올린다.
이런 걸 우리는 공양할 때 관삼륜청정(觀三輪淸淨)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런 것들이 다 여기에 해당이 되겠다.
유범무보청정인(有犯無報淸淨忍)이니:남한테 침범을 당하더라 보복하지 않는다. 제일 찌질한 복이 보복이고 제일 좋은 복이 극복이다. 남이 침범해도 보복해서 되갚지 않는 것이 청정한 참음이다. 실수해서 남한테 화를 낼 수도 있지만, 일부러 꼭 그 사람한테 가서 뒤끝 있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사람들이 있잖은가. 못된 사람들이다. 침범하여도 보복하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불견자타고(不見自他故)며 : 나와 남을 따지지 않는 연고다. ‘너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거지’ 하는 것이다.
불수번뇌청정인(不隨煩惱淸淨忍)이니:번뇌를 따르지 않는 청정한 참음이니
이제경계고(離諸境界故)며 : 모든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 경계를 여의는 연고다.
눈앞에 나타나는 안이비설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향기 맡는 데에 젖어들지 않는다.
욕심이 없으려면 먼저 전제조건이 있다. 못된 짓 하는 것, 탐진치를 먼저 끊어야 된다.
탐진치가 있으면 눈코입귀가 하는 대로 무조건 욕심으로 버물어져서 흔들린다. 그러니까 탐진치를 끊기 전에는 주변 환경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걸 삼점차(三漸次)라고 한다.
제기조인(除其助因) 고기정성(刳其正性) 위기현업(違其現業)이다.
현재 눈앞에 벌어져 업을 지으려고 하는데도 똑같이 보고도 욕심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은 위기현업이다. 고기정성은 살도음망에 대해서 자기가 딱 끊으려고 하는 것이다. 바를 정(正)자에 성품 성(性)자 고기정성(刳其正性), 정성을 긁어내라고 하는 것은 뭐냐? 사람들은 ‘남들도 다 한다. 탐진치 일으키는 일들이 보통 일이지 나에게만 특별한 일이 아니다’ 라고 허망된 망상에 속된 소갈딱지로 계속 일을 저지른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라고 무심하게 탁탁 놓아 버리는 것이다.
그걸 놓고 난 뒤에라야 지금 여기 나오듯이 모든 경계를 여의게 된다.
안에 탐진치가 가득하면, 경계가 올 때, 미끼를 물 듯이 똥개처럼 계속 쫓아간다.
‘남을 살생하고 남을 죽이고 짓밟고 원수같이 하고 비방하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못된 소갈딱지’가 내 마음에 없고 무심해져 버리면, 경계가 눈앞에 있든지 없든지 왔는지 갔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 놓으니까 이렇게 이야기한다.
신심에 이어서 발심이 제대로 안 된 사람은 문사수(聞思修) 중에서 수가 안 된다.
문(聞)이나 사(思)까지는 되어서, 듣는 것도 잘 듣고 보는 것도 잘 보고 사유도 많이 한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생각도 하는데 실천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금강경에서는 주(住) 수(修) 항(降)이라 한다.
주까지는 엔간히 된다, 이해는 엔간히 되지만 닦으려는 수로 넘어가는 수행이 안 되기 때문에 항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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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 ‘화엄경을 좀 더 잘 보고 화엄행자로 살아가는 길, 비결’을 요번에 문수보살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어떤 것이냐?
화엄경의 다른 것은 놔두고 게찬품의 게송들을 먼저 외우는 것이다.
게찬이라, 게송으로 찬탄한다. 게송으로 찬탄한다는 것은 게송으로 계속 끊임없이 노래를 해서 구구단처럼 반복해서 익숙하게 자기가 외운다는 것이다.
수미정상게찬품, 야마천궁게찬품, 도솔천궁게찬품에서 게송을 찬탄할 때 부처님이 방광을 하시잖는가.
부처님의 방광이라고 하는 것은 일심을 확 드러내서 밝힌 것인데, 그 일심이 어떤 것이지, 진심이 어떤 것인지를 노래로써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일단 구구단을 외워 놓고 응용은 나중이다.
일단 이해력을 가지고, 이판을 가지고 계속 암기를 한다.
‘아, 게찬품이 먼저 있는 이유가 있구나’ 계속 이해를 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수미정상게찬품의 승혜(勝慧)보살장에는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여시해법성(如是解法性) 즉견노사나(則見盧舍那)’ 요지일체법이 자성무소유로 되어 있다,라고 나온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그 게송을 무조건 구구단 외우듯이 다 외워야 된다.
반복해서 게송을 외워놓지 않으면 이론이, 설계도가 없어서 실천이 잘 안 되는 것이다.
3회차 법문에서 그 게송을 다 외운 다음에 십주법문이 나온다. 한 발 한 발 실제적으로 실천하는 부분이다.
발심주 치지주 수행주 생귀주 구족방편주 정심주 불퇴주 동진주 법왕자주 관정주 이렇게 십주법문이 쫙 나오는데 그것은 자분이다. 사(事)적으로, 실제적으로 보현행원을 행할 수 있는 3회차 설법인 것이다.
4회차에 가서도 야마천궁게찬품에 있는 게송을 무조건 다 외워야 된다.
야마천궁게찬품의 가장 대표적인 게송이 무엇인가?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 (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와 비슷한 맥락의 게송으로 끊임없이 찬탄하면서 부처님의 방광에 걸맞게 게송들이 우러나온다.
우리도 계속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게찬품을 읽어야 된다.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 이런 대목이 있잖은가.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 이런 것을 이론으로 완전히 무장해서 ‘본래 없다, 본래 없다’가 완전히 자기에게 무르녹아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야마천에서 설해지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십바라밀이 뭔가?
환희행(歡喜行) 요익행(饒益行) 진실행(眞實行), 화내지 않는 것 무진한행(無瞋恨行) 정진해서 굽히지 않는 무굴요행(無屈撓行) 선정바라밀 이치란행(離癡亂行) 산란하지 않는 것, 선현행(善現行) 눈에 손금 보듯이 반야바라밀이 환한 것, 집착하지 않는 무착행(無著行) 난득행(難得行) 존중행 제8행, 그다음에 뭔가? 선법행(善法行) 마지막에 진실행까지.
그렇게 해야 진실행이 실제적으로 응용이 되는 것이고 환희행이 우러나오잖는가.
도솔천궁게찬품에 가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많이 주장하던 게송들이 있었다. 그것도 비슷한 내용이다.
설어염념중(設於念念中)에, 설사 생각 생각 가운데에 공양무량불(供養無量佛)에게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미지진실법(未知眞實法)이라. 진실로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명위공양(不名爲供養)이라, 이건 공양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도솔천에서 우리가 화엄행자로서 가야 될 길을 말한다. 그 응용의 길이 무엇인가?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불괴회향(不壞廻向)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 등법계회향 이렇게 쭉쭉 나가서 마지막에 입법계무량회향(入法界無量廻向)까지 간다.
이거 비싼 것이다. 사우나에서 발가벗고 있는데 문수보살이 와서 직접 가르쳐 준 것이다. 진짜다.
“통도사 가서 법문을 해야는데 뭘 하지요?”
문수보살이 말씀하셨다.
“용학아 요래 하면 된다.”
“요래 하면 됩니까?”
“그래, 그래하면 된다.”
그걸 알고 또 보니까 화엄경이 훨씬 가벼워진다.
마치 짐을 이만큼 하나 뭉쳐 놓고, 손잡이를 하나 딱 마련해 준 것과 같다.
‘내 혼자만 가지고 있을까’ 이러다 오늘 1월달에 오셨으니까 선물을 드려야 된다 싶어서 알려 드린다.
제가 이걸 아는 데 몇십 년 걸린 것 같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책에도 안 나온다.
혹시나 싶어서 ‘청량국사가 해놨겠지’ 봤잖은가? 아무도 안 해놨다.
‘감산스님이 해놓으셨나?’ 싶어서 화엄경 39품 대의를 다 봤는데 거기도 안 해놓으셨다.
청량국사도 안 해놓고 현수도 안 해놨다.
문수보살이 저한테만 살짝 해준 것이다.
오늘 금천암에 잘못 잡혀가서 좀 고생은 했지만.
그렇게 보시면 십지품은 당연하고 각 그 회차별로 내용들이 가뿐가뿐하게 들어온다.
그래도 안 된다면, 십지품은 맥락이 이것이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방편, 원, 력, 지, 십바라밀하고 보시섭 애어섭 이행섭 동사섭 이걸 같이 겸비해서 수행하는 게 십지수행인데,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이 열 가지를 똑같이 배대를 쳐서 십바라밀에 해놨다.”
의상스님께서 화엄경 80권의 요지, 요체는 십지품에 있다고 하셨다. 39품 중에서도 십지품이 보살수행자의 행동, 응용력이 수반되는 요체라는 것이다.
근데 해탈월보살이 “법문 좀 해 주세요.” 하니까 금강장보살이 “아이 안돼. 너거는 수준이 낮아 가지고.” 하고 거절했다.그러자 해탈월보살이 부처님한테 꼰질렀다.
“금강장보살이 우리한테 법문 안 해 주려는데 부처님 좀 한 마디 해 주세요.”
부처님께 가서 이야기했다고 다시 법문을 해 달라고 하니까 금강장보살이 말했다.
“아이고 됐어. 내가 안 해 주려는 게 아니고 못돼서 그런 게 아니고 들어도 의심하고 이러면 괜히 이 정법에 대해서 비방만 크고 허물이 커, 차라리 안 듣는 게 나아. 공부하려 하지 마라. 그냥 가라.”
그러니까 대중이 동시에 고함을 질렀잖은가.
“우리 대중은 공부할 태세가 되어 있고, 마음이 청정합니다.왜 우리한테 안 해 줍니까?”
데모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고 귀따가워라. 해 줄게.”
이렇게 해놓고 딱 해 주는 게 뭔가?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됐제? 끝.”
“아니 이름만 얘기해 놓고 왜 내용은 얘기 안 합니까?”
그러니까
“너거는 내 이름 들은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라. 배우기는 뭘 배워. 사는 모습이 화엄이 아닌데. 무슨 화엄경을 배우려고 그랴. 고만 가.”
사정 사정을 하고 부처님한테 또 꼰지르고 해서 하는 수 없이 환희지에서부터 다시 설명을 한다.
세 번이나 법을 청하는데도
“이 법은 너무 어려워서 너가 감당할 수 있는 분상이 아니다. 플라스틱 바가지 들고 용광로 쇳물이 받아지나? 안 받아진다. 가라 가, 넌 비기고야(非器故也)니라.”
입법계품 근본법회에 보면 비기고(非器故) 비기 그 그릇이 아니다. 그릇이 안 된다고 나온다.
어쨌든지 해탈월보살이 목조르기를 해서 금강장보살로부터 법문을 들었다.
그러면 십지품에 가서 뭘 해야 될 것인가? 분명히 거기서도 게송을 야무지게 해야 된다.
게송을 야무지게 하고, 그다음에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하는 것을 자분(自分)이라고 한다.
십회향에는 십회향품이 자분이 되고, 야마천에는 십행품이 자분이 된다.
그다음에 나오는 것은 승진분이라고 한다.
충분히 이해하실 것 같아서 얘기를 드린다.
*
인욕바라밀 계속 이어나가겠다. 너무 비싼 걸 해 드렸다.
불수번뇌청정인이니 번뇌를 따르지 않는 청정한 인이니 모든 경계를 여의는 연고이니라. 경계를 여읜다, 그것 때문에 나왔다.
수순보살진실지(隨順菩薩眞實智)하야:수순보살진실지니라. 수순이라는 것도, 저 뒤에 나오지만 수순이라고 하면 그냥 바라밀행위를 수순이라고 하기도 하고 반야바라밀을 수순이라고도 한다. 왜 수순이라고 하냐면 이치를 싹 살피는 힘이 생겨져 버리기 때문이다. 보살의 진실한 지혜를 수순해서
지일체법무생청정인(知一切法無生淸淨忍)이니: 모든 법이 생멸이 없음을 아는 청정한 참음이니, 그런 인이니
불유타교(不由他敎)하고: 불유타교하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입일체지경경계고(入一切智境界故)라: 일체 지혜의 경계에 들어가는 것, 일체지경계, 일체지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 근본지다. 근본지, 부처님의 지혜다.
우리 본래면목을 일체지라고 한다. 다른말로 시성정각 본각이다.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일 보살들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즉득일체제불(則得一切諸佛)이: 모든 부처님이
불유타오무상법인(不由他悟無上法忍)이니라 :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고 깨닫는 위없는 무상법인을, 무상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의 인을 얻느니라
(8) 菩薩의 十種淸淨精進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淸淨精進이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身淸淨精進이니 承事供養諸佛菩薩과 及諸師長의 尊重福田하야 不退轉故요 語淸淨精進이니 隨所聞法하야廣爲他說하며 讚佛功德하야 無疲倦故요 意淸淨精進이니 善能入出慈悲喜捨와禪定解脫과 及諸三昧하야 無休息故요 正直心淸淨精進이니 無誑無諂하며 無曲無僞하야 一切勤修하야 無退轉故요 增勝心淸淨精進이니 志常趣求上上智慧하야 願具一切白淨法故요 不唐捐淸淨精進이니 攝取布施戒忍多聞과及不放逸하야 乃至菩提히無中息故요 摧伏一切魔淸淨精進이니 悉能除滅貪欲瞋恚愚癡邪見과一切煩惱의諸纏蓋故요 成滿智慧光淸淨精進이니 有所施爲를悉善觀察하야 咸使究竟하고 不令後悔하야 得一切佛不共法故요 無來無去淸淨精進이니 得如實智하야 入法界門하야 身語及心이 皆悉平等하야了相非相하야 無所着故요 成就法光淸淨精進이니 超過諸地하야 得佛灌頂하야 以無漏身으로 而示歿生하야 出家成道하고 說法滅度하야 具足如是普賢事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淸淨精進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청정한 정진(精進)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몸의 청정한 정진이니,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스승과 어른과 존중할 복전(福田)을 섬기고 공양하여 물러나지 않는 연고이니라. 말의 청정한 정진이니, 들은 바의 법을 따라서 다른 이에게 널리 설하며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여 게으름이 없는 연고이니라.
뜻의 청정한 정진이니,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버림과 선정(禪定)과 해탈과 모든 삼매에 잘 들고 나면서 쉬지 않는 연고이니라. 정직한 마음의 청정한 정진이니 속이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 사악하지 않고 거짓이 없으며 모든 것을 부지런히 닦아 물러남이 없는 연고이니라. 더욱 수승한 마음의 청정한 정진이니, 상상(上上)의 지혜를 항상 구하며 일체 희고 깨끗한 법을 갖추기를 원하는 연고이니라.
헛되지 않은 청정한 정진이니 보시와 계율과 인욕과 많이 들
음과 방일하지 않음을 거두어 지니어서 보리에 이르도록 중간에 쉬지 않는 연고이니라. 일체 마군을 굴복시키는 청정한 정진이니 탐욕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음과 삿된 소견과 일체번뇌의 모든 얽히고 덮임을 다 능히 소멸하는 연고이니라.
지혜의 광명을 원만하게 이루는 청정한 정진이니 모든 하는 일을 잘 관찰하여 다 성취하게 하고 후회하지 않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함께하지 않는 법을 얻는 연고이니라. 옴도 없고 감도 없는 청정한 정진이니 실다운 지혜를 얻고 법계의 문에 들어가 몸과 말과 뜻이 다 평등하며 형상과 형상 아님을 알아 집착이 없는 연고이니라. 법의 광명을 성취하는 청정한 정진이니 모든 지위를 초월하여 부처님께서 정수리에 물 부음을 얻고 샘[漏]이 없는 몸으로써 죽고 태어나서 출가하여 도를 이루고 법을 설하다가 열반함을 보이며, 이와 같은 보현의 일을 구족하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크게 청정한 정진을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청정정진(十種淸淨精進)
*
그다음 정진이다.
*
불자(佛子)야: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청정정진(有十種淸淨精進)이니: 십종의 청정한 정진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어떠한 것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가 되는가? 하등이 위십고
소위신청정정진(所謂身淸淨精進)이니 : 소위 몸이 청정한 정진이니
승사공양제불보살(承事供養諸佛菩薩)과: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급제사장(及諸師長)의: 스승과 어른을 섬기고 공양하며
존중복전(尊重福田)하야 : 복전을 존중하야
불퇴전고(不退轉故)요: 물러나지 않는 연고이니라.
중생을 복전으로 삼는 것을 비전이라고 한다. 자비로울 비(悲)자를 쓴다.
부처님처럼 이와 같은 불보살을 복전으로 삼는 것을 경전이라고 한다. 공경할 경자. 경전(敬田) 비전(悲田) 이렇게 이야기한다.
공경심을 가지고 복을 짓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복을 짓고, 이렇게 한다.
어청정정진(語淸淨精進)이니: 말의 청정한 정진이니
수소문법(隨所聞法)하야: 들은 바 법대로
광위타설(廣爲他說)하며 : 다른 이에게 널리 말한다.
널리는 대자비이고, 다른 사람에게 말해 준다는 것이 자비심이다.
자비심이 없고 아주 이기적인 사람들은 나 혼자만 알고 그냥 싹 입 닦아버린다.
여기서 수소문법이라고 하는 것은 법을 들어야 아는 것이 생겨진다는 것이다.
다문(多聞)이라고 하는 것은 잘 이해하는 사람을 다문이라고 한다. 많이 들으면 많이 알아진다. 이것이 똑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영어회화도 ‘계속 하다 보면 영어가 들린다’ 이러면 알아진 것이다. 익숙하게 알아진 것이다.
“말 되게 안 듣네.”
하는 것은 이해를 못 한 사람이다. 말이 안 들리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된다. 말이 안 들리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된다.
찬불공덕(讚佛功德)하야: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무피염고(無疲倦故)요: 게으름이 없는 연고이니라.
그래서 자꾸 이런 얘기해서 미안하지만, 오늘 금천암에 딱 가보니 사람이 달라보이는 것이다.
저보고 거기에 살라고 하면 못 산다.
보니까 거기 사는 사람은 장군 아니면 못 산다.
아무리 경치가 좋다 하더라도 깨끗한 데 살려면 지저분한 모든 것을 놔 버려야 한다.
세속의 끈을 여기 붙여 놓고 저기 붙여 놓고 이러면 못 사는 것이다. 한 번 내려갔다 오면 죽어 버리는데,
“아유 스님 어떻습디까? 한번 갔다 오라 하겠습니까?”
처음에 출가할 때는 저부터라도 딱 그런 데 살고 싶다.
그렇게 한번 살겠다고 발심장 읽을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이 고함을 질렀는가.
‘고악아암(高嶽峨岩)은 지인소거(智人所居) 벽송심곡(碧松深谷)은 행자소서(行者所捿)니라’ 그래놓고 나중에 얍삽하게 차 좋은 거 타고 등 따시고 배부른 데 싸악 찾아가고.
의청정정진(意淸淨精進)이니: 신구의 뜻의 청정한 정진이니 뜻이 어때야 되느냐, 자비희사,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사(捨)라고 하는 것은 무사공평한 것이다.
치우침이 없는 마음을 사라고 한다.
좋은 사람한테도 치우치지 않고, 싫은 사람한테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 사(捨)다.
기뻐하는 것까지는 된다고 하지만 자비희사까지, 다 놓는 사(捨)는 어렵다. 사(捨)는 다른 말로는 무념이라 한다.
염도염궁무념처 무상(無相)으로 위종(爲宗)하고 무주(無住)로 위체(爲體)한다.
부동이라든지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무상을 사(捨)라고 한다.
선능입출자비희사(善能入出慈悲喜捨)와: 자비희사와
선정해탈(禪定解脫)과 :선정해탈과
급제삼매(及諸三昧)하야: 모든 삼매에 잘 들고 나면서
무휴식고(無休息故)요: 쉬지 아니하는 연고다.
선심소(善心所)에 보면 이렇게 해놨다.
어떤 사람이 정진하는가?
믿음이 있는 사람이 정진한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정진 못 한다는 것이다.
어떤 데 정진하느냐? 도박이나 이런 악한 데에서 부지런한 것은 정진이 아니잖은가.
긁어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힘든 것, 반야심경에 보면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얻을 바가 없는 것으로 부지런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정진이라고 한다.
믿음이 있으면 정진력이 생겨지고, 정진력이 생겨지면 그다음에는 뻔뻔함이 사라지고 체면치례를 잘한다.
그다음부터 싹 사그라드는 것이 탐심이다.
사람이 양심이 있고 인정이 있고 체면이 있어지고, 의리가 있어지면, 그다음에 오는 게 탐심이 쪼그라드는 것이다. 탐심이 쪼그라들면서 화나는 게 쪼그라들고 말라비틀어져 없어진다.
화를 잘 안 내다보면 삿된 소갈딱지도 없어진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경안(輕安)이 찾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몸과 마음이 좀 홀가분해지면 번뇌가 별로 없으니까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
‘내 잘못된 것, 조금 덜 완성된 것, 미완된 것’ 이런 것들도 경전 보면서 염불하면서 수행하면서 하나하나 다듬어 나간다.
그러면서 그다음에 오는 현상이 조금 전에 나왔던 것, 치우침이 없는 것이다. 무사공명정대한 것, 무사공평한 것, 이런 현상들이 우리에게 오게 된다.
대원경상(大圓鏡上)에 절친소(絶親疎)라, 부처님 같은 마음에서는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그런 것이 점점 희미하고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남을 해코지하지 않는 마음이 생겨진다. 그래서 부처님하고 점점 근접해서 가게 된다. 이것을 중선봉행이라 한다.
그게 안 되면 막 분한 마음 분(忿) 한(恨) 부(覆) 뇌(惱) 광(誑) 첨(諂) 교(憍) 해(害) 아첨하면서 “아이,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이러면서 속이고 달고 꼰지르고 해코지하고 질투하고 아끼고 뻔뻔스럽고 얄궂은 야단법석 그런 게 다 나타난다.
그러다 안되면 조는 것이다.
혼침(昏沈) 도거(掉擧)
안 졸면 시끄럽고, 시끄럽지 않으면 졸고 둘 중에 하나다.
그러다 불신(不信) 지저분한 걸로 자기 인생살이를 부정지(不正知)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실념(失念) 생각도 정신줄도 마약중독자 비슷하게 해서 놔 버린다.
여기 그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다 잘 써 놓은 것이다.
정직심청정정진(正直心淸淨精進)이니: 정직한 마음에 청정한 정진이다.
우리는 화엄경을 이만큼 해놨으니까 정직해서 반드시 경전에 의거해서 해석해야 된다.
뭐가 정직인가?
직심, 진여법을 생각하는 것을 정직이라 한다.
진(眞) 여(如) 진실과 여실한 것 진실한 마음이다.
진실, 진여법이라고 하는 것은 무상이잖은가. 무념무상절일체(無念無想 絶一切)다. 어떤 이름이나 모양에 대해서 달라붙지 않는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이름 모양이 있으면 온갖 곳에 자기 이름을 갖다 올린다. 그러다 보니까
무광무첨(無誑無諂)하며 : 속이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
무곡무위(無曲無僞)하야: 왜곡되지 않고 무위라. 거짓되지 않는다.
진실법 진여법에서는 안쪽에 무명이란 놈이 딱 달라붙어 있다. 진여와 무명 두 개가 딱 붙어서 진망이 화합해서 일심(一心) 아뢰야식이 형성됐다고 한다.
안쪽에 제8아뢰야식의 무분별심 속에 있는 무명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여러 번 얘기 드렸지만 원효스님이 이렇게 해놨다.
안에 무명이 있다. 바깥에 기형적으로 태어나는 마음을 딱 보면 알 수가 있다. 생각이 기형적이라고 하는 게 탐진치 일어나는 걸 보면 분명히 그것은 진여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어디서 나왔겠는가? 무명에서 나온 것이다.
기신론에는 그렇게 해놨다.
‘저 사람이 신심이 있는지 없는지 무명의 업장이 두꺼운지 얕은지’ 그 사람의 지금 현전의 말과 행동과 생각 속에서 분명히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업장이 두꺼운 놈이다. 업장이 얇은 사람이다’ 알 수가 있다.
업장 얇은 사람을 따라다니면 죽는다. 가지 말자.
정직한 마음의 청정한 정진이니 속이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 왜곡되고 거짓이 없으며
일체근수(一切勤修)하야:모든 것을 부지런히 닦아서
무퇴전고(無退轉故)요: 물러감이 없는 연고다. 그러면 정반대로 정직하지 않으면 어떤가? 틈만 나면 쉰다. 틈만 나면 물러난다.
증승심청정정진(增勝心淸淨精進)이니: 증승심. 더욱더 증, 증폭돼서 수승한 마음, 증폭적으로 뻥튀기 팝콘처럼 팍팍팍팍 불어나는 것이다. 대나무 우후죽순처럼 마음이 촥촥촥촥 커가는 청정한 마음은 어떤 것이냐?
지상취구상상지혜(志常趣求上上智慧)하야: 뜻이 상취구라.
뜻이 향상일로(向上一路) 항상한다.
한문의 항상 상(常)자를 옛날에 우리 어릴 때 해석할 때는 ‘떳떳하다’ 이렇게 해석했다. 떳떳하지 못한 것을 뭐라 하는가? 무상(無常)이라 한다.
무상, 인생이 덧없다고 하잖는가. 덧없다를 정확하게 ‘떳떳함이 없다’ 이렇게 한다.
상이라고 하는 건 시간과 공간에 관계되지 않고 뜻이 항상 취구(趣求) 뭘 하느냐? 상상지혜라. 꿈과 이상이 전혀 다르다. 잔머리하고 다르다. 생각을 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영리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본지풍광의 상상의 지혜를 항상 구한다. 최고의 지혜, 없애려야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원구일체백정법고(願具一切白淨法故)요: 원구일체백정법고라.
백정법이라고 하는 것은 유위 무위를 초월한 것이다.
무위법이라고 하고 백정법이라 하는데 꼭딱스럽게 하면 백법은 선법이고 흑법은 악법이다. 이 흑백법을 초월해 버린 것을 백정법이라 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의식을 아말라식 청정식이라 하고, 그것을 백정식이라고 한다. 백정식.
*
우리 중에 누가 조는가 보다. 잠 오는 사람 아침에 한 3천대 두드려 패고 저녁에 한 800대 더 두드려 패고 이래야 된다.
저 큰 바다에 자이언트 조개가 한번 자면 천 년을 잔다고 한다.
제가 행자 때 밥상머리에서 우리 은사님이 말씀해 주셔서 그때 얻어들은 법문이다.
원래 아나율존자와 부처님 이야기인데 우리 은사스님이 각색을 해서 들려주셨다.
“저 큰 바다에 가면 조개란 놈이 있는데 그 조개가 한 번 자면 천 년을 자.”
와, 천 년 자는가 싶어서 어린 우리 세 명이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었다.
“근데 천 년 자고 나서 하품 확 하고 일어나면서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모른다고 가만 있었다.
“아이고 파도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
천 년이나 자고 파도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는 것이다.
“그게 니다 이놈아.”
하긴 아나율은 부처님이 법문을 하셔도 주무셨다.
“니는 소라나 고동처럼 해 가지고 콕 박혀서 잔다.”
부처님이 뭐라 하셨다,
그 아나율이 깨달음의 눈이 탁 튕겼지만, 눈이 멀어 버렸다.
화엄경 근본법회 60권에 보면 아나율존자가 나오잖는가.
아나율존자는 이름이 무빈(無貧)이라. 무빈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가난해지고 싶어도 가난해지질 않는다.
아나율존자의 집에는 황금으로 된 사람이 있었다. 손가락을 떼면 손가락이 금덩어리로 다시 나오고, 돈이 많이 필요할 땐 다리를 하나 뜯어서 쓰면 또 황금 다리가 하나 나온다. 아나율존자가 공양 한번 잘해서 그런 복이 있는 것이다.
여기 스님들도 다 그렇지 않은가.
가만 집에 있으면 잔돈 필요할 때는 새끼 손가락 하나 뜯어 쓰고, 그 이튿날 되면 새끼 손가락 금이 하나 나온다.
근데 누가 악한 사람이 왕에게 꼰질러서 그걸 뺏어 가려고 딱 아나율 집에 왔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눈에는 그 황금사람이 단지 시체로밖에 안 보였다는 것이다.
복을 짓는 사람들 눈에는 황금 사람으로 보이지만 부모한테도 안 되는 것이다.
부모하고 자식이 또 다른 것이다.
복이 많은 자식이 하도 신기해서, 부모가 빈그릇을 담아 도시락이라고 줘 놓고 나중에 확인해 보면 그 안에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나율존자가 무빈이라. 없을 무자 가난할 빈자.
우리도 이래저래 안 되면 법명이라도 무빈이라고 지어 버리든지, 무빈.
부당연청정정진(不唐捐淸淨精進)이니: 헛되지 않은 청정정진이니
섭취보시계인다문(攝取布施戒忍多聞)과: 보시 계율을 다문이라. 많이 들었다. 많이 들었다고 하는 것은 제대로 안다는 것이다.
급불방일(及不放逸)하야: 또 방일하지 않음을 거두어 지니고
내지보리(乃至菩提)히 :내지는 보리에 이르기까지 아뇩다라삼먁에 이르기까지
무중식고(無中息故)요: 중간에 쉬지도 아니한다.
최복일체마청정정진(摧伏一切魔淸淨精進)이니 :또 모든 마구니를 굴복시키는 청정한 인이니
실능제멸탐욕진에우치사견(悉能除滅貪欲瞋恚愚癡邪見)과: 우치 사견이 한덩어리다. 탐진치 탐욕 진에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삿된 소견머리
일체번뇌(一切煩惱)의: 일체번뇌의
제전개고(諸纏蓋故)요: 얽힘, 재전개고라 얽히고 덮힘 따위를, 번뇌에 찌달려 있는 것을 모두 멸하는 까닭이다.
*
성만지혜광청정정진(成滿智慧光淸淨精進)이니: 여덟 번째 지혜의 빛을 만족하게 이루는 청정한 정진이니
유소시위(有所施爲)를 : 모든 하는 일, 베푸는 일을
실선관찰(悉善觀察)하야: 잘 관찰하여서
함사구경(咸使究竟)하고 : 모두 다 끝까지 구경으로 하여금
불령후회(不令後悔)하야: 후회하지 않게 하고
득일체불불공법고(得一切佛不共法故)요: 부처님의 불공법을얻는 까닭이다.
무래무거청정정진(無來無去淸淨精進)이니:옴도 없고 감도 없는 청정한 정진이라. 무래무거.
그러니까 정진해도 정진하는 바가 없다.
정진을 아까 뭐라고 했는가?
예경, 참회, 수희, 권청, 회향 그와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한다 해도
득여실지(得如實智)하야 : 여실지라. 진여, 진실, 진실한 지혜, 여실한 지혜를 얻고
입법계문(入法界門)하야 : 법계의 문에 들어가서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경계에 떨어지지 않고 진리의 세계에서 무주무상으로 사는 게 법계문 아닌가. 입법계, 입법계가 증득했다는 말이다. 방안에 들어와야 방안의 소식을 알고 비행기를 타야 비행기의 소식을 알듯이
신어급심(身語及心)이: 신구의 삼업이
개실평등(皆悉平等)하야 : 개실평등하야, 평등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청정이다. 무사공평한 것, 평등하며 요동치지 않고 항상한 것 모두 평등하며
요상비상(了相非相)하야 : 요상비상하야 형상과 형상 아님을 제대로 알아서
무소착고(無所着故)요: 집착하는 바가 없는 까닭이니라
성취법광청정정진(成就法光淸淨精進)이니: 법의 광명을 성취하는 청정한 정진이니
초과제지(超過諸地)하야: 모든 지위를 초과해서
득불관정(得佛灌頂)하야: 부처님께 관정을 얻는다. 이건 수기를 받는다는 말이다.
화엄경에서는 선재동자가 입법계품에서 수기를 세 번 받는다.
비슬지라거사님도 선재동자의 머리를 만지기는 했다.
선재동자는 누구에게 세 번 수기를 받는가?
처음에 미륵보살에게 마정수기 그다음에 문수보살에게 마정수기 마지막에 보현보살에게 마정수기를 받았다.
그럼 마정수기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씨미륵(慈氏彌勒) 미륵보살에게 마정수기를 받았다는 것, 미륵보살이 상징하는 것이 자비다.
문수보살에게 받은 마정수기는 무엇인가? 근본 지혜다. 지혜.
자비와 지혜를 가지고 뭘 해야 되는가.
보현행원이다.
보현보살과 동급이 됐다는 말이 나중에 나오잖는가.
보현보살과 완전히 동급이 되는 순간을 뭐라고 하는가?
비로자나와 똑같다.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이라고 한다.
선재동자가 일생취판(一生取辦)이라, 그걸 돈오돈수라고 한다. 돈오돈수.
점차를 거쳤긴 했지만 한 생에 다 끝내 버렸다. 돈오돈수 보통 ‘아승지겁 아승지겁’ 하지 않는가?
화엄경은 전체가 돈오점수지만, 선재동자를 통해서 이러한 경우도 보여준다.
대단한 경지, 보리심에서 제대로 발보리심한 사람은 발심한 크기만큼 깨달음의 크기가 온다, 이렇게 해놨다. 부처님께서 정수리에 물을 부으시는 관정을 받고는
이무루신(以無漏身)으로: 무루신이라. 무루신 무루의 반대되는 유루는 누수되고 누전되는 것이다. 찔찔 새는 것, 눈으로 욕심이 새고, 코로 새고, 눈코입귀로 욕심이 찔찔 새면 유루신이잖은가.
정확하게 무루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무명이다.
무루의 반대말은 무명(無明)이다.
그러니까 무루, 무루법신을 기신론에서는 수염환이라고 한다.
염환을 불수자성수연성해서 인연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그것이 수염환차별(隨染幻差別)이다.
그런데 무명을 따라가서 자체가 악독한 마음은 성염환차별(性染幻差別)이라. 성질머리 바탕이 염환이라는 말이다. 바탕이 오염되고 헛것으로 있는 것은 무명이다. 그것은 진여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성염환차별이다.
이 무루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을 무루라고 하잖는가.
부처님의 육신통 제일 마지막이 무엇인가? 누진통이다. 누(漏)가 진(盡)했다. 찔찔 새는 게 없다.
허공이 새는 게 없지 않은가. 그런 것처럼 완벽하다. 구경이라는 말은 무루와 같은 말이다. 샘이 없는 몸으로써
이시몰생(而示歿生)하야 : 죽고 태어나서
출가성도(出家成道)하고: 출가하여 도를 이루고
설법멸도(說法滅度)하야:설법하여 멸도한다.
요건 무엇인가. 부처님 팔상성도다. 설법멸도하여
구족여시보현사고(具足如是普賢事故)라: 이러한 보현의 일을 구족하는 연고이니라.
시위십(是爲十)이니:이것이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무상대청정정진(則得如來無上大淸淨精進)이니라: 즉득 그 자리에서 여래의 위없는 크게 청정한 정진을 얻게 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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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여공화사 心如工畵師
능화제세간 能畵諸世間
오온실종생 五蘊悉從生
무법이부조 無法而不造
고맙습니다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예전에 어른스님께서 다녀가셨던 화곡동 보광사에서 수계법회를 하시나 봅니다.
네 긴가민가해서 쓰지 못했어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아름다운 수계첩을 만드셔서 저도 저런 수계첩 받고 싶다 생각했어요^^ 인장크기가 원효스님이 만드신 인장 오리지날이라고 하네요.아마도 완성본인데 스님들이 모두 관심있어서 인쇄소 전화번호도 물으셨어요. 보광사스님들이 인쇄소에 가서 "이번에도요?" 하면서 여러 번 고치셔서 사장님께 감사하다고 하시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때는 생각 안 나고 지금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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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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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고맙습니다